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조국에서도 계속된 《빨찌산일과》​

 

 

강선제강소(당시)를 현지지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34(1945). 10. 9 ]

 

해방된 조국땅에 진정한 인민의 정권이 탄생하고 사회생활의 모든 령역에서 격동적인 변혁이 일어난 주체35(1946)년은 우리 인민의 반만년 민족사에서 일찌기 없었던 기적적인 비약의 한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건국투쟁으로 들끓던 그 나날에 누구보다도 많은 걸음을 걸으시고 많은 밤을 지새우시며 당과 인민정권의 사업을 령도하시였으며 몸소 인민대중속에 들어가시여 그들을 새 제도, 새 생활창조를 위한 투쟁에로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전조선의 민주주의적근거지인 북조선에 더욱 튼튼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백두산에서 일제와 싸우시던 항일전의 나날처럼 빨찌산식으로 사업하고 생활하시였다.

 

새날이 밝기 전에 시작되여 현지지도와 담화, 회의와 집필 등 일각의 여유도 없는 정력적인 활동으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수령님의 일과를 두고 그이를 보좌해드리던 항일혁명투사들은 백두산시절의 《빨찌산일과》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저택의 호위성원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방에서 불이 언제 꺼지고 어느때 켜지는지 알지 못하였다.

 

주체35(1946)년 10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력사적인 첫 민주선거를 앞두고 평안북도안의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하루에도 몇개 단위씩 찾으시여 각급 일군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을 만나시고 회의도 지도하시고 연설도 하시면서 어찌나 정열적으로 긴장하게 하루하루의 일정을 보내시는지 수행한 일군들도 미처 따라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당창건 1돐이 되는 주체35(1946)년 10월 10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삭주군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실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날에 진행하신 현지지도는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빨찌산일과》로 이어진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렀는가를 생동하게 말해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삭주에서의 하루일과도 새날이 밝기 전에 시작하시였다. 늦가을의 청신한 새벽대기가 떠도는 정원에는 누구도 나온 사람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벽빛에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무성한 숲과 기묘한 바위들, 끊임없이 솟아나는 온천물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시내물, 정가로운 못가의 갖가지 꽃들이 조화를 이룬 신비한 절경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감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수가의 나무밑을 거니시며 자그마한 려관집 두채밖에 없는 이곳에 근로자들을 위한 훌륭한 휴양소를 꾸리실것을 구상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무르익히신 구상에 따라 그후 이곳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보험삭주휴양소를 내오게 하시였다.

 

간단한 산책을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독서를 하신 다음 여느때와 다름없이 검소한 아침식사를 하시였다. 식사를 마치시고 30분도 안되여 군인민위원회청사로 가시여 군일군들과 마주 앉으시고 군안의 인민생활형편과 인민정권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시였다. 담화과정에 일군들이 군사업의 중심을 바로 틀어쥐지 못하고있음을 간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삭주군에는 수풍발전소, 신영광산과 같은 큰 기업소들이 많고 주민구성에서도 농민보다 로동자가 더 많으므로 인민정권사업의 중심을 산업복구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군일군들과 담화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군중대회가 있게 되는 삭주소학교 운동장으로 향하시였다. 삭주소학교 운동장을 메운 군내인민들은 《우리의 영명한 령도자 김일성장군 만세!》를 목청껏 부르며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중대회에서 《민주조선건설의 토대를 튼튼히 다지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민주조선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삭주군인민들이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신 다음 국제국내정세를 분석하시고 우리 인민이 앞으로 수행하여야 할 과업을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주주의적토대를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첫째로, 전체 인민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주위에 더욱 굳게 단결하며 둘째로, 나라의 경제토대를 강화하고 셋째로, 반동분자들의 책동에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군중대회는 한시간나마 걸렸다.

 

대회가 끝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석단에서 내리시는 길로 수풍발전소로 향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풍으로 가시는 도중 차안에서도 군의 책임일군에게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이 높아야 참다운 혁명가가 될수 있고 군중의 힘을 옳게 조직동원하여야 어려운 건국사업을 해나갈수 있다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낮 12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풍발전소에 도착하시여 변전소, 발전기실, 수차실, 언제를 차례로 돌아보시면서 일군들로부터 복구조업실태를 료해하시였다. 그리고 련이어 수풍발전소 일군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발전소현지지도는 오후 2시가 넘도록 계속되였다. 수행한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를 빨리 끝내시고 점심식사를 하실것을 여러번 말씀올리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마다 우리가 점심을 좀 늦게 먹더라도 이 동무들을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오히려 일군들을 타이르시였다.

 

발전소현지지도가 거의 끝날무렵에 수풍소학교운동장에 군중이 모여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오시기를 기다리고있다는 련락이 왔다. 이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점심 한끼를 건느는 한이 있어도 군중이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느냐고 하시며 동행한 일군들을 재촉하여 수풍소학교운동장으로 가시였다. 수원들은 군중대회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곳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환영하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로동자, 농민, 청년, 녀성 등 각계각층 대표들의 환영연설을 2시간이상 예견하였을뿐아니라 수령님께서도 연설을 해주시도록 청을 드리였다. 그리하여 군중대회는 오후 4시가 훨씬 지나서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을해가 서산에 기울어질무렵에야 수풍인민려관에 차린 검소한 점심식탁에 마주앉게 되시였다. 동행한 일군들이 송구한 마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앉았다. 그런데 좌중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면의 일군들이 다 참가했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면민청위원장과 녀맹위원장이 오지 못하였다고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쁘게 뛰여다니는 동무들이 아직 안왔는데 우리가 먼저 식사를 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점심시간이 좀 늦기는 했지만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점심식사시간을 세차례나 미루시다가 오후 5시가 퍽 지나서야 수저를 드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사를 하시면서 우리 인민이 지금은 비록 어렵게 살지만 멀지 않아 남부럽지 않게 잘살 날이 올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하자고 일군들을 격려하시였다.

 

식사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차에 오르시여 다시 삭주로 향하시였다. 삭주려관에서는 《민주조선》 기자가 위대한 수령님을 잠시라도 만나뵈올 간절한 희망을 안고 기다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시여 차에서 내리시는 길로 그와 마주앉으시였다. 기자라고 하지만 아직 수준도 어리고 준비도 부족하였던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다가오는 민주선거의 국제국내적의의와 그것이 조국통일위업에 미치게 될 영향, 미군정과 친미파, 민족반역자들에게 기대를 걸고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움직임이 이번 선거에 미치게 될 정치적영향, 나라의 전기화를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과업 등에 대하여 말씀해주실것을 청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자회견이라기보다 한 선전일군을 개별교양하시는 심정으로 그가 알고싶어하는것을 실례를 들어가며 자세히 가르쳐주시였다.

 

기자와의 담화가 끝나갈무렵에 한 수원이 군급간부협의회에 참가할 일군들이 다 모였다는 보고를 가지고 들어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좋은 글을 많이 써서 근로자들을 교양하라고 기자를 고무하시며 그를 정원밖까지 바래우시고나서 그길로 삭주군 당, 정권기관, 사회단체책임일군협의회장으로 들어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의회에서 당장성사업에서 좌우경적편향을 극복할데 대한 문제, 국가재산을 애호하며 근로자들속에서 애국주의교양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군사업전반을 개선하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교시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정이 가까와서야 협의회를 마치시고 어두운 숲속길을 밟으시며 일군들을 바래우시였다.

 

이날에 계획하시였던 많은 일들을 빠짐없이 다 처리하시고나신 이 한밤중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과에 따라 학습을 하시려고 또다시 책상에 마주앉으시였다. 울창한 숲의 나무아지들을 가벼이 흔들던 소슬바람도 잠들고 계곡을 흘러가는 물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온천의 밤은 깊어가건만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숙소의 창문에는 불빛이 그대로 환하게 비치였다.

 

10월 10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 당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신지 한돐이 되는 뜻깊은 기념일이니 큰 경축연회라도 있음직한 날이였건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하루를 현지지도의 길에서 이렇게 보내시였다.

이러한 나날들이 끊임없이 거듭되여 새 민주조선건설의 넓은 길이 개척되고 백두산시절부터 이어오시는 《빨찌산일과》의 흐름속에서 주체위업의 승리의 력사가 펼쳐져나갔다.

 

 

날로악화되고있는 남조선농민들의 생활과 급속히 향상되고있는

북조선농민들의 생활에 대한 남조선신문보도

 

일화; 이른새벽에 시작된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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