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리전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에 따라 반일인민유격대의 한 소부대가 주체22(1933)년 3월 함경북도 회령시 성북리에서 벌린 습격전투.

일제침략자들은 리안의 운연부락에 경찰관주재소를, 사탄부락에는 경찰파출소를, 변주부락에는 야경실을 설치하고 인민들의 혁명기세를 탄압하는 한편 두만강을 넘나드는 유격대의 활동을 막아보려고 책동하였다. 전투는 적들의 책동을 저지시키고 국내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기 위한 목적에서 조직되였다. 북부국경지대의 반유격구들에 의거하여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전술적방침을 받들고 중국 화룡현일대에서 활동하던 반일인민유격대의 한 부대는 국내 성북리에 소부대를 파견하였다.

소부대는 국내 혁명조직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적들의 삼엄한 국경경비진을 뚫고 두만강을 건는 다음 대오를 3개의 습격조로 편성하고 행동하였다. 운연부락에 진출한 제1습격조는 적보초병을 처단하고 경찰관주재소에 돌입하여 무기고를 장악한 다음 발악하는 적들을 소멸하였다. 사탄부락에 진출한 제2습격조는 경찰파출소에 집중사격을 가한 후 파출소에 돌입하여 적들을 소멸하고 무장을 로획하였다. 변주부락에 진출한 제3습격조는 야경실에 적이 없다는것을 포착하고 재빨리 그로부터 얼마가량 떨어져있는 악질지주집을 습격하였다.

소부대는 몇분사이에 성북리의 수많은 적들을 소멸하고 많은 무기와 군수물자를 로획하였다. 성북리전투의 승리는 반일인민유격대의 국내에로의 진출을 막아보려던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으며 국내인민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었다. 전투에서 로획한 무기들은 화룡현일대에서 활동하던 반일인민유격대의 무장장비를 더욱 강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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