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균노


제 4 장

5


강을 건느지 말랬는데

왜 굳이 건느셨소


절령역관지기는 말잔등을 닦던 물걸레질을 멈추고 구슬프게 울

리는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들 일랑이가 콩밭김을 매며 부르는 노래였다.

일랑이 봄내 역참주변으로 일군 밭에 썩은 락엽을 듬뿍 내고 콩

을 심었더니 벌방 부럽지 않게 잘되였다.

부지런한 농사군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더니 정말 옳은 말이다.

헌데 저녀석은 왜 하필 쓸쓸한 노래만을 부르는걸가. 병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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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어른이 배워주었다는 그 노래가 듣기 좋던데…

물에 빠져죽었으니

님아, 이 일 어이하오

역관지기는 마음이 처량해져 시무룩해졌다.

혹시 저녀석이 일찌기 죽은 제 어미 생각이 나서 저러는걸가. 아

니면 서경에 떨어져서 사는 그 녀인 생각이 나서?

역관지기는 며칠전 또다시 서경을 다녀왔다.

김충지에게서까지 외기러기신세를 면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곰

곰히 생각해보니 《서경과부》와 더는 갈라져 살아서는 안되겠

다는 마음이 굳어졌다. 그래서 결단코 한두달안에 역관지기를

그만두고 서경에 가 살겠다는 뜻을 알리고저 《서경과부》를 찾아

갔던것이였다.

그러나 막상 과부집에 이르고보니 절령역관지기로서 제일을 도

와달라고 한 김충지의 부탁이 가슴에 걸려 차마 그런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한해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이 아비의 이번 걸음에 새어머니를 데려오는줄로 여겼던지 일랑

은 아버지 혼자 왔다고 섭섭해하였다.

녀석이 철이 없기란 참…

아마 전처가 이런 험지로 시집을 안왔더라면 지금도 살아있을것

이다.

역관지기는 가슴아픈 참상이 떠올라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가 일랑이 한살나던 해 초봄이였다. 그날 눈석이물이 장

마비처럼 산골짜기들에서 쏟아져내려 령길의 한구간이 뭉청 패

여나갔다.

그래서 역졸들은 길을 수리하러 나가고 역관지기만이 홀로 남아

역참일을 하고있었다.

늘 그러하듯 이웃역에서 공문서를 가진 역졸이 말을 달려왔다.

역졸로부터 개경으로 보내는 공문서를 인계받은 역관지기는 안

해를 불러내여 역참을 지키게 하고는 다음역으로 말을 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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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이 안해와의 마지막이 될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다음역인 도공역에다 공문서를 전하고 돌아오니 안해가 마구

간앞에 피투성이 되여 쓰러져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안해를 부둥켜안았다.

안해는 역말을 해치려 달려든 호랑이를 쫓다가 화를 당한것이

였다.

절령이란데는 호랑이가 어찌나 많은지 한낮에도 역참에 달려

들어 말을 물어가는 무서운 곳이였다.

역관지기는 안해를 살려야 한다는 그 한가지 생각에서 린접마을

로 달려가 무당을 데려왔다.

의술을 아는 사람을 청해오면 좋으련만 궁벽한 산골마을들에 의

원이 있을리 만무하였다.

무당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본다는 명도거울을 안해에게 들

이대며 푸념을 하더니 워낙 범살을 타고난 팔자여서 살릴 가망

이 없다는것이였다.

그날로 안해는 어린 아들을 외로이 남겨두고 숨을 거두었다.

안해를 잃은 역관지기는 절령을 떠나버릴 마음까지 먹었었다. 허

나 안해가 묻혀있는 절령이 발목을 잡는것 같아 차마 절령을 나설

수 없었다.

안해만큼 절령을 정든 고장으로 여긴 사람도 없을것이다.

어느해인가 친척이 있는 강음현으로 살길을 찾아간다는 늙은 내

외가 과년한 딸 하나를 데리고 절령역참에서 쉬여간적이 있었다.

늙은 내외는 역관지기가 나이 서른이 넘도록 홀로 사는 총각

이라는것을 알고는 여기도 사람사는 땅이 분명한데 시집을 오겠다

는 처녀가 없어서야 되겠느냐며 딸을 남겨주었다.

그 처녀가 바로 일랑이 어미였다.

그 녀인의 손길이 여기저기에 어려들면서 역참은 비로소 활기를

띠였다.

지나가던 길손들은 험지에 볕들었다며 절령역에 뿌리내린 그 녀

인을 칭찬하였다.

인정이 무르고 손부리가 여문 안해를 잃고보니 다시는 녀인을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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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다가 그런 참변을 되풀이하고싶지 않았다.

역관지기는 이미 굳힌 그 마음이 흔들릴수 없다는 생각에서 중

얼거렸다.

《얘야, 한해만 좀더 참아라. 우리 래년에는 꼭 서경에 나가 오

늘일을 옛말하며 잘살아보자꾸나.》

콩밭김을 다 맸는지 일랑이 마구간으로 꼴을 한아름 안고 들

어갔다.

역말들은 저마다 꼴을 먼저 먹겠다고 구유통에 달라붙었다.

절령역참은 이웃역참들보다 크다보니 역말이 많았다.

나라에서는 공무행차를 하는 조정3재(종2품이상의 고관)에겐

역말을 10필, 정3품관은 7필, 참상관(정6품으로부터 종3품까지

의 벼슬아치)인 경우 개경량반은 5필, 지방관은 3필, 그이하의

하관은 2필, 군교들에게는 1필을 내주도록 정해놓았다.

이 법을 지키려면 역참마다 적어도 스무필의 말을 길러야 했다.

절령역참은 나라에서 중요시하는 역참이여서 이웃역참들보다 말

10필을 더 기르고있었다.

역관지기가 제일 아끼는 말이 있다면 잔등을 닦아주던 이 가

라말이다. 가라말이 다른 말들보다 더 령리하다거나 잘 달려서

라기보다 이 가라말에다 《서경과부》를 태우고 그의 친정집에 데

려다주었기때문이다.

하기에 그 녀인이 보고싶어지면 가라말을 끌어내다 잔등을 닦아

주면서 처음 만났던 그날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군 하는 역관

지기였다.

《이젠 너도 마구간에 가 뭘좀 먹어야지.》

역관지기가 가라말을 마구간으로 끌고가려는데 등뒤에서 꿈결에

도 듣고싶던 녀인의 부름소리가 울렸다.

《일랑이 아버지.》

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재차 울리는 부름소리에 역관지기의 손에서 말고삐가 툴렁 떨어

졌다.

가라말이 녀인쪽으로 돌아서며 오흥― 하고 울었다. 가라말도 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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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알아본 모양이였다.

마구간을 나서던 일랑이 목메여 소리쳤다.

《작은어머님!―》

녀인은 일랑을 향해 두팔을 벌리더니 달려온 일랑이의 두손을 꼭

부둥켜잡았다.

《얘야, 보고싶었다. 너와 모여살고싶어 찾아왔단다.》

《작은어머니…》

두손을 서로 부둥켜잡은 그들을 보는 역관지기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녀인은 역관지기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일랑이 아버지, 절 돌려보낼 생각은 마시와요. 절령이 아무리

험한 고장이란들 사람까지야 못살데겠나요. 남녀가 모여살지 못하

는건 정이 부족해서이지 지세가 험한탓때문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

소이다.》

역관지기는 말문이 막혔다. 녀인이 이미 험한 절령에서 함께 살

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왔으니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저런 녀

인과는 석삼년 눈속고생이라도 견딜수 있을것이다.

역관지기가 눈물이 글썽해서 《서경과부》에게 다가가려는데 서

경쪽에서 흙먼지를 가득 말아올리며 말을 때려 달려오는 사람이 있

었다.

오흐응―

역참에 들어선 황부루는 느침을 한입 물고 헐썩거렸다.

역관지기는 분노를 느꼈다. 아무리 역말이라도 그렇지 죽어라고

마구 때려몰면 되겠는가. 바로 저래서 역말들이 인차 페마가 되고

만다.

황부루에서 뛰여내린 사람은 이웃역참의 역졸이였다.

역관지기는 성이 나서 그를 다몰아댔다.

《자네 역참사람이 맞아? 맞느냐 말이다?》

역졸은 눈살이 꼿꼿해서 대들었다.

《만나자마자 웬 욕설이시우?》

《에끼, 덜된 사람같으니. 자네같은 사람때문에 우리 역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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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녹아난단 말이다.》

《흥! 역말이 뭐 우리 말이우? 량반네거지!》

《나라것을 보고 뭐가 어쨌어?》

《됐수다. 자, 이거나 얼른 받수다. 제길할, 이 잘난 공문서

인지 병문서인지 하는것때문에 끼식도 제때에 못먹고 이 지랄이라

니까.》

《허튼소리 말아.》

《이거나 보시우다. 방울 세개 매단걸!》

역졸은 공문서가 든 가죽주머니를 내밀었다. 종이말이같은 가죽

주머니에 정말 구리방울이 3개씩이나 매달려있었다.

이런것은 흔치 않은 공문서였다.

역졸은 공문서를 받아든 역관지기에게 책 한권을 내밀었다.

《여기에다 지장을 눌러주시우.》

《그래야지.》

역관지기는 책을 받아가지고 역관으로 들어갔다.

역참들에 공문서가 당도하면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그것을

넘겨주고 넘겨받았는가를 자세히 써넣고 손도장을 찍어 후날의 증

명을 삼게 했다.

만일 공문서가 잘못되면 책을 뒤져보고 죄를 따지였다.

역관에 들어선 역관지기는 책에다 글을 쓰고 엄지손가락에 먹즙

을 발라 손도장을 눌렀다.

역관을 나서기 바쁘게 역졸이 책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옛네.》

책을 돌려받은 역졸은 《빨리 공문서를 띄우소이다. 공연히 고

목에 벼락맞지나 말고.》라는 퉁명스러운 말을 남기고 말우에

뛰여올랐다.

그가 탄 말은 또다시 흙먼지를 말아올리며 멀어져갔다.

《원 녀석두, 성미가 못돼먹었다니까.》

혼자소리로 두덜거리고난 역관지기는 《서경과부》에게 돌아

서며 말했다.

《먼길을 온 임자에게 안됐네. 내 잠간 이웃역에 갔다오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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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일랑이와 함께 집에 들어가게.》

《예.》

일랑이 《서경과부》를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자 역관지기는 하

필 이런 때 공문서가 왔다고 혀를 찼다.

《허― 재수가 없기란… 쯧쯧.》

손에 들린 가죽주머니에서 구리방울 3개가 어서 말을 달리라

고 호령치는것 같았다.

3개의 구리방울을 단 공문서와 맞다들리면 만사를 뒤로 물리

고 그것부터 빨리 날라가야 하는게 국법이다.

방울을 한개 단 가죽주머니는 2월부터 7월까지에는 하루에

4개역, 8월부터 다음해 정월까지는 3개역씩 가야 하며 방울 2개를

단것은 그것보다 중요한 공문서인 까닭에 하루 한개역씩 더 보

내주어야 한다. 방울 3개짜리는 제일 중요한 공문서여서 방울을 두

개 단 공문서보다도 한개역을 더 보내주어야 한다.

가죽주머니를 품에 넣으려던 역관지기는 공문서에 씌여진 남

권부의 이름을 보자 잠시 주춤거렸다.

김충지는 매번 공문서와 맞다들리면 누가 보내는것인가를 확

인하고 남권부의 이름으로 된것이면 남모르게 서경으로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남권부의 이름으로 된 공문서는 방울을 한개 아니면 두

개를 달았었다.

그런데 지금 공문서를 들여다보니 남권부의 이름이 씌여져있

는것이다.

아까는 어찌나 역졸이 보채는지 아무 생각없이 장부에 글을 쓰

다보니 남권부의 이름을 보고서도 김충지의 부탁을 잊었었다.

례빈성으로 보내는 남권부의 공문서에 이전과 달리 방울이 세개

씩이나 매여달린걸 보면 꽤나 중요한 글을 써놓은 모양이다.

《이건 개경으로 못가. 암, 그래야 하구말구.》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역관지기는 마구간으로 뛰여가 빠르기로 소

문난 《새매》란 이름이 붙은 백마를 끌어냈다.

《어서 서경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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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지기가 말에 막 올라타려는데 언제 나왔는지 일랑이 말고삐

를 잡았다.

《아버지! 제가 가겠으니 아버진 집에 들어가시오이다.》

《네가? 허― 이건 안돼. 아빈 서경으로 가야 한단다.》

일랑의 두눈에서 영채가 일었다.

《아버진 〈황도친구〉분에게 가려 하지요? 전 어린아이가 아니

니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아오이다. 저에게 그 일을 맡

겨주시고 아버진 집으로 들어가시오이다.》

역관지기는 할 말이 없었다.

저녀석이 다 자랐어. 하긴 아들이 아비의 일을 돕는거야 응당한

도리지.

역관지기는 품에 넣은 가죽주머니를 꺼냈다.

《이걸 소중히 간수해가지고 〈황도친구〉에게 가져가야 한다.

이 일은 남이 알아서는 안되니 극력 조심하거라.》

일랑은 가죽주머니를 받아 품에 찔러넣고 나는듯이 말우에 뛰여

올랐다.

《아버지! 념려마시오이다. 이랴, 쩌―》

일랑이 박차를 한번 가하니 《새매》는 힘껏 땅을 차며 질주

했다.

《원 녀석두, 어른이 되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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