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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에로​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을 조직지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맹휴학에서 이룩한 성과에 토대하여 청년학생들의 앙양된 기세를 일제의 대륙침략을 반대하는 보다 큰 규모의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반대하며 일본상품을 배척하는 보다 큰 규모의 투쟁을 조직지도하시였다.

 

오래전부터 중국 동북지방에 대한 침략전쟁준비에 미쳐날뛰던 일제는 이 시기에 와서 그 준비를 서둘러 1928년에는 이미부터 개통되여있던 길장선(길림-장춘)철도에 이어서 길돈선(길림-돈화)철도부설을 끝내고 동북지방을 침략하기 위한 중요간선으로서 동북의 성소재지 길림과 조선의 북부국경도시 회령사이를 련결하는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완공하려고 서둘렀다. 여기에는 중국 동북지방을 침략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고 나아가서 이 지역을 정치군사적으로뿐아니라 경제적으로 틀어쥐고 저들의 상품을 여기에 대량적으로 들이밀어 막대한 리윤을 짜내려는 일제의 흉악한 속심이 깔려있었다.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와 일본상품을 배척하는 투쟁이 가지는 의의와 대중투쟁의 성숙된 요구를 헤아리시고 주체17(1928)년 10월 상순 북산공원 약왕묘지하실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간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연설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저지파탄시키자》에서 길회선철도부설과 일본상품침투의 침략적본질을 밝히시고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저지파탄시키며 일본상품을 배척하는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한 문제와 그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반일감정을 높인데 기초하여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반대하고 일본상품을 배척하는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조직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회선철도부설공사의 침략적이며 략탈적인 목적을 놈들의 상품침투행위와 밀접히 결합시켜 청년학생들과 군중에게 인식시킴으로써 그들이 일제에 대한 증오심으로 끓어번지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이어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반대하여 투쟁하자!》, 《일본상품을 배척하자!》, 《일제침략자들을 타도하자!》 등 투쟁과정에 내들어야 할 구호와 투쟁방법, 행동방향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께서는 시위투쟁대오를 편성하고 각 대오의 책임자들을 임명하시였으며 시위준비를 철저히 갖추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위투쟁준비를 다그쳐나가시던중 철도당국자들이 11월 1일에 길돈선철도개통식을 하기로 하였다는 정보를 받으시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의 봉화를 올리면서 동시에 길돈선철도개통식도 파탄시킬 목적으로 시위시작날자를 본래 계획하신 날자보다 며칠 앞당기시였다.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은 주체17(1928)년 10월 26일 육문중학교, 문광중학교, 제1중학교, 제5중학교, 녀자중학교를 비롯한 시안의 각 학교청년학생들의 동맹휴학 및 가두시위로부터 시작되였다.

 

이날 일제히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에 떨쳐나온 수천명의 청년학생들은 《일제침략자들을 타도하자!》,《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반대하여 투쟁하자!》라는 조선글로 된 프랑카트와 《타도일제》, 《타도매국노》, 《회수길회선》이라고 중국글로 쓴 프랑카트들을 들고 집결장소인 길림성의회 청사앞에 모여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의회마당에서 있은 군중대회에서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의 침략적목적을 낱낱이 폭로규탄하시고 전체 학생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는 격동적인 선동연설을 하시였다. 그이의 열렬한 호소에 청년학생들은 온 거리를 진감하는 우렁찬 구호와 박수갈채로 호응하였다.

 

군중대회를 마치자 청년학생들은 곧 프랑카트를 들고 가두시위투쟁에로 넘어갔다. 시위대오의 선두에는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께서 서계시였고 청년공산주의자들은 그이를 보위하고있었다.

 

일본령사관앞에서 반일구호를 힘있게 부르며 기세를 올린 시위군중은 대마로, 북경로, 중경로, 상의가 등 길림의 여러 거리를 뒤덮으며 시위를 계속하였다. 거리마다에 삐라가 뿌려지고 집집의 벽과 전주에 구호며 성토문, 격문들이 연방 나붙었다. 선전대성원들은 거리의 곳곳에 모여든 군중앞에서 일제의 침략책동과 반동군벌당국의 매국행위를 폭로단죄하였으며 학생들의 정의로운 투쟁에 합류해나설것을 호소하였다. 소년회의 나어린 학생들도 집집을 찾아다니며 선전도 하고 일본령사관에 삐라도 던져넣으며 형님, 누나들의 투쟁을 적극 도와나섰다.

 

시위투쟁은 11월까지 거의 매일 계속되였으며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날이 갈수록 더욱 고조되여갔다. 온 길림땅이 투쟁의 불도가니로 끓어번졌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일제와 한짝이 된 반동군벌들은 황급히 군대와 경찰을 풀어 시위군중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더욱 거세찬 투쟁을 벌렸다.

 

시위탄압에 동원된 무장한 군경들은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의 높은 투쟁기세에 눌리워 다만 경계진을 펴고 감시할뿐 더는 어쩌지 못하였다. 급해맞은 적들은 길돈선철도개통식을 무기한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시위자들의 반일기세가 앙양되고 조직화수준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기세충천한 시위군중을 일본상품배척투쟁에로 줄기차게 이끌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시위자들은 성난 파도와 같이 일본인거리로 밀려가 일본인상점들에서 일본상품들을 모조리 끌어내여 짓밟고 불태워버렸고 송화강에도 처넣었다. 한 대오가 지나가면 다른 대오가 나타나고 그 대오가 지나가면 또 새로운 대오가 《일본상품을 배척하자!》는 구호를 들고 일제침략자들을 단죄하여 련일 세찬 투쟁을 벌렸다.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는 투쟁이 일본상품배척투쟁과 결합되여 전면적인 반일투쟁에로 점점 더 크게 번져가는데 당황한 일제는 반동군벌을 사촉하여 시위군중에게 총을 마구 쏘아대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게 하였다. 시위자들속에서는 여러명의 사상자들이 생겼다.

 

격노한 시위군중은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일제와 결탁한 반동군벌타도》의 구호를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장례식과 결합된 보다 대규모적인 시위로 넘어갔다. 이날의 시위는 많은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최대의 규모를 이루었다.

 

길림에서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시위투쟁은 장춘, 할빈, 심양, 천진 등 중요도시들과 철도부설공사장, 농촌지역을 비롯한 중국의 넓은 지역에 확대되였으며 그 혁명적영향은 국내깊이에까지 파급되여 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추동하였다.

 

당시 중국의 신문들은 물론 조선에서 발간되는 신문들도 이 투쟁에 대하여 크게 보도하였다.

 

《동아일보》 1928년 11월 2일호는 《길돈선연장 기타로 길림 배일험악화, 학생 등은 매일 시위행렬계속, 천진배일도 수일 심각》이라는 표제밑에 길림에서의 시위투쟁소식을 전하였으며 11월 13일호는 《할빈학생단체 길회선반대고조, 9일 경관대와 충돌, 148명 부상》이라는 제목으로 할빈일대에서의 시위투쟁에 대하여 보도하였다.

 

주체17(1928)년 10월부터 11월까지 무려 40여일동안이나 계속된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과 일본상품배척투쟁은 우리 인민이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빛나는 승리를 이룩한 첫 대규모의 반일대중투쟁이였다. 이 투쟁은 중국 동북침략의 야망을 실현해보려고 갖은 흉계를 꾸며오던 일제침략자들과 그와 야합한 중국반동군벌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으로 하여 일제가 받은 타격은 실로 컸다. 그가운데서도 놈들을 크게 놀라게 한것은 조중인민이 단결하여 일제에게 항거해나선것이였다.

 

민족주의자들과 일제의 침략에 겁을 먹고 도망칠 궁리만 하던 사람들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신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는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민족주의자들은 청년학생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왔었다. 그런데 10대, 20대의 청년학생들이 자기들로서는 엄두도 낼수 없는 큰일을 해제끼는것을 목격하고서는 다른 눈으로 그들을 보게 되였다.

 

이 투쟁을 계기로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에 대한 청년들과 광범한 인민들의 존경과 신뢰는 더 한층 높아지고 혁명조직들은 더욱 억세게 단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의 사촉밑에 중동철도사건을 일으킨 중국반동군벌을 반대하며 첫 사회주의국가인 쏘련을 지지성원하는 투쟁에로 청년학생들과 군중을 불러일으키시였다.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사촉과 조종하에 중국 국민당정부와 반동군벌은 1920년대말에 이르러 배신적인 반쏘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반동군벌당국은 《적색제국주의를 반대한다.》는 구호를 웨치면서 중국인민의 민족감정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진상을 은페하였으며 반쏘사상을 집요하게 고취하였다.

 

반동군벌들의 선전에 기만당한 대학생들과 청년인테리들까지도 《우랄산을 점령하고 바이깔호를 차지하자!》는 호전적이고 도발적인 폭언을 마구 해대면서 쏘련땅을 넘겨다보았다.

 

이런 분위기를 타서 반동군벌당국은 중동철도문제를 둘러싸고 쏘련의 리권을 침해하는 로골적인 침략책동을 감행하여나섰다. 중동철도는 중쏘량국이 협정에 따라 재산과 설비를 절반씩 차지하고 리사회라는 관리기구를 통하여 공동으로 경영하고있는 철도였다.

중국반동군벌은 1929년 7월 무력을 동원하여 중동철도를 점령하고 쏘련측의 리권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렸으며 곧 국경을 넘어 세개 방향으로 쏘련을 침공하였다. 이렇게 되여 쏘련군대와 중국반동군벌군대사이에는 무장충돌이 일어났다. 그때 풍용대학과 동북대학의 일부 우익계 학생들은 반동들의 사촉을 받아 무장까지 하고 쏘련을 반대하여 나섰다. 중국반동군벌의 이 도발책동은 쏘련의 계약상 권리를 침해하고 그 안전을 위협하는 반쏘책동이였을뿐아니라 세계적으로 막을수 없는 추세로 장성하는 사회주의운동을 진압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반공책동의 일환이였다.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침략자들과 야합한 국민당정부와 반동군벌의 반쏘책동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공청원들과 반제청년동맹원들로 하여금 놈들이 감행하는 전쟁의 반동적본질을 대중속에 폭로하는 투쟁을 적극 벌리도록 하시였다. 한편 국민당반동들과 군벌당국에 기만당하여 놈들이 감행한 무장충돌을 지지해나서는 풍용대학과 동북대학의 일부 우익계 청년학생들의 진출을 저지시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지도에 의하여 중동철도사건을 둘러싸고 조직전개된 이 투쟁은 반동세력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으며 중국인민들로 하여금 반동군벌의 진면모와 그를 사촉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본심을 똑똑히 깨닫게 하여 그들을 각성시켰다. 이 투쟁을 통하여 또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성원들과 광범한 군중들의 계급적각성이 더욱 높아지게 되였으며 특히 그들속에서 일제와 야합한 반동세력에 대한 증오심을 크게 북돋아주고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사상을 옹호하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처럼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을 과감히 조직령도하시여 대중을 각성시키고 단결된 대중의 위력을 힘있게 과시하시였다.

 

        일화; 길림을 뒤흔든 단결의 시위

        ​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1권 제3장 5.《단결의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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