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선언한다

제 6 장

 

6


처녀는 자정이 지나도록 잠들지 못하고 모포속에서 옴지락거렸다.

그냥 착잡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적들의 준동, 잠복초에서 적들의 준동을 감시하고있을 병사들, 할아버지의 대원들이였던 병사들의 묘지, 한 녀성군관의 묘앞에서 오열을 터뜨리던 할아버지, 정치지도원 오영준중위, 그가 솜씨있게 타던 기타소리가 귀전에 쟁쟁히 울려왔다. 그 소리는 이 세상 저끝으로 사라지는듯 아득히 멀어지는가 하면 서서히 가까와지며 담배냄새 풍기는 입김을 내불며 절절하게 속삭이는듯 하였다.

 

이제는 옛 전호에 탄피도 삭았으리

고지엔 산딸기가 빨갛게 익었으리

그러나 잊지 마시라 그 열매 드리운곳에

그땅에 묻혀있는 탄피를…

 

여기서 아득히 먼 평양에서는 수백만 사람들이 지금 깊은 잠에 들어있겠지. 엄마는 내 걱정에 쉬지 못하고있을지도 몰라. 엄마… 엄마… 옆방, 소대장실에서는 전화종소리가 무시로 울리고 소대장인가 누구인가 《소양강》, 《북한강》, 《대동강》, 《청천강》, 혹은 《소백산》, 《대성산》, 《모란봉》이라는 상대하고 통화하였다.

《북한강! 북한강! 근무중 이상없습니다. 여기는 조용합니다.》

《모란봉 2번동지, 아닙니다. 노루가 인발선을 건드려 지뢰가 튄겁니다. 감시병이 적외선쌍안경으로 노루가 뛰는걸 봤습니다. 예, 예, 그렇습니다.》

《청천강! 청천강! 그렇습니다. 노루입니다.》

(청천강이란 어딜가?… 모란봉 2번동지란건 누굴가? 최고사령부 어느 장령동지나 아닐가… 지금쯤 평양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세상모르고 자고있겠지… 여기 초병들뿐아니라 소대로부터 최고사령부… 이렇게 층층으로 올라가며 숱한 군관, 장령들이 이밤을 지켜 잠못자고있다는걸 모두 알기나 할가…)

문밖에서 발자욱소리들이 울리고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에- 오늘밤은 시간이 별로 빨리 지나가는것 같네.》

《아까 버스럭거린게 오소리지?》

《오늘밤은 그 친구들이 어떻게 된거야. 자지 않구 계속 설레거든.》

《월동준비를 하느라고 그래. 여름내 게으름을 부리다가 추위가 닥치니 바빠났지. 락후분자들! 호호호…》

《여, 그렇게만 볼게 아니야. 저쪽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으니까 놀라서 뛰쳐난거 아니야? 껄짝하다야.》

《3분대에 철저히 인계했으니까 잘 살피겠지.》

근무를 인계하고 돌아온 병사들인것 같았다. 성희는 잠이 다 달아나고 머리속이 말끔히 개이였다. 웬일인지 밖에 나가 전연초소의 밤이며 적진을 구경하고싶었다. 그는 나가볼가, 어쩔가 한참 망설이다가 모포우에 덮었던 봄가을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밖으로 나가 출입문곁 바위벼랑을 짚고섰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였다. 아군전연의 들쑹날쑹한 고지들과 어스름속에 완만한 파도를 그리며 흘러내린 릉선들은 까딱 움직이지 않고 무슨 소리엔가 귀를 강구고있는듯싶었다. 어디에나 불빛 한점 보이지 않았다. 저 남쪽 적진 고지들에는 여기저기에 무슨 감시등인지 불빛이 환히 켜졌고 그 아래 산중턱에서는 린광처럼 차거운 불빛이 껌벅거리고있었다. 그리고 어디서인가 용을 쓰는 발동기소리가 울려오고 그사이로 도간도간 어떤 계집의 간드러진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는 생각만 해도 혐오스럽던 자본세계의 불빛을 직접 보고 부르렁거리는 발동소리며 노래소리까지 듣게 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피가 곤두서는듯 했다.

(저것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지키느라고 자지 않을가. 괴뢰정권을?… 《국가보안법》을?… 식민지사회를?… 무엇을 지키는지 알기나 할가?)

발자욱소리… 누구인가 곁으로 다가왔다.

《어째 나왔습니까? 자지 않고…》

오영준중위였다. 솜외투의 털목깃을 세우고 철갑모까지 눌러쓴 중위는 낮에와는 달리 무척 상냥스러운 표정이였다.

《잠이 안와… 좀 구경하고싶어…》

《예…》

《어디를 보나 산뿐이고 불빛 한점 없구만요…》 어째 그런 어리석은 소리가 나갔던지… 중위는 웃었다.

《평양하고야 다르지요. 이거야 전연초소가 아닙니까?》

처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내내 이런데서 지내기 어때요? 답답하지 않아요?》

《답답할새도 없습니다. 나야 정치지도원이 아닙니까. 백명의 대원들을 책임진… 사회로 말하면 당일군이지요.》

《어마- 백명?!》

《그들을 모두 리수복처럼 키우자면 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 아니지요.》

《리수복영웅처럼… 화구를 막을수 있게요?》

《리수복영웅이 남긴 시가 생각납니까?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해 둘도 없는 청춘을 바친다는…》

《예…》

《병사들이 모두 그런 정신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순남이란 그 병사처럼 어린 동무들도 많더구만요. 모두 얼마나 힘들가…》

《물론 적과 맞서 초소를 지킨다는것이 헐한 일이 아니지만 우리 병사들은 누구나 보람이 더 커서 어려운줄도 모릅니다. 우리가 초소를 잘 지켜야 후방인민들이 마음놓고 사회주의를 건설할수 있거든요. 우리 병사들은 여기서 후방의 사회주의건설소식을 들을 때 제일 기뻐합니다.》

《예…》 처녀는 하얀 입김을 날리며 탄식하듯이 속삭이였다.

《어릴적부터 군관이 되자고 공상했던가요?》

중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위벼랑에 기대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군청색 하늘에서 별찌가 점선을 그으며 날아떨어졌다. 중위의 눈이 그윽하게 빛났다.

《어릴적… 나한테도 동요시절이 있었지요… 아주 어릴적에는 소방대원이 되고싶었습니다. 우리 집곁에 소방대가 있었거든요…》

《어마나…》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바위벼랑에서 등을 떼고 몸가짐을 바로하더니 추운데 어서 들어가라고, 자기는 잠복초소에 나가 봐야 한다며 거수경례를 붙이였다. 바람이 불어왔다. 성희는 평양에 오면 들려달라며 주소랑 알려주고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입술이 얼어붙은듯… 처녀는 불어치는 바람속에서 두손을 가슴밑에 모아쥐고 릉선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올라가는 중위의 뒤모습만 지켜보다가 황황히 돌아섰다.

방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 모포를 뒤집어 쓴 성희는 문득 송기선이 떠올라 잠들수 없었다. 웬일인지 숨을 죽이고 중위와 그를 대비하여보게 되였다. 송기선… 어찌하여 이 밤에는 그의 삶이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질가. 특히 아무런 지적만족도 주지 못하는 그 무의미한 화제… 정탐영화이야기, 물건값, 바꿈질, 어디 가서 풍청거리며 놀았다는 소리, 집요한 타산… 오영준중위는 남을 위하여, 병사들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개인주의자가 아닐가. 그런데 엄마는?… 딸을 그한테로 떠미는 엄마에 대하여 끝없이 생각하다가 그만 깊은 잠에 노그라떨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자기네 아빠트에 화재가 일어난 꿈을 꾸었다. 층층의 창문마다에서 시뻘건 불길이 뿜어나오고 무엇인가 폭발하는 소리가 둔중하게 울리며 불길에 휘감긴 엄마가 웬일인지 어느 언덕의 넓다란 화강석층계를 따라 달려내려오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성희야-》

《성희야-》

《성희야-》

성희는 온몸이 얼음버캐에 덮인듯 한 환각에 몸을 옹송그린채 굳어져있다가 별안간 귀가 확 열리며 총소리, 폭발소리, 누군가의 다급한 웨침소리가 들려와 《얼음버캐》를 짓부시며 뛰여일어났다. 그는 정신없이 문을 차고 복도로 뛰여나갔다. 병실로부터 철갑모를 쓰고 총을 든 병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성희는 벽에 붙어섰다.

병사들은 처녀의 앞으로 질풍처럼 달려나갔다. 잠복초인가 어디서인가 전투가 붙은것이 틀림없었다. 성희는 꿈이 아닌가싶어 눈을 슴벅였다. 날아지나가는 병사, 병사, 병사들… 눈앞이 핑 돌고 가슴이 활랑거렸다.

성희는 어쩔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병실로 뛰여들어갔다.

할아버지가 소대장에게 손을 내뻗치며 소리쳤다.

《총!… 총!!…》 불을 뿜는 눈, 우들우들 떠는 팔… 《야- 초대련대장도 몰라보는가-》

그 격노한 함성에 뿌리워난듯 소대장은 무기가로 뛰여가 총을 꺼내 할아버지한테 보병식으로 던졌다. 할아버지는 익숙한 솜씨로 날아오는 총을 턱 잡더니 누구 총이냐고 물었다. 련대군의소에 입원한 병사의 총이라고 대답하였다.

《좋-아, 류한무련대장이 늙었지만 열놈은 문제없어!》

그리고는 바람을 일으키며 홱 돌아서 뛰여나갔다. 소대장은 성희한테 옴짝말고 병실에 숨어있으라는 말만 남기고 달려나갔다.

병실안은 태풍이 휘몰아친뒤처럼 뒤죽박죽이 되였다. 통로에 날아내린 모포, 침대에 딩구는 베개들, 보온병, 책과 전지약…

성희는 얼이쳐 어쩌지 못하고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화닥닥 놀라 뛰여나갔다. 바깥은 귀청을 찢는듯한 총소리 폭발소리들로 대기가 전률하고 먼곳의 섬광이며 하늘로 피빛 점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예광탄의 불빛에 참호벽이며 바닥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성희는 참호를 따라 정신없이 달려갔다. 어머니가 발을 구르며 못간다고 소리친 일이 뇌리에 번개쳤다. 입술을 깨물었다. 참호는 우불구불하고 오르내린 기복이 심하였다. 참호굽인돌이들에서 어깨를 벽에 찧기도 하다가 발을 헛디디며 앞으로 엎어졌다. 저아래쪽에서 끓어번지는 총소리… 터져오르는 울음을 씹어삼키며 엉기엉기 기다가 일어나 뛰였다. 흩날리는 머리칼이 눈앞을 가리웠다.

아, 할아버지… 문득 위생가방을 두고왔다는 생각이 가슴을 후려쳤다. 밑둥이 잘린 나무처럼 쓰러지며 참호벽을 짚고 단숨을 톺는데 앞쪽에서 거쉰 목소리가 터져올랐다.

《병사들- 침착하- 라- 초대련대장이 여기- 왔다-》

《원쑤들에게- 죽음을- 주자》

《사회주의- 조국을- 지키자-》

성희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화들화들 떨었다. 《아, 어쩌나! 할아버진 심장이… 심장이 견디지 못해!》

그는 병실쪽으로 도로 뛰여갔다. 우불구불한 참호를 따라 숨이 턱에 닿아 아무리 뛰여가도 병실이 나지지 않았다.

뛰고 또 뛰여가던 그는 너무 지나왔거나 다른 갈래의 참호에 들어서지 않았는가싶어 멎어서 황황히 두리번거리다가 돌아섰다.

처녀는 시간이 퍼그나 지나서야 병실로 찾아들어갈수 있었다. 위생가방을 들고 밖에 나온 그는 또다시 길을 헛갈릴가봐 산릉선을 따라 아래쪽으로 뛰여내려갔다.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세찬 바람이 아우성치며 얼굴을 후려쳤다. 저아래쪽에서 릉선을 따라 시꺼먼 뭉게구름같은것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고 형체가 변하며 느릿느릿 움직여왔다. 성희는 불길한 예감에 멎어섰다가 다시 허둥허둥 걸어내려가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초연내가 풍겨왔다. 가슴이 얼어들었다. 움직여오는 시꺼먼 형체는 구름이 아니였다. 무엇때문인지 군인들이 빽빽이 몰켜서서 힘겹게 걸음을 옮겨오는것이였다. 확 풍겨오는 화약내와 피비린내… 눈앞이 아찔해졌다. 정신없이 물었다.

《할아버진 어디 있어요? 어떻게 됐어요?》

모두 그 물음을 듣지 못하는듯 외면을 하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왔다. 군인들은 누구인가를 담가에 눕혀가지고 앞뒤와 량옆에서 맞들고 조심조심 움직여가는것이였다. 담가채에 빽빽이 붙어선 병사들의 잔등에 가리워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츠러운 비명을 지르며 릉선을 휩쓰는 바람이 눈가루를 뽀얗게 날리였다. 넋이 나간 성희가 자기를 다 잊고 담가로 다가서는데 나서부터 귀에 익고 정든 목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성희야!》

할아버지였다. 류한무는 담가에서 저만치 떨어진 뒤에서 솜외투 앞섶을 열어제낀채 방한모도 벗어들고 백발을 날리며 억척같이 걸어올라오고있었다. 《아이, 할아버지!》

성희는 달려가 팔에 매달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친데 없나요?》

《으으음…》 하고 신음소리같은 한숨을 내쉬며 로인은 걸음을 떼였다.

《내같은 고목은 무사하고 새파란 정치지도원이 저렇게 됐구나.》

《예?!》

《한 동무한테 댓놈이 달려들어 혈투가 벌어졌는데 그판에 날아들었다누나. 모조리 쓸어눕히구 전사를 구원했는데 숨어있던놈이 자동소총을 란사했다. 아까운 젊은이가… 엑- 가망이 있겠는지…》

성희의 가슴이 에여지는듯했다. 한두시간전만 해도 그처럼 생기에 넘쳐 포부와 생의 목적을 말하던 사람이…

소대에 도착하니 위생차가 엔징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달려올라와 병실앞에 박히듯이 멎어섰다. 군의와 위생지도원들이 뛰여내려 부상병을 차안에 올렸다.

위생차가 떠나자 많은 병사들이 차뒤를 따라갔는데 그중에서 최순남전사는 제일 멀리까지 달려나가며 피타는 목소리로 정치지도원동지를 불렀다.

그날아침, 성희는 할아버지와 함께 련대지휘부에 올라와서 어떤 두 군관이 지나가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오영준중위가 련대군의소에까지 와서 심장이 멎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성희는 군단사령부로 달리는 차안에서 너무나도 일찌기 희생된 중위를 생각하다가 문득 그가 자기 목인가 어딘가를 이상한 눈길로 여겨보던것이 생각나 얼결에 목에 손이 갔는데 매끈매끈하면서 싸늘한 줄이 만져졌다. 금빛 목걸이였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삶의 보람을 다른데서 찾는 그한테는 이런것이 공연한 허영이고 천한 사치로 느껴지지 않았을가… 그것을 슬며시 풀어 외투주머니속에 밀어넣는데 할아버지가 어깨를 힘껏 그러안아주었다. 성희는 설음같은것이 북받쳐 입술을 깨물었다. 내려감겨 바르르 떠는 속눈섭에 후더운 이슬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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