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와 사시나무

최 복 실

 

 

1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어느날이였어요.
양지바른 산기슭에 두개의 파아란 새싹이 뾰조롬히 싹터올랐습니다.
하나는 단풍나무싹이고 다른 하나는 사시나무싹이였습니다.
땅우로 싹터오른 아기싹들은 너무 좋아 야! 하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그러는 두 아기싹에게로 초록색저고리를 입은 땅엄마가 찾아왔습니다.
《정말 귀엽기두 하구나.》
땅엄마는 그들을 정답게 쓸어주고나서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습니다.
《얘들아, 이건 푸른 구슬이란다. 이걸 한생토록 소중히 간수하거라. 난 너희들이 푸른 구슬과 더불어 숲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아기싹들은 푸른 구슬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알겠어요.》
땅엄마는 두 아기싹을 다정히 쓸어주고 어데론가 떠나갔습니다.

 

2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아직 애기나무들이였습니다. 이제야 자그마한 세개의 가지에 파란 잎사귀가 뾰족뾰족 돋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서로 다정한 어깨동무였습니다.
두 애기나무를 숲아씨가 정성껏 가꾸어주었습니다.
어느날 숲아씨는 맛있는 부식토랑 달콤한 샘물이랑 듬뿍듬뿍 안겨주며 말했습니다.
《많이 먹고 어서 자라 푸른 숲의 주인이 되거라.》
애기나무들은 그 말의 깊은 뜻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까딱거리며 방실방실 웃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기쁘기만 했습니다.
푸르러 설레는 산을 보아도 돌돌 노래하며 흐르는 시내물을 보아도 말이예요.
고운 새들이 날아와 쫑쫑 쪼로롱 노래부를 때면 그들을 반겨 예쁜 가지를 흔들며 당실당실 춤을 추었습니다.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우줄우줄 빨리도 자랐습니다.
이제는 두뽐짜리 애기나무가 아니였습니다.
어느날 숲아씨는 그들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이참, 정말 빨리도 자라는구나. 난 너희들이 어서 빨리 어른이 되여 푸른 숲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야, 어서빨리 어른이 되였으면!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단풍나무는 숲아씨에게 물었습니다.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애두 참.》
숲아씨는 단풍나무를 정답게 쓸어주며 말했습니다.
《어른이 되자면 키도 커야 하지만 마음을 더 크게 자래워야 한단다. 나서자란 고향을 사랑하구 동무들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할 때 고운 마음과 함께 키도 크게 자라게 된단다. 그리구 너희들은 땅엄마한테서 받은 푸른 구슬을 고이 간직하거라. 그게 없으면 나무구실을 못하게 된단다. 그게 있어 너희들은 잎이 더 푸르러지고 가지도 무성하게 자라 어른이 될수 있단다.》
《푸른 구슬이 그렇게도 소중한거나요?》
사시나무가 물었습니다.
《그럼. 말하자면 나무들한테는 그 푸른 구슬이 생명과도 같은거란다.》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알만 하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이였습니다.
(난 푸른 구슬을 고이 간직하고 고운 마음도 함께 자래울테야.)
단풍나무의 결심어린 고운 얼굴에 발깃한 노을빛이 물드니 더더욱 예뻐보였어요.

 

3

숲아씨는 정말 바쁜 아씨였습니다.
수많은 나무들을 돌봐야 했고 많고많은 꽃들도 돌봐야 했으니까요.
숲속에 사는 짐승들과 새들도 숲아씨가 돌봐야 했답니다.
그러는 숲아씨를 두고 숲속의 꽃과 나무, 새와 짐승들은 부지런한 아씨, 고마운 아씨라고 부르면서 따랐습니다.
그중에서도 숲아씨를 위하는 단풍나무와 사시나무의 마음은 각별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숲아씨를 기쁘게 해드릴가 하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잠시라도 헤여지면 만나고싶어했고 만나면 스스럼없이 안기고싶어했습니다. 때로는 숲아씨의 푸른 옷자락에 매달려 응석도 부리고 때로는 투정질도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습니다.
어느 비오는 날이였습니다.
하늘에서는 대줄기같은 비가 좌락좌락 쏟아져내리고 으르릉 꽝꽝 우뢰가 울고 번개가 쳤습니다.
찬비를 맞으며 우들우들 떨고있던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갑자기 《앗!》하는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세찬 비바람에 그만 허리를 다쳤던것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단풍나무와 사시나무가 쓰러져있는 곳으로 숲아씨가 날아왔습니다.
《이 일을 어쩌나?》
숲아씨는 더 생각할 사이도 없이 목에 걸었던 은빛수건을 벗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작정 수건 한귀퉁이를 찢으려 했습니다.
이때 겨우 정신을 차린 단풍나무와 사시나무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히 소리쳤습니다.
《어쩔려구 그러나요? 그건 안돼요.》
《정말이예요. 절대로 안돼요.》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것입니다.
그 은빛수건 한귀라도 찢으면 숲아씨가 넓고넓은 숲을 날아다니며 돌보지 못하고 힘들게 걸어다녀야 한다는걸 말이예요.
숲아씨의 손길이 떠지면 숲은 더 무성해지지 못하고 더 아름다와지지 못할것입니다.
단풍나무와 사시나무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얘들아, 걱정말어.》
숲아씨는 끝내 은빛수건을 찢어 그들의 다친 허리에 감아주었습니다.
신기한 은빛수건의 도움으로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허리를 쭈욱 펴고 싱싱하게 자라게 되였습니다.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그때일을 늘 잊지 못해하며 무척 고마와하였습니다.
숲아씨는 그러는 그들을 남달리 사랑하고 언제나 살뜰하게 보살펴주었습니다.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숲아씨의 따뜻한 사랑속에서 푸른 구슬을 가슴에 꼭 안고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어느덧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키가 늘씬한 멋쟁이로 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애티는 벗지 못했어요.
어른이 되려면 멀었던것입니다.

 

4

세월은 빨리도 흘렀습니다.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어느덧 아름드리나무로 자랐습니다.
그들의 가슴속엔 지금도 애기나무시절의 소중한 꿈이 깊이 간직되여있었습니다.
(어서빨리 어른이 되였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 말이예요.
어느해 따뜻한 봄날이였습니다.
꽃피는 새봄이 좋아 새들이 줄지어 날아들었습니다. 산기슭엔 고운 꽃들이 다투어피여나고 꿀벌나비들은 날아와 붕붕 노래부르며 춤을 추었습니다. 시내물은 졸졸 노래부르며 바다로 가고요.
《여 친구, 봄은 정말 좋구만.》
《암, 좋구말구. 막 새힘이 솟네.》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들먹이는 가슴을 안고 푸른 숲속을 이윽토록 정겹게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그들에게로 알락까치가 찾아왔습니다.
《아저씨들, 안녕하세요. 딱한 사정이 있어 찾아왔어요.》
《무슨 사정인지 어서 말하렴.》
단풍나무가 말하였습니다.
《사실은 저…》
알락까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하였습니다.
《아, 말을 해야 알지.》
사시나무도 마음이 급해 들썩거렸습니다.
그제서야 알락까치가 미안해하며 말했습니다.
《둥지를 틀게 도와주세요. 난 빨리 알을 품어야 한답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러니. 어서 내 가지에다 둥지를 틀어라.》
(아니, 저런 한심한 친구 봤나. 알락까치와 함께 살아서 무슨 덕을 볼게 있다고 저럴가. 주인에게 덕을 입히는 나그네가 세상에 어디 있겠다구.)
사시나무는 단풍나무가 어리석게 생각되였습니다.
그러나 단풍나무는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하였습니다.
《여보게 친구, 우리 이웃이 하나 생기니 얼마나 좋은가. 난 정말 기쁘네.》
그날부터 알락까치는 단풍나무와 다정한 이웃이 되여 의좋게 살았습니다.

 

5

어느날이였습니다.
알락까치가 단풍나무와 사시나무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숲아씨가 벌써 며칠째나 앓아누워 있다는것이였습니다.
(이 일을 어쩌나.)
바질바질 타는 가슴을 안고 속태우던 단풍나무가 알락까치에게 말했습니다.
《알락까치야, 숲아씨의 병에 무슨 약이 좋은지 알아다주렴.》
《알겠어요.》
서둘러 떠나간 알락까치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알락까치는 사흘째되는 날에야 어깨가 축 처져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니?》
단풍나무가 서둘러 물었습니다.
《밤나무골에 사는 딱따구리의원한테 찾아가 물었더니 숲아씨의 병엔 삼봉산에 사는 사슴할아버지의 뿔이슬이 약이라고 하더군요. 그래 그 먼곳까지 갔댔는데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왔어요.》
《빈손으로 돌아오다니? 왜 말이냐?》
단풍나무는 다우쳐물었습니다.
《저…》
알락까치는 선뜻 말을 떼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속시원히 말을 하렴.》
사시나무가 성급히 물었습니다.
《사슴할아버지의 말이 뿔이슬은 아무때나 돋는게 아니래요. 나무들한테만 있다는 푸른 구슬을 먹어야 뿔이슬이 돋는대요.》
《뭐, 푸른 구슬을?…》
단풍나무와 사시나무는 다같이 놀랐습니다.
(허참, 꼭 푸른 구슬을 먹어야 뿔이슬이 돋을건 또 뭐람.)
사시나무는 정말 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게 없으면 난, 난…)
그땐 죽은 목숨이나 같을것입니다.
(숲아씨를 위해선 응당 푸른 구슬을 내놔야 하지만 그걸 내놓으면 나무구실을 못하게 될테지.)
가슴부풀던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것만 같았습니다.
단풍나무도 생각이 많았습니다.
먼저 떠오르는것은 정다운 숲아씨의 모습이였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숲을 가꾸는 숲아씨, 자기들을 살뜰히도 돌봐주던 고마운 숲아씨였습니다.
단풍나무는 그토록 소중한 은빛날개수건도 자기들을 위해 서슴없이 바친 숲아씨를 정녕 잊을수 없었습니다.
단풍나무는 그런 숲아씨를 위해 푸른 구슬을 내놓기 주저한다면 이 숲에서 머리 들고 살수 없을것만 같았습니다.
단풍나무는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던 푸른 구슬을 꺼내들었습니다.
《알락까치야, 이걸 가지고 어서 삼봉산 사슴할아버지를 찾아가거라.》
《어쩌면…》
알락까치는 감동어린 두눈을 슴벅이며 길을 떠났습니다.

 

6

그때부터 단풍나무의 모습은 시간이 다르게 변했습니다.
푸르던 잎사귀들은 누렇게 황이 들고 기운차게 쭉쭉 뻗어나가던 가지들은 맥없이 늘어져있었습니다. 줄기에선 뽀얀 진물이 흘러내리구요.
그를 보고 사시나무가 보다못해 말하였습니다.
《자네 괜히 푸른 구슬을 내놓은게 아닌가?》
《무슨 소릴… 이제 좀 있느라면 나아지겠지.》
그 말에 사시나무는 단풍나무를 쓸쓸히 바라만 보았습니다.
단풍나무는 좀처럼 나아질줄을 몰랐습니다.
이제는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다 푸른 구슬이 없는탓이였습니다.
(저 친구는 이젠 다 산 몸이야. 저래가지구야 어떻게 살수 있담.)
사시나무는 어쩐지 단풍나무가 측은해보였습니다.
어릴적 소원을 가슴에 안은채 영영 고목이 되여버릴것만 같았습니다.
사시나무는 단풍나무를 보며 푸른 구슬이 얼마나 소중한것인가를 더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7

자박자박 발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무나도 귀에 익은 숲아씨의 발걸음소리였습니다.
《얘들아―》
《숲아씨!》
단풍나무는 너무도 반가와 목메여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사시나무는 고개를 푹 떨군채 숲아씨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로 다가온 숲아씨는 단풍나무의 줄기며 가지며 잎새를 어루쓸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지경이 되면서까지도 나를 위해 그처럼 귀한 푸른 구슬을 바쳤구나. 정말 고맙다.》
숲아씨의 눈가에 맑은 눈물이 가득 고여올랐습니다.
《숲아씨, 그런 말씀 마세요. 난 숲아씨가 이렇게 일어나신걸 보니 무척 기뻐요.》
단풍나무는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참 걱정이구나. 너한테 푸른 구슬이 없으니 말이다.》
무거운 한숨속에 숲아씨가 이런 말을 하였을 때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엄마가 그들한테로 다가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땅엄마는 사뿐사뿐 걸어와 숲아씨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난 오늘 여기 숲속을 돌아보다가 알락까치를 만났댔어요. 알락까치가 말하길 단풍나무가 숲아씨를 위해 푸른 구슬을 바쳤다더군요. 그래서 장하고 기특한 단풍나무에게 이걸 주려고 찾아왔어요.》
땅엄마는 단풍나무에게 새싹이 움틀 때 안겨 주었던것과 꼭같은 푸른 구슬과 함께 앵두알처럼 빨간 구슬을 안겨주며 말했습니다.
《단풍나무야, 푸른 구슬이 어떤것이라는것은 잘 알고있을게다. 이 빨간 구슬은 너의 잎새를 꽃처럼 아름답게 해주는 구슬이란다. 숲아씨를 위해 자기를 바친 너한테 주는 나의 인사로 알고 받아다오.》
땅엄마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잎이 다 지고 줄기만 앙상하던 단풍나무에 이른봄처럼 새움이 트더니 희한하게도 푸른 잎새가 무성해졌습니다. 그러더니 조금후에는 그 푸른 잎들이 순식간에 꽃잎처럼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숲아씨와 땅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였습니다.
《야, 정말 멋있구나.》
사시나무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너무나도 꿈만 같아 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사시나무는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은인에 대한 보답은 말로 하는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기를 바쳐 해야 하며 그럴 때만이 진정한 사랑을 받으며 살수 있다는걸 말이예요.
그때부터 사시나무는 죄스러운 자기 행동을 후회하면서 늘 한숨속에 살았습니다.
그 한숨때문에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날에도 잎들이 저절로 파들파들 떨렸습니다.
오죽하면 사시나무떨듯 한다는 말이 나왔겠나요.
단풍나무는 그후 파란 구슬과 더불어 봄, 여름에는 푸르러 설레이였고 가을에는 빨간 구슬이 있어 붉게 물든 단풍잎을 설레이며 숲을 더더욱 아름답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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