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선언한다

제 2 장

 

8


군에 돌아온 영진은 차가 읍거리에 들어서자 길에 내려섰다. 그는 포장도로복판에 서서 거리 량쪽에 늘어선 3층, 4층, 5층의 살림집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시공이 끝나가는 그 집들은 벌써 자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있었다.

그는 쭈그리고 앉아 앙각으로 집들을 쳐다보며 높고낮은 층고들의 배합상태가 단조롭지 않는가 살펴보기도 하고 두세걸음 물러서며 실눈을 짓고 조화롭게 완공될 거리의 건축학적구도를 가늠해보기도 하였다. 보면 볼수록 다시 보며 그 아름다움을 음미해보고싶은것이 이 거리였다. 30층, 40층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대도시의 거리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규모가 작고 소박한것이지만 그한테는 문명한 혜택을 적게 입은 산골사람들의 꿈과 지성과 땀이 깃들었고 자신의 지혜와 열정도 슴배인 이 거리가 그지없이 소중하며 세상에 자랑하고싶은 창조물이였다. 그리하여 어디에 잠시 갔다와도 새로운 기쁨과 함께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며 가슴뿌듯이 안겨드는 화폭이였다.

《책임비서동지!》

길가의 살림집모퉁이에서 안전모를 삐딱하게 눌러쓴 청년이 반겨 달려나왔다. 며칠전에 만났던 감때사납게 생긴 친구였다. 청년은 안전모를 쓴채로 허리를 굽석 꺾으며 인사했다.

《어- 동무로구만. 무슨 일을 하오?》

《부엌과 창고를 넓히는 작업을 했습니다.》

《잘되오?》

《예, 문제없습니다. 하니까 되누만요.》 하고 청년은 벙글거렸다.

《그럼. 하면 되지 않구!》

《책임비서동지, 아까 읍농장아주머니들이 소문을 듣고 와- 몰려와서 구경했습니다. 모두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랬소?!》

《한 어머니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말씀을 얘기해주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히야- 땀을 뺐습니다.》

《땀을 빼다니? 인사하면 받을게지.》

《제가 뭡니까?》

《뭐라니? 그분의 뜻을 실현해가는 건설자가 아닌가?》

감때사납게 생긴 친구는 자부심이 북받치는지 얼굴이 불깃해졌다.

《오늘 구부위원장동지가 내내 우리하고 같이 일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리고 뒤쪽을 휙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죽여가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상해요. 날 고발쟁이로 여기지 말아요…》

영진은 빙그레 웃어보였다.

《이자 책임비서동지 차가 오는걸 저 2층창문에서 보더니 얼굴이 새까매져서 담배만 피우지 않겠어요.》

《지금도 거기 계시나?》

《예… 나오지 못해요. 무슨 가구문제로 비판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고 이제 떨어진다는 말도 돌던데 그 문제때문에 아닙니까?… 책임비서동지가 너무했어요.》

《허- 이 친구, 허허… 코밑에 수염이 난 다음에 그런 충고를 햇!》

차영진은 청년의 안전모를 꼭 눌러주고는 그자리를 떴다. 체육관건설장에서는 때마침 쉴참이여서 건설자들이 벽체그늘밑이며 벽돌무지와 자갈무지옆에 모여앉아 담배들을 피우고있었다. 땅바닥에 깐 가마니우에 벌렁 누워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영진은 활개를 저으며 그들쪽으로 걸어가면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동무들- 일어나라구- 강재구 뭐구 다 풀렸소! 다 풀렸어!》

그 소리에 모두 벌떡벌떡 뛰여일어나 차영진과 뒤에 따라온 구영세둘레에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는 먼길을 달려오기라도 한듯 단숨을 몰아쉬다가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쳤다.

《다 풀렸소! 강재도 문제없소!》 청년들은 환성을 터뜨리며 왁작 떠들어대기도 하고 그의 손을 잡아흔들기도 하였다.

《여- 일을 시작하자!》

《제꺽 벽체를 다 세우고 트라스를 올리자!》

그들은 중구난방으로 소리치며 자기 일자리들로 달려갔다. 건설장은 들끓었다. 몰탈을 이기는 사람들, 벽돌을 나르는 사람들, 휘틀우에서 용접의 불꽃을 날리는 사람들, 다급한 호각소리… 바닥에서 조립된 벽돌블로크가 기중기팔에 들리워 허공에 둥둥 떠오르고 몰탈이 든 질통을 진 청년들이 발판을 따라 뛰여올라갔다. 건설장에 창조의 열정이 휘몰아쳤다.

영진은 저고리를 벗어 모래무지에 던지고는 한 청년한테서 삽을 앗아쥐고 몰탈을 이기기 시작하였다. 삽날이 번쩍이고 세멘트와 모래가 사품치듯 뒤번져지며 뽀얀 먼지를 일으켰다. 팔에 기운을 줄수록 로동의 희열이 북받쳐 윽윽 승기가 나서 삽을 번개같이 놀리는데 화끈거리는 목덜미에 무엇인가 뿌려지는듯 부드러우면서도 산뜻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해비가- 온-다-》 누구인가 휘틀우에서 목청껏 소리쳤다.

영진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해가 이글거리고 가녁에 은회색으로 빛나는 뭉게구름들이 떠있는데 그밑 무한대한 공간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반점들의 파도가 밀려내려오며 시원한 선기를 몰아왔다. 그가 얼굴을 간지럽히는 비방울을 씻을념도 안하고 하늘만 쳐다보는데 휘틀우에서 한 청년이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책임비서동지, 시원-합니까?- 기분이- 좋습니까?-》

《좋구말-구- 자네는 어떤가?-》

《시원합니다.- 핫하하-》

등뒤에서 자갈을 밟는 소리가 나고 이름할수 없는 불길한 느낌이 뇌리를 선뜻 스쳤다. 뒤를 돌아보았다. 세멘트공장의 나이지숙한 세포비서가 서있었다.

무엇인가 기겁한 사람의 얼굴이다. 그는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하였다. 영진은 그를 데리고 건설장에서 좀 떨어진 나무그늘밑으로 갔다.

《우리 책임자가… 주상민동무가…》

《그가 어떻게 됐소?》

《그 병입니다.》

《무슨 병인가 말이요?》 영진은 참을성을 잃고 버럭 소리쳤다. 세포비서는 고개를 떨구고 몸서리쳐지는 병명을 말하였다. 영진은 얼빠진 소리를 하지 말라고 벌컥 화를 냈다.

《그가 지금 어디 있소?》

《집에 누워있습니다.》

《같이 가보자구.》

세포비서는 주상민이 아직도 자기병을 똑똑히 모르고있는데 책임비서가 갑자기 나타나면 환자를 놀래울수 있다고 하였다.

《신경이 예민한 동무인데 후에 자연스럽게 가보는게 어떻습니까?》

《음…》

《세멘트생산이 야단났습니다.》

《그까짓게 문제요?》

저녁에 집에 돌아가니 안해도 같은 우려의 말을 하였다. 차영진은 군병원에 말하여 도대학병원에 올라가서 보다 과학적인 검진을 받도록 하였다. 대학병원의 소견은 달랐다. 심한 위궤양이라는것이였다. 그는 체육관문제가 풀려가는데 이번에는 예상도 못했던 병마가 들이닥치니 이전에는 황당하게만 여겼던 숙명론 비슷한 상념, 내가 하는 일은 왜 이렇게 자꾸 꼬이는가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사흘뒤 영진은 주상민의 집을 찾았다. 그는 읍거리에서 좀 떨어진 유축의 울바자가 없는 단층집에서 살고있었다. 뜨락에서 인민학교에 다니는 아들아이가 꼬리에 흰점이 배긴 깜장강아지와 함께 서로 쫓으며 쫓기면서 뛰놀다가 깔깔 웃어대였다. 아이의 발길에 묻어다니던 강아지가 낯선 사람을 먼저 알아보고 왈왈 짖어댔다. 그제야 아이는 손님을 쳐다보며 누구인지 알만하다는듯 벙글써 웃어보였다.

목책을 두른 터밭이며 우리에서 빤히 내다보는 토끼들의 기름기흐르는 몸뚱이들이 애쓴 주인의 생활면모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벽지를 산뜻하게 바른 아늑한 방에는 서가며 책상, 화분대 등이 규모있게 놓여있었다.

주상민은 아래목에 깐 요우에 반듯이 누워있다가 안해의 뒤를 따라 책임비서가 방에 들어서자 황급히 일어나 앉았다. 그의 얼굴은 이 며칠사이에 몹시 수척해졌고 눈언저리에는 정신적고통과 번민의 그림자가 짙게 어려있었다. 차영진은 지나가다가 앓는다는 말을 듣고 들렸노라고 하면서 어서 누우라고 거듭 일렀으나 상민은 눕지 않았다. 그는 자책감에 그늘진 얼굴로 책임비서를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고개를 푹 떨구고 목이 메여버린듯 한동안 말을 못하였다.

《상민이, 누우라구…》

《책임비서동지, 이렇게 되여 죄송합니다. 세멘트생산을 더 많이… 더 많이 해야 될 때에, 배은망덕한놈이라고 누가 욕해도 할 소리가 없게 되였습니다.》

안해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돌아서나갔다. 영진은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었다.

《그런 소리 말라구. 군적인 력량을 다 동원해서 치료대책을 세우겠소. 치료에서는 무엇보다도 환자본인의 정신상태가 중요하오. 마음을 굳게 가지면서도 늘 유쾌해야 되오. 마음이 편안해야 약도 잘 받소. 가정적으로 당장 풀어야 될 문제는 없소?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하오.》

《없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늘 마음을 써왔습니다. 어떻게나 대학공부를 시키고 저것들을 나처럼 곡절을 겪지 않고 살아나가게 하고싶었습니다.》

차영진은 그의 한생이 떠오르며 가슴이 저려들었다.

《아버지가 충실하게 일하는데 아이들이야 무슨… 걱정말라구…》

《책임비서동지, 당에서 저를 믿고 세멘트공장을 맡겼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누구한테 인계하게 해주십시오. 소성로작업반장인 우리 세포비서한테 맡기면 그 동무는 저보다 더 잘할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오? 누구도 동무를 대신할수 없소. 치료대책을 세운다는데 무슨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하는가?》

환자의 초들초들 말라버린 입술에 쓸쓸한 미소 같은것이 어리였다.

《저 유리통안에 석회석을 넣을 때…》

비로소 베개가까이에 자그마한 장방형 유리통이 놓여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유리통안에는 막돌처럼 생긴 원추형 석회석덩이가 들어있었다.

《생각나십니까. 제가 처음 발견한 석회석입니다. 책임비서동지가… 제가 석회석이라고 하자 그 말을 믿어주었습니다. 분석결과 석회석이라는것이 판명되자 모두 저를 믿게 되였습니다. 기념으로 깊이 간수해두자고… 유리통에 저걸 넣으면서 집사람한테 롱말을 했습니다. 죽으면 관속에 넣어달라구… 그 롱말이 진담으로 되지 말아야겠는데, 허허…》

문득 사이문 저쪽에서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아래방으로 내려간 안해가 문뒤에 앉아 남편의 말에 귀를 강구고있은것 같았다. 두사람은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얼마간 동안을 두었다가 차영진이 여러가지로 신심과 용기를 주는 말을 열정적으로 하고나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오는데 안해가 따라나섰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가 재미나게 살가 하는데 또 이런 일이… 책임비서동지, 죄송합니다.》

그는 덤덤히 듣기만 하였다.

《배를 그러안고 앓음소리를 참는걸 보면 불쌍해죽겠어요. 다 제 불찰이지요. 끼니랑도 맛스럽게 지어 대접하지 못하고… 그러지 않아도 고민이 많은 사람한테 마음고생만 시키고… 여기로 이사올 때는 안가겠다고 앙탈까지 부려서…》

녀인은 남편이 앓아누으니 오만가지 후회가 생기는듯 한숨을 거듭 내쉬였다. 차영진은 가슴이 몹시 아파나면서도 주상민과 그의 가정에 무엇인가 크게 빚진감이 들어 마음이 여간 무겁지 않았다.

그가 군당사무실로 들어오니 종합과의 젊은 부원이 찾아들어와 송규태동지한테서 전화가 왔었다고 보고하였다. 제철소의 판매과에 가서 ㄴ형강을 받아가라고 알려왔다는것이였다. 환성을 터치거나 뛰여일어나 춤이라도 출만 한 소식이였지만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알겠노라고 대답하였다. 주상민에 대한 련민의 정에 가슴이 못견디게 아파나서였다. 그 아픔이 감각을 마비시켰는가…

그는 응접탁에 마주앉아 머리를 싸쥐고 바위돌로 굳어진듯 움직일줄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등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돌아보았다. 웬사람이 엉거주춤 서있었다. 연기에 그슬린듯 시꺼멓고 피기가 없는 얼굴, 꺼져들어가고 패인듯 한 눈확이며 볼… 구영세였다.

처음에는 주상민이와 대조되여 혐오감이 치밀었으나 그것은 순간적인 심리이고 이 며칠사이 그가 겪은 번뇌가 느껴져 측은해지기도 하였다. 구영세는 주눅이 든 얼굴로 중얼거리였다.

《저는… 정말 유치하고 졸렬했습니다.》

《앉소.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차영진은 그를 옆자리에 앉혔다. 구영세는 걸상에 단정하게 앉아 진정이 어린 얼굴로 창문쪽을 내다보며 나직이 말하였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어리석게도… 저는… 비판을 했다고 의견을 가졌지만… 인간적으로 봐도 제가 책임비서동지를 모욕했습니다.… 우리 일군들속에 저같은 인간이 많으면 인민들이 당에서 멀어질것입니다. 사회주의가 흐려지고…》

《됐습니다. 됐습니다! 내 부위원장동무한테 한가지만 말해주고싶습니다. 처음으로 만나뵙게 된 자리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로부터 들은 말씀을 나는 죽어서도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인민들과 꼭같이 살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혼연일체가 되고… 얼굴색까지 근로인민대중과 같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위원장동무, 친애하는 그이께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당과 대중의 통일단결도 저절로 되고 사회주의제도도 저절로 공고해지고… 우리가 하는 건설도 다 잘됩니다. 이걸 못해서 일이 뒤틀리구 어떤 땐 망태기가 되구… 사람들이 이그러지구… 이걸 못해서… 이걸!》

차영진은 부위원장의 눈굽에 번쩍이는 물기를 보고 화제를 돌려 송규태부위원장한테서 제철소에 가서 강재를 실어오라는 전화가 왔다고 하였다.

《예?!》

《물계를 아는 동무가 가야 ㄴ형강을 제대로 받아올것 같습니다.》

《제가요?!》 그는 온몸에 생명력이 되살아난듯 순간에 얼굴이 밝아지고 눈에 영채가 돌았다. 구영세는 인차 떠나려고 서둘러댔지만 화물자동차들이 다 어디로 나가고 없어 지체하게 되였다. 그는 이튿날 새벽에야 3대의 화물자동차를 끌고 제철소로 떠났는데 그날 저녁녘에 빈차로 돌아왔다.

영진은 방에 들어와 걸상에 주저앉는 구영세의 분격한 얼굴을 크게 뜬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의 몸에서 대흑색야금기지의 콕스탄냄새며 쇠비린내가 물씬물씬 풍겨나오는듯 하였다.

《제철소에 일이 생겼습니다. 지배인이 대형용광로를 죽이자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강재생산이 당분간 중지되기때문에 판매과에서 도안의 건설대상들에 주자던 강재들까지 몽땅 걷어서 급한 대건설장들에 돌렸습니다.》

차영진은 억이 막혀 말을 못하였다. 목안이 타들었다.

《판매과장이란 사람은 미안하다는 소리 한마디없이 되려 저보구 왜 오라는 시간에 오지 않구 이제 와서 내라고 야단인가고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기막혀서… 판매과라는데는 장마당입니다. 각처에서 온 자재인수원들, 한다하는 일군들이 밀려들어 고아대는데 나같은건 밀려나서 판매과장하고 더 말도 붙이지 못했시다. 거기서 송규태부위원장 아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는 어찌나 날쌘지 해결받아 가지고 벙글거리다가 나를 보더니 피하는 눈치였습니다. 미안한지… 업무부지배인방에 가서 송규태동지한테 올리전화를 걸었습니다. 부위원장동지는 업무부지배인하고 바꾸라고 했습니다. 송규태동지는 격분해서 추궁하는것 같았습니다. 업무부지배인이 변명하는 소리를 듣고 우리한테 할당된 강재가 다른데로 빠져나갔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구영세는 의분에 씨근거리며 새파란 불꽃이 튀는듯 한 눈으로 책임비서를 지켜보았다.

《책임비서동지, 빈차들을 끌고 백여리길을 오면서 내내 한가지 의문에서 벗어날수 없었습니다. 그녀석이 무슨 수를 써서 우리걸 빼내지 않았는가 하는… 어릴적에는 순박했는데…》

《그런 억측은 하지 마오.》

영진은 더 말을 잇지 않고 전화기로 다가가 조용히 송수화기를 들었다. 송규태는 자기 방에 없었다. 부서에 알아봐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구영세가 언제 방에서 나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차영진은 어찌할바를 모르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체육관건설장에서 로동자들이 기세가 올라 강재를 쌓아놓을 장소를 마련하고 트라스를 조립할 작업터를 닦은 일들이 뇌리에 번개쳤다. 그 순간 그 어떤 인정사정도 없는 힘에 허궁 들렸다가 내동댕이쳐진듯 한 환각과 함께 분격이 터져올랐다.

그는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싸쥐고 우들우들 떨다가 주먹으로 한번 또 한번 응접탁을 내리쳤다. 그 소리가 방안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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