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난차전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주체25(1936)년 7월10일 무송현 시난차에서 진행된 주간습격전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동강회의이후 무송일대에서 왕가대장의 위만경찰《토벌대》와는 화평관계를 맺고 활동하시였으나 여름철에 들어서면서 놈들이 배신의 길로 나가자 왕가대장을 단호히 징벌할것을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가대장의 《토벌대》를 칠 조치를 취하신 다음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시난차로 진출하시였다.

시난차는 크지 않은 집단부락이였지만 적《토벌대》들의 중요한 출전기지였다. 이 마을에는 경찰분서와 자위단무력도 있었다.

시난차전투의 목적은 왕가대장에게 조선인민혁명군의 본때를 보여주고 무송일대의 적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며 주력부대의 무장을 해결하려는데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심정을 잘 알고있는 대원을 통하여 낮 12시부터 1시사이는 경찰들의 점심시간인 동시에 무기청소시간이라는것을 료해하시고 대낮에 시난차를 치기로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2개의 습격조와 1개의 엄호조가 조직되였다.

습격조원들은 초물모자를 쓰고 농쟁기를 들고 농민복차림으로 변장한 다음 대낮에 토성에 접근하여 재빨리 성문을 통과하였다. 그리고는 습격조별로 맡은 대상물에 진출하였다. 경찰분소 병실에 벼락같이 뛰여든 습격조원들은 놈들이 총소제를 하느라고 무기를 분해해놓은 뒤인것만큼 큰 저항을 받음이 없이 분서장이하 경찰놈들을 모조리 포로하였다. 자위단에 돌입한 습격조원들도 놈들을 몽땅 사로잡았다. 습격조들이 대상물을 장악하고 부대주력이 부락에 들어옴으로써 마을은 완전히 해방되였다.

이 전투에 참가하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전투승리후 마을처녀의 거칠어진을 손을 꼭 잡으시고 세상의 반수인 녀성들이 일어나 싸워야 나라의 독립도 혁명의 승리도 더 빨리 이루어질수 있고 녀성들의 해방과 권리도 빨리 찾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녀성들에게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알기쉽게 해설해 주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경찰분서건물앞에 가설한 야외무대에서 연예공연을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대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시여 《녀성해방가》를 불러 마을녀성들을 크게 감동시키시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군중정치사업을 하여 이곳 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시난차전투의 승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적위력을 널리 시위하고 《토벌》의 능수라고 하던 왕가대장에게 큰 심리적충격을 주었다.

또한 무송일대의 적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광범한 인민대중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워 백두산근거지창설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며 주력부대의 무장장비를 개선강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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