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마감이야기

길지 않은 한생을 고스란히 나라의 군력을 다지는 길에 바친 박원작이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임금은 그를 북계병마도감사로 봉한다는 어지를 내렸다.

그때로부터 5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093년(계유년) 여름. 고려조정에서는 막강한 군력을 시위하는 천균노의 일제포성을 울리여 변방을 유린하는 녀진오랑캐에게 본때를 보여주라는 령을 내렸다.

이제 거대한 화포의 장엄한 포성이 울리면 이 땅을 넘보던 온갖 오랑캐무리들이 혼비백산하리라.

그러지 않아도 고려의 《신기한 병기》를 천하가 얼마나 두려워 했던가. 그것이 있기에 고려는 강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라 륭성의 시대를 맞이한것이다.

천하를 위압하는 《신기한 병기》들이 군진들에 갖춰지고 개경과 서경에서 천균노의 포성이 울리자 고려를 어째보려던 대국들이 저마다 국교회복의 청을 드려오고 례성강의 벽란나루에는 친선의 사절을 실은 타국의 배들이 숲을 이루었다.

군력이 강해지니 나라는 부유해지고 문명은 더 높은 경지에로 치달아올라 고려는 문화의 나라로 만방에 그 존엄을 떨치였다.

바로 이 시기에 천하보물 고려자기의 전성기가 마련되고 구리활자가 창안되여 수많은 책들이 찍혀지고 마을마다 글읽는 소리가 차고넘쳤다.

웅장화려한 동양제일의 사찰이라는 흥왕사같은 거대한 사원들이 일떠섰다.

이러한 때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녀진오랑캐가 변방을 침노하였다.

송화강의 한갈래 아르초가강류역에서 일어선 완안부녀진은 주변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자 기고만장해서 두만강일대로 검은 마수를 뻗쳤다.

두만강일대는 고려에 복속된 동녀진이 사는 땅이자 고려의 변방이였다.

하여 고려조정에서는 녀진오랑캐무리가 감히 이 땅을 범한다면 일격에 요정내리라는 강경한 의지를 담아 천균노의 포성을 울리게 한것이였다.

개경과 서경에서 그리고 동계에서도 고려의 자랑인 천균노들이 일제히 장엄한 포성을 울렸다.

천균노의 포성은 실로 고려의 위엄을 천하에 떨치도록 하였다.

3만근이나 되는 거대한 화포가 북방을 향해 불길을 토하자 고려를 넘보던 녀진오랑캐들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들은 당장 《신기한 병기》들을 앞세운 고려의 천군만마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된매를 안길가봐 아우성을 질렀다.

하여 동녀진과 서녀진은 물론 완안부녀진까지도 토산물을 가득 실은 마바리들을 앞세운 화친의 사절들을 련이어 개경으로 보내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로써 고려는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또다시 북방의 녀진족을 제압하고 나라의 존엄을 빛내일수 있었다.…

고려전기의 뛰여난 무기기술자인 박원작의 고심어린 탐구와 서경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나라의 군력강화에 크게 기여한 《신기한 병기》들은 그후 태평성대를 떠들며 일신의 안일과 부귀영화만을 탐내는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에 의하여 하나둘 사라졌다.

지어는 세계최초의 대형화포인 천균노와 화약의 비방까지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조정에 골병드니 섬나라오랑캐들이 앞을 다투어 이 땅을 범하였다.

바로 그때 나라를 사랑하는 충의지사가 있었으니 그는 고려말기의 최무선이였다.

최무선은 비상한 노력으로 끊겨진 화약의 비방을 다시금 밝혀내고 이어 강력한 화약무기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화포들로 장비된 강력한 고려함대를 이끌고나가 바다에 침노한 섬나라오랑캐무리들에게 불벼락을 안김으로써 진포해전(1380년), 박두양해전(1383년)과 같은 세상에 일찌기 류례가 없는 바다싸움의 대승리를 안아왔다.

이렇듯 군력강화에 크게 기여한 충의지사들의 공적은 화약무기와 더불어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져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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