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력사강의에서 을묘왜변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싶습니다
왕빈 [ - 중국 단동 학생 ] 2019-10-28 16:27:41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김국철 | 김일성방송대학 |       2019-10-31 16:49:59
을묘왜변은 1555년에 일본해적떼가 전라도남쪽지방에 침입하였던 사건을 말합니다.
그해가 을묘년이였으므로 그렇게 부릅니다. 명나라 연해일대에서 해적행위를 하다가 돌아가던 일본해적떼의 한 집단이 1555년 5월 11일 70여척의 배를 타고 전라도 령암군 달량포에 침입하였습니다. 적들은 성밖에 사는 주민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략탈을 감행한 후 달량성을 포위공격해왔습니다. 달량성의 군인들과 인민들은 수량상 우세한 적들과 맞서 3일간이나 용감히 싸웠습니다. 우세한 력량으로 달량성을 강점한 적들은 한동안 이곳에서 로략질을 감행한 다음 5월 21일에는 전라도병영에, 이튿날에는 장흥부에 침입하고 24일 령암성을 공격해왔습니다. 령암성의 군인들과 인민들은 25일 적들과 치렬한 싸움을 벌리였습니다. 날래고 용감한 군인들로 무어진 습격조는 향교에 있는 적지휘부를 들이쳤습니다. 아군의 일제사격에 적장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였으나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령암성방위자들은 불화살을 쏘아대면서 적진지에 맹렬한 공격을 들이댔습니다. 불화살은 때마침 서풍을 타고 날아가 적들에게 불벼락을 들씌웠습니다. 바빠맞은 적들은 도망쳐 저들의 지휘부가 있는 향교안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방어군은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왜적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들이대였습니다. 기가 꺾인 적들은 변변히 대항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향교전투에서 령암성의 군인들과 인민들은 왜적 104명의 목을 자르고 도망치는 적들을 추격하여 무리로 쓸어눕혔습니다.
령암성전투에서 군인들과 인민들은 모두 200여명의 왜적들을 소멸하는 커다란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령암성전투에서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적들은 그후 가리포, 회령포, 록도 등지에 또다시 침입해왔습니다. 이어 왜적들은 금당도에도 기여들었다가 전라도수군의 강력한 타격을 받고 패주하였습니다. 6월 27일에는 1 000명의 왜적이 제주도에 침입하였다가 애국적인 군인들과 인민들의 강한 반격을 받고 쫓겨갔습니다. 5월 중순부터 6월 하순까지 조선남해지방의 섬들과 연해에 기여들어 살인과 방화, 략탈을 감행하던 왜적의 무리들은 애국적인 군인들과 인민들의 줄기찬 투쟁에 의하여 무리죽음을 당하고 쫓겨갔습니다.
을묘왜변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은 왜적들은 그후 수십년동안 큰 규모의 해적행위와 략탈행위를 감히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