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2)

 

민족의 우수성말살을 노린 극악한 행위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은 력대 왕조실록을 비롯한 귀중한 서적들과 각종 문화재들을 파괴소각하였다.

오랜 옛날부터 학문을 숭상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온 우리 선조들은 각 분야의 도서들을 많이 집필하여 출판하였다.

출판인쇄업이 독자적인 분야로 발전한 삼국시기 고구려에서는 책이 널리 보급되고 학문이 깊이있게 연구되였다. 이에 대해 어느 한 나라의 력사책에는 《풍속이 서적을 사랑하여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까지도 각각 거리에 큰집을 짓고 경당이라 하여 자제들이 결혼전에 밤낮으로 여기서 글을 읽고 활쏘기를 익힌다.》라고 기록되여있다.

우리 나라의 출판인쇄업은 고려시기에 들어서면서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더욱 활기를 띠고 진행되였다.

글을 모르는것을 수치로 여긴 고려사람들의 숭문정신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계승되였으며 결과 수많은 도서들이 출판되였다. 하여 우리 나라는 책이 많은 나라라는 의미에서 《문헌지국》으로까지 불리웠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력사를 자랑하는 서적들은 외세의 침략으로 수많이 루실되게 되였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의 서적파괴행위로 하여 홍문관과 춘추관 등에 보존되였던 수많은 서적들이 재더미로 되였다. 이 책들은 14세기말이래 수도와 지방들에서 금속활자와 조판기술에 의하여 출판된것으로서 문화적가치가 매우 큰것들이였다.

침략의 괴수인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침략전쟁을 일으키자마자 자기가 특별히 신임하던 안고꾸지 에께이를 조선에 보내여 우리 나라 4대사고의 하나였던 성주사고의 책들을 몽땅 털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할수 없게 되자 에께이는 성주사고에 불을 질러 많은 책을 불태워버렸다.

성주사고가 불탈 때 그곳에 보관되여있던 국보적가치가 큰 《조선봉건왕조실록》이 불타 없어졌다.

《조선봉건왕조실록》은 조선봉건왕조가 세워진 때로부터 있은 력사적사실들을 기록한 책으로서 분량이 방대하고 서술체계가 독특하며 사료들이 가치있는것으로 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진 문화재이다.

실록은 임진조국전쟁이전에 4부를 인쇄하여 춘추관과 성주사고, 충주사고, 전주사고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였었다.

그러나 일본침략자들의 방화로 성주사고뿐아니라 춘추관과 충주사고에 보관되였던 《조선봉건왕조실록》이 모두 불타버렸다.

다행히 전주사고의것만은 애국적인민들에 의하여 전쟁의 재난으로부터 구원되여 남아있게 되였다.

애국적인민들은 전주사고에 보관되여있던 《조선봉건왕조실록》과 《고려사》를 비롯한 가치있는 민족고전들을 내장산으로 가져갔다가 침략군이 전라도에 기여들 위험이 조성되자 다시 배길로 황해도 해주에 옮겨갔으며 그후 묘향산의 불영대에 날라다가 보관하였다. 그리하여 《조선봉건왕조실록》과 《고려사》 등 민족고전들은 전쟁의 피해를 면할수 있게 되였다.

일본침략자들의 서적파괴책동으로 말미암아 관청이나 민간에서 기록한 수많은 문서들이 없어졌으며 력사를 맡은 관리들의 개인서류들도 거의다 불타거나 못쓰게 되였다.

일본침략자들의 만행으로 우리 민족의 재능과 우수성을 보여주는 각종 문화재들이 파괴소각되였다.

세계적으로 가장 정밀한 측우기와 수위척을 비롯한 관측기구들과 기계들이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전후 한동안 기상관측사업이 중단되게 되였다고 한다.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문화재들을 파괴한 일본침략자들의 야만적인 행위로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실물자료들과 력사문헌자료들이 수많이 없어지고말았다.

임진조국전쟁시기에 감행된 일본의 조선문화재파괴책동은 조선민족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끊어버리고 우리의 민족문화 그자체를 말살하려는데 목적을 둔 반인륜적범죄행위이다.

력사는 일본침략자들이야말로 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극악한 날강도무리이며 인류문명의 교살자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주체108(2019)년 11월 28일 로동신문

정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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