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귀여운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노래소리를 들으실 때면 언제나 기뻐하시며 모든 시름과 겹쌓인 피로를 잊으시였으며 후대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평양학생소년궁전은 학생들에게 다방면적인 지식과 기술을 배워주는 종합적인 과외생활거점입니다.》

 

 

평양학생소년궁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라지오에서 울려나오는 어린이들의 랑랑한 노래소리를 들으시고 평양학생소년궁전건설을 다그치도록 대책을 세워주시고 몸소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주체50(1961)년 4월 어느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라지오에서 울려나오는 어린이들의 랑랑한 노래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시였다. 《…높고 아름다운 궁전을 수상님이 지어주신다네…》

 

사랑하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한가지 혜택이라도 더 베푸시기 위하여 늘 마음쓰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날 밤늦게 평양시인민위원회와 시건설위원회 책임일군들을 또다시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방송에서 어린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하니 우리가 큰 빚을 진것 같다고 하시면서 학생소년궁전건설에서 걸리고있는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신 다음 건설을 빨리 다그칠 대책을 하나하나 세워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가, 후대들을 위해서, 꽃봉오리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가고 하시며 잘 지어주자고 하시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에는 정녕 끝이 없으시였다.

 

학생소년궁전으로 말하면 이미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으로 건설이 시작되였다가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되였는데 수령님께서 전후복구건설의 어려운 시기에 또다시 우리 어린이들에게 제일 좋은 자리에 가장 훌륭한 과외활동의 전당을 지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아끼고 아끼시던 수도 한복판의 장대재우에 몸소 그 터전을 잡아주신 건설대상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설계일군들에게 건물을 제일 크고 웅장하게 설계하도록 과업을 주시였으나 그들은 미처 수령님의 높은 뜻을 헤아릴수 없었다.

 

그들이 나라의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너무 크게 설계하지 않았는가 저어하며 설계도면을 올렸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너무 작아서 안됐다고, 이 설계도면의 다섯배는 돼야 한다고, 이름부터 궁전이 아닌가, 장대재등에 그득 들어차게 우리 나라의 왕인 어린이들이 살 궁전답게 크고 화려하게 다시 설계하라고 가르치시였다.

 

당시 평양에서 제일 큰 건물로 될 학생소년궁전건설은 이렇게 시작되였던것이다. 

《세상에 부럼없어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전당을 마련해주시려고 그해 10월에는 몸소 건설장을 찾으시여 시공정형을 료해하시고 좋은 대리석을 두었다가 어디에 쓰겠는가, 현관이나 홀은 다 대리석을 붙이고 모든것을 최상급으로 해주자고 하시며 후대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렇듯 끊임없는 보살피심속에서 주체52(1963)년 9월에 로동당시대의 대기념비적건물의 하나인 평양학생소년궁전이 드디여 완공되였다.

 

※ 평양학생소년궁전은 단번에 1만명이상의 학생소년들이 희망에 따라 과학, 문학, 예술, 체육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다방면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면서 과외활동을 할수 있는 200여개의 연구실과 활동실들 그리고 극장과 체육관 등을 갖춘 대전당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궁전개관식에 몸소 나오시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 주체52(1963)년 9월 30일 저녁 궁전개관식에 나오시여 웅장하게 건설된 궁전의 안팎을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평양학생소년궁전 연건평이 5만㎡이면 기계공장 몇개 건평에 맞먹는 대단히 큰 건물이라고, 학생소년궁전건설에 든 자금만 하여도 수백만원(당시)에 달한다고, 그러나 학생소년들을 훌륭하게 키울수만 있다면 아까울것이 없다고 하시며 우리는 어렸을 때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못 살았지만 우리 학생소년들은 잘 키워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자본주의사회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가정교사까지 두지만 돈없는 사람들은 자녀들을 학교에도 보낼수 없다고, 오직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하에서만 평양학생소년궁전과 같은 큰 궁전에서 근로자들의 자녀들이 마음껏 배울수 있다고 긍지높이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평양학생소년궁전은 학생들에게 다방면적인 지식과 기술을 배워주는 종합적인 과외생활거점이라고 하시며 궁전의 관리운영방법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서도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평양학생소년궁전소조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후 개성과 송림을 비롯하여 여러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궁전을 지어주시고 송도원과 석암, 룡악산을 비롯한 명승지들에 훌륭한 소년단야영소들을 꾸려주시였으며 현지지도의 바쁘신 길에서도 자주 들리시여 자라나는 새 세대들의 생활을 극진히 보살펴주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뜨거운 후대사랑에 의하여 우리의 어린이들은 세상에 부러움을 모르고 희망과 랑만에 넘친 노래소리를 높이 울리며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였다.

 

                        혁명일화 외진 산골에 세워진 새 분교​

                                    《저기 남쪽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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