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자의 기장종자

서 영 철

 

어느 한 산골마을에 부지런한 농사군들의 등을 쳐먹으며 배를 불리는 최부자가 살고있었습니다.
씨뿌릴 철이 가까와오는 어느날 최부자는 쌓아놓은 기장가마니를 두드리며 고소한 생각을 굴렸습니다.
(작년에 보기 드문 큰물로 기장농사가 망해 종자도 변변히 거두어들이지 못했으니 머리를 잘쓰면 문제없이 돈은 돈대로 벌고 농군놈들도 내 손아귀에 거머쥐여 굽신거리게 할수 있지. 이 산골에서야 기장농사가 기본이니까.)
최부자는 주변마을과 장마당들을 돌아다니며 기장종자를 있는대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는 기장종자를 꾸어준다는 소문을 크게 냈습니다.
아닐세라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장종자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기만 하였습니다.
가을에 몇곱절로 값을 물어야 하는 기장종자에 흙모래가 많이 섞이고 물까지 뿌린듯 축축했습니다.
최부자의 검은 속통머리에 화가 울컥 치민 한 농부가 말했습니다.
《기장종자가 당장 싹이 틀 지경이구만요.》
최부자는 저울을 꺼내다말고 발을 탕 구르며 큰소리쳤습니다.
《땅에 들어갈 종자인데 무슨 시비질이 많은가. 물에 불구었다가도 심는게 기장종자야. 싫으면 그만두게.》
종자를 꾸러 왔던 농군들은 어이가 없어서 침을 뱉으며 그냥 돌아가버렸습니다.
최부자는 코방귀를 뀌며 중얼거렸습니다.
《제깟것들이 얼마나 버티나 보자. 재간없이 기신기신 찾아올걸…》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누구 하나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속이 타든 최부자는 어느날 자기가 직접 마을의 밭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직 갈아놓은채로 있는 밭을 본 최부자는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그러면 그럴테지. 며칠이나 버티겠다고 앙탈질이냐. 이놈들― 이번엔 리자를 더 붙일테다. 감히 나하구 해보자구?)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대문가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물먹은 기장종자들은 기세좋게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날씨도 구질구질 비가 오는지라 어디에 말릴데도 없었습니다.
견디다못해 최부자는 슬그머니 밖에 나섰습니다.
좀 안면이 있는 농군을 만난 최부자는 기장종자가 필요하지 않는가고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습니다.
태연하게 도리질을 하는 그에게서 이상한 기미를 느낀 최부자는 황급히 이 밭, 저 밭을 돌아쳤습니다.
아닐세라 여기저기에서 수수모들이 푸르싱싱 자라고있었습니다.
(이놈들이 기장대신 수수를 심을수 있다는걸 왜 내가 생각 못했을가?…)

얼굴이 새까매진 최부자가 비칠거리며 집에 들어서니 마누라가 기장가마니들을 마구 헤쳐놓고있었습니다.
《야단났수다. 기장종자에서 썩은 김이 물물 나요.》
《뭐, 뭐라구?…》
밑천이 통채로 하늘로 날아가는 환각에 아찔해진 최부자는 골을 싸쥐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어이쿠, 남을 속여 큰 리득을 보려다가 쫄딱 망했구나.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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