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지울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05년에 일제가 봉건정부를 강박하여 <을사보호조약>을 맺었는데 그때로부터 조선은 일제의 통치밑에 들어가게 되였으며 조선사람들은 망국노의 신세를 면치 못하였습니다.》

1905년 11월 17일, 이날은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을사5조약》을 강요한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전체 조선민족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일제에 대한 치솟는 민족적분노를 금치 못하고있다.

얼마전 남조선에서는 사회단체대표, 독립유공자 및 각계층 시민들이 참가한 《순국선렬의 날 기념식》을 사상처음으로 《을사5조약》이 날조된 장소인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벌려놓고 과거 일제의 죄악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였다. 한편 미국과 오스트랄리아, 까자흐스딴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서도 많은 해외동포들이 《순국선렬의 날 기념식》을 열고 일본의 과거죄악과 아베패당의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력사부정책동을 준렬히 단죄규탄하였다.

문제는 세계인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죄악에 찬 력사에 대해 일본이 조선민족과 세계인민앞에 깊이 반성하고 사죄할 대신 오히려 그것을 덮어버리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고있는것이다.

얼마전 일본당국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는 《법적으로 유효》하며 《조선에서 일본의 식민주의는 인간적이였다.》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저들의 극악한 과거범죄행위들에 대한 국가적책임에서 벗어나며 배상을 회피하려고 음흉하게 획책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저들의 과거죄행을 감추려고 온갖 감언리설을 늘어놓아도 조선민족과 세계인류는 일제의 만고죄악의 력사를 절대로 잊지 않고있다. 

《을사5조약》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일제가 날조한 허위문서로서 철저히 아무러한 법적효력도 가지지 못한 비법문서, 협잡문서이다.

그 근거는 우선 이 조약이 국가대표자의 비준을 받지 못한 비법문서라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주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것과 같은 중대한 조약은 반드시 전권위임장과 국가대표자의 비준서를 필요로 하는 비준조약형식을 취하여야 한다. 이것은 근대시기 국제조약체결형식에서 보편적인것이였다.

하지만 일제는 《을사5조약》을 《합법적인 조약》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으나 고종황제의 반대에 부딪쳐 최고대표자의 비준을 받지 못하였다. 이 세상에 자기의 국권을 통채로 외세에 순순히 내맡기고 식민지로 굴러떨어질것을 바라는 통치자는 없다.

그러나 일제는 국권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고종황제의 완강한 태도와 조선인민의 격렬한 반일투쟁기세에 위구를 느끼고 어떻게 하나 저들의 더러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종당에는 국제법적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을사5조약》을 군사적위협과 무지막지한 강압적방법으로 날조하였다.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총칼을 내대고 대포를 끌고와 《조약》체결을 강박하고 국왕의 서명도 국새날인도 없는 조약 아닌 《조약》을 날조한 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의 조선침략과 관련한 자료를 연구하고있는 한 교수는 미국의 콜롬비아대학에서 고종황제가 미국인선교사에게 준 신임장과 당시 다른 나라 수반들에게 보낸 친서를 찾았는데 거기에는 고종황제가 《을사5조약》은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날조된것이며 자기는 승인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밝히였다.

이처럼 《을사5조약》은 조선봉건왕조의 최고주권자인 고종황제의 비준을 받지 못한 비법문서이다.

근거는 또한 《을사5조약》이 조약명칭도 없는 협잡문서라는데 있다.

일제가 날조한 《조약》의 정식원본에는 무슨 조약이라는 명칭이 없고 서문과 조항들만 있을뿐이다.

국제관례상 조약명이 밝혀져있지 않으면 조약문이라고 할수 없으며 그러한것을 조약체결상대국과의 협의에 제출할수 없고 거기에 서명할수도 없다.

일제가 국제조약체결사에 류례없는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하는데 급급하던 나머지 조약명칭도 없는 조약을 날조하였다는것은 일본외무성 조약국이 1934년에 출판한 《구조약휘찬》 제3권에 실린 내용을 보면 잘 알수 있다. 이에 의하면 《을사5조약》 일본어판에서는 《일한협약》, 영문판에서는 《협약》, 조선어판에서는 《일한협상조약》이라는 명칭을 각각 쓰고있다. 이에 대해 일본학자 도쯔까 에쯔로는 《〈1905년 한국보호조약〉은… 대일본제국정부가 조선어판도 〈날조〉하여 공표하였다고 평가되여도 할수 없다. 조선어판원본에 제목이 없는것이 사실이라면 영문번역도 날조이라고 판단된다.

이상과 같다면 〈1905년 한국보호조약〉에는 제목도 없으며 이것은 미완성의 문서에 불과한것이 아닌가. 결국 조약문기초단계의 원안이였다고 고찰하는것이 합리적이다. 대일본제국정부는 미완성의 조약문원안에 제 마음대로 제목을 붙여 조약을 날조하고 이것을 내외에 일방적으로 공표하였던것이라고 판단된다.》라고 하였다.

보는바와 같이 일본의 학자들도 《을사5조약》을 조약명칭도 없는 《조약》을 날조하였다고 자인하였다.

이처럼 《을사5조약》은 철두철미 일제가 날조한 비법문서, 협잡문서이다.

일제는 이런 강도적인 《을사5조약》을 《법적근거》로 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일제에 의해 조선의 수많은 청장년들이 죽음의 전쟁터들과 고역장들에 끌려가 불행을 당하였다. 일제가 랍치, 유괴, 강제련행하여 전쟁판과 공사장들에 내몬 조선사람은 중일전쟁도발후에만도 840만여명에 달하였다. 총으로 쏴죽이고 때려죽이고 칼로 찔러죽이고 생매장해죽이고도 모자라 지어 산 사람을 끓는 물에 집어넣어 죽였는가 하면 눈알을 뽑고 사지를 찢어죽이고 불태워죽이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식민지통치기간 일제는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화하는 특대형반인륜범죄를 감행하고 조선민족의 넋과 민족성까지 말살하기 위하여 귀중한 재보인 력사책들을 수많이 소각하였을뿐아니라 우리 말과 글,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마저도 빼앗으려고 발악하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리 인민에게 천추의 한을 남긴 전대미문의 천인공노할 특대형반인륜범죄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그것을 고의적으로 흑막속에 덮어버리려 꾀하고있다. 오늘까지도 일본당국은 죄악의 력사를 부정해나서면서 파렴치한 력사외곡과 날조행위에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다.

현실은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운 과거죄악을 덮어버리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는 일본이야말로 어제나 오늘에나 변함없는 우리 민족의 천년숙적이라는것을 다시한번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듯이 조선민족앞에 끼친 일제의 만고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지울수 없다.

일제는 똑똑히 명심하여야 한다.

만고죄악의 력사를 감추려고 별의별 오그랑수를 다 써도 조선민족과 세계인류앞에 지은 특대형범죄국의 오명은 절대로 벗을수 없다는것을...

박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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