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땅에 또다시 승리의 개가를 울린 현명한 령도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은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 높이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력사적진군길에서 날마다 대비약, 대혁신을 일으키고있는 장엄한 환경속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또다시 조국에로 진군하시여 력사적인 무산지구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신 불멸의 령도업적에 대하여 감회깊이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8(1939)년 4월초 중국 동북지방의 장백현 북대정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또다시 국내에로 진군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면서 국내진출의 대상으로 무산지구를 선택하시였으며 5월에는 무산지구에 진출하시여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군사정치적타격을 주고 조선인민혁명군의 불패의 위력을 다시 한번 힘있게 과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무산지구전투는 보천보전투와 함께 우리가 국내에서 진행한 군사작전들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의의가 큰 전투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땅에 또다시 승리의 개가를 울리신 현명한 령도에서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먼저 국내진출의 대상지를 옳게 선정하신것이다.

국내진출의 대상지를 옳게 선정하는것은 국내진출의 목적을 성과적으로 달성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대상지를 옳게 선정하여야 일제침략자들에게 보다 심대한 군사정치적타격을 주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시위할수 있으며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주어 국내진출의 효과를 몇배로 크게 낼수 있었다.

무산지구는 보천보전투가 있은 후 적들이 가장 악질적인 수비대무력을 몇배로 증강한것으로 하여 대부대가 뚫고들어가기가 매우 어렵고 위험한 곳이였다.

당시 일제는 두만강연안 함북국경선에 19사단병력의 거의 전부를 배치하고있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백두산일대의 무인지경과 린접하고있는 무산지구에는 함북의 다른 국경군들보다 배나 되는 무력을 집중배치하고있었다.

그때 일제가 국경 중요소재지의 경찰서들에서도 50|60명밖에 두지 않은 경찰들을 한개 면소재지인 무산군 산강경찰서에만도 그 2|3배나 되게 경찰을 배치하고있은 사실은 적들이 이곳을 얼마나 중시하고있었는가를 잘 말해주고있다.

그러므로 이런 지구에 진출하여 적들을 치게 되면 북부조선의 어느 지구에로 진출하는것보다 몇배의 효과를 볼수 있었다.

또한 무산지구에는 철광로동자들과 수전공사로동자들, 벌목로동자들을 비롯하여 로동계급의 대부대가 집결되여있었으므로 조선인민혁명군이 이 일대에서 총소리를 내면 로동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뿐아니라 그들을 각성시켜 항일혁명에 더욱 힘있게 불러일으킬수 있었다.

무산지구를 치는것은 또한 부대의 차후행동에도 유리하였다.

이 지구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기본활동무대로 될 백두산중북부의 험준한 산악지대들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었으므로 북대정자회의에서 제시된대로 신속히 백두산동북부로 철수하여 즉시 다음단계의 과업을 수행할수 있었다.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진출의 중요대상지를 무산지구로 택하신 기본의도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땅에 또다시 승리의 개가를 올리신 현명한 령도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국내진출시기를 잘 선택하신것이다.

조국진출의 시기를 잘 선택하는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의 성과적보장을 위한 중요한 문제의 하나였다.

주체28(1939)년 5월은 당시 정세로 보나 조국진출과 조국해방을 총적목표로 삼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향이나 국내인민들의 념원으로 보나 조국진군의 적당한 시기였다.

주체28(1939)년 5월이면 지구의 동쪽에서는 중일전쟁이 한창일  때이고 서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준비되고있던 때였다.

일제는 장기전에 빠진 중일전쟁을 시급히 결속하고 남방으로 진출할 전략을 짜면서 공고한 후방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인민에 대한 경제적수탈과 파쑈적폭압을 강화하였는데 그 대표적실례가 바로 《혜산사건》이였다.

이 사건으로하여 서간도지방의 혁명조직들과 함께 북부조선일대의 일부 혁명조직들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남은 혁명조직들도 위축된 상태에 있었다.

일제는 《혜산사건》후 조선인민혁명군이 망했다는 선전을 요란스레 했으며 어떤 곳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괴멸》과 저들의 《무훈》을 축하하는 경축대회놀음까지 벌리고있었다.

적들의 거짓선전에 속아넘어간 일부 지방의 혁명조직성원들은 김일성장군부대가 잘못되였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조선혁명은 다 망한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면서 유격대공작원들이 있는 밀영에 찾아와 사실을 확인해보고 돌아가기까지 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몇몇 공작원들이 국내에 침투해서 혁명군은 죽지 않았다고 아무리 선전해도 잘 통할수가 없었다.

항일혁명을 앙양시킬수 있는 최상의 방도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가 국내에 진출하여 적들을 쳐갈기고 내외에 자기의 존재를 시위하는것이였다.

더우기 일제의 야수적탄압으로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하고 확대하며 인민들을 전민항쟁에로 불러일으키자면 조선인민혁명군이 하루빨리 국내에 들어가 총소리를 내는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도였다.

국내에 있는 혁명조직들이 자기 대오를 제일 늘인 때가 보전보전투와 간삼봉전투 직후였다.

총소리가 한번씩 울리면 사람들이 각성되고 각성된 인민들이 혁명조직에 모여오기 마련이다.

서간도지방에서 혁명조직들이 우후죽순처럼 태여나게 된 중요한 요인은 사상사업을 잘한데도 있지만 남호두회의 이후 이 지역에서 싸움을 많이 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본때를 보여주고 항일혁명이 능히 승리할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준데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진출시기를 옳게 선택하심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고 하던 일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혁명군의 존재와 위력을 남김없이 떨칠수 있게 되였으며 인민들에게 항일혁명의 승리에 대한 굳은 신념을 안겨주고 그들을 전민항쟁으로 더욱 힘있게 불러일으킬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땅에 또다시 승리의 개가를 올리신 현명한 령도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탁월한 령군술로 적들에게 심대한 군사정치적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군술은 조국진군작전에서 승리를 달성할수 있게 한 결정적담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산지구진공작전에서도 큰 규모의 전투를 벌려 적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가하는것을 선차적인 과업으로 내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8(1939)년 5월 상순에 몸소 경위중대의 일부 성원들을  이끄시고 간백산밀영에 오시여 조국진군작전계획을 완성하신 다음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 지휘성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대부대에 의한 무산지구진공작전을 승리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이 지구에 승리의 홰불을 높이 올릴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백산밀영에서의 사업을 성과적으로 마치신 후 곧 곰의골밀영에 가시여 700여명으로 구성된 조국진출대오를 편성하시였으며 5월 15일에는 드디여 대오를 인솔하시고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산지구진공작전의 첫 순간부터 령활한 전술로 적들의 총검의 숲을 대담하게 헤쳐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월 16일 압록강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24도구 부근에서 위만군수송대에 대한 습격전투를 조직하시여 적들의 이목이 그쪽으로 쏠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의도대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유인전술에 속아넘어간 적들은 급기야 24도구방향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적들의 국경경비진에 혼란을 조성하신 다음 5월 18일 자욱한 안개속에 잠긴 5호물동으로 압록강을 건느시였다.

 조국땅에서의 첫날을 청봉에서 숙영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행방을 찾아 헤매는 적들이 갈피를 잡을수 없게 부대가 멀리 가는척 하다가 청봉에서 불과 10리정도밖에 안되는 건창에서 숙영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있을수 있는 적들의 준동에 대처하여 2개의 소부대를 편성하시고 한 소부대는 포태리방향에 나가 적들을 타격함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이 여러곳에서 활동하고있는듯한 인상을 주어 적들을 혼란시키며 다른 한 소부대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다시 압록강을 건너 장백쪽으로 빠진것처럼 발자국을 내고 자취를 감추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한 기만전술에 말려든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행방을 찾을수 없어 포태산기슭에서 맥을 뽑으며 돌아치게 되였다.

 5월 20일 새벽 건창을 떠나 베개봉에 도착하시여 숙영명령을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정을 료해하신 다음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일행천리전술로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기 위해 닦아놓은 갑무경비도로를 대낮에 행군하여 로은산방향으로 진출하며 그 일대의 적들을 소멸하고 군중정치사업을 벌릴데 대한 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것은 적들의 움직임과 전술적약점을 제때에 포착하고 취하신 현명한 조치였다.

당시 조선인민혁명군이 주로 산발을 따라 행군하리라고 타산한 적들은 포태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 특히 백두산동남부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큰 길에는 주의를 적게 돌리고있었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이 은밀성과 불의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밤에만 행동하리라고 믿고 야간경계를 특별히 강화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담무쌍한 일행천리전술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신심드높이 5월 21일 베개봉을 떠나 갑무경비도로를 보무당당히 행군하여 그날로 두만강기슭의 무포에 도착하였다.

 후날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가 자기들이 새로 닦아놓은 경비도로를 따라 대낮에 행군해갔다는것을 알게 된 적들은 《미중유의 괴사》라고 비명을 질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구상에 따라 갑무경비도로에서 강행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일행천리행군은 몇개의 련대와 사단의 적을 소멸한것보다 더 큰 소득을 얻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포숙영지에서 지휘관회의를 소집하시고 행군과정을 총화하신 다음 대홍단지구로 진출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신사동과 신개척일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5월 22일 아침 무포숙영지를 출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홍단벌에 도착하자마자 국사당부근에서 점심식사를 한 다음 계획대로 7련대는 두지바위를 거쳐 신개척방향으로 행군하게 하시고  자신께서는 8련대와 경위중대를 거느리시고 소로은산기슭에 있는 신사동방향으로 진출하시여 몸소 정치사업을 조직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몇명의 경위대원들과 전령병을 데리고 마을에서 제일 큰 목재소로동자합숙을 찾으시여 로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처지를 료해하시였으며 합숙으로 모여온 신사동인민들앞에서 《조국의 광복을 앞당기기 위하여 반일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을 마치시고 《조국광복회창립선언》《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등사한 선전물들을 로동자들에게 나누어주시고 앞으로 혁명조직을 내오고 투쟁할 방향과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바로 이러한 때 조선인민혁명군의 종적을 찾아 헤매던 적들이 신사동방향에 나타났다.

이미 신개척에서 얻어맞은 적들이 반드시 추격해오리라는것을 예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형상 유리한 대홍단벌에서 적들을 소멸할것을 결심하시고 8련대와 경위중대로 하여금 신사동을 떠나 재빨리 그곳에 가서 둔덕진 곳에 매복진을 치게 하시였다.

그무렵 신개척의 적들을 몽땅 요정낸 7련대는 승리의 기쁨에 들떠서 자기들의 대렬뒤에서 적들이 따라오는것도 모르고 사령부와 만나게 되여있는 대홍단쪽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정황을 판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렬에 있는 7련대 대원들은 그냥 매복진 앞으로 지나가게 한 다음 대렬후위에 있는 후방조성원들과 목재소로동자들에게 없드리라는 신호를 하고나서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7련대의 뒤를 쫓아오는데만 정신을 팔던 적들이 날아드는 명중탄에 무리로 쓰러졌으나 살아남은 적들은 악을 쓰며 저항하였다.

이러한 때 신사동과 신개척방향에서 적의 증원부대가 나타났다.

그러자 대홍단벌 건너편 언덕으로 쫓겨간 적들은 증원부대와 합세하여 새로운 공격을 시도하였다.

증강된 적들의 일부가 북쪽으로 우회하여 아군의 익측과 후방을 타격하려 한다는것을 간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보다 앞질러 한개 구분대를 파견하시여 적을 역포위하고 등뒤에서 호되게 족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한 지휘에 의하여 저들의 기도가 파탄되고 도리여 배후와 정면으로부터 강력한 타격을 받은 적들은 대홍단벌의 진펄에 숱한 시체를 내버린채 황황히 꽁무니를 뺐다.

겨우 목숨을 건져가지고 유곡방향으로 도망치던 패잔병들은 극도로 당황하여 그쪽에서 달려오던 자기편 증원부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알고 서로 맞불질을 하는 추태까지 부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군술에 의하여 대홍단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휘하신 무산지구전투는 보천보전투승리와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이 국내에서 진행한 군사작전들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의의가 큰 전투였다.

보천보전투가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을 시위한 전투였다면 대홍단전투는 적들이 전멸당했다고 선전하던 조선인민혁명군이 건재해있을뿐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강대한 력량으로 자라나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계속 철추를 내리고있다는것을 실지로 보여준 력사적인 전투였다.

무산지구에서 높이 울린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소리는 국내인민들에게 항일혁명이 계속 승리의 한길로 나아가고있다는 신심을 안겨주고  《혜산사건》으로 일시나마 위축되여있던 국내혁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산지구에 진출하시여 탁월한 령군술로 조국땅에 또다시 승리의 개가를 높이 울리신 불멸의 혁명업적은 새로운 혁명적대고조로 강성국가건설의 진격로를 열어나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고있다.

올해는 조선로동당창건 일흔돐과 조국해방 일흔돐, 6.15 공동선언발표 15돐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온 겨레는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한평생을 다 바치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애국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민족의 대단합, 대단결로 조국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할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박기정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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