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성씨의 유래와 특징​

사람들의 성씨는 원시사회때부터 혈연관계에 따라 집단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뿌리를 두고있다.

사회의 발전과 함께 씨족집단은 다른 씨족집단과 구별하기 위하여 각기 자기의 고유한 명칭을 가질 필요를 느꼈으며 문자가 사용되면서 씨족들의 고유명칭은 성씨로 표시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성씨의 시작은 이미 세나라시기부터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우리 나라의 옛 력사자료들에 의하면 주몽은 고구려를 세우고 자신의 성씨를 고씨라고 하였으며 신하들에게는 각기 주씨, 신실씨, 소실씨 등의 성씨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백제에서는 시조 온조가 자기 성씨를 부여씨라고 하였다고 하며 신라에는 박씨, 김씨, 석씨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전설이나 이야기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이러한 성씨들은 문자가 도입되면서 확실한 력사적기록으로 남게 되였다.

백제에서는 13대 근초고왕때부터 27대 위덕왕까지는 왕실의 성을 모두 려씨로 써오다가 30대 무왕때부터 부여씨로 하였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진흥왕때부터 성을 썼다고 한다.

성씨의 사용은 왕실에서 시작되여 점차 귀족들과 외국에 다니는 사신들, 무역업자들에게로 번져갔는데 왕은 공을 세운 사람들이나 귀화한 외국인들에게 거주지역이나 상으로 준 땅 그리고 강이나 산의 이름을 따서 성씨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노비나 천민을 제외한 일반백성들에게까지 성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것은 고려 문종왕때에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응시할수 없다는 법령이 발포된 후부터이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성씨중에서 본이 가장 많은 성씨는 김씨, 리씨, 박씨, 최씨 등이며 인구수가 가장 많은 성씨는 김씨, 리씨, 박씨 등의 순위로 되여있다.

우리 나라의 성씨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일련의 특징을 가지고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성은 가문을 표시하며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행렬(또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로 되여있어 그의 성명을 보면 소속가문과 몇대째의 사람인가를 알수 있게 되여있다.

또한 우리 나라의 성씨는 남자측의 혈족관계를 표시하는 칭호로서 결혼을 하여도 유럽에서처럼 녀자들이 자기의 성을 버리고 남자의 성을 따르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여있다.

외국에서는 자기의 성을 자의로 바꿀수 있는 경우가 많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되여있다.

우리 나라의 성씨는 력사적으로 혈연을 중심으로 유지, 공고화되여왔기때문에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적뉴대와 단결을 강화해온 기초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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