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의 말을 듣지 않은 후과​

지나간 력사를 돌이켜 보면 충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가운데는 죽으면서까지도 나라의 운명을 걱정한 성충과 귀양살이하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방비책을 내놓은 흥수도 있었다.

7세기에 이르러 신라는 령토적야망으로부터 출발하여 외세를 끌어들임으로써 천추에 용납못할 배족적행위를 감행하였다. 신라는 당나라에 빌붙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대동강이북땅은 당나라가 가지고 그 이남땅은 신라가 가진다는 밀약을 체결하였다.

김춘추, 김유신 등 신라통치배들은 먼저 백제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공격의 화살을 백제에 돌리였다.

당시 의자왕(재위 641-660년)을 비롯한 봉건통치배들의 극도의 부화방탕으로 하여 백제는 망국의 위기에 직면하고있었다.

이것은 백제의 일반인민들뿐아니라 일부 귀족관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왕과 왕자들이 날마다 주색과 사치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것을 보고 좌평(최고관직)이였던 성충(정충이라고도 한다.)은 진심으로 충고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도리여 그를 옥에 가두고 말았다.

충신은 죽어도 충신이라고 성충은 감옥에서 말라죽으면서도 의자왕에게 글월을 올렸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마디만 하고 죽겠습니다. 제가 늘 시국의 사변들을 관찰하건대 기필코 전쟁이 있을듯합니다. 대체로 싸움에서는 반드시 장소를 가려야 합니다. 그런 경우 알맞춤한 곳에서 적군을 맞아야만 나라를 보존할수가 있습니다. 만일 다른 나라 군사가 오거든 륙로로는 탄현(침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며 수군은 기벌포(금강하류)의 언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 굳게 지켜내야 합니다.》

성충의 말은 나라의 앞날을 근심하여 진심으로 제기한것이였으나 사치와 향락에 빠져 유흥에만 정신을 팔고있던 의자왕의 눈과 귀에는 오직 풍악소리와 궁녀들의 요염한 자태만이 안겨올 뿐 피골이 상접한 충신 성충의 말이 들어올리 만무하였다.

암둔한 임금가까이에는 항상 아첨과 아부로 살아가는 자들이 우글거리는 법이다. 의자왕가까이에 있던 간신들은 신라와 당나라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임금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때 신라는 당나라로 하여금 바다로 쳐들어오게 하고 자기들은 김유신에게 5만대군을 거느려 앞뒤로 협공하게 하였다.

660년 3월 당나라통치배들은 신라의 《청병》에 빙자하여 백제를 강점하기 위한 13만명의 대부대를 편성하였다. 당나라군은 산동반도의 래주를 떠나 바다를 건너 6월 20일에는 덕물도(덕적도)에 이르렀다.

일이 이쯤 되자 비로소 백제왕궁안에서는 벌둥지를 쑤셔놓은듯 소동이 일어났다. 바빠난 의자왕은 급기야 대신들을 모아놓고 싸우느냐 마느냐 하는 론의를 하게 되였다.

대신들은 두패로 나뉘여 갑론을박하는데 의자왕은 어느것이 옳은지 누구의 말을 쫓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였다.

안절부절 못해 오락가락하던 의자왕에게 피뜩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인즉 흥수라는 충신의 얼굴이였다.

당시 좌평 흥수는 간신들의 모함으로 고마미지현이라는 나라의 최남단 바다가에서 귀양살이를 하고있었다. 의자왕은 곧 그에게 사람을 보내였다.

《당나라군사는 수효가 많을뿐아니라 군사규률이 엄정하고 세밀하며 더군다나 신라와 더불어 우리의 앞뒤를 견제하고있으니 만일 평탄한 벌판에서 대치한다면 승패를 가늠할수 없습니다. 백강(금강)과 탄현은 우리 나라의 요충지로서 한명이 지켜도 만명의 군사가 통과하지 못할 험처이니 마땅히 날랜 군사를 선발하여 그곳에 가서 지키게 하여 당나라군사들로 하여금 백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신라군사로 하여금 탄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면서 대왕께서는 성문을 여러겹으로 굳게 닫고 지키면 그들이 물자와 군량이 떨어지고 군사들이 피곤하여 질것이니 그때를 기다려서 맹렬히 답새기면 단연코 이길수 있을것입니다.》

이렇게 흥수는 우국지심이 담긴 방비책을 간절하게 토로하였다. 흥수의 의견은 곧 조정에 전달되였다. 그런데 이것을 놓고 조정대신들속에서는 론의가 분분하였다.

《흥수는 오래동안 옥중에 있으면서 임금을 원망하며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니 그 말을 믿을수 없소이다. 차라리 당나라군사로 하여금 백강으로 들어오게 하면 강이 좁아서 배들이 나란히 오지 못할것이며 신라군사로 하여금 탄현으로 오르게 하면 소로길에 편대를 짓지 못할것이니 이러한 때를 타서 군사를 풀어 치게 하면 마치 우리에 든 닭과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는것과 같을것입니다.》

군사를 잘 알지도 못하는 간신들이 하는 말이였다.

사실상 흥수가 제기한 의견은 4년전에 감옥에서 죽은 성충이 제기한것과 꼭 같았다.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성충, 흥수는 바른 말을 하였다. 당시 백제의 형편에서는 바다에서 기여오르는 당나라군사들을 뭍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등뒤에서 들어오는 신라군사들은 천험의 요해지에 의거하여 막는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였다.

그러나 숙맥이 임금자리에 앉아있으니 백제의 운명은 시시각각 경각에 다달았다.

의자왕은 뭇신하들의 지껄임을 곧이 듣고 흥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봉건통치배들은 충신의 말을 듣지 않다가 끝내는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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