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이와 안개부채

 김 은 철

 

차돌이네 마을은 참으로 살기 좋은 마을이였습니다.
푸른 물 출렁이는 바다에는 팔뚝같은 물고기가 우글거리고 바다기슭을 따라 펼쳐진 옥토벌에서는 금나락이 설레였습니다.
이른새벽 바다우에서 곱게 피여오른 우유빛안개가 살풋이 마을에 덮일 때면 사람들은 그 안개를 헤가르며 정든 일터로 나가군 했습니다.
그 새벽안개속을 처녀들이 걸어가면 마치도 구름을 타고 내려온 하늘선녀들을 보는듯 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즐거웠고 노래와 춤이 절로 나왔습니다.
참 아름다운 안개였습니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그대로 안개골이라 부르며 안개를 무척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안개골에 새벽마다 곱게 피여오르던 우유빛안개대신 검푸른 안개가 짙게 끼군 했습니다.
더 이상한것은 검은 안개가 마을에 덮여있는 동안이면 이 집, 저 집에서 도적을 맞히군 하는것이였습니다.
갑자기 안개가 도적으로 둔갑하기라도 했단말인가요?
검은 안개만 덮이면 눈앞에 뿌연 장막을 들씌운듯 옆사람조차 분간하기 어려웠고 도대체 도적이 누구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렇듯 화목하고 다정하던 사람들이 앞집에서는 뒤집을, 뒤집에서는 옆집을 의심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순희네 집에서 잃어진 쌀가마니가 금희네 집 퇴마루에 놓여있는가 하면 복동이의 색동옷가지가 순돌이네 집 빨래줄에 걸려있기도 했던것입니다.
그러다나니 어느 하루 말다툼이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누가 누구네것을 훔쳤다느니 그런게 아니라는 등…
차돌이는 이 모든 일을 보며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꼭 안개가 낄 때마다 이런 일이 생기군 하는것이 이상해.)
새벽이면 바다에서 곱게 피여나 마을을 포근히 감싸안아주던 안개였고 아침마다 일터로 갈 때면 발걸음을 구름을 타고가듯이 가볍게만 해주던 안개였습니다.
그러던 안개가 마을에 불행을 가져올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꼭 까닭을 밝혀낼테야!)
하루일의 피곤이 몰려들었지만 결심을 품은 차돌이는 밤새도록 자지 않고 마을주위를 돌았습니다.
어디서 몰려오는 안개인지, 또 그 안개속에서 누가 무슨짓을 하는지 알아야만 했거던요.
하지만 매일같이 허탕이였습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마을주위를 돌고돌아도 도적을 잡기는커녕 그림자조차 볼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도 차돌이는 자정이 훨씬 넘어 바다가쪽으로 향했습니다.
여느날처럼 여기저기를 살피며 얼마쯤 걸었을 때 터벅터벅 발자국소리와 함께 달빛속에 검은 형체가 다급히 걸어오는것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등에다 괴나리보짐을 척 둘러멘 사람이 가까이 오고있는것이였습니다.
(날도 어두웠는데 누구일가?)
차돌이는 길옆 나무밑에 살그머니 앉아 숨을 죽이고 주시했습니다.
검은 형체는 점점 가까와지며 거친 숨소리마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걸 보니 어릴적부터 함께 자라온 억쇠가 아니겠습니까.
《거 억쇠가 아닌가?》
급히 걸어오던 억쇠도 어둠속에서 불쑥 나타난 차돌이를 보고는 깜짝 놀라 멈춰섰습니다.
《아이쿠, 이거 차돌이가 아니야!》
억쇠는 차돌이를 부둥켜안았습니다.
《아니? 자네 이밤에 어딜 갔다오나?》
《우룡산에 갔다오는 길이야. 요즘 어머님의 병이 더욱 심해졌어. 이전에는 그래도 아침마다 바다바람만 맞아도 기분이랑 퍽 좋아지군 했는데 요새 그 괴물같은 검은 안개가 끼면서 가슴앓이가 더욱 심해졌단다.
의원로인의 말이 산삼을 쓰지 않으면 큰일난다기에 나흘동안 산판을 헤매서야 겨우 한뿌리를 캐왔다네.》
억쇠는 이끼로 겹겹이 싼 산삼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그랬댔구나. 그런줄 알았으면 나도 함께 산에 갔을걸…》
차돌이는 험하게 갈라터진 억쇠의 손을 매만지며 진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니, 괜찮아. 그런데 넌 밤중에 어딜 가니?》
차돌이는 무슨 일에서나 극성인 억쇠가 앓는 어머니를 두고 따라나서겠다고 할가봐 얼른 말을 돌렸습니다.
《아니, 그저 좀… 바람이나 쏘이려구.…》
《이보게 차돌이, 요즘 마을이 어수선한데 밤에는 될수록 다니지 말라구. 자, 그럼 난 빨리 가서 어머니를 돌봐야 하니 먼저 가겠네.》
억쇠는 차돌이를 동구길에 남겨둔채 마을로 뛰여갔습니다.
어느새 아늑한 마을은 달빛아래서 고요히 잠들고 넓은 바다만이 쉼없이 철썩이며 파도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눈앞에 갑자기 검푸른 안개가 밀려왔습니다.
검은 안개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마저 삼켜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마을은 안개속에 묻혀버렸습니다.
다만 안개바다속에서 부지런히 오고가는 발자국소리만이 어지럽게 들려왔습니다.
(도대체 누구들일가?)
차돌이는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그 자리에 앉아 어둠속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검은 안개의 조화인지 순간에 눈뜬 소경이 되여버려 한치앞도 가려볼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한다. 분명 마을쪽으로 가는것 같은데.)
차돌이는 생각다못해 소리나는 곳으로 발더듬을 하며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이렇게 한걸음, 두걸음 나갈 때였습니다.
글쎄 일이 안될세라 세걸음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돌에 발이 걸리며 앞으로 쿵― 하고 넘어지고말았습니다.
《아이쿠―》
차돌이가 저도 모르게 비명소리를 지르자 어지러이 들리던 발자국소리도 뚝 멎어버렸습니다.
차돌이는 무릎이 부서지는듯 한 아픔도 느낄새없이 긴장감으로 하여 머리칼이 막 쭈빗쭈빗 곤두섰습니다.
조금 있느라니 발자국소리는 마을쪽으로 멀어졌고 한참후에는 바다가로 아예 사라지고말았습니다. 결국 눈을 펀히 뜨고 도적을 놓쳐버렸습니다.
온밤을 꼬박 새운 차돌이는 빨개진 눈을 비비며 스적스적 소나무 우거진 뒤산으로 올랐습니다.
지꿎게 덮였던 안개는 아침해가 솟아오르자 소리없이 걷혔고 마을에서는 또다시 옥신각신 말다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밤사이 또 무슨 일이 생긴것이 분명했습니다.
(빨리 도적을 잡아야지 야단이구나!)
차돌이는 눈을 펀히 뜨고도 도적을 잡지 못한것이 분하여 무성하게 자란 새초우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런 때 갑자기 《솨―》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달아올랐던 몸이 금시에 시원해졌습니다.
《어, 시원하다! 가만, 그런데 웬 바람일가?》
차돌이는 무더운 삼복철의 찬바람이 어쩐지 이상스러워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찬바람은 애솔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곳에서 불어왔습니다.
차돌이는 다급히 그곳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넓은 너럭바위우에 로인 한분이 백발수염을 날리며 공작새깃털모양의 커다란 부채를 흔들며 앉아있는것이였습니다.
로인의 손에서 부채가 흔들릴 때마다 솨― 솨― 찬바람이 일었습니다.
(이른아침 이 산속에 웬 할아버지일가?)
호기심이 나서 다가가던 차돌이는 주춤 그 자리에 멈추었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몸이 얼어드는것이였습니다.
차돌이는 더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아 우두커니 서서 할아버지와 부채를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한참만에야 할아버지는 몸을 옹송그리고 서있는 차돌이를 알아보며 부채를 접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부채를 접으니 추위는 사라졌습니다.
차돌이는 할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할아버지 가까이에 서있는 나무와 풀들엔 온통 하얗게 성에가 붙어있었습니다.
(혹시 할아버지가 이상한 저 부채로 안개를 몰아오고 마을에 복잡한 일이 생기게 조화를 부리는게 아닐가?)
차돌이는 모든것이 다 이상한 참이라 다짜고짜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혹시 할아버지가 우리 마을에 새벽마다 몹쓸 검은 안개를 몰아오는게 아닌가요?》
차돌이가 눈을 크게 뜨며 따지고들자 할아버지는 꿈쩍 놀라며 벌떡 일어섰습니다.
《몹쓸 안개를 몰아오다니?…》
놀라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보고난 차돌이는 생각을 고쳐했습니다.
온 숲이 환해지도록 얼굴에 인자함이 넘치는 할아버지였던것입니다.
차돌이는 뒤늦게나마 례의를 차리며 공손히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사실 우리 마을에 요즘 이상한 일이 생겨서 그랬으니 리해해주세요.…》
그리고는 마을에서 벌어지고있는 일과 밤사이 겪은 일들을 자초지종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난 할아버지는 잠시 얼굴에 띄웠던 노여운 빛을 가시며 말했습니다.
《난 한평생 부채를 엮으며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악한짓이라고는 하지 않았네. 이 부채도 내 온넋을 바쳐 만든 부채인데 더울 땐 찬바람이 나오고 추울 땐 더운 바람이 나오는 부채라네. 더우기 이 부채바람은 대단히 세서 집채만 한 바위도 날려보낼수 있다네!》
《그게 정말이나요!?》
차돌이는 할아버지의 말에 귀가 번쩍 트이여 다시금 물었습니다.
《그럼 부채바람으로 안개도 몰아낼수 있나요?》
《아무렴, 밀어내구말구!》
할아버지의 자신있는 말을 듣자 차돌이는 한걸음 더 다가서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에게 그 부채를 빌려주세요. 검은 안개속의 비밀을 밝혀내야 마을사람들이 더는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낸답니다, 예?》
할아버지는 차돌이의 심정이 리해된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며 부채를 내놓았습니다.
정말이지 부채는 여느 부채와 달랐습니다.
노르끼레한 참대살로 촘촘히 엮어만들고 그 부채살끝마다 공작새깃털이 꽂힌 아름다운 부채였습니다.
《이 부채는 내가 아직 저 보석산의 청보석을 박지 못해 채 완성하지 못한것이여서 조심해서 쓰게. 부채를 꼭 한번만 펼쳐들도록 하게. 그렇지 않다간 목숨이 위험해.
하지만 그 한번이면 능히 검은 안개를 몰아낼걸세.》
할아버지는 한번만 펼치라는 말을 몇번이나 곱씹으며 강조했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차돌이는 가슴에 부채를 그러안으며 거듭 인사했습니다.
(혹시 한번의 부채질로도 검은 안개가 물러가지 않으면 어쩐다?
그렇지, 그래, 안개가 물러갈 때까지 아예 접지 않고 쓰면 될게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니 석달 장마철 흐리던 날씨에 해빛밝은 푸른 하늘이 펼쳐진듯이 기뻤습니다.
차돌이는 할아버지에게 다시금 인사하고는 날듯이 산을 내렸습니다.
마을에서는 안개가 사라지면 늘 그러하듯이 사람들이 마을복판에 모여있었습니다.
(또 누구네 집이 도적맞혔을가?)
차돌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습니다.
그속에는 억쇠도 있었는데 꼭 성난 황소가 당장에 무슨 일을 칠듯 한 기세였습니다.
어쩐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요?》
차돌이는 손에 들고있던 부채를 허리춤에 꽂으며 누구에게라없이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답은 없이 오히려 차돌이를 처음 보듯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볼뿐이였습니다.
《아니, 다들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라도 됐나? 억쇠, 무슨 일이야?》
《뭐, 무슨 일? 흥, 너 밤새 어딜 갔댔니? 바다가에서 고기를 잡았니, 아니면 산에 가서 산삼을 캐왔니. 어서 말해봐?》
억쇠의 물음은 차돌이를 순간에 벙어리로 만들었습니다.
갑자기 고기잡이는 뭐고 산삼이라는건 또 무슨 소리이겠습니까.
더우기 마을사람들의 말은 차돌이의 가슴을 바늘처럼 찔렀습니다.
《요즘 밤마다 어디론가 계속 나다니는가 했더니 차돌이가 그런짓을 할줄은 몰랐구만.…》
차돌이의 얼굴은 순간에 수수떡처럼 달아올랐습니다.
《억쇠, 너 나를 무섭게 오해하고있구나. 난 밤사이 검은 안개속에서 돌아치는 도적놈을 잡으려 했어.》
차돌이의 말에 억쇠는 또 코김을 불었습니다.
《흥, 그래. 도적을 한놈이라도 잡았으면 더 말하지 않겠네. 내가 산삼을 캐온것은 너밖에 모른단 말이야. 당장 어머니의 병이 위급한데 산삼을 잃었으니… 에익.》
억쇠는 공중에 주먹을 휘두르고는 씽하니 집으로 갔습니다.
차돌이는 멀어져가는 억쇠를 안타까이 바라보며 마을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난 한번도 그 누구의 물건을 아직 탐내보질 않았어요. 오늘 밤 검은 안개가 덮일 때 꼭 사실을 밝혀놓겠으니 두고보세요.》
차돌이의 가슴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기를 몰라주는 억쇠가 야속했으나 애써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몇밤을 새우며 캐온 산삼을 잃은 억쇠의 심정이 어떠할가 리해되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고 안개골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차돌이는 벌써 부채를 안고 바다가에 서있었습니다.
쪼각달이 흘러가는 푸릿한 하늘밑에서 마을은 고요히 잠자는듯 했습니다.
사람들이 곤히 잠자는 새벽녘이 되여오자 검푸른 안개가 맑은 하늘에 검은구름이 밀려오듯 안개골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검은 안개속에 도대체 어떤 마귀가 있을가?)
차돌이는 손에 땀을 쥐고 어둠속을 쏘아보았습니다.
느물거리는 검은 안개는 어느새 차돌이네 마을을 새까맣게 덮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여 차돌이는 《주루룩―》소리나게 부채를 펼쳐들었습니다.
(한번만에 검은 안개를 몰아내야 하겠는데.)
차돌이는 입술을 옥물고 부채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습니다.
순간 《솨―》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이 터져나왔습니다.
부채바람은 어찌도 세찬지 아름드리나무도 뿌리채 뽑아버릴듯이 불었습니다.
차돌이가 부채손잡이에 힘을 줄수록 바람은 더욱 세졌습니다.
몇번을 흔들어대니 그처럼 지꿎게 덮이군 하던 검은 안개는 바람에 쫓기우는 연기처럼 맥없이 바다가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마을쪽에서 《저놈들을 잡아라!》하는 다급한 웨침소리가 울렸습니다.
그쪽을 바라보니 수상한 옷차림을 한 두놈이 억쇠의 집에서 뜨락에 놓여있던 벼섬을 한짐씩 지고 차돌이네 집으로 메고가는것이 보였습니다. 행색을 보니 꼭 바다건너 도적무리들의 차림새였습니다.
어느새 달려갔는지 억쇠가 두손에 놈팽이들의 멱줄을 거머쥐고 끌고가는것이 보였습니다.
놈들은 끌려가면서도 연방 바다가쪽을 힐끔힐끔 돌아보는데 아마도 누군가 자기들을 구원해주길 바라는 모양이였습니다.
차돌이는 깨고소한 눈길로 그놈들의 모양을 바라보았습니다.
《흥, 네깟놈들이 살아나기를 바란단 말이냐? 이 부채가 큰일을 했지.》
차돌이는 손에 든 부채를 흐뭇이 바라보았습니다.
한참 그러고있느라니 온몸이 오싹 추웠습니다.
차돌이는 그게 부채를 펼치고있은탓이라는것을 느끼고 얼른 부채를 접었습니다.
그런데 차돌이가 그러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이 바다가쪽에서 또다시 검은 안개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을 타서 끌려가던 놈들이 억쇠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서라, 이놈들아!》
캄캄한 안개속에서 억쇠는 소리쳤지만 놈들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가?)
차돌이는 검은 안개를 바라보며 어찌할바를 몰라 허둥댔습니다.
분명 그 어떤 놈이 또 어디서 작간을 부리는것 같았습니다.
검은 안개는 여느때보다 더더욱 짙어보였습니다.
차돌이는 부채를 들여다보며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부채를 한번이상은 쓰지 말라고 했는데… 죽을수 있다고 했지.)
차돌이의 눈앞에는 자기를 산삼도적이라고 몰아대던 억쇠의 이런저런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서로가 믿지를 못해 등을 돌려대고 사는 마을사람들의 모습도 하나하나 눈앞에 밟혀왔습니다.
(내 한목숨바쳐서라도 마을의 화목을 되찾아야 해!)
차돌이는 지그시 눈을 감았습니다.
눈앞에는 잊지 못할 고향산천의 정경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푸른 산, 푸른 하늘 그리고 푸른 바다, 모래불…
꿈속에서도 잊지 못할 정든 집과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다시금 보았습니다.
그지없이 나긋나긋한 부채였지만 차돌이는 천근만근의 바위문이라도 열어젖히듯 무겁게, 무겁게 펼쳐들었습니다.
순간 《솨―》하는 세찬 바람이 부채살마다에서 터져나오며 검은 안개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통에 바다가쪽으로 도망치던 놈들이 억쇠의 손에 다시 붙들려왔습니다.
억쇠는 도적들의 뒤덜미를 붙잡아앉히고 따져물었습니다.
《이놈들, 똑똑히 말해봐라. 네놈들은 어떤 놈들이냐? 네놈들의 두령은 또 어떤 놈이구?》
도적놈들은 이젠 어쩌는 수가 없었던지 두손을 빌며 대답했습니다.
《예예, 우리 두령님은 한두번의 재물이나 빼앗는게 아니라 안개마을을 아예 타고앉자면 우선 서로 물고뜯고 싸우게 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신비한 마술부채로 착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안개를 몰아온 다음 지금껏 우리를…》
《닥쳐라, 이 비렬한 놈들! 그러니 네놈들이 산삼도… 에익.》
금시까지도 차돌이를 의심하던 억쇠는 물론 마을사람들도 놈들의 말을 듣고는 서로 얼굴들을 붉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생각이 짧았음을 뉘우치며 차돌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차돌이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차돌이는 벌써 바다가에서 부하들과 함께 검은 룡선을 타고앉아 연방 마술부채로 검은 안개를 피워올리는 두령놈과 맞서 힘있게 부채질을 하고있었던것입니다.
(이놈들! 내 죽는 한이 있어도 기어이 네놈들을 몰아낼테다!)
차돌이의 부채에서는 《솨―솨―》소리를 지르며 센 바람을 불어댔습니다.
부채바람은 어찌나 센지 모래알은 물론 커다란 바위도 뿌리채 뽑아 도적무리들의 머리우로 휘뿌려졌습니다.
배우에 타고있던 도적무리들은 세찬 부채바람에 물속으로 돌덩이가 떨어지듯 풍덩풍덩 빠져버렸습니다.
무겁게 드리우던 검은 안개도 바람에 쫓기우는 연기처럼 맥없이 바다로 밀려갔습니다.
두령놈은 시꺼먼 턱수염에 성에가 붙어가지고 마술부채를 흔들었지만 차돌이의 부채바람을 당해낼수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바다가로 달려온 억쇠와 마을사람들은 성난 호랑이마냥 배우로 올라가 두령놈과 도적무리들을 쳐갈겼습니다.
마술부채도 억쇠의 손에 갈가리 찢기우고말았습니다.
차돌이의 차디찬 부채바람에 꽁꽁 얼어들어 버둥대던 놈들은 마을사람들의 드센 주먹에 모두 나가너부러지고말았습니다.
마지막 한놈이 죽어넘어지는것까지 다 보고나서야 차돌이는 부채를 접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차돌이는 그 부채를 접을 마지막기운마저 없었습니다.
두번째로 펼친 부채바람이 차돌이의 온몸을 꽁꽁 얼쿠어버렸던것입니다.
온몸이 돌덩이같이 얼어든 차돌이는 그 자리에 쿵― 하고 넘어지고말았습니다.
뒤늦게야 쓰러진 차돌이를 알아보고 억쇠와 마을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여보게 차돌이, 이 어찌된 일인가?》
하지만 차돌이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누워있었습니다.
《아, 자네는 마을의 화목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쳤는데 우린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싸웠으니… 차돌이, 날 용서해달라구―》
마을사람들도 자신들을 자책하며 차돌이의 손에 쥐여진 부채에 뜨거운 눈물들을 흘렸습니다.
이때 등뒤에서 웅글은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내 이럴줄 짐작했댔어. 잠시나마 마을이 화목하지 못한걸 두고 그리도 안타까워하더니 끝내…》
바로 그 부채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품안에서 반짝이는 청보석을 꺼내여 차돌이가 들고있던 부채의 한귀에 박아넣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부채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청보석빛을 뿌리는 부채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찬바람이 아니라 훈훈한 더운 바람이 나오는것이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운 눈으로 할아버지와 부채를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훈훈하게 풍기는 더운 바람에 차돌이는 오금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꽛꽛이 얼어들었던 몸이 녹자 차돌이는 마침내 눈을 떴습니다.
《할아버지!》
차돌이는 할아버지를 알아보자 기쁨과 고마움의 탄성을 올렸습니다.
《내 일이 꼭 이렇게 될것 같아 부지런히 보석산에 갔다오는 길일세. 그때 부채를 주며 한번만 펼치라고 했는데, 좌우간 자넨…
이 부채는 신기한 청보석까지 박아넣어야 완성되는걸세! 그땐 하도 자네가 안타까워하기에 그만, 허허허!》
차돌이는 미안해 어쩔바를 몰라하는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난 이번에 서로의 믿음이 크지 못하면 놈들의 간계에 빠지고 행복도 지켜낼수 없다는걸 알았어요!》
《옳네, 옳아. 마을의 화목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만 하는걸세.》
어느새 검은 안개가 밀려간 바다에서는 우유빛도는 뽀얀 안개가 봄날의 아지랑이마냥 곱게 피여올랐습니다.
그 안개는 조용히 흘러들어 안개마을을 포근히 감싸주었습니다.
차돌이와 억쇠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안개흐르는 아름다운 고향산천을 또다시 웃음속에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