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산》의 새력사를 창조하시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산간지대인민들의 생활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창성군을 보물산, 황금산으로 가꾸어나가는 새 력사를 창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이미 산을 효과적으로 리용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 지난날 버림 받아 오던 많은 산을 황금산으로 전변시켰습니다.

 

인민이 주인이 된 우리 사회에서는 도시와 농촌, 벌방이나 산골이나 할것없이 어느 한 구석에도 그늘이 지지 않게 하며 모든 사람이 다 고르롭게 잘살도록 하자는것이 어버이수령님의 구상이고 념원이였다.

 

지난날 현대문명과 담을 쌓고 궁벽한 산골에서 부대기나 일구며 죽지 못해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추켜세울수 있겠는가, 이 문제를 두고 늘 마음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시기에 이르러 평안북도 창성군을 하나의 본보기로 꾸려 산간지대인민들의 생활을 결정적으로 추켜세울것을 결심하시였다.

 

창성군은 면적의 95%가 산이고 농사를 지을수 있는 땅이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마저 해발 1 400여m나 되는 비래봉기슭의 비탈밭이 아니면 가파로운 골짜기들의 돌밭이였다. 지난날 여기에서는 아무리 땀을 들여 농사를 지어도 한해 농사에 반년농량을 거두기가 힘들었으며 논이 없다보니 귀한 손님이 와도 밥상에 흰쌀밥 한그릇 차려놓을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조상들의 제상에도 밥그릇 밑에는 감자나 잡곡밥을 담고 맨우에 흰쌀밥을 씌워놓은 《감투밥》,《고깔밥》을 올려놓았겠는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창성지방의 자연경제관계를 깊이 료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고장에 가실 때마다 밤이 깊도록 농민들과 군이나 리의 일군들을 만나시여 농사일도 의논하시고 새벽이슬을 헤치시며 협동농장의 포전들도 돌아보시면서 농사작황이 어떠한가도 알아보시였다.

 

산골사람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방도를 깊이 모색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해 여름 수풍호반에 나가시였을 때에도 줄곧 가파로운 산과 골짜기들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며 생각을 거듭하시다가 몸소 험준한 산발을 타고 오르시였다. 얼마후 집짐승먹이풀과 산열매를 따가지고 내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것들이 다 이 고장 사람들의 생활을 높이는데 좋은 밑천이 될수 있다고 하시며 여간만 기뻐하지 않으시였다.

 

이렇게 이 고장의 자연경제적조건을 깊이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산간지대에서는 군의 역할을 높이고 지대적특성에 맞게 산을 리용하여 축산업을 발전시키며 농산과 축산을 옳게 결합시키면서 지방공업과 문화를 발전시킨다면 벌방지대나 도시 부럽지 않게 살아갈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창성인민들이 자기 고장의 유리성을 잘 리용하도록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창성은 살기좋아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특히 부침땅이 적고 척박한 산간지대에서는 농사만 지어가지고는 벌방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따라갈수 없으며 축산업을 발전시켜야 농민들의 현금수입도 높이고 두엄을 많이 받아 알곡소출도 늘일수 있을뿐아니라 또 알곡을 많이 생산하여야 집짐승먹이원천도 많아져서 고기생산을 높일수 있다고 보시였다.

 

그런데 창성사람들은 축산업을 하려면 반드시 알곡사료가 있어야 하고 넓은 방목지가 있어야 하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곳 일군들에게 넓은 방목지가 있어야만 축산을 할수 있다고 하는것은 가파로운 경사지가 많은 우리 나라 실정을 연구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하는것을 기계적으로 본따려는 교조주의적태도라는것을 일깨워주시면서 산에 무진장한 풀을 베여다가 먹이기도 하고 집짐승을 적게 무리지어 가지고 골짜기들을 따라가며 엇바꾸어 방목을 하면 얼마든지 축산을 할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군안의 협동농장들에서 풀먹는 집짐승을 한종류씩 집중적으로 키우면서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일반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축산의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군내 모든 협동농장들에서 풀판을 조성하며 축산업을 점차 기계화하고 과학기술적토대우에 올려세우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대대로 부대기농사만 짓던 이 고장에 집짐승들이 욱실거리는 믿음직한 축산기지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산을 잘 리용하여 축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농민들의 현금수입을 높이도록 하시는 한편 산간지대의 특성에 맞게 농사를 잘 짓도록 하시였다.

 

이 고장 농민들은 옛날부터 해오던대로 소출이 낮은 작물을 심고있었으며 산이 많고 땅이 메마른 고장에서는 아무리 애써야 별수가 없다고 하면서 농사를 알심있게 짓지 않아 자기 먹을 식량도 생산하지 못하고있었다.

 

산간지대의 특성에 맞는 농사방향과 방도를 찾아주시기 위하여 산골짜기와 비탈밭들을 돌아보시며 농작물의 작황과 수확고도 료해하시고 오랜 농민들을 만나시여 농사경험도 하나하나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밭곡식의 왕인 강냉이를 주작으로 하면서 고구마도 심고 이 고장에서 잘되는 고추도 많이 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신심을 얻게 된 창성사람들은 농사에 힘을 넣어 해마다 강냉이풍작을 이룩하였으며 고구마와 고추농사도 잘 지어 많은 수입을 얻게 되였다. 그리하여 식량이 모자라던 창성군은 식량을 자급자족하고도 남는 고장으로 되였으며 고추와 공예작물의 주요생산지로 전변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또한 이 고장에 흔한 야생원료를 리용하여 지방공업을 발전시키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리용해야 잘 살수 있다고 하시면서 산에 무진장한 산열매와 산나물을 많이 뜯어 농민들의 수입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어느해 가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고개길에서 산열매를 가지고가는 농민들을 만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이 무슨 열매이며 값을 얼마나 받는가를 알아보시고는 산열매를 많이 따서 팔면 큰돈이 되겠다고 기뻐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먼데까지 힘들게 이고가는 농민들의 수고를 헤아리시여 상업망에서 농민들이 따들인 산열매를 앉은 자리에서 수매하는 체계를 세우도록 하시였다.

한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방원료들을 가공하여 여러가지 식료품과 일용품을 생산하는 지방공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베틀 몇대와 독 몇개를 가지고 몇몇 가정부인이 모여 첫걸음을 내디딘 지방산업공장들을 귀중한 새싹으로 여기시고 몸소 걸린 문제들을 풀어주시면서 점차 튼튼한 물질기술적토대를 갖춘 공장으로 발전시키시였다.

 

 

 

변모된 오늘의 창성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고장에 흔한 돌로 공장건물들을 짓게 하시고 기술혁신을 하여 생산설비들을 하나하나 현대화하도록 하시였으며 튼튼한 원료기지를 조성하여 원료문제를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창성사람들은 산과일과 산나물을 원료로 하는 식료공장과 지방야생원료로 천을 짜는 직물공장을 비롯하여 많은 지방산업공장들을 일떠세우고 갖가지 식료품과 아름다운 천, 종이와 가구, 농기구와 체육기자재들까지 척척 만들어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끊임없는 보살피심에 의하여 창성땅은 말그대로 천지개벽이 되였다.

 

창성사람들의 생활은 날을 따라 유족해져서 농민들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부유중농의 수준에 올라섰다. 예로부터 산이 많아 못산다고 원망하던 그 산들이 이제는 보물산으로, 《황금산》으로 되였으며 적막하던 궁벽한 산골에는 행복과 기쁨의 노래가 차넘치게 되였다. 창성땅에서 창조된 모범은 그와 잇닿아있는 벽동과 삭주 땅에서도 커다란 전변을 가져왔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창성군에서 보물산, 황금산으로 가꾸어나가는 새 력사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온 나라에 일반화하시여 산간지대인민들의 생활에서 전환을 일으키도록 하시였다.

 

                                ※ 혁명전설: ❖ 도토리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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