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사랑으로 수놓아진 애국헌신의 한평생​

뜻깊은 2월의 하루하루가 흐르고있다.

그 어디에 들려보아도 이 땅에 삶을 둔 천만자식모두를 따뜻이 품어안아 키워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의 손길이 어려오고 인민들에게 가장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시려 크나큰 심혈을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로고가 되새겨져 한없는 그리움으로 가슴끓이는 우리 인민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애국의 마음에는 언제나 인민이라는 두 글자가 꽉 차있었습니다.》

167만 4 610여리,

지구둘레를 근 17바퀴나 돈것과 맞먹는 이 수자는 우리 장군님께서 위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이어가신 현지지도거리이다.

한평생 야전복차림으로 조국의 방방곡곡을 주름잡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찾으신 단위는 그 얼마였던가.

새겨볼수록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불같은 애국헌신의 길을 이어가신 위대한 어버이의 영상이 숭엄히 안겨온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대한 장군님의 초인간적인 의지와 정력의 밑바탕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던가.

그것은 사랑이였다.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이였다.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부터 애국도 나오고 혁명도 시작된다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였다.

수십년전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창광산에 오르시여 잠시 산책을 하실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청사지붕우에서 나붓기는 당기가 한눈에 바라보였다.

이윽토록 당기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저 성스러운 우리 혁명의 붉은 기폭에는 인민대중 다시말하여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의 모습이 새겨져있다고 하시면서 인민대중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대하며 가장 아름답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이렇듯 인민을 무한히 존중하고 사랑하신 우리 장군님이시기에 그이께 있어서 조국은 곧 인민이였고 인민을 위한 일보다 더 중요한 사업은 없으시였다.

언제인가 평양의 하늘가에 황홀한 축포가 터져올랐던 그밤의 이야기는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는것인가.

수도 평양이 설레이고 온 나라에 웃음꽃이 피여났건만 오직 한분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은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무적의 총대로 푸른 하늘을 열어주시고 승리의 축포를 터쳐올려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업적에 대해 아뢰이는 전사들에게 그이께서는 교시하시였다.

아니, 이제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소. 훌륭한 우리 인민에게 나는 저 축포의 천만가지 색갈과 같은 행복을 반드시 안겨주자는거요. 우리 인민이 어떤 인민인가. 고생을 많이 한 이 인민을 두고 내가 어떻게 혁명을 놓을수 있고 편안을 찾을수 있겠는가. …

제일로 사랑하시는 인민의 행복이 그리도 소중하시여 언제나 강행군길에 계신 위대한 장군님.

격정속에 되새겨진다.

다문 얼마만이라도 쉬실것을 말씀드리는 일군들에게 이제 우리 조선을 세계의 상상봉우에 우뚝 올려세우고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되면 그때 가서 마음놓고 휴식도 하고 밀렸던 잠도 실컷 자보려고 한다고 하시며 우리 장군님 헤치신 초강도강행군길이.

주체98(2009)년 9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래일이면 150일전투가 끝나게 된다고 하시면서 희천발전소건설장에 찾아가실 의향을 표시하시였다.

그이께 한 일군이 멀고 험한 희천발전소건설장을 찾으시는것만은 뒤로 미루시였으면 한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희천발전소건설장에는 자신의 병사들과 인민들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현지지도를 하러 떠날 때마다 인민군부대에 가면 나의 병사들이 있고 공장이나 농장에 가면 나의 인민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이 비록 힘든 길이기는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군 한다. 희천발전소건설장에도 나의 병사들과 인민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찾아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는것이다. 나는 병사들과 인민들을 찾아 멀고 험한 길을 걷는것을 커다란 긍지로 생각한다. …

이때 한 일군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해에 렬차를 타고 현지지도하신 거리가 지난 10년동안 렬차행군을 하신 거리와 맞먹는다는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격정에 젖어있는 그의 말에 일군들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며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렀다.

1년과 10년, 세월을 주름잡는 축시법으로 헌신의 날과 날을 이어오신 위대한 장군님께 쌓인 피로인들 그 얼마이랴.

일군들은 눈굽을 적시며 그이께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을 돌보셔야 한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달래시듯 말씀하시였다.

이제는 렬차를 타고다니며 거기에서 생활하는것이 습관이 되여 그런지 렬차에 오르면 집에 온것 같이 느껴지고 반대로 집에 들어서면 려관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과연 어느 위인사의 갈피에 인민을 위한 헌신을 락으로 여긴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새겨진적 있었던가.

이뿐이 아니다.

오늘도 주체100(2011)년 12월의 이야기를 더듬을 때면 인민은 눈물부터 앞세운다.

함경남도사업을 현지지도하시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인민행렬차에 오르시였다.

12월 25일까지는 특별히 건강에 주의하셔야 한다고 의사들이 말씀드린것이 바로 얼마전이였다.

그 길을 떠나실 때에도 의사들과 일군들이 울면서 못 가신다고 만류하였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겹쳐드는 정신육체적과로로 하여 몹시 힘드시였지만 12월 15일에는 하나음악정보쎈터와 광복지구상업중심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광복지구상업중심에 상품들을 가득 채워놓은것을 보니 추운 날이지만 마음이 후더워진다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인민을 위하여 그 무엇인가를 해놓았을 때가 제일 기쁘다고, 인민의 행복과 기쁨속에 바로 자신의 행복과 기쁨이 있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오로지 사랑하는 인민을 위하여!

바로 이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한생의 좌표였고 생의 전부였다.

인류력사의 갈피에는 나라와 민족의 번영과 발전에 특출한 기여를 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긴 명인들도 있었고 인덕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긴 위인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장군님처럼 그렇듯 뜨거운 사랑, 고결한 헌신으로 인민의 행복을 꽃피워주신 위대한 령도자를 력사는 알지 못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도 그 사랑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며 따뜻한 봄빛을 뿌려주신다.

만물에 빛을 주고 열을 주는 저 하늘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열과 정을 안겨주시며 인민의 태양으로 영생하신다.

주체108(2019)년 2월 3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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