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소 받아보신 리계산농민의 편지​

 

 

문맹퇴치전람관을 돌아보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36(1947)년 8월초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강원도 평강군에서 찾아온 리계산농민을 만나게 되시였다.

 

일찌기 머슴살이하던 부모와 남편을 여의고 지주집부엌데기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그는 땅과 집을 주시고 삶의 길을 열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이 너무도 고마와 분여받은 땅에서 거둔 햇곡식을 알알이 정성들여 골라 이고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려고 왔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정으로 나들이 온 딸자식을 대하시듯 사연깊은 그 녀성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시다가 그가 아직 우리 글을 모른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한 녀성을 통하여 온 나라 녀성들이 걸어온 지난날을 헤아리시며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면 성인학교에서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글을 알아야 사람이 사는것같고 나라일도 잘할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 녀성이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글을 배우겠다고 대답을 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담으시여 그럼 나하고 약속합시다, 지금부터 석달후에 문맹을 퇴치하고 동무의 손으로 편지를 써서 그 소식을 보내주시오라고 하시고는 어떻소, 할만한가고 물으시였다.

그 녀성은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소박하면서도 신심에 넘친 대답을 올리였다.

그때로부터 석달이 지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녀성으로부터 편지를 받으시였다. 아직 글씨도 문장도 서툴었으나 그동안의 생활을 한자한자 정성담아 쓴 편지였다.

 

편지에는 온갖 착취와 압박을 받으며 무지와 가난속에서 살아온 자기를 나라의 주인, 땅의 주인으로 되게 하여주시고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시였으며 오늘은 이렇듯 세상에 태여나 처음으로 제손으로 쓴 편지를 올릴수 있도록 키워주신 어버이수령님께 다함없는 경모의 마음을 담아 삼가 감사를 드리는 내용이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소박한 편지를 받아보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며 높은 치하를 담은 격려의 회답편지와 함께 표창장과 귀중한 선물까지 보내주시였다.

이 사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문맹퇴치운동을 벌리도록 하시여 문화분야에서 식민지잔재를 철저히 청산하도록 이끄시던 나날에 있은 수많은 이야기들중의 한가지 사실이다.

문맹은 일제의 악독한 식민지통치가 남겨놓은 수치스러운 유산이였다. 문맹을 퇴치하지 않고서는 봉건적, 식민지적압박과 착취에서 해방된 근로자들을 사회정치생활에 적극 참가시킬수 없고 경제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울수도 없었으며 민주주의적민족문화도 건설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맹을 없애는 사업을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의 후과를 가시는 혁명투쟁으로, 우리 인민을 문명에로 이끌어가며 새 민족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문화분야에서의 일대 혁명으로 보시고 이 사업을 적극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맹퇴치사업을 새로운 민주주의적민족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선차적인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주체34(1945)년 11월 평양시내 교원들과 지식인들앞에서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광범한 군중을 각성시키기 위하여서는 그들속에서 문맹퇴치사업을 힘있게 전개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문화향상은 문맹퇴치로부터!》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문맹퇴치사업을 당과 국가의 지도밑에 전사회적, 전인민적운동으로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맹퇴치사업의 중요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주체35(1946)년 11월에 겨울철 농촌문맹퇴치운동에 관한 결정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서 채택하게 하시고 문맹퇴치사업을 전군중적운동으로 벌릴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도시와 농어촌, 공장, 기업소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문맹퇴치를 위한 성인학교를 내오고 중앙과 도, 시, 군, 면에는 문맹퇴치지도위원회를, 리에는 문맹퇴치반을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각 정당, 사회단체와 문화단체일군들과 각급 학교 교원, 학생들을 파견하여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글을 배워주게 하시였다. 그리하여 온 나라에서 남녀문맹자들이 성인교육망에 망라되여 하루 2시간이상 글을 배우는 정연한 체계와 기풍이 서게 되였다.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계산농민이 올린 편지를 보아주시고 격려의 회답편지를 보내주신 소식을 들은 평강군 농민들은 집회를 열고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심장에 새기고 문맹을 퇴치하기 위한 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릴것을 전국에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해방된지 3년도 채 못되는 기간에 200만명이상의 근로자들이 문맹에서 벗어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맹퇴치사업에서의 성과를 계속 공고발전시켜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5월 중앙문맹퇴치전람관을 돌아보시고 일군들과 담화하시면서 문맹퇴치사업에서 달성한 성과를 더욱 공고발전시키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를 제2차 문맹퇴치 및 성인재교육돌격기간으로 설정하시고 문맹퇴치운동을 전국적범위에서 다시한번 힘있게 벌려 문맹을 완전히 퇴치하도록 하시였다.

 

 

증산경쟁운동과 문맹퇴치운동을 벌리고있는데 대한 신문보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북조선 방방곡곡에서는 《아는것이 힘이고 무식은 멸망이다!》,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자!》라는 구호밑에 남녀로소 할것없이 문맹퇴치운동을 힘있게 벌리였다.

 

주체38(1949)년 3월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문맹을 완전히 퇴치하는 력사적승리가 이룩되게 되였으며 우리 나라는 동방에서 처음으로 문맹자가 없는 나라로 되였다. 문맹퇴치운동은 우리 나라에서 문화혁명의 시초로 되였다.

 

건국사상총동원운동과 증산경쟁운동, 문맹퇴치운동을 비롯한 애국적대중운동을 통하여 근로인민들의 자주성을 구속하던 일제사상잔재와 기술문화적락후성이 극복되였으며 새 조국건설위업은 크게 한걸음 전진하게 되였다.

 

일화; ❖ 평가해주신 녀성농민대표의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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