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39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혁명생애에서
소년선봉대입대가 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까?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여 소년선봉대입대로부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혁명투쟁이 시작되였기때문입니다.

실천투쟁속에서 혁명의 진리를 깊이 체득하시고 혁명가의 품격을 훌륭히 갖추어오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20(1931)년 9월 12일 중국 연길현 부암동에서 소년선봉대에 입대하시였습니다.

소년선봉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무어주신 청소년들의 혁명적인 반군사조직이였습니다.

수령이 이끄는 혁명조직의 한 성원이 될 때부터 혁명가의 참된 생애가 시작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조직하시고 이끄시는 소년선봉대조직의 한 성원으로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받드는 투쟁대오에 들어선 그때로부터 김정숙동지의 혁명투쟁이 시작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년선봉대활동의 나날에 혁명위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높은 조직성과 규률성, 능숙한 조직자적수완과 정치사업능력을 지닌 믿음직한 청년전위로 억세게 준비해나가시였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인민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기 위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시였습니다.

이로부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혁명생애에서 소년선봉대입대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2016-12-19 04:17:08
38 고구려를 아직도 일부에서는 고대국가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봉건국가라는 확실한 근거를 재삼 확인했으면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해당 사회의 성격은 정권이 어느 계급의 손에 있으며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형태가 어떤가에 따라 규정됩니다.》

고구려는 천여년동안이나 존속한 고대국가 구려국을 이어서 생겨난 봉건국가였다.

고구려의 사회제도에 대하여 지난날 노예제사회로 보는 견해도 있었고 조기봉건사회로 보기도 하였으며 노예제도로부터 봉건제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이것은 력사연구의 제한성과 관련된것이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고구려를 노예제사회로 보는 견해들은 사회성격규정의 요인에 대한 견해가 부족한데서 온것이라고 볼수 있다.

고구려시조 동명왕은 오랜 고대국가인 부여안에서 노예소유자계급과 노예계급을 비롯한 인민대중사이의 계급적모순이 심화되고 봉건적관계가 싹트고있던 시기에 목자라는 천민의 일까지 맡아하면서 인민대중의 비참한 처지를 목격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울것을 지향하던 인물이였던것만큼 고구려국가를 세우면서 봉건적인 국가사회제도를 수립해나가게 되였다.

노예사회말기와 봉건사회초기의 사회상에는 큰 차이가 없었고 또 봉건적제관계의 발전과정이 매우 굼떴던것만큼 고구려초기의 사회제도의 봉건화과정에 대하여 말해주는 자료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수백년이 경과하는 사이에는 고구려사회의 봉건적성격에 대하여 밝힐수 있게 하는 자료들이 력사기록에 남아있다.

여기에서 해당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데서 중핵적문제인 생산수단의 소유형태에 관한 자료만 보아도 고구려가 봉건사회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본다.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그 나라(수도)안의 대가들로서 밭갈이하지 않고 앉아서 놀고먹는자들이 1만여명인데 하호들은 멀리서 쌀과 곡식, 물고기와 소금을 날라다가 그들에게 바친다.》고 하였으며 《위략》에는 《대가는 밭갈이하지 않는데 하호는 부세를 바치는것이 노객과 같다.》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고구려에서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소작농민들에게 부치도록 하고 그 지대를 현물로 수탈하는 지주적경리형태가 토지소유의 실현을 위한 지배적인 형태였으며 신분적으로는 지주(대가ㅡ토지소유자)와 소작농(하호ㅡ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이 존재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처럼 고구려는 봉건지주계급이 정권을 독차지하고 기본생산수단인 토지와 그밖의 중요생산수단에 대한 봉건적소유에 기초하여 인민대중을 지배하고 착취한 봉건국가였다.

리영남 | 김일성방송대학 2016-12-18 23:02:31
37 공화국의 군대와 인민들속에서 발휘되고있는
무한대한 정신력의 근본바탕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들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의 모든 분야, 특히 북부피해복구전선에서 당과 수령의 두리에 일심단결된 불패의 위력과 군민대단결의 위력으로 전화위복의 기적적승리를 이룩해나가고있습니다.

세계에는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우리 군대와 인민들처럼 당과 수령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자력자강의 정신력으로 력사의 시련을 헤치며 혁명과 건설에서 빛나는 승리와 세기적인 변혁을 이룩하고있는 군대와 인민은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들속에서 발휘되고있는 이 무한대한 정신력의 근본바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입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의 무비의 정신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에 근본바탕을 두고있습니다.》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은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혁명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자면 어떤 투쟁정신을 지니고 어떤 신념과 의지로 싸워야 하는가를 전면적으로 뚜렷이 밝혀주고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지향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과학적세계관이며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의 앞길을 휘황히 밝혀주는 위대한 사상적기치입니다.

위대한 주체사상에 의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은 사대와 교조를 비롯한 온갖 낡은 사상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투철한 신념과 의지, 강한 자주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자기 수령, 자기 당만을 굳게 믿고 끝까지 따르는 충실성의 정신, 자기 민족의 존엄과 명예를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고 빛내여나가는 강한 민족적자존심, 제힘으로 만난을 뚫고 솟구쳐오르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을 비롯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이 혁명과 건설에서 높이 발휘하여온 숭고한 혁명정신과 투쟁기풍은 그 어느것이나 다 위대한 주체사상에 바탕을 두고있습니다.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이야말로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을 키우고 자력자강의 정신력을 최대로 분출시키는 생명수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의 무궁무진한 정신력의 사상적기초로 됩니다.

박상욱 | 김일성방송대학 2016-12-15 11:26:10
36 인류는 어떤 단계를 거쳐 진화발전하였는가
  

사람은 동물계에서 분리된 첫 순간부터 오늘과 같은 완전한 체질을 가진것이 아니라 일정한 력사발전시기를 거쳐 오늘과 같이 완성된 사람으로 되였다.

인류는 약 200만년전 즉 신생대 제4기에 발생하였다.

초기에는 원인으로 다음은 원인보다 조금 발전된 고인으로 진화되였으며 나중에 신인으로 진화발전되여 오늘날의 사람으로 진화되였다.

구석기시대 전기에 생활한 사람들을 원숭이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있는 《원숭이사람》이라는 뜻에서 《원인》이라고 한다. 원인들은 아직 몸구조가 덜 발달되였으며 그들의 뇌수용적도 현대사람보다는 작았다.

원인들의 본질적특성은 그들이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목적의식적활동을 하였다는데 있으며 로동을 하였다는데 있다. 즉 사유기능과 로동기능을 가진 사회적존재였다는데 있다.

원인보다 발전된 구석기시대 중기의 인류를 오랜 인류라는 뜻에서 《고인》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이르러 사람들의 몸구조도 변화발전되고 뇌수용적도 원인단계의 사람보다 커졌다. 몸구조의 발전된 특징들을 보면 사람의 본질적특징을 담보해주는 사유기능과 로동기능이 원인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것을 말해준다. 구석기시대 후기에 이르러 사람들의 몸구조는 한층더 발전하여 현대인류와 같은 류형에 속하는 《신인》으로 되였다.

리영남 | 김일성방송대학 2016-12-12 11:44:03
35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데 대한 문제를 선행한 로동계급의 리론에서
옳게 해명하지 못한것은 무엇때문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는것이 인민대중의 운명을 개척하는데서 근본적인 의의를 가지는 문제이지만 선행한 로동계급의 리론에서는 그것이 옳게 해명되지 못하였다.》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는것이 인민대중의 운명을 개척하는데서 근본적인 의의를 가지는 문제이지만 선행한 로동계급의 리론에서는 그것이 옳게 해명되지 못하였다.

유물사관의 견지에서 인류력사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힌 선행리론은 민족의 형성을 자본주의의 발생발전과 결부시켰으며 모든 나라에서 자본주의제도가 청산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이 진척됨에 따라 민족자체가 점차 없어질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매개 나라와 민족들에 혁명의 주체적력량이 마련되지 못하고 자본주의,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로동계급의 국제적련대성을 강화하는것이 기본문제로 나섰던 당대의 력사적조건에서 선행리론은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지키는 문제에 대하여 제기할수 없었다. 로동계급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선행리론의 사상도 당시 사회주의운동에서 절박한 의의를 가지는 로동계급의 국제적단결과 련대성을 강화하고 로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안에서 부르죠아민족주의를 부식시키는 기회주의를 극복하여야 할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것이라고 볼수 있다.

 

김영철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25 14:38:12
34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이 통일적중앙정부의
수립이라고 할수 있는 정당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자기의 의사와 리익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통일적중앙정부를 가지게 되였으며 세계 민주진영의 여러 나라들과 어깨나란히 국제무대에 진출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에 의해 조작된 《단독정부》를 반대배격하고 전조선적인 통일적중앙정부수립을 지지하는  북남전체조선인민의 총선거에 의해 수립되였기때문이다.

남조선에서의 《단독정부》조작책동은 전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제의 침략적야망의 실현이였다. 그러기에 당시 북남전체 조선인민은 미제에 의한 《단선단정》책동을 결사반대하였으며 민주주의적인 진정한 인민의 정부수립을 념원하였다. 그렇기때문에 1948년 4월에 열린 남북련석회의에서는 미제와 그 주구 반동들에 의해 조작되는 그 어떤 《정권》도 인정할수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반대하는 전민족적인 공동투쟁을 벌릴것을 호소하였으며 뒤이어 진행된 4월 30일 우리 당을 비롯한 북남조선 정당, 사회단체지도자들은 협의회를 가지고 통일적인 중앙정부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다. 

그리하여 1948년 8월말에 북남총선거가 실시되였다.

 

※ 북조선에서는 유권자 99.97%가 선거에 참가하여 99.49%가 민전립후보자들에게 찬성투표하였다. 남조선에서는 미제와 괴뢰도당의 류혈적탄압속에서 7월 15일~8월 20일까지 남조선전역에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대표자선거에 유권자의 77.52%가 참가하여 선출된 1 080명의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대표자들이 선거에 참가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는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북남총선거의 결과 572명(북조선에서 212명, 남조선에서 36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선거되였다.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념원과 의사에 따라 1948년 9월 9일에는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조직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

이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조선적인 총선거에 의해 수립된 합법적인 통일적중앙정부이다.

박철만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22 0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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