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별칭

- 삼천리금수강산

우리 나라는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분포되여 있는 3300여개의 섬들로 이루어져있으며 예로부터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일러왔다.

삼천리라는 말은 우리 나라 북남의 최대길이 2100리에 동서의 최대길이 900리를 합하여 3000리가 된다는데로부터 나왔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비단실로 수놓은듯이 산천이 아름다와 금수강산으로 불리워 왔다.

우리 나라에는 금강산, 묘향상, 칠보산, 구월산을 비롯하여 그 어디에나 수려한 산이 있고 넓고 비옥한 들이 있으며 맑은 강하천과 무성한 숲이 많다. 또한 뚜렷한 사계절에 따르는 경치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때문에 예로부터 우리 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불렀다.

 

- 해동 

해동은 중국사람들이 발해(중국의 료동반도와 산동반도의 앞바다)의 동쪽나라라는 뜻으로 불렀던 이름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도 중국과의 해상래왕이 많았던 세나라시기와 고려시기에 많이 써왔다.

《삼국사기》에는 《해동의 일》, 《해동불법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있으며 백제사람들이 의자왕을 《해동증자》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해동고기》라는 우리 나라 력사원전이 인용되여 있으며 《해동신라》라는 명칭도 나온다.

《삼국유사》에도 《해동》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후기신라에서도 《해동》이라는 말을 썼다.

고려시기에는 문종왕때 교육에 노력을 많이 쏟아 부은 최충을 《해동공자》라고 하였으며 이 시기에 편찬한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도 《해동비록》이라는 말이 나온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가요책 《룡비어천가》의 제1장에 《해동륙룡이 날아서》라는 대목이 있으며 한치윤이 편찬한 《해동역사》를 비롯한 많은 책들에 《해동》이라는 표현이 있다.

 

- 동국

동국은 중국의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서 《해동》이라는 표현으로부터 나왔다.

후기신라때 최치원이 지은 탑비의 글에서 《동국》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하여 고려이후시기에 보편화되였다.

고려 숙종왕이후 《동국통보》, 《동국중보》라는 화페가 주조되였으며 리규보가 쓴 책 《동국리상국집》이 나왔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동국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이였다. 이 시기에 편찬된 《동국사략》,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동국명산기》, 《동국병감》등을 비롯한 수많은 책들에서 동국이라는 명칭을 쓰고있다.

이 시기 동국이라는 명칭외에 동방, 대동이라는 명칭도 나왔다.

 

- 대동

대동은 조선봉건왕조시기 민족적자주의식으로부터 동국의 격을 높여 큰 동국이라는 뜻에서 지은것이다.

이 명칭은 16세기의 사림파(조선봉건왕조의 세조왕때에 갈라지기 시작한 유림의 4개 파중의 하나)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후 19세기까지 널리 사용되였다.

류희령이 편찬한 《대동시림》, 《대동주시격》과 권문해가 편찬한 《대동운부군옥》이라는 책들에서 대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였다. 특히 선조의 후손인 량선군 리우가 우리 나라 금석문의 탁본(비석이나 금속으로 만든 물건에 새긴 글을 본 뜬 그림이나 글씨)을 모아 《대동금석서》라고 한 후부터 대동이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였다.

대동이라는 이름은 조선봉건왕조후기에 나온 책 《대동야승》과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대동지지》등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 진단

진단이라는 별칭의 뜻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벼락칠 진》자에 《아침 단》자를 결합한것이고 다른 하나는 《벼락칠 진》자에 《박달나무 단》자를 결합한것이다.

《주역》(고대중국의 주나라에서 만든 점치는 책)에서는 진(벼락칠 진)의 뜻을 동방이라고 하였으므로 《아침 단》자와 결합된것은 동방의 아침의 나라라는것이고 단군을 의미하는 《박달나무 단》자와 결합된것은 동방의 단군의 나라라는것으로 해석된다.

동방의 아침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진단은 발해와 고려에서 써왔다. 백승현이 쓴 《고려사》 123권에는 《마니산참성단에 임금이 친히 제사를 올리면 우리 나라는 진단의 대국이 될것》이라고 기록되여 있다.

동방의 단군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진단은 일제의 조선강점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모든것이 말살되였던 시기에 민족성을 되살리는 뜻에서 많이 써왔다. 주체23(1934)년에 지식인들이 우리 나라의 력사, 언어, 문학 등을 연구하고 보급하기 위하여 내온 《진단학회》와 그 기관지 《진단학보》등이 바로 대표적인것으로 되고있다.

 

- 청구

청구는 두가지 뜻으로 해석되고있다.

하나는 《청》자가 동방을 가리키는 색이라는데로부터 동방의 나라라고 한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에 있는 청구라는 별이 동쪽에 뜨는 별이라는데로부터 《동방세계》라고 한것이다.

청구라는 이름은 B.C. 5~3세기경의 중국력사책 《산해경》 제9권의 《청구국조》에서 처음으로 찾아볼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우리 나라의 지리적위치 등을 설명하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세나라시기부터 청구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신라 문무왕은 고구려의 보덕국왕 안승에게 《사조(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덕과 공은 크고 높아서 위풍이 청구에 떨쳤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세운 견훤에게 보낸 답서에서 《청구에서 란을 수습한다》라고 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여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청구라는 별칭을 사용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중에서 조선봉건왕조초기 김종직이 편찬한 시집 《청구풍아》와 1728년에 김천택이 우리 나라의 시조를 수집하여 편찬한 《청구영언》등의 책들이 있으며 김정호가 그린 우리 나라 지도에도 《청구도》라고 표기한 기록이있다.

 

- 접역

접역은 우리 나라의 동해에 가재미가 많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접》은 가재미를, 《역》은 지역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의 력사책 《재물보》, 《물명고》에서는 가재미목에 해당하는 어류를 비목어라고 하였고 《지봉류설》, 《자산어보》에서는 접어라고 하였다.

《지봉류설》에서는 《비목은 동쪽 바다에서 나기때문에 우리 나라를 접역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우리 나라의 별칭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의리가 깊고 례의범절이 밝다고 하여 중국사람들이 지어 부른 《군자국》도 있으며 무궁화가 많다고 하여 지어부른 《근화지향》, 《근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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