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공산주의자입니다》​

 

북조선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대표회의에서 보고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35 (1946). 7. 22 ]

 

해방직후 각당, 각파, 각계각층과의 통일전선을 이룩하는데서 민족주의자들 못지 않게 중요한 대상은 우당의 구성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던 종교인들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종교인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종교계의 진보적인 인사들을 자주 만나시여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리 당의 종교정책과 통일전선정책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그들에게 《하느님》을 믿어도 남의 나라 《하느님》이 아니라 조선의 《하느님》을 믿어야 하며 숭미사상을 퍼뜨리는 신자가 될것이 아니라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는 애국적인 종교인이 되라고 간곡히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교인들의 조직체로서 북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불교도련맹을 내오도록 하시고 그 조직이 종교인들속에서 민주주의사상교양을 강화하여 그들이 새 민주조선건설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족주의자들, 종교인들과의 사업을 정력적으로 벌리시는 한편 인민대중의 분렬을 꾀하는 원쑤들의 책동을 짓부시며 각계각층 군중을 민주주의길로 힘있게 이끌어주시였다.

정견과 신앙, 재산과 지식정도가 서로 다른 각당, 각파, 각계각층의 군중을 하나로 묶어세우는 사업은 처음부터 민족적 및 계급적원쑤들과의 치렬한 투쟁속에서 진행되였다.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폭로한 신문보도

 

우리 인민의 단결을 파괴하려고 미쳐날뛰던 미제와 반동들은 각종 요언을 퍼뜨리며 민심을 소란시키는가 하면 학생들을 부추겨 반동시위를 벌리거나 소동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신의주학생사건도 그 하나의 실례였다. 신의주학생사건은 공산당과 정권기관에 잠입한 일부 나쁜 놈들이 인민의 리익을 침해하는 행동을 한것을 악용하여 반동들이 학생들에게 소동을 일으키도록 충동하여 일어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게 된것은 주체34(1945)년 11월 하순 평양에서 평안남도 민주청년단체결성대회를 지도하시던 때였다.

신의주학생사건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험을 무릅쓰시고 아직 반동들의 준동이 가시지 않은 신의주로 내려가시여 학생사건의 전말을 료해하시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주체34(1945)년 11월 2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의주시군중대회에 참석하시여 《해방된 조선은 어느 길로 나갈것인가》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먼저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을 개괄하시고 조선이 나아갈 길을 다시금 뚜렷이 밝혀주신 다음 우리 인민앞에 나서고있는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자면 전민족의 단합된 힘이 요구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민족의 힘을 합치기 위하여서는 하루바삐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공산당이야말로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가장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당이라는것, 우리 나라에서 민족통일전선을 굳게 형성하고 그에 기초하여 진정한 인민의 정권을 수립하며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당이라는것을 강조하시였다.

 

이때 연단가까이에서 누구인가 《장군님도 공산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을 일시에 아연하게 만드는 너무나도 무엄한 질문이였다.

 

사실 그때 공산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그리 좋지 못하였다. 오래동안 공산주의를 헐뜯는 일제의 악선전만 들어오다가 해방이 된 다음에 《공산주의자》라고 자처하며 돌아치는 사람들의 비행까지 직접 목격하였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하기에 그날 대회에서도 인민정권기관 및 민주주의적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은 다 위대한 수령님을 환영하는 연설을 하였지만 공산당대표는 연단에까지 나갔다가 군중의 압력에 못이겨 연설을 못하고 내려갔던것이다.

 

그런데 당돌하게도 장군님도 공산주의자이신가고 묻는단 말인가.

군중은 긴장한 눈으로 연단을 우러르며 장군님의 교시를 기다렸다.

 

잠시 장내를 굽어보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방금 누가 나보고 장군님도 공산주의자인가고 물었는데 나도 공산주의자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나라의 완전한 독립과 우리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견결히 싸우는 진정한 애국자들입니다. 만일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 나라와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참다운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어떤 다른 나라를 쳐다보는 공산주의자인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에게 의거하고 조선민족과 조선인민을 위하여 싸우는 공산주의자입니다.》

 

순간 대회장에서는 《김일성장군 만세!》의 환호가 터져오르고 폭풍같은 박수가 그칠줄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진짜공산주의자와 가짜공산주의자를 똑똑히 갈라볼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공산당안에 기여들어와 인민들을 위협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나쁜 행동을 하고있는 불순이색분자들을 철저히 내쫓아야 한다고 단호히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공산당의 령도가 없이는 민족통일전선도 우리 조국의 륭성번영도 이룩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고 공산당의 로선과 정책을 적극 지지하여야 하며 공산주의자들을 따라 새 민주조선건설에 떨쳐나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을 받아안은 신의주시안의 각계각층 군중들은 김일성장군님과 같으신 진정한 애국자가 공산주의자라면 우리가 무엇때문에 공산당을 반대하겠는가고 하면서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오직 한길을 따라 억세게 싸워나갈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 지방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각계각층의 군중들을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진두에서 조직지도하시였다. 그리하여 광범한 근로대중과 동요하던 중간세력들도 새로운 결의를 안고 민주주의기발아래 뭉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당에서 영향력있는 인사들을 자주 만나시여 그들이 우리 당의 정치로선과 통일전선정책을 지지해나서도록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주조국건설을 위한 실천투쟁에 우당들을 적극 인입하고 이 과정에 그들이 공산당과 단결과 협조를 더욱 강화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혁명의 근본문제인 정권건설에서 우당들이 공산당과 일치한 보조를 취하게 하시였다.

주체35(1946)년초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은 민주주의림시정부수립에 대하여 의견일치를 보고 북조선중앙정권기관인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는 사업에 공동으로 참가하였다. 결과 북조선에서는 실제상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이루어졌다.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의 통일전선이 형성됨으로써 복잡하였던 정치정세가 기본적으로 수습되게 되였으며 민주력량이 단결하여 미제와 반동세력을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통일전선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 산업국유화를 비롯한 사회경제개혁에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이 적극 참가하게 하심으로써 우당과의 협조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고 공고히 하시였다. 이와 함께 공산당으로 하여금 우당들이 건전하게 활동하도록 성의껏 도와주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우리 당은 우당안의 진보적이고 량심적인 사람들이 자기 당의 강령과 성격에 맞게 당을 꾸리고 활동을 벌리며 당안에서 반동분자들과의 투쟁을 진행하도록 도와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을 위한 공동투쟁에서 민주주의적정당, 사회단체들이 합작을 이룩한 귀중한 성과를 공고히 하며 그것을 조직화하기 위하여 주체35(1946)년 7월 22일에 북조선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대표회의를 여시고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인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중앙위원회를 결성하시였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는 각 정당, 사회단체들이 망라되였으며 그 산하에 600여만명에 달하는 각계각층의 군중이 결속되게 되였다.

 

일화: 벗겨주신 《친일파》루명​

        신심을 안겨준 담화​   

        한쪽 수레바퀴를 맡은 주인​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