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동산의 거울호수

조 영 선

 

1. 사슴할아버지의 소원

여러분들은 거울호수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거울같이 맑은 호수라는 말은 들어보았겠지만 호수전체가 그대로 커다란 거울이라면 놀랄겁니다.

다래동산에 진짜로 그런 거울호수가 있었답니다.

그 호수는 겉모양뿐아니라 마음씨까지도 비쳐보이는 신기한 거울이였답니다.

하늘문이 열려 억수로 비가 쏟아지던 어느날 아침 달나라 옥토끼가 아침치장을 하다가 그만 애지중지하던 거울을 흘려버렸는데 땅에 떨어진 그 거울이 그대로 맑은 물 출렁이는 호수로 되여버렸다고 합니다.

다래동산 동무들은 맑은 거울호수에 제모습을 비쳐보며 아름다운 마음을 키워나갔습니다.

거울호수는 붉은 노을이 비끼는 고요한 저녁이면 온종일 착한 동무들이 한 크고작은 일들을 영화화면처럼 그대로 비쳐보이군 하였습니다. 그래서 해 저무는 저녁이면 그 누구도 호수에서 물을 긷거나 돌멩이를 던져 물결이 일지 않게 주의했습니다. 동산의 좌상인 사슴할아버지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그 어떤 바쁜 일도 다 집어던지고 호수가로 달려왔습니다.

호수가 널직한 너럭바위우에 자리를 잡고앉아 호수를 들여다보느라면 아침해가 뜨자부터 저녁무렵까지 동산짐승들이 한 모든 일들이 한장면, 한장면씩 흘러갔습니다.

호수우에 착한 일을 하는 짐승들의 모습이 비낄 때면 사슴할아버지의 입가에는 흐뭇한 웃음이 어리군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녁식사를 뒤로 미루고 착한 일을 한 짐승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여우가 남의 집 울타리를 넘겨다보다가 주인이 나간 틈에 슬쩍 뛰여넘어 말린 물고기를 훔쳐가는 모습이 거울호수에 비꼈는데 사슴할아버지는 흉칙한 여우를 동산에서 내쫓고야말았습니다.

거울호수에 비낀 제모습을 보며 다래동산짐승들은 아름답고 착한 마음을 키워갔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좀 안타까운것은 거울호수에는 낮에 하는 일만 비끼지 밤에 하는 일은 전혀 비끼지 않는것이였습니다.

남 다 자는 깊은 밤에도 남몰래 좋은 일 하는 짐승들이 날마다 늘어가는데 할아버지는 그들을 칭찬하고 내세워줄수 없는것이 안타까왔습니다.

어느날 깊은 밤중에 누군가 꼬꼬닭의 집에 뛰여들어 귀여운 병아리를 잡아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분명 동산에서 쫓겨난 여우놈이 한짓같아 핼끔핼끔 곁눈질하며 지나가는 여우의 목덜미를 잡아쥐고 따졌습니다.

《이놈아, 너 어제 밤 꼬꼬닭네 병아리를 훔쳐갔지?》 여우는 억울해죽겠다고 아이고대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언젠 거울호수에 도적질하는 내 모습이 비꼈다고 쫓아내더니… 어디 거울호수를 들여다보며 말해보시오. 내 모습이 또 비끼기라도 했단 말이요?》

할아버지는 여우가 제편에서 따지고드는 바람에 더 말을 못하고 놓아줄수밖에 없었습니다.

뻔한 일인데도 보지 못했으니 어쩌는 수가 없었지요.

(거울호수에 밤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도 다 비끼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가?)

사슴할아버지는 이 한가지 생각으로 온밤을 뒤치락거렸습니다.

 

2. 멍멍이와 깡충이

사슴할아버지의 생각은 깊어만 가는데 어느덧 봄도 가고 여름이 왔습니다.

며칠째 내리던 장마비가 멎고 해가 쨍쨍 비치자 동산의 멍멍이는 호수가로 뛰여나갔습니다.

멍멍이는 거울호수를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거울호수가 있어서 멍멍이는 동산의 자랑으로 높이 떠받들렸거던요.

그는 좋은 일을 도맡아하여 늘 할아버지의 칭찬을 받고있는중이였습니다.

멍멍이는 귀중한 거울호수에 잡풀들이 떠다니지 않게 하려고 무척 애썼습니다. 거울호수가 흐리거나 나쁜 풀들이 덮이면 아무러한 모습도 비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처럼 맑고 아름다운 호수우에는 온갖 잡풀들과 나무잎들이 둥둥 떠다니고있었습니다. 아마 간밤에 내린 비에 산골짝 여기저기에서부터 검부레기들이 떠실려온것 같았습니다.

멍멍이는 어지러운 잡풀들을 어쩔가 하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찬물속에 뛰여들자니 몸이 으쓸해났습니다. 해가 퍼져 따뜻해지기를 기다리고 서있는데 푸른 들판 한끝에 깡충이가 나타났습니다.

깡충이는 멍멍이와 앞뒤집에서 사는 동무였습니다. 호수가로 오고있는 깡충이를 보자 멍멍이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빨리 저 잡풀들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깡충이가 해낼수 있어. 그러면 호수에 깡충이 모습이 비쳐지겠지.)

멍멍이는 두눈을 꼭 감고 깊은 호수에 뛰여들었습니다. 하늘에서는 해빛이 내려쪼였지만 호수의 물은 아직도 찼습니다. 멍멍이는 온몸이 떨리는것도 참아가며 한오리, 한오리 잡풀들을 힘들게 건져냈습니다.

(조금만 견디자. 조금만…)

멍멍이가 어푸어푸 헤염을 치며 잡풀들을 건져내는데 가까이 다가온 깡충이가 물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왜 혼자 하니? 같이하면 헐하기도 하고 빨리 끝낼수 있겠는데.》

깡충이는 이렇게 말하며 무릎을 걷어올렸습니다.

깡충이를 본 멍멍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기슭으로 급히 헤염쳐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깡충이를 밀막았습니다.

《됐다, 됐어. 이젠 다 걷어냈는데 들어오지 말아. 물이 아직도 차서 감기에 들수 있어.》

멍멍이는 깡충이앞에서 일부러 몸을 으스스 떨었습니다. 멍멍이는 깡충이의 눈빛을 슬쩍 살펴보았습니다.

(흥, 한몫 끼워 호수에 제모습이 비끼게 하자구.)

그 속생각을 알리 없는 깡충이는 멍멍이를 자기의 가슴에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자기의 따뜻한 온기를 조금이나마 멍멍이에게 주고싶었던것입니다.

《그럼 마저 수고해. 내 어디 좀 갔다올게.》

깡충이는 이렇게 속삭이고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멍멍이는 그가 달려가는쪽을 바라보며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도대체 어딜 갔다온다는거야?》

멍멍이는 다시 호수가에 들어가 잡풀들을 마저 건져냈습니다. 일을 끝마친 멍멍이는 부르르 몸을 떨며 호수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깡충이가 무엇인가 가슴에 품고 다가왔습니다.

《멍멍아, 수고했어. 자, 속이 뜨끈하게 마셔. 꿀물이야.》

깡충이는 품속에서 더운 김이 피여오르는 물병을 멍멍이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멍멍이는 너무 추운 나머지 고맙다는 말도 미처 못하고 꿀물을 입가에 가져다댔습니다. 달콤하고 따뜻한 꿀물이 몸에 서서히 흘러들었습니다. 그러자 온몸이 훈훈해지고 새힘이 솟아났습니다.

(이제 사슴할아버지의 칭찬은 이 꿀물보다 더 달콤할거야.)

멍멍이는 그날 저녁 하루일을 끝내고 돌아온 사슴할아버지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동산동무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입니다.

《우리모두 멍멍이처럼 동산을 위해 좋은 일을 더 많이 합시다.》

동산짐승들은 모두 멍멍이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멍멍이는 너무 좋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칭찬받을 일을 더 많이 할테야.)

멍멍이는 행복에 겨워 솔곳이 눈을 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멍멍이는 해가 한발이나 솟아오르도록 잠을 잤습니다.

중낮이 되였을무렵 사슴할아버지가 멍멍이를 찾아왔습니다.

《멍멍아, 참 용타. 밤새 자지 않고 건져낸 잡풀들을 몽땅 땅속에 묻어놓았구나.》

밑도끝도 없는 사슴할아버지의 칭찬에 멍멍이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누군가가 밤사이 좋은 일을 한게 분명한데 할아버지가 그 일을 멍멍이가 한줄로 알고있는것 같았습니다.

멍멍이는 일부러 눈을 부비며 《뭐… 그쯤한 일이야 응당…》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남이 해놓은 일을 두고 제가 칭찬받는게 한편 부끄럽기도 했지만 짐짓 시치미를 뗐습니다.

사슴할아버지가 돌아가자 멍멍이는 슬그머니 호수가로 나가보았습니다. 호수가에는 어제 건져낸 잡풀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잡풀들을 걷어 땅을 파고 묻은 흔적이 보였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했을가? 혹시 깡충이가 한일이 아닐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깡충이가 한 일이 틀림없었습니다.

저녁노을빛을 받아 호수는 금빛으로 빛났습니다.
동산의 꽃과 나무들이 거울호수에서 비쳐나오는 빛으로 물들어 신비롭게 안겨왔습니다.

(정말 깡충이가 밤사이 그런 일을 했을가?)

멍멍이는 고요한 호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울호수에는 곰이며 너구리, 산양들의 모습만이 있을뿐 깡충이의 모습은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깊은 밤에 한 일이여서 호수에 아무런 모습도 비끼지 않은것 같았습니다.

(밤에 좋은 일을 한걸 보니 그 앤 칭찬같은건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지. 까짓거 이 일도 다 내가 했다고 쳐두지 뭐.)
어느 사이 날이 저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멍멍이는 팔베개를 하고 벌렁 누워버렸습니다. 멍멍이가 솔곳이 잠이 들려는데 문득 누가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달콤한 잠을 방해하는게 도대체 누구야?》

투덜대며 문을 열어보니 깡충이였습니다.

그의 손에는 삽과 바께쯔가 들려져있었습니다.

《왜 그러니?》

멍멍이는 의아해하며 깡충이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제 이웃동산에 다녀올 때 생각해둔건데 우리 저 뒤산기슭에 지름길을 내자. 그러면 급한 일이 생길 때 빨리 다녀올수 있을거야.》

멍멍이는 당장에 얼굴을 찌프렸습니다.

《하필 그 일을 어두운 밤에 하려고 하니? 낮엔 가만 있다가…》

《바쁜 농사철에 일손이 모자라 그러는데 어떻게 다른 일을 하겠니? 그러니 오늘 밤에 제꺽 해치우자는거야.》

깡충이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멍멍이는 난처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왜 그런지 몸살이 오는것 같애. 갑자기 몸이 떨리고 머리가 막 아파.》

《그래… 난 그런것도 모르고 참 미안해. 그럼 몸조리를 잘해.》

깡충이는 이 말을 남기고 뒤산으로 깡충깡충 뛰여갔습니다.

저녁어스름속으로 사라져가는 깡충이를 보며 멍멍이는 생각했습니다.

(밤에 한 일은 거울호수에 전혀 비끼지도 않는데 저 앤 무엇하러 밤에 일을 하려고 할가? 에, 머리가 돌지 않으면 할수 없어.)

멍멍이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거울호수에 비껴야 빛이 나거던.)

다음날 아침 동산마을 짐승들은 간밤에 번듯하게 닦아진 지름길을 두고 법석 떠들었습니다.

《누가 이 지름길을 냈을가요? 밤에 한 일은 도무지 거울호수에 비끼지 않으니 알수가 없군요.》

《글쎄말이요. 소문없이 좋은 일을 한 짐승을 꼭 찾읍시다.》

동산짐승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을 때 멍멍이는 못 들은척, 못 본척 하고 잠자코 입을 다물고있었습니다. 《혹시 멍멍이가 아닐가요?》
누군가가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 멍멍이는 얼굴이 빨개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깡충이가 한 일이 분명했지만 제가 아닌 다른 동무가 칭찬받는게 그리 달갑지 않았거던요.

《얼굴이 빨개진걸 보니 멍멍이가 한 일이 맞는것 같아요.》

《참 겸손하기도 하지.》

멍멍이는 그 소리를 듣기 낯이 간지러웠지만 애써 참았습니다.

 

3. 수정구슬

사슴할아버지는 어떻게 하나 거울호수에 밤에 하는 일들도 죄다 비끼게 할 방도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모르게 하는 일이라고 해서 내세워주지 않고 평가를 해주지 않는다면 자기가 동산의 좌상으로서의 자격이 없을것이였습니다.

사슴할아버지가 생각에 잠겨 말없이 거울호수를 바라보고있는데 별안간 머리우에서 지지배배 청고운 노래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머리를 들어보니 뒤늦게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였습니다.

해마다 사슴할아버지네 집 처마에 깃들이고 살면서 사슴할아버지가 무엇때문에 애타하는가를 죄다 넘겨짚을줄 알게 된 제비였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진 지금 저 거울호수에 어떻게 하면 밤에 하는 일도 모두 비끼게 할가 하고 생각하고있지요?》

《제비야, 마음착한 제비야, 바로 그렇단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난 지금도 여전히 그걸 생각하고있어.》

사슴할아버지는 거의나 반년만에 보는 제비가 반가와서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사슴할아버지, 내가 방도를 대주지요.저 멀리 바다가 수정봉이라는 곳에 백학이 살고 그 백학한테는 푸른 구슬이 있답니다. 그걸 거울호수에 가져다 넣으면 할아버지의 그 소원이 풀릴수 있어요.》

《그래, 그거 참 기쁜 일이로구나!》

사슴할아버지는 더 생각해볼 사이도 없이 멍멍이부터 찾았습니다.

그래도 미더워보이는건 멍멍이였으니까요.

《멍멍아, 네가 늘 동산을 위해 수고가 많은데 이번에도 한몫 맡아라. 어서 가서 수정구슬을 얻어와야겠다.》

사슴할아버지는 제비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수정봉으로 가는 길을 따라오며 가리켜주었습니다.

《사슴할아버지, 그러다 아예 수정봉에 함께 가닿고말겠어요. 이젠 들어가보세요.》

사슴할아버지는 멍멍이가 말해서야 오던 걸음을 늦추었습니다. 몸은 늙어 가지 못해도 할아버지의 마음만은 멍멍이를 앞서달렸습니다.

《빨리 수정구슬을 가져와 거울호수에 밤이나 낮이나 나의 모습만이 비껴있게 할테야.》

굳은 결심을 안고 멍멍이는 길을 다그쳐나갔습니다. 길은 멀고 험했습니다.

온종일 산골길을 톺으며 걷고나니 힘이 진했습니다. 등에 지고가던 길량식도 떨어져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멍멍이는 호수에 비껴질 자기의 모습을 그려보며 힘을 내군 하였습니다.

사흘낮, 사흘밤을 꼬박 걸어 멍멍이는 드디여 수정봉에 올라섰습니다.

어디선가 위엄있는 목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넌 어디서 온 누구냐?》

또다시 울리는 알수 없는 목소리에 멍멍이는 주눅이 들어 두무릎을 꿇고앉았습니다.

《난 거울호수가 있는 다래동산에서 온 멍멍이예요.》

멍멍이는 사슴할아버지가 일러준대로 수정구슬을 얻으러 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하, 알만 하군. 청제비의 부탁이 이미 있었어.》 말소리와 함께 수정봉에 걸려있던 흰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지는 구름사이로 흰눈같이 새하얀 백학이 나타났습니다.

백학은 수정봉의 주인이였습니다. 《험한 길을 달려온 너의 그 마음이 참 기특하구나. 푸른 수정을 줄테니 오늘 밤은 여기서 푹 쉬고 래일 아침에 떠나도록 해라.》

멍멍이는 가만히 시간을 타산해보았습니다.

이제 빨리 돌아서야 해뜨는 아침에 동산에 들어설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수정구슬을 안고 개선장군마냥 척 들어서는 자기의 모습이 거울호수에 비끼게 하려면 꼭 밤시간이 아니라 낮시간에 들어서야 했습니다.

《백학아저씨, 난 한시바삐 떠나야 해요.》

멍멍이의 말을 들은 백학은 서산에 숨어버리려는 해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이제 좀 있으면 날이 어두워지겠는데 그래도 떠나려니?》

대답대신 웃음짓는 멍멍이를 보며 백학은 푸른빛을 뿜는 수정을 꺼내들었습니다.

《멍멍아, 이 푸른 수정은 수정봉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보물이여서 잃어버리면 안된다. 동산에 가면 푸른 수정을 호수 한가운데 던져넣어라. 그러면 거울호수에는 밤에도 낮에도 너희들의 고운 모습이 사진처럼 비칠게다.》

백학은 푸른 수정을 멍멍이의 손에 꼭 쥐여주었습니다.

《고마워요, 백학아저씨.》

멍멍이는 푸른 수정을 몸안에 깊이 간직하고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험한 길들이 발아래서 살같이 흘러갔습니다.

높은 산도 단숨에 넘었고 사품치며 흐르는 강도 한달음에 뛰여넘었습니다.

멍멍이가 어느덧 동산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까치봉밑에 이르렀을 때는 날이 저물고있었습니다.

너무 빨리 오다나니 래일 아침 들어서야 하는 길을 저녁에 들어선것이였습니다.

(이제 밤중에 들어서면 거울호수에 수정구슬을 안고오는 내 모습이 비끼지 않을거야. 에라,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래일 해가 솟아오를 때 보란듯이 나타나 푸른 수정을 호수에 던져넣겠어.)

이렇게 생각한 멍멍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잠잘 곳을 찾았습니다.

이슬이 내리지 않은 어느 둔덕진 바위아래 가랑잎을 모아깔고 누웠지만 왜 그런지 멍멍이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밤하늘에선 새벽을 알리는 새벽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좀 있으면 새날이 밝겠구나.) 멍멍이는 이제 있게 될 일들을 상상해보느라니 좀처럼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습니다.

모두 수정구슬을 가지고 온 멍멍이를 둥둥 얼싸안아줄것입니다.

멍멍이가 즐거운 생각에 잠겨 별을 바라보고있을 때였습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지 날아온 칡넝쿨이 멍멍이의 몸을 휘감았습니다.

《으하하하―》

너털웃음을 치며 나타난것은 오래전에 동산에서 쫓겨난 여우였습니다.

《멍멍이, 왜 거울호수로 곧장 달려가지 않고 여기에 누워있나. 날이 밝은 다음 나타나 제모습이 비치게 하고싶어서이겠지. 으하하― 어림없다, 어림없어. 네 모습이야 비끼건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만 밤에 하는 일까지 비끼게 하는건 용서할수 없어. 난 꼭 밤에만 도적질을 해야 먹고살수 있거던!》

여우는 칡넝쿨로 멍멍이의 온몸을 꽁꽁 묶어놓고 수정구슬을 빼앗아가지고 달아났습니다.

《이놈아, 당장 이걸 풀지 못하겠니.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테다.》

멍멍이는 여우를 향해 고함을 쳤지만 빼앗긴 수정구슬을 찾을 힘이 없었습니다.

《아이쿠, 이걸 어쩌나. 하나밖에 없는 수정구슬을 잃다니. 내가 왜 곧추 가지 않고 여기에 머물렀나!》

몸이 묶이운 멍멍이는 몸부림쳤습니다.

《수정구슬을 빼앗기다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정구슬을…》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눈물은 멍멍이의 옷깃을 적셨습니다.

어느덧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후 누군가가 숲을 헤쳐오는 소리가 났습니다.

《꼬끼요… 멍멍이가 여기 있어요.》

꼬꼬닭이 홰를 치며 달려오고 뒤따라 사슴할아버지가 나타났습니다.

사슴할아버지가 달려와 묶이운 멍멍이를 풀어주었습니다.

멍멍이는 사슴할아버지와 동무들앞에 머리를 들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난 수정봉에도 하나밖에 없는 수정구슬을 그만 여우놈에게 빼앗겼어요. 이제 어쩌면 좋아요.》

멍멍이는 눈물을 흘리며 우는데 뜻밖에도 사슴할아버지는 허허 웃는것이였습니다.

《수정구슬은 걱정말아. 깡충이가 여우놈을 요정내고 수정구슬을 찾아냈단다.》

《아니, 수정구슬을 찾았다구요?》

멍멍이는 언제 울었던가싶이 눈을 빛내며 물었습니다.

《허허, 깡충이가 아니였다면 어쩔번 했니? 깡충이는 네가 걱정이 되여 마중을 오다가 수정구슬을 들고 히히덕거리는 여우놈을 보았구나. 깡충이는 죽기내기로 싸워 여우놈을 요정내고 수정구슬을 빼앗았단다.》

멍멍이는 모여온 동무들속에서 얼른 깡충이의 모습부터 찾아보았습니다.

깡충이는 수집게 웃으며 멍멍이의 손에 푸른 수정구슬을 쥐여주었습니다.

《자, 받아.》

멍멍이는 선듯 손을 내밀수 없었습니다.

누가 보건말건 소문없이 좋은 일을 하는 깡충이, 수정구슬을 위해 깡충이가 마중을 나온 시간도 역시 밤시간이였습니다. 멍멍이는 눈물을 머금고 수정구슬을 받아들었습니다. 멍멍이는 사슴할아버지와 동무들과 함께 동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자, 어서 거울호수로 갑시다.》 거울호수에 이르자 사슴할아버지는 멍멍이가 직접 거울호수에 수정구슬을 넣도록 했습니다.

멍멍이는 수정구슬을 호수 한가운데 힘있게 던졌습니다.

수정구슬이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솟구치더니 잠시후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더니 호수는 더욱 푸른 빛으로 빛났습니다.

그 푸른 거울호수에는 과연 어떤 모습이 비꼈겠습니까.

그것은 밤새워 좋은 일을 하는 깡충이의 모습이였습니다. 멍멍이가 호수가에 널어놓은 잡풀들을 깨끗이 걷어 땅속에 묻는 모습이며 지름길을 내는 모습 등 밤에 했던 일들이 영화화면처럼 거울호수에 비꼈습니다.

멍멍이는 거울호수앞에서 머리를 들수 없었습니다. 이때껏 깡충이가 한 일들을 제가 한것처럼 보이려 했던것이 몹시 창피스러웠습니다.
멍멍이의 작은 어깨에 손을 얹으며 사슴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멍멍아, 저 깡충이처럼 살아라. 누가 평가해주든말든 진심을 바쳐 살아야 한다.》

《사슴할아버지, 알겠어요.》

멍멍이는 새로운 결심을 가다듬으며 힘있게 대답했습니다. 사슴할아버지는 멍멍이의 머리를 정답게 쓸어주었습니다.

사슴할아버지와 멍멍이의 그 모습도 거울호수에 사진처럼 비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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