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선언한다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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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진은 고려호텔에 들어서자 26층의 자기 호실에 누워 병원에 안가는 라옙쓰끼를 다시한번 설복해보자고 곧장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평양으로 돌아온 다음 라옙쓰끼는 두번이나 심장발작을 일으켰다. 한번은 좀 심하게 한번은 약하게… 매번 구급차가 달려왔지만 그는 입원하지 않겠다고 버티였다. 안내통역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식사도 얼마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라옙쓰끼가 골치거리였다.

고려호텔의 공기는 지방참관을 마친 외국당대표들이 련이어 돌아와 전에 없던 활기와 열정, 흥분으로 설레였다. 대표들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밀려다니는가 하면 면담실에서 쌍무적인 접촉을 가지고 혹은 소회의실에 지역별로 모여앉아 참관인상을 정리하며 조선현실을 놓고 밤늦도록 조용조용 의견교환을 하는것이였다.

라옙쓰끼는 그런데 개의치 않고 내내 침상에 누워있었다. 그는 중병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얼굴에 피기가 가시고 몸이 수척해졌다. 좀 꺼져들어간 눈확에는 검스름한 그늘이 비끼고… 26층은 텅 비여있었다. 로씨야손님들은 다 어디로 밀려갔는지 어느 호실문을 밀어봐도 잠겨있었다.

라옙쓰끼가 든 호실에서는 관리원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를 하고있었다. 젊고 예쁘장한 그 녀자는 로씨야말을 좀 아는지 어느 소회의실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이 라옙쓰끼란 사람을 강제로라도 병원에 끌고갔으면 좋겠다, 각혈을 했는지 휴지통안에 피가 묻은 손수건과 위생지가 들어있었다고 근심스럽게 말하였다.

류수진은 잡도리를 잘하여 구급차를 불러 현관앞에 바투 세워놓고 의사와 함께 대표단 단장을 만나 강하게 요구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자면 우선 대표단들이 가있는데를 확인하는것이 필요하였다. 전화로 호텔안내에 알아보니 원탁회의실에 가있다고 하였다.

수진은 그리로 찾아갔다. 출입문앞에 몸집이 우람한 로씨야사람들이 서있다가 그의 앞길을 막았다. 이전 쏘련지역의 정당대표들만 모여서 모임을 가지는데 끝난 다음에 만나라는것이였다. 그때였다. 먼저 뒤에 와있었는지 중년의 흑인남자가 나서서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낯익은 남아프리카공산당계의 기자였다. 그는 막아서는 로씨야사람한테 여기는 조선땅이다, 당신들은 쏘련이 없어진 오늘까지도 대국의 행세를 하겠는가고 쏘아붙이였다. 기자의 항의에 무리한 점도 있었지만 로씨야사람은 쏘련이 없어졌다는 그 소리에 주눅이 들었는지 팔을 벌려보이며 물러서 어줍게 웃었다.

원탁회의실안에는 사람들이 가득차있었다. 원탁에는 이전 쏘련지역의 여러 정당대표들이 둘러앉았고 그뒤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서있거나 앉아있었다. 아마 권위가 없는 《보초》의 양보로 밀고 들어온 사람들인듯 하였다. 원탁들로 둘러싸인 회의실중심에 한사람이 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하고있었다.

《… 지방참관에서 느낀바를 솔직히 다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정당사이에 존재하는 견해의 차이로 하여 이 나라 현실을 보고 느낀점도 다를수 있는것만큼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을 더 같이 하자는것을 제의합니다.》

산발적인 박수소리에 그가 자리로 돌아가자 저쪽 구석의 원탁에서 한 사람이 일어섰다.

출입문곁의 걸상에 앉은 류수진은 그가 라옙쓰끼라는것을 알아보고 몹시 놀랐다. 천정등의 휘황찬란한 불빛에 빛나는 은발, 수척해졌으나 흥분에 상기된 얼굴, 열기를 풍기며 번쩍이는 눈… 그는 앞서 발언한 여러 동지들이 대공업지구와 농업지대, 기념비적건축물들에 대하여 많이 말하였기때문에 자기는 한 산간벽지군을 참관하고 느낀 문제들만 함축하여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 송탄군에 대한 참관은 조선동지들의 일정계획에 따른것이 아니였습니다. 나의 요청에 의한것입니다. 어찌하여 이 나라에서는 사회주의가 인민들의 배척을 받지 않았는가, 그 깊은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속속들이 알아내자면 이 나라 현실의 강한 측면뿐아니라 약한 측면까지 립체적으로 인식해야 했던것입니다.

손님의 례의도 집어던지고 집요하게 들이댄 나의 요청이 조선동지들의 자존심을 자극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손님을 맞은 주인의 아량으로 경제적조건이 가장 불리한 산간벽지군, 그것도 내가 지적한 바로 그 군의 생활을 활짝 열어보였습니다. 주인들의 그런 호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벗이 아니라 적의 눈으로 보려고 애쓰며 송탄군의 지방산업, 농촌경리, 편의봉사망, 의료봉사시설… 군생활의 전모를 료해하였습니다.

송탄군은 식량, 기초적인 식료품, 생활필수품… 모든데서 겨우 자급자족하고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큰 불편이 없이 사는것 같았습니다. 누구하고 물어봐도 지난날과 비교하며 현재의 생활형편을 이야기했으며 우리는 모두 마음 편안히 골고루 산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우리 청년들처럼 서방나라들과 횡적으로 비교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신발공장에 가보니 생산되는 신발의 질이 그다지 높지 못한데도 다른 나라 제품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만든 신발이라고 긍지에 넘쳐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주의깊게 듣고있었다. 라옙쓰끼는 이 나라의 수도에서 하나의 도시와 맞먹는 광복거리, 통일거리가 일떠서고있을 때 먼 산간벽지의 송탄군에서도 살림집건설이 벌어졌다고 하며 새롭게 지은 그 집들에 깃든 사연은 외면할수 없는것이였다고 하였다. 그는 송탄군에서 새 살림집들의 부엌과 창고가 넓혀진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이전 쏘련당일군들의 시점에서 보면 농촌살림집의 부엌과 창고의 크기, 이것은 꼴호즈나 쏩호즈의 아낙네들, 기껏해야 어느 선량한 농촌주택설계가나 관심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 조선에서는 이 문제가 당중앙위원회에서 론의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김정일동지는 송탄군을 현지지도하시면서도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농촌녀성들의 생활상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문제이기때문입니다. 동지들, 보시라! 령도자의 사랑이, 당의 령도가 어디까지, 생활의 어떤 깊이에까지 들어가고있는가! 군당책임비서 차영진은 이에 대하여 항다반사처럼 이야기했지만 나한데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체험때문인지… 솔직히 말해보자.

우리 쏘련의 당관료배들은 어떠했던가? 사회주의시기 나는 당관료배들의 박해로 먼 씨비리의 동토대에까지 밀려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크지 않은 신설기계공장의 지배인으로 일했습니다. 주에서는 로동자들의 주택건설예산을 주지 않았습니다. 의견을 거듭 제기하다가 주당에 항의까지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동토대의 엄혹한 추위… 가설건물들에서 사는 로동자세대들에서 동상자들이 생기고 주의 우두머리들이 비법적인 일확천금의 야망으로 주택예산을 빼돌려 보석가공공장을 꾸렸다는 여론이 돌자 광산에서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나는 로동자들을 허위로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아 출당되고… 사회주의가 뒤집힌 다음 주의 그 우두머리들은 쏘베트시기에 부정축재한 돈으로 기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조선의 현실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장내가 술렁거리였다.

《… 나는 주당과 로련당중앙에까지 찾아가 해당 일군들에게 자기 문제를 다시 료해해달라고 청원했지만 그들도 우리 고장의 보석으로 부인들을 장식했는지 랭랭하게 외면했습니다. 유일한 집권당의 일군들이 이렇게 나오자 나는 어디에 가 하소연할곳도 없었습니다. 아, 그 암담한 시기 무슨 생각인들 안했겠는가. 당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면 거기에라도 찾아가 울분을 토로하지 않겠는가. 서방의 주장대로 사회주의란 과연 이런것인가… 무서운 정신적방황속에 반체제인물들과도 접촉해보았지만 그들과는 융합될수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개인적인데로 빗나갔지만 어쨌든 이런 나에게 있어서 송탄군의 현실은 남달리 심각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산간벽지인민들의 부엌과 창고에 관심을, 그처럼 깊은 관심을 돌리는 이 나라 집권당은 과연 어떤 당인가, 그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어떤 정치지도자인가, 여기에 령도자의 정치철학, 정치방식이 깃들어있는것이 아닌가…》

라옙쓰끼는 세멘트공장지배인으로 사업하다가 사망한 주상민의 운명에 깃든 사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군당책임비서 차영진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눈앞에는 격동속에 이어지며 끝없이 뻗어나가는 기하학적선이 빛살처럼 떠올랐습니다.

령도자 김정일동지→도당책임비서 박윤식→제철소지배인 리근우→군당책임비서 차영진→주상민→그의 안해→그의 자녀들… 이것은 사랑과 믿음의 화신인 최고령도자로부터 뻗어내려오는… 강력한 감화력과 견인력이 깃든 사랑과 믿음의 정치의 줄기찬 흐름입니다. 남으로, 자본의 세계로 도주한 반역자의 아들인 주상민, 그의 안해와 자녀들이 조선당과 사회에 대해 고마운 마음밖에 없을진대 다른 인민들의 마음이야 어떻겠는가! 송탄군의 가정주부들이 자기네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나 정치의 관심밖에 있던 부엌이나 창고에까지 관심을 돌리는 조선당에 대하여 어떤 감정을 품고있겠는가. 주상민은 림종전에 안해와 함께 다듬어낸 자갈 한배낭을 가지고 수령이 다니는 길을 닦는데 나와 그 로반에 깔았다고 합니다. 나한테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습니다.

내가 말한 이 사실들은 이 나라 집권당이 자기 령도와 활동에서 사랑과 믿음의 정치, 조선동지들의 또 다른 표현대로 하면 인덕정치를 구현해나가는 과정에 생긴 자그마한 일화들입니다.》

여기저기에서 가벼운 박수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날 도당책임비서, 군당책임비서와 두시간 남짓 담화하였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조선당이 전체 당일군들을 인민의 복무자로 만들고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왔는가를 깊이 알게 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가 창조한 군당일군들이 인민들속에 들어가기 위한 사업체계만 봐도 그렇습니다. 군당일군들은 1주일에 5일동안은 리와 아래단위들에 내려가 인민들속에서 사업하고 2일은 군당에 들어와 현실과 결부하여 당정책을 연구하고 새 작전을 세워가지고 다시 인민들속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가 창조한 <당지도일군들의 현실체험>이란 무엇인가? 내가 알아본데 의하면…》

라옙쓰끼는 흥분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였다.

《당일군들의 모범을 따라 외무성의 간부들까지 공장, 기업소에 내려가 부지배인, 부직장장의 사업을 몇달씩 해보고 올라옵니다. 군대의 장령들도 부대에 내려가 병사생활을 체험합니다.

보통대원이 되여… 당과 인민대중과의 혼연일체를 이룩하기 위한 이러한 체계가 세계 어느 나라 당에 있었는가? 아, 얼마나 독창적인가!

나는 이번 참관에서 도당책임비서 박윤식, 군당책임비서 차영진의 사업경험담을 들으면서 조선로동당이 쏘련당과는 지도사상, 령도방법이 전혀 다른 새형의 당이라는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놀랐습니다.

나는 두 일군의 이야기에서 자주 튀여나오는 정치용어가 리해되지 않아 설명을 부탁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처음으로 듣는 용어이기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세계 어느 당에도, 어느 정치용어사전에도 없는 정치용어들이 많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 <대안의 사업체계>, <우가 아래를 도와주는 사업체계>, <당지도일군들의 현실체험>, <이신작칙>, <이민위천>, <인민의 충복>, <어머니당>, <사랑과 믿음의 정치>, <광폭정치>, <인덕정치>… 이런 정치들의 개념을 모르면 여기 당일군들이 하는 이야기를 절반도 리해할수 없습니다. 여기에 앉아있는 우리모두가 조선에 오기전에 이런 용어 하나라도 알고있었습니까? 89년에 출판된 쏘련의 정치용어사전에는 국회프락찌야나 법치주의, 공화제, 삼권분립과 같은 용어에 대하여는 장황하게 설명되였지만 조선의 새 정치용어는 하나도 올라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에 와서 비로소 알게 된 이 새 정치용어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조선당이 교조에 구속되지 않고 얼마나 탐구적이고 혁신적인 자세로, 독창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했는가를 말해줍니다. 쏘련당은 자기경험을 남들이 응당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을뿐 남의 경험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괜찮은 문화적환경에서 살면서도 무지한 소경이 되였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망하는 길을 가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몰랐습니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라옙쓰끼는 원탁앞으로 걸어나와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 산간벽지군뿐아니라 다른 농촌들을 참관하면서도 김정일동지의 정치방식을 느꼈습니다. 우리 속담에 포도주맛을 알자면 한통의 포도주를 다 마시지 않고 거기서 한잔만 떠 마셔봐도 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훌륭하다, 위대하다는 웨침이 가슴에서 터져올랐습니다.

동지들, 분명히 조선사회에는 두개의 감정이 뜨겁게 굽이쳐흐르고있습니다. 수령과 당의 인민대중에 대한 신뢰심과 충성심… 바로 이 두 흐름, 바로 이것입니다. 거듭되는 믿음과 사랑은 더 큰 충성심을, 그 충성심은 더 큰 믿음과 사랑을… 이런 확대재생산으로 온 사회에 뜨거운 마음의 격류가 흐르면서 수령과 당, 인민대중의 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조선에서 사회주의가 전복되지 않은 비결입니다. 내가 느낀 비결입니다. 그 깊은 요인은 인민대중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지닌 수령의 령도력입니다.

우리가 본 그 도로는 <일심단결>의 상징입니다. 이 나라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나의 머리속에서는 다당제에 대한 환상이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문제는 일당제인가, 다당제인가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수령과 그의 집권당이 어떤 정치를 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인민들의 배척을 당하지 않은것은 전적으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탁월한 령도의 결과입니다. 이 나라의 경제생활수준은 붕괴되기 이전시기 쏘련이나 동유럽나라들보다 결코 높다고 할수 없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의 경제봉쇄와 일련의 원인들로 하여 경제생활에서 난관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동지들의 신념처럼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하여 조선의 사회주의는 건재하며 난관을 극복하고 승승장구할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동지들, 벗들! 만약에… 만약에 쏘련의 구역당비서들, 주당비서들, 공화국당비서들이 일찌기 이 나라 현실을 와서 보고 조선당의 정치방식을 참고라도 했더라면 쏘련에서, 레닌의 조국에서 사회주의가 그토록 맥없이 허물어지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레닌의 사상을 외곡, 수정하면서도 레닌당의 비서라고 얼마나 거룩하고 오만했던가. 지어는 이번에 패배자, 망국노로 되여 이 나라 명절에 찾아오면서도 이 나라 사회주의의 전도에 대하여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회주의대국인 쏘련이 전복되였으니 작은 나라인 당신네가 어찌 무사할수 있겠는가 하는 심리에서… 얼마나 가소로운가, 나 역시 례외가 아니였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공산당원들은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있는데 우리는 우선 대국주의적인 감정부터 반성하고 철저히 없애야 남의 경험도 허심하게 배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탄군을 떠나올 때 우리 쏘련의 풍요한 대지와 세계최강의 대공업지구들이 떠오르고 분격이 터져올라 견딜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척박한 산간벽지에서도 사회주의가 꽃피고있는데, 아, 우리는 그처럼 비옥한 대지, 세계굴지의 경제를 가지고도 전복되였단 말인가! 사회를 병들게 한 당관료배들, 쏘련을 붕괴에로 몰아간 변절자들, 유다와 같은 그 도당에 대한 증오와 저주로 이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습니다. 이 가슴이… 파렬되지 않은것이 이상합니다. 참관의 길에서 나의 심장은 끝내 견디지 못했습니다.》

류수진박사는 놀라움과 흥분에 몸을 주체하기 어려워 걸상을 붙잡았다. 현훈증이 일 정도로 방안이 획 돌아가는듯 하였다. 백여리길을 살같이 달리던 승용차가 중화 못미처 흙먼지 일으키며 급정거하던 일이 선히 떠올랐다.

(아, 그랬구나! 라옙쓰끼… 어떤 증오, 어떤 저주였는가!)

라옙쓰끼는 주먹을 쳐들어 흔들며 격정을 터뜨렸다.

《… 동지들, 인민조선의 현실은 인류의 사회주의위업에 큰 공헌으로 됩니다. 나는 김정일동지의 명언을 구호로 웨치고 싶습니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폭풍같은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벌떡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류수진은 라옙쓰끼가 자기자리로 돌아가는것까지 보고 밖으로 나왔다. 리지야 꾸즈네쪼바가 어느새 알아봤는지 따라나왔다. 그 녀자는 홍조가 피여난 얼굴로 박사의 팔을 끼고 창문쪽으로 끌어가며 목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들었어요? 라옙쓰끼의 발언을 들었어요?》

《들었소…》

《라옙쓰끼는 라옙쓰끼예요!》

《그렇소, 역시 라옙쓰끼거든!》

그 녀자는 기쁨과 흥분에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때 뒤에서 새된 부르짖음소리가 울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안해였다. 나들이옷차림의 하정녀는 복도를 따라 남편한테로 정신없이 달려와 다짜고짜로 팔을 잡아끌고 창가로 갔다. 그애가, 오영준이가 다리에 신경이 통해 발가락이 움직인다. 성희하고 둘이서 호실에 옮겨놓은 텔레비로 김일성경기장에서 있은 대집단체조를 보다가 박수도 치고 야- 야- 소리도 쳤는데 어떻게 된 노릇인지 다리에 신경이 통했다는것이였다. 하정녀는 얼굴을 싸쥐고 돌아서 울었다. 발까지 구르며… 불행에 과민하게 반사하는 리지야 꾸즈네쪼바, 그 녀자는 달려와 눈이 휘둥그래서 무슨 불상사가 생겼느냐고 물었다.

수진은 그 녀자에게 사연을 설명하고 안해더러 어디서 들은 소식이냐고 물었다. 하정녀는 흑흑 느끼며 성희한테서 전화를 받고 달려왔노라고 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 봄의 훈향이 흘러드는 입원실, 오영준은 생기에 넘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고 성희는 달려들어온 엄마와 아버지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리고는 뒤따라 들어온 새까만 옷차림의 외국녀인이 누구이라는것을 인차 알아보고 반겨 인사했다.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행복의 홍조가 타오르는 성희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 녀자는 두 청춘을 침대에 가지런히 앉혀놓고 사진을 찍고 량옆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앉혀놓고 가족사진까지 찍었다. 그날밤 류수진은 리지야 꾸즈네쪼바를 데리고 대동강유보도를 거닐며 대동강반의 야경을 구경시켰다.

그 녀자는 내내 말이 없었다. 명절일색으로 단장된 강반의 야경에도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는것 같았다. 그저 성희에 대해서만 물었다. 그애가 오영준이와 어떻게 되여 약혼했는가, 무엇에 반하였는가, 불구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았는가, 앞날이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는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약혼에 동의하기 헐했는가, 성희는 희생정신만으로 청년한테 갔고 부모들은 그 희생정신이 고상하기때문에 마지 못해 동의하지 않았는가… 수진은 모든 물음에 대하여 솔직히 있었던 그대로 대답하였다.

그 녀자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수진동무 딸과 내 딸은 얼마나 판이한 운명인가요…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불구로 된 청년들의 애인과 약혼녀, 젊은 안해들이 도망치는걸 여러번 봤어요. 사회여론도 비난하지 않고 모르는척 했어요. 본인들도 가책이나 수치심이 전혀 없고 응당한 권리로 여겼어요. 간혹 누가 시비하면 인권침해라고 반발했어요. 그런 흐름이 쓰웨따도 삼켜버렸어요. 그처럼 선량하고 정직한 내 딸도…》

그리고는 자기 울분을 토로하며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긴 고백을 함축하여 적으면 다음과 같다.

 

리지야 꾸즈네쪼바의 고백(2)

 

… 나는 이전에 가치관이란 말을 모르고 살아왔어요. 변화되는 쏘련사회의 흐름이 이 말을 나한테도 배워주었어요. 나는 쓰웨따가 점점 커가면서 그애한테서 여러가지 심리적변화를 느끼게 되였어요. 그애의 판단, 공감과 반감, 긍정과 부정, 동경과 희망, 사람들과 사회현실에 대한 평가에서 뒤죽박죽되는것을 느꼈어요. 겨울방학같은 때 여유시간이 생기면 나는 그애하고 여러가지 문제를 놓고 이야기했어요, 하루는 딸애가 엄마, 공산주의사회에 가서도 시험이라는것이 있을가 하고 묻겠지요. 어이없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정색해서 시험이라는건 사람한테 고통을 주기 위해 어떤 악마가 고안해낸것 같다고 신경질을 부렸어요. 그리고 인간을 모든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고 원하는것을 다 충족시켜주는것이 공산주의사회라면서 시험이 있다면 그게 무슨 공산주의사회냐고 했어요. 나는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사회는 기계문명이 최고도로 발전한 사회인데 그 모든 기계들을 움직이자면 지금보다 지식이 몇만배 더 필요하다, 때문에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고 타일렀어요. 그러자 그애는 공산주의사회에선 사람들은 노래부르고 춤추며 로보트들이 일한다는데 지식은 해서 뭣하느냐고 했어요. 나는 참을성있게 진지하게 로보트를 가동시키자면 프로그람을 작성해서 넣어줘야 한다고, 프로그람은 사람이 작성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높은 수학수준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러자 딸애는 그 프로그람을 작성하는 로보트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했어요. 나는 그 로보트에도 프로그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자 그 프로그람을 작성하는 로보트를 또 만들지요. 그다음 프로그람을 작성하는 로보트를 또 만들고 또또, 또 만들어나가지… 하고 골려대기 시작했어요. 나는 노여움이 들어 어리석은 소리 말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핀잔을 주었지요. 그러자 발끈해서 왕의 길이 있다고 했어요. 우리 학급 애교덩이들은 선생한테 칭칭 감겨돌아가다가 시험때 눈을 빨면 4, 5점은 쉽게 맞는다고, 엄마는 애교가 전혀 없어서는 안되고 약간은 있어야 하며 란발하면 천해진다고 했지만 그런 애들한테는 애교가 남자선생들을 녹여내는 무기라고 했어요, 공부를 잘해서 뭣하는가, 공부 잘한 애들이 호강할수 있는 자리에 배치되는 일도 없다, 시집을 잘 가는 애도 없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서 뭣하는가 하지요. 어느 하루는 학급처녀애들 말이 이 세상에선 량심만 떼버리면 살기 헐하고 얼마든지 출세도 하고 잘살수 있다는데 일리가 있는 소리 같다고 했어요. 너무 아연해져 어디서 그런 타락한 인간들의 소리를 듣고 다니느냐고 나무람했어요. 그애는 도리여 나를 비웃었어요. 타락한 인간들이 아니라 고상한분들의 모범을 말해주는것이라고… 그애는 열을 내며 말했어요. 자기 학급에 쓸쓸한 조각가의 딸이 있는데 어떤 안전대좌가 치치아노의 명화 《성애와 속애》의 복제품을 가지고 와서 그대로 조각해달라고 주문했는데 두달후 6천루블을 물고 찾아갔다면서 소름이 끼치는 소리를 탕탕 했어요. 대좌는 그것을 안전부상 추르바노브중장에게 바치고 석달후 소장으로 승급하였다. 추르바노브중장자신은 아름다운 본처와 리혼하고 어느 고위지도자의 딸… 뚱보인 추녀와 결혼하여 총애를 받게 되였다. 그는 몇해사이에 낮은 《계》로부터 높은 《계》로 한옥타브 뛰여올라 중좌에서 중장으로 우주속도로 날아올라가 안전부상이 되였다. 한사람은 량심을 떼버리고 치치아노를 바쳐 소장이 되고 한 사람은 량심을 떼버리고 안해를 내쫓아 부상이 되였다. 량심, 량심이란 무엇인가.

량심… 바보같은 량심이 승급, 향락을 주는가, 똑똑한 사람들은 다 일찌기 량심, 바보같은 량심을 내팽개쳤다.… 나는 소리쳤어요. 아니다. 거짓이다. 너희들 쬐꼬만것들이 어디서 그따위 소리를 듣고 다니느냐고… 후에 수군수군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애 말이 죄다 사실이였어요. 애한테 주는 부정한 어른들의 영향, 그것도 공산당, 쏘베트의 지체있는 간부들의 비행에 대한 풍문이 주는 영향, 사회가 주는 영향은 너무나도 큰것이였어요. 나는 차차 사회를 휩쓰는 풍조앞에서 가정교양이 너무나도 무력하다는것을, 풍전등화의 신세라는것을 깨닫게 되였어요. 하나의 물방울에 우주가 비친다는 말을 자주 생각하게 되였어요. 날이 가고 해와 달이 바뀔수록 내 선량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딸애는 이 엄마를 소심하고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수녀쯤으로 여기는것 같았어요. 아흐마또바의 시집만 들고다니기에 다른 시인들의것도 읽으라면 반발했어요. 한때에는 아흐마또바를 색정을 고취하는 요녀처럼 몰아댔지만 지금은 성모처럼 찬양한다, 시대가 달라졌다, 순수 련정시가 독균처럼… 그렇게도 무서운가… 그애 가치관은 뒤죽박죽이 되여갔지요. 모성의 본능이라고 할지,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자식을 보호하고싶은 충동으로부터 사회풍조의 변화를 날카롭게 신경을 세우고 지켜보게 되였어요. 아참 기막힌 일이였어요. 무슨 마술적인 힘이 작용하는지 량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며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못살게 되고 모든 일이 꼬이였어요. 수놀음에 능한 작자들, 협잡군들은 풍청거리며 살고 아무 일이나 척척 풀리고… 그래서 인간적량심과 성실성은 바보들의 속성으로, 수놀음과 협잡은 능력으로, 수완으로, 그런것들에 능한 작자들은 속이 트인 현대인으로 인정되게 되였어요. 지식과 전문기술은 살아가는데서 2류, 3류, 4류급의 수단으로 공인되고 동지적인 비판은 모해로, 정의감은 인생행로에 묻혀있는 지뢰처럼 경계의 대상으로 되였어요. 어느새 어떻게 되여 그렇게 됐는지. 불의의 인맥관계는 구역당과 시당, 주당, 주쏘베트, 내무국에까지 줄을 뻗쳐 정의의 목소리는 즉시 보복을 당하여 움츠러들고 고립되였어요. 정의인은 악당처럼 평가되고 정의감은 불행의 화근으로… 이런속에서 딸애또래의 가치관은… 부모들의 교양과 학교교육이 심어준 가치관… 가치관은 마구 뒤흔들리고 뒤집혀졌어요.

애들은 교원들을 허황한 설교만 하는 선교사같은것으로 여기고 부모들의 말을 귀등으로 듣게 되였어요. 사랑은 구석기시대의 감정쯤으로 여겨졌어요. 사랑이 없는 혼인은 일반적인 현상이였어요. 혼인을 좌우하는것은 사랑이 아니라 물질적타산이였어요. 자가용차가 있는가, 별장이 있는가, 그것들이 없으면 오토바이나 자전거라도 있는가… 쏘련사회에서 리혼률이 폭등하는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였어요. 타산에 의해 결혼한 쌍들은 아이들이 한둘 있어도 새 타산에 의해 쉽게 리혼할수 있었어요. 그런 애들을 자유전자라고 했지요. 이런 자유전자들은 소년범죄의 인자로 되였어요. 당신이 류학하던 때는 아득한 옛날이지요. 그사이 많은것이… 많은것이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쓰딸린사후 지난 40년간은 기성가치관이 허물어지고 새것이라고 할지, 낡은것이라고 할지 혼탁된 가치관들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서는 기간이였어요. 리기주의, 개인주의 사조의 범람, 집단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에 대한 헌신은 바보짓으로, 자신에 대한 리기추구는 령리한 소행으로… 조국에 대한 사랑은 청동기시대의 감정으로… 스스로 원해서 군대복무를 하는 청년은 거의 없었어요. 의무병역제에 의해 끌려갔어요. 나를 왜 공민적인 의무란것으로 구속하는가? 나는 쏘련사람이기전에 세계의 주민이다, 쏘련공민이기전에 인류의 아들이다, 나는 나를 위해 산다, 건드리지 말라… 이런 심리가 류행되였어요. 오메가나 쎄이꼬보다 못한 몇푼 안되는 손목시계때문에, 양말짝때문에, 화장품때문에, 잘난 록음기때문에, 안경때문에 자기 조국에 대한 긍지를, 강대한 공업을 가진 조국에 대한 긍지를 잃고 서방을 쳐다보며 동경하는 주민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어떤 시인나부랭이는 합법적인 연단에서 공공연히 쏘련은 2만여기의 핵탄두미싸일만 제외하면 3세계나라라고 떠벌이였어요. 모스크바에는 눈이 나쁜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아는 한 대학교수가 눈에 꼭 맞는 란시안경을 사지 못해 속상해하니까 대학에 다니는 아들녀석이 아버지, 20년만 기다리라요, 내가 경공업상이 될 때까지… 지금 각료제씨들은 서도이췰란드에서 안경을 사다쓰기때문에 자기네는 그렇게 하면 되니까 안경공업에 투자를 안해요.

돼지같은 관료배들… 이렇게 험구를 하더라고 했어요.

이런… 이런… 이런… 사회의 공기를 호흡하며 자란 청년들이 그속에서 형성된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군대에 들어가 땅크도 몰고 미싸일도 조종하지요. 가치관은 대렬검열에서 발각될수 있는 불량소지품과는 달리 회수할수도 없었거든요. 게다가 미국과 서방에 대한 환상이 류행되고 정치지도자들의 빈번한 미국방문, 친선적인 협상은 군대안에 친미적인 기분까지 휩쓸게 되였어요. 어느덧 쏘련군대는 대적관념이 흐려져 적이 어느것인지, 타격대상, 목표, 과녁이 모호한 군대로 되여버렸어요. 무장대오안에 병든 가치관이 창궐해있는 이런 군대가 2만 5천여기의 핵탄두를 가지고있으면 뭘하겠어요.

아, 그래서 쏘련이 한꺼번에 허물어지는데도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았어요! 가치관이 허물어지니 쏘련과 같은 대국이 맥없이 허물어졌어요. 리수복영웅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런 영웅을 배출한 무장대오는 어떤 가치관에 떠받들려있는가. 저들의 가슴에는 어떤 가치관, 인생관이 숨쉬고있는가? 지방참관에서 폭발직전의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대원들을 구원한 김광철영웅의 이야기도 들었어요. 군대와 인민은 그를 조국의 아들로, 시대의 영웅으로 사랑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모교에 영웅의 동상을 세우도록 배려하시고, 영웅의 그 나이 열여덟이였네… 리수복영웅에 대한 노래를 병사들이 민요처럼 즐겨 부르는것도 봤어요. 일심단결, 군민일치라는 조선말도 배우고 지방참관을 하다가 길에서 붉은 기발을 날리며 걸어오는 중학생대렬과 어기게 되였어요. 차에서 내려 인솔교원한테 물으니 《배움의 천리길》행군에 참가한 학생들이라지요. 처음 듣는 말이여서 그 뜻을 물으니 수령님께서 14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광복을 위해 걸으신 길을 따라 행군하고 항일혁명전적지들을 참관한다지요. 혁명렬사릉, 혁명박물관, 여러 사적관들을 보고 가는곳마다 있는 현지교시판, 사적비, 유래비들을 보며 후대들의 가치관을 똑바로 세워주기 위해 김정일, 이 령도의 천재가 얼마나 거창한 사업을 해왔는가를 느낄수 있었지요.

우리가 본것은 그 일단이겠지만… 인민학교 꼬마들이 만수대언덕의 층계를 쓸고있었어요. 수령님의 친필인 《옥류교》라는 황동글자를 닦고있었어요. 빛이 나도록 정성껏 정성껏 닦고있었어요. 당신들은 늘 보아서 심상할수 있지만 나한테는 충격이 컸어요.

이런 사회적환경에서 자란 조선병사들은 당과 수령을 위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청춘을 바쳐 싸우는것을 가장 값높은 삶으로, 영광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행복으로 느끼고있었어요. 나는 그것을 자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직접 확인할수 있었어요. 이런 가치관, 인생관이 지배하는 인민은 강하다! 백전백승한다! 나는 참관지마다에서 이렇게 속으로 웨쳤어요. 이런 인민, 이런 군대가 세계 어디에 또 있을가요. 없어요. 나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 김정일장군은 어떤 가치관으로 인민과 군대를 키웠는가요. 그이는 모든… 모든 면에서 탁월해요. 나는 여기 와서 신문 《빠뜨리오뜨》의 기자로서 여러 나라 벗들과 만났어요. 뽈스까, 도이췰란드, 체스꼬, 마쟈르, 로므니아, 벌가리아, 영국, 이딸리아, 뛰르끼예, 네팔, 미국, 스웨리예… 벗들과 당수들과도 만났어요. 그들은 말했어요. 조선현실을 보니 지난날 자기네가 무엇을 잘못하고 무엇을 소홀히 하고 무엇을 잘했는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다고, 사회주의를 지키며 건설하는데서 인민들에 대한, 특히 청년세대들에 대한 사상교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심장으로 느꼈다고 했어요. 브라질공산당의 한 동지는 조선로동당의 이 모든 경험은 국제적의의를 가진다, 김정일동지는 현시대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에 거대한 사상리론적공헌을 하셨다고 말했어요. 웨쳤어요!…

 

호텔의 면담실들과 소회의실들에서는 당대표들의 토론회 비슷한 모임들이 련일 밤늦게까지 계속되고 초대소들에서는 당수들의 접촉이 빈번히 있었다.

그들은 웨치였다. 조선의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회주의리념이야말로 어느 사회건설리념보다도 실현가능성이 백배로 많다는것을 웅변으로 증명해주고있다. 쏘련과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좌절은 필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시적이며 우연적인 현상이다.

사회주의 만세!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국제적인 련합으로 반사회주의공세를 강화하고있는 조건에서 공산주의자들이여, 단합하자! 팔에 팔을 끼고 인터나쇼날의 노래를 힘있게 부르며 보조를 맞추어 전진하자! 분산활동은 죽음이다, 단합된 국제적력량으로 제국주의의 반사회주의, 반공산주의 공세에 맞서자!

평양에 모인 이 좋은 기회에 국제공산주의자들의 대회를 열고 국제공산당상설기구를 조직하자!…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였다. 한석비서를 통하여 류수진박사의 보고를 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사색에 잠기시였다.

그이의 집무실에서는 이튿날 새벽까지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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