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소 개척하신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몸소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길을 개척하시여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답사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의 시원을 열어놓으시였으며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여나가기 위한 사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로 마련하시였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는 일제식민지통치의 가장 암담하던 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친솔하고 조국으로 진군하시여 군사정치활동을 힘있게 벌리신 뜻깊은 혁명전적지이다. 그러나 1950년대 중엽까지만 하여도 이곳 혁명전적지는 반당반혁명분자들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잘 꾸려지지 못했고 그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사업도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고있었다. 학교들에서도 명승고적탐승과 등산, 야영 같은것은 많이 조직하였지만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답사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고있었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

 

이러한 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을 발기하시고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에 대한 조직적답사를 진행하심으로써 답사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의 시원을 열어놓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을 발기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이번에 보천보혁명전적지를 비롯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답사하면서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 대하여 깊이 체득하려고 합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45(1956)년 5월 말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 학생소년들로 답사단을 조직하여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을 계기로 량강도안의 혁명전적지들을 답사하려는 의향을 말씀드리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보천보전투가 있은지도 열아홉해가 되였다고 하시면서 그이의 생각을 적극 지지해주시며 혁명전적지에 가서 산도 넘어보고 밀림도 헤치면서 항일유격대원들이 걸은 길을 따라 걸어보라고, 항일유격대원들은 그 간고한 시기에도 조국으로 진군하여 보천보도 쳤고 무산지구에서도 싸움을 벌렸다, 이번에 혁명전적지에 가면 항일유격대원들이 어떻게 필승의 신념을 안고 싸웠는가를 똑똑히 배워가지고 오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속담에 《첫 새벽문을 열면 오복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물론 한 가정의 새벽문을 여는것은 그리 힘든것이 없다, 하지만 조국과 인민, 당과 혁명을 위하여 나라의 첫 새벽문을 열고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초행길을 걷는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그런 일은 가장 영광스럽고 보람찬 일로 되는것이다, 혁명전적지에 대한 첫 답사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초행길인것만큼 굳게 마음을 먹고 한번 걸어보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가슴깊이 새기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전통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나아갈 드없는 신념을 지니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행군을 단행할것을 결심하시였다.

 

반당반혁명분자들이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거세말살하려고 책동하고있던 때 그이께서 혁명전적지답사단을 뭇고 백두산지구에 대한 답사를 하기로 결심하신것은 참으로 대용단이 아닐수 없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답사할 구상을 하신것은 이미전부터였다.

 

주체43(1954)년 6월 4일 보천보전투승리 17돐 기념일을 맞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소 연극 《보천보의 홰불》대본을 쓰시고 연출을 하시였으며 어버이수령님의 역형상을 맡아 공연을 진행하시였다. 공연후 학생들과 교원들을 비롯한 관중들이 공연성과를 축하할 때 그이께서는 우리는 앞으로도 이러한 기념일때마다 연극활동 같은것을 널리 벌려 아버지원수님의 영광스러운 투쟁력사를 더 깊이 학습하려 한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학생소년들속에서 어버이수령님의 항일혁명투쟁자료를 가지고 독보, 결의모임들을 조직하시고 만경대와 칠골혁명사적지에 대한 참관도 조직하시는 과정에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에 대한 답사와 참관을 통한 교양사업이 그들을 수령님의 위대성과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데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것을 깊이 체득하시였으며 마침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를 조직진행하기로 결심하시게 된것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를 인솔하시고 붉은기를 휘날리며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력사적인 혁명전적지답사를 단행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년단모임에서 답사기간에 하여야 할 사업내용을 토의하시였으며 답사에 필요한 준비를 면밀히 갖추도록 하시였다.

 

당시 반당반혁명분자들은 혁명전적지답사가 학생들에게는 어려운 행군길이라느니, 명승고적을 견학하는것이 좋을것이라느니 하면서 시비해나섰다. 그이께서는 이자들의 훼방을 단호히 물리치시며 혁명전적지답사준비를 더욱 다그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답사를 떠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깊이 학습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백두산지구답사의 목적에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주체45(1956)년 6월 5일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로 무어진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단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인솔하에 력사적인 혁명전적지답사의 길에 올랐다. 10대의 어린 학생들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첫 답사행군에 나선것은 사람들속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진행하신 백두산에로의

답사행군로정도

 

평양을 출발하여 혜산에 도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답사단성원들에게 백두산줄기의 높은 산들과 깊은 골짜기들에는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된 수많은 혁명투사들이 잠들어있다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떠나간 혁명투사들을 잊지 못하고계시는데 우리모두 항일혁명투사 마동희동지의 묘소를 먼저 찾아가 추모하자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마동희동지묘비앞에 이르러 대렬을 정돈하시고 렬사를 추모하여 묵상하신 다음 마동희동지는 26살의 청춘을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바쳤다고 하시면서 답사기간 혁명전통학습을 잘하여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항일혁명선렬들의 끝없는 충정을 따라배워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답사단을 이끄시고 6월 8일 유서깊은 혁명전적지 보천보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림천기슭에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꽃다발을 진정하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일제놈들이 둥지를 틀고있던 경찰관주재소가 아주 가까이 바라보이는 곳에 지휘처를 정하시였는데 이 하나의 사실을 통하여서도 우리는 수령님의 유격전술에 대하여 많은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소방회관, 면사무소, 우편소, 산림보호구자리들을 돌아보시고 답사단성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보천보전투지휘처

 

 

보천보전투가 벌어졌던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보천보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과정에 보천보전투와 관련한 자료들이 잘 준비되여있지 못한데 대하여 깊이 헤아려보시고 일군들에게 항일유격대원들은 보천보전투 당시 적통치기관들을 습격소탕하였을뿐아니라 이곳 인민들속에서 정치선전사업을 진행하면서 곳곳에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을 해방할데 대한 내용의 삐라도 뿌리고 전체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김일성장군님의 격문도 붙여놓았는데 이런 자료들을 적극 찾아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주체44(1955)년 12월에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연설에서 나라가 해방되고 당이 창건된지도 10년이나 되는것만큼 우리 당의 투쟁력사를 가지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잘 교양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고 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과 관련한 력사자료들을 더 많이 찾아낼데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보천제1중학교 소년단열성자들과 담화를 하시면서 그들이 지난 기간 혁명전적지에서 사는 높은 영예를 간직하고 학습과 소년단사업, 혁명전적지관리사업을 잘한데 대하여 그리고 언제나 혁명전적지를 알뜰히 관리하기 위한 사업에서 전국의 모범이 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또한 그이께서는 보천보에서 하루밤 류숙하시면서 숙소에 찾아온 보천군의 책임일군에게 혁명전적지답사로정을 앞으로는 백두산마루까지 련결시켜놓을데 대한 원대한 구상에 대하여 밝히시였다.

 

주체45(1956)년 6월 9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답사단성원들을 인솔하시고 보천보를 떠나 삼지연못가에 이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못가를 거니시며 삼지연에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애국의 넋이 뜨겁게 어려있다고, 우리 어머님께서는 늘 나에게 백두산기슭에 가면 삼지연이라고 부르는 삼형제못이 있는데 삼지연은 경치도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시였다고, 어머님께서는 일제놈들을 쳐부시러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셨던 그날 장군님을 모시고 삼지연에서 휴식하실 때 삼지연의 맑은 물을 마시였는데 조국의 물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잊을수 없다고 두고두고 회상하군 하시였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그때마다 삼지연이 몹시 그리웠고 한번 꼭 가보고싶었는데 오늘에야 그 소원이 풀렸다고 하시였다. 거연히 솟아있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의 숭엄하고 웅장한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은 나의 고향입니다. 나는 언제나 백두산을 잊을수 없습니다. 백두산을 바라보니 감회가 깊어집니다.라고 하시며 백두산은 시에도 있는것처럼 하늘만큼 높이 솟은 산일뿐아니라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이 깃들어있는 영웅의 산이라고, 수령님께서 혁명의 홰불을 높이 지펴올리신 백두산은 온갖 시련을 헤쳐온 우리 혁명의 력사를 전하며 길이길이 솟아 빛날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뻐스를 타려는 답사단성원들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행군하신 《갑무경비도로》를 우리가 어떻게 자동차를 타고 갈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우리도 항일유격대원들처럼 행군해가자고 호소하시였다.

 

답사단성원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항일유격대원들처럼 배낭을 메고 《유격대행진곡》을 씩씩하게 부르며 《갑무경비도로》를 보무당당히 행군해갔다.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행군하신 로정을 따라 혁명의 새 세대들이 그날에 휘날렸던 붉은기를 이어 받아 높이 들고 혁명가요를 힘차게 부르며 나아가는 력사적인 행군이였다.

 

밀림에 메아리치는 우렁찬 노래소리를 듣고 길가로 달려나온 삼지연림산마을 사람들은 감격과 흥분을 금치 못하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답사행군대오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다음날인 6월 10일의 답사로정은 삼지연림산마을을 떠나 포태리를 거쳐 리명수에 이르는 60여리 험한 산길을 헤쳐가야 하는 어려운 행군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출발에 앞서 답사단성원들에게 우리는 항일유격대원들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실지생활에 구현하기 위하여 리명수까지 행군을 하게 된다, 리명수까지 행군하는 목적을 모든 동무들이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행군준비뿐아니라 마음의 준비도 잘하여 서로 돕고 이끌면서 한명의 락오자도 없이 행군해갈데 대하여 이르시였다. 행군준비정형을 알아보신 그이께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사람은 어릴 때부터 산길도 걸어보고 고생도 해보아야 몸과 마음을 단련할수 있다고 답사행군대원들을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적동지애의 숭고한 모범을 보이시면서 답사대원들을 이끄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행군대오의 앞장에서 걸으시며 뒤떨어진 한 학생의 배낭까지 몸소 메시고 그에게 항일유격대원들을 따라배우기 위하여 금강산, 묘향산과 같은 명승지들보다 먼저 혁명전적지를 찾아왔을뿐아니라 뻐스까지도 돌려보내고 행군을 하는 우리들이 이만한 난관을 이겨내지 못해서야 어떻게 아버지원수님의 참된 아들딸이 되겠는가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행군의 휴식시간에는 우리는 혁명전적지에 온것만큼 잠시 휴식을 하여도 항일유격대원들처럼 규률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배낭도 질서있게 정돈하여놓게 하시였고 포태천기슭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였을 때에는 항일유격대원들과 함께 생활하여본 자신께서 군수관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팔소매를 걷어올리시고 손수 밥도 지으시였다.

 

이날 답사단성원들은 항일혁명선렬들의 혁명정신을 본받아 분비나무, 종비나무, 봇나무, 물푸레나무들이 얼기설기 얽힌 수림속을 헤치며 리명수까지의 행군을 성과적으로 마치였다.

리명수에 도착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답사단성원들과 함께 림산마을의 수수한 귀틀집에 허물없이 숙소를 정하시고 식사도 로동자들의 합숙식당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였다.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시며 리명수폭포의 장쾌한 소리를 들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답사단성원들에게 지난날 보천보로 진군하였던 항일유격대원들도 조국의 물소리를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동무들도 잘 알고있지만 지금 우리 나라는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다, 우리는 정세가 긴장하고 나라사정이 어려운 때일수록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항일유격대원들의 그 필승의 신념을 가슴깊이 새기고 조선혁명의 완성을 위하여 끝까지 싸울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를 성과적으로 마치고 6월 14일 평양으로 돌아오시여 어버이수령님께 혁명선렬들의 숨결이 그대로 어려있는 혁명전적지들이 응당한 수준에서 꾸려지지 못하고있을뿐아니라 적지 않은 대상들은 자연상태 그대로 방임되여있으며 이미 꾸려놓은 전적지들에 대한 관리와 그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사업도 잘되지 않고있는 실태를 그대로 보고드리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길을 개척하신것은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답사를 통하여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의 시원으로,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여나가기 위한 사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로 되였다.

 

                ※ 일화: ❖ 백두에로의 초행길​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