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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면 질 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의 단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그릇된 주장과 리론을 짓부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시였다.

 

이 시기 완고한 민족주의자들과 초기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로 자처하는자들은 저들 상층의 몇몇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말공부나 하고 다툼질만 하면서 대중을 혁명투쟁에 불러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고 외세에 의존하여 나라의 독립을 이룩해보려고 망상하고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실력배양》이니, 《산업진흥》이니 하는 허황한 주장과 《프로레타리아혁명》이니, 《세계무산혁명》이니 하는 초혁명적인 언사로 대중을 유혹하고 자기편에 그들을 끌어당기려고 꾀하면서 조선혁명과 동떨어진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부르죠아민족주의종파주의 를 극복함이 없이는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굳게 묶어세울수도 조선혁명을 새롭게 전진시킬수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초기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거물》급 인물들의 허황한 《리론》을 폭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초기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김찬, 안광천, 신일용 등 화요파, 엠엘파, 서상파의 《거물》들을 만나시여 그들의 파쟁행위에 원칙적인 비판을 가하시였으며 사대주의, 교조주의에 깊이 물젖어있고 조선의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 그들의 허황한 《리론》을 폭로하시였다.

 

그때 엠엘파의 안광천이란자는 흰두루마기를 입고 길림에 나타나 공산주의운동의 《수령》으로 행세하면서 자기 세력을 뻗치려고 하였다. 안광천은 연설을 하면서 대중운동을 무시하는 망발을 마구 늘어놓았다. 그는 국제당이나 큰 나라의 힘을 빌면 대중투쟁이 없이도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다고 하면서 조선과 같이 작은 나라는 대중투쟁을 하느라고 헛되게 피를 흘릴것이 아니라 큰 나라의 덕으로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만난 자리에서 대중투쟁을 얕보면서 공산당은 왜 조직했고 공산주의운동은 왜 하는가, 이 길림에 와서 사람들에게 혁명에 궐기하라고 부르짖는것은 또 무엇때문인가고 들이대시였다. 그러시고는 대중을 각성시키고 묶어세워 투쟁에로 부르지 않는다면 몇사람 안되는 공산당지도부를 가지고 투쟁에서 승리할수 없다는데 대하여서와 자기 인민을 믿지 않고 남의 덕에 독립을 이룩해보려는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론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부 민족주의자들의 그릇된 공리공담을 론박하는 투쟁도 동시에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ㅌ. ㄷ>를 결성한 첫날부터 항상 민족주의자들과의 공동투쟁을 모색해왔다. 안창호의 사상이 개량주의적이라는것을 깨달았을 때에 우리는 그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면서도 그가 붙잡혔을 때에는 주저없이 그를 감옥에서 석방하기 위해 투쟁했다.》  

 

1927년 2월 14일 상해림시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있던 안창호가 길림에 와서 《조선민족운동의 장래》라는 제목으로 시국대강연을 하였다.

 

 

도산 안창호와 그의 강연회 참가자 체포사건을 소개한 《동아일보》(1927.3.22부)

 

이날 안창호는 강연에서 개량주의적인 실력양성론(준비론)을 들고나왔다. 그는 조선민족을 세계에서 정신적수양이 가장 낮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우리 민족이 적어도 미국이나 영국사람들만큼 때벗이를 해야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을것이라는 주장까지 하였다. 열변을 토하는 안창호의 강연에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적지 않은 군중이 현혹되여 박수까지 쳤으며 그속에 깔려있는 민족개량주의적이며 투항주의적독소를 가려보지 못하고 공감을 표시하였다. 독립운동의 거두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의 류창한 언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난 《대리론가》가 《과연 다르다》고 감탄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강연을 듣다못해 더 참지 못하시고 안창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종이에 써서 들이대시였다.

《- 산업과 교육을 진흥시켜 조선민족의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라를 일제놈들에게 통채로 빼앗긴 조건에서 그것이 이루어질수 있는가?

- 우리 민족을 정신수양이 낮은 민족이라고 했는데 어떤 점이 그러한가?

- 연사가 말하는 렬강이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인데 과연 우리가 그들을 본받아야 하는가? 또 우리가 그들의 〈원조〉에 의해서 독립을 가져올수 있는가?》

 

안창호는 자기 주장의 부당성과 비현실성을 여지없이 론박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면질문을 내리읽고나서 한동안 멍청히 서있다가 서둘러 강연을 마무리짓고 연탁에서 내려왔다. 미국과 하와이, 상해와 중국 동북지방 등 각지의 조선인거주지역들을 다니며 민족주의의 《대리론가》로, 이름난 웅변가로 소문을 낸 안창호도 위대한 수령님의 사리정연한 론박앞에서 더는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강연이 끝나갈무렵 일제의 부추김을 받은 중국반동군벌경찰과 헌병 수백명이 강연회장에 달려들어 300여명의 독립운동자들과 강연회참가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국반동군벌당국의 탄압만행에 대처하여 독립운동자들을 석방하기 위한 대중투쟁을 조직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놈들의 이러한 탄압만행을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을 말살하려는 반혁명적책동으로 락인하시고 즉시에 《ㅌ. ㄷ》성원들의 회의를 여시여 감금된 조선사람들의 석방운동을 벌릴것을 토의하시였다. 그리고 그 걸음으로 독립운동자들을 찾아가시여 그들과도 체포된 사람들을 빼내올 방법을 의논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넋을 잃고 앉아만 있을뿐 속수무책인 독립운동자들에게 돈이나 뢰물로 통하지 않는것도 군중의 단결된 힘으로 투쟁하면 능히 해결할수 있다고 꾸준히 설복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어 길림례배당에서 시내의 독립운동자들과 조선인유지들,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군중집회를 여시고 일제와 그와 야합한 반동군벌당국의 불법적인 망동을 항의규탄하시였으며 겨레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조선사람들은 한마음한뜻으로 단결하여 애국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대중적석방운동에 떨쳐나서자고 호소하시였다.

 

군중집회가 있은 다음 길림의 담벽과 전주대들에는 《중국경찰이 근거없이 조선동포들을 붙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어놓고 박해한다.》,《중국관헌은 일제의 간계에 속지 말라!》,《감옥에 갇힌 조선동포들을 하루빨리 석방하라!》는 내용의 삐라와 격문들이 나붙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여러곳에서 중국반동군벌들과 경찰들의 비행을 단죄하는 강연사업을 벌리도록 하시는 한편 신문사들에도 글을 써내시여 사회여론을 환기시키시였다. 길림시안의 청소년들과 군중들은 매일과 같이 독군서에 몰려가 감금된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웨치면서 시위도 벌렸다.

 

날로 분분해지는 사회적여론과 군중의 압력에 못이겨 일제와 반동군벌들은 20여일만에 안창호를 비롯한 구속자전원을 석방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1권 제3장 6. 《안창호의 시국대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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