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쓴 일기

 김 흥 식

 

주성이가 어깨를 툭 치며 찾는 바람에 충일이는 망설이였습니다.
(어떻게 할가?)
요즘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이렇게 발목이 잡혀 길 하나 사이에 두고있는 자기네 아빠트까지 단숨에 가닿지 못하군 하는 충일이였습니다.
그는 슬쩍 봄순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재미나는 별꼬니판이 못 견디게 그의 마음을 잡아당겨서입니다.
《너 또 떨어지려구.》
낯색을 달리하며 봄순이가 새침해하는 말입니다.
《아니야.》
그러자 주성이가 해물해물 웃으며 약을 올려주었습니다.
《해해, 너 봄순이한테 꼼짝 못하누나, 남자애가.》
그만에야 충일이의 속은 뒤틀려졌습니다.
(체,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충일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주성이를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맞아! 난 봄순이한테 꼼짝 못해.》
충일이는 홱 몸을 돌리며 집을 향해 콩콩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니?! 너 정말 가니?》
등뒤에 이렇게 놀란 주성이의 목소리가 날아들었지만 그는 다시 머리를 돌릴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성이가 막 고까와졌습니다.
글쎄 그렇게 친한 사이라면 동무의 마음을 잘 알아주어야 할게 아닙니까.
오늘 아침 충일이는 어머니한테 얼마나 알알한 말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어제 봄순인 아빠트 놀이터꽃밭의 풀을 뽑아주고 물까지 주었다누나. 학생이 되더니 얼마나 더 기특해지는지. 작은 일이지만 거기서 바로 우리 아빠트, 우리 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게 되지.》
순간 충일이는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 머리를 숙였습니다.
(나도 봄순이와 같은 1학년생인데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가? 그렇게 쉬운 일을… 열두번도 더 할수 있는 일을…)
이때 어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충일이의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늘 이렇게 욕도 하지 않고 충일이를 타이르고 깨우쳐주는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욕도 아니고 매도 아닌데 엄마의 말은 꼭 매운 고추 한가지인것입니다.
그래서 충일이는 오늘 아침 한 아빠트에 사는 봄순이와 함께 학교로 가며 큰소리를 쳤던것입니다.
《너 오늘은 놀이터꽃밭에 물을 주지 마.》
《아니, 왜?》
《내가 주려구 그래.》
《정말?》
《응.》
《야! 그럼 우리 함께 하자.》
봄순이는 손벽까지 치며 기뻐했습니다.
《안돼!》
충일이는 우정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왜?》
《넌 욕심쟁이처럼 혼자 좋은 일 하지 않았니?》
《피, 그거야 네가 매일 주성이네 집에 떨어지니까 그렇지.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데도 듣지 않고.》
《그래서 오늘부터 나 혼자 물을 주겠단 말이야.》
《호― 좋아. 그런데 꼭 줘야 돼.》
《응.》
이렇게 봄순이한테 다짐을 했던 충일이였던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주성이와 함께 별꼬니를 재미나게 할수 있겠습니까.

×

 
봄순이가 너무 조르는 바람에 생각을 달리한 충일이가 그와 함께 놀이터꽃밭에 물을 다 주고난 때였습니다.
그네앞을 지나며 그것을 올려다보던 충일이의 눈은 갑자기 둥그래졌습니다.

  

(아니?!… 저거.)
그는 너무 급해 봄순이를 잡아끌며 말하였습니다.
《봄순아! 저것 봐.》
《어디?》
《저기.》
충일이가 가리키는 손을 따라 그네우를 올려다보던 봄순이의 눈도 대번에 커졌습니다.
그네줄을 잡아주고있는 동그란 쇠고리가 동동 매달려있는 반달형고리의 한쪽에 용접한것이 떨어져 약간 벌어진것을 그도 보았던것입니다.
반달형고리는 량옆에 수직으로 서있는 쇠기둥우에 가로질러놓여있는 쇠막대기밑에 문손잡이처럼 고정시켜 용접하여 붙여놓은것입니다.
그러니 애들이 그걸 모르고 그네를 타면 큰 사고를 칠수 있었습니다.
충일이는 속이 떨려나 다짜고짜 봄순이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가자!》
《어디?》
《빨리 알려주어야 하지 않니? 반장어머니한테.》
《정말.》
둘은 급히 뛰여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충일이가 뚝 멈춰섰습니다.
《왜 그러니?》
봄순이가 의아해 물었습니다.
《보초를 서야겠어.》
《보초?》
《응, 이제 우리가 없을 때 유치원애들이 와서 그네를 타면 사고를 칠수 있지 않니? 그러니 네가 보초를 서.》
《내가?》
《응, 너 누구도 그네를 타게 하면 안돼.》
《알았어.》
봄순이가 힘있게 머리를 까딱거렸습니다.
하지만 충일이는 아무래도 봄순이가 미더워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유치원애들이 오구구 모여와 졸라대면 마음 약한 봄순이가 그대로 그네를 태워줄것 같았던것입니다.
《됐어. 보초는 내가 설게 넌 빨리 알려.》
《응.》
이번에도 봄순이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그가 뛰여가자 충일이는 그네 쇠기둥앞에 차렷자세로 똑바로 서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건 자기가 보초라는것을 똑똑히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인차 그는 마음이 좀 두근거리는것을 느꼈습니다.
놀음할 때 보초가 아니라 진짜 보초라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한편 어깨가 으쓱해지는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이럴 때 엄마가 돌아와 진짜 보초를 서는 자기모습을 봐준다면 얼마나 즐겁고 기쁘겠습니까.
이때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8층 5호의 명호형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형님은 충일이를 본척만척 그냥 지나쳐 아빠트현관으로 쑥 들어가려는것이 아닙니까.
충일이는 좀 뻐기고파 그 형님을 찾았습니다.
《형!》
《엉?! 너 거기 왜 똑바로 서있니?》
《해해, 보초를 서지 뭐.》
《뭐? 보초? 하하하, 너 죽신히 놀고싶은게구나. 혼자 보초놀음을 다 하구.》
《뭐 놀음…》
충일이는 단번에 기분이 없어지고말았습니다.
《체, 난…》 하고 설명을 하려는데 그 형님은 충일이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현관으로 쑥 들어가버리고마는것이였습니다.
충일이는 너무 분해 코김을 쌕쌕 불었습니다.
글쎄 중학교형님이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사연을 알아보지도 않고 놀음군이라고 막 말하면서…
방금 자기는 꽃밭에 물을 준 좋은 일도 하지 않았습니까.
충일이는 보초구 뭐구 다 집어던지고 집으로 씽 들어가고싶었습니다.
그가 머리를 숙이고 애꿎은 쇠기둥을 발로 톡톡 차고있는데 봄순이의 손을 잡고 인민반장어머니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아니, 너 왜 그러니?》
《씨, 명호형님은 너무해요. 날보구 논대요.》
《호호호. 그 형님은 네가 얼마나 크고 좋은 일을 하는지 몰랐던 모양이구나.》
《예? 그럼 이것두 좋은 일이나요?》
《그럼. 크고 좋은 일이지. 혹시 사고를 내면 어쩔번 했니? 난 너희들이 얼마나 기특한지 막 업고다니고픈 심정이다. 정말 어떻게 칭찬해야 할지 모르겠어.》
뜻밖에 반장어머니가 이렇게 듬뿍 칭찬해주는 바람에 충일이는 좀 멋적어졌습니다.
사실 자기들은 그것이 좋은 일인지, 어떻게 큰일로 되는지 모르고 반장어머니한테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크고 좋은 일이라니 충일이는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습니다.
《됐다. 이젠 집에 올라가 공부를 하거라.》
반장어머니가 그들의 등을 떠밀어주었습니다.
《그럼 그네보초는 누가 서나요?》
충일이가 반장어머니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일없다.》
《가만 좀 계셔요.》
누가 어쩔사이도 없이 충일이는 집으로 달려올라갔습니다.
그러더니 조금있어 《고리가 떨어지려 하니 그네를 타지 말것》 하고 마지크로 쓴 종이를 들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네에 그것을 붙여놓으려고 말입니다.
《너희들은 볼수록 기특한 애들이로구나.》
반장어머니가 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또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러니 분명 이것도 좋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충일이는 마음속에 찰랑찰랑 고여 넘쳐나는 기쁨을 어찌할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좋은 일을 세가지씩이나 하지 않았습니까.
봄순이도 해쭉 웃음발을 날립니다.

 

×

 

아마도 이렇게 기쁜 날은 뭔가 좀 달라져야 하는지.
꼭꼭 저녁에만 쓰던 일기를 충일이는 아동방송시간도 퍽 되기 전에 쓰고있습니다.
오늘 하루에 세가지씩이나 좋은 일한걸 어디든 쏟아놓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충일이였던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네모칸에 사각사각 씌여지는 글들도 모두 그를 올려다보며 방글방글 웃음을 보내주는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달콤한 분위기를 깨뜨리며 초인종소리가 울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 주성이가 와 서있는것이였습니다.
충일이는 대뜸 《나 별꼬니를 안할래.》하고 말하였습니다.
《체, 나 그래서 왔는줄 아니? 너희들 좋은 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왔지.》
주성이는 이렇게 말하며 제절로 방에 척 들어섰습니다.
《그럼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났단 말이야?》
《응.》
충일이는 이런 소식을 가지고온 주성이가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습니다.
(가만, 그런데 누가 벌써 그 소식을 날라갔을가?)
그는 이렇게 속구구를 해보았지만 도무지 알수가 없었습니다.하지만 그는 기뻤습니다.
래일쯤엔 학교까지 그 소문이 날아갈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너희들 좋은 일 한거 거짓말이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건 복숭아나무에 감이 달렸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아니야.》
《체, 방금 나 놀이터에서 그네를 보고 왔는데 뭐.》
《좋아.》
충일이는 송수화기를 들고 봄순이를 찾았습니다.
《봄순아! 빨리 와.》
《왜?》
《큰일났어. 우리보고 거짓말쟁이래.》
《누가?》
《글쎄 빨리 와.》
이어 봄순이가 할딱거리며 충일이네 집에 들어섰습니다.
《봄순아 맞지?》
《뭘?》
《우리가 좋은 일 한거.》
《응, 맞아.》
봄순이가 증명을 하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성이는 벽을 문이라고 계속 우겨댔습니다.
《좋아, 놀이터에 가보자.》
충일이가 말하였습니다.
《가보자.》
셋은 우르르 놀이터로 내려갔습니다.
가보니 반달형고리는 그대로 딱 붙어있는것이였습니다.
(고놈의 고리 우릴 망신시키려 그러는게 아니야.)
충일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 올려다보았습니다.
봄순이도 다시 올려다보았습니다.
아까 본 그대로입니다.
아니, 아닙니다.
찬찬히 보니 용접을 하고 곱게 도색칠까지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반장어머니가 그들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충일이는 반가와 반장어머니를 마중하며 말하였습니다.
《반장어머니! 우리가 좋은 일 한거 맞지요?》
《그럼.》
충일이는 주성이한테 얼굴을 돌리며 발씬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옳지?》 하는 뜻이였습니다.
《그런데 너희들 이 그네를 누가 고쳐놓았는지 모르니?》
반장어머니가 묻는 말이였습니다.
《예?》
셋은 꼭같이 놀라 소리를 쳤습니다.
모른다는 반장어머니의 말이 잘 리해되지 않았던것입니다.
《내가 저아래에 있는 기계공장에 가서 그네를 고쳐달라는 부탁을 하고 오니 누가 벌써 이렇게 고쳐놓았더구나.》
《그래요?》
셋은 누가 고쳤는지 알아맞추려 저마끔 말을 꺼냈습니다.
《7층 2호집 할아버지! 그 할아버진 용접을 잘해 속보판에까지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요.》
충일이가 먼저 나서며 말하였습니다.
《아니야. 곱게 색칠까지 한거랑 보면 혼자 하지 않았어. 그건 건설사업소에 모두 함께 다니는 우리 5층의 1호집, 3호집, 5호집의 아버지들이랑 언니가 하였을거야.》
《체, 지나가던 아저씨들이 했을수도 있지 않니?》
《옳다. 짐작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구나.》
반장어머니가 생각깊은 어조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한걸 왜 숨길가요?》
충일이는 이걸 잘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이 놀이터, 이 거리를 자기 집 뜨락처럼 사랑하고있기때문이지. 이런 열렬한 사랑을 지닌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도 누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단다.》
비록 짧게 하는 말이였지만 충일이는 반장어머니가 하는 말의 뜻을 다 알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좋은 일이 무엇인가는 어렴풋이 알것 같았습니다.
자기처럼 무슨 일을 하고도 칭찬받는걸 좋아하고 소문이 멀리멀리 퍼지길 바란다면 그게 무슨 좋은 일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좋은 일은 듬뿍 칭찬을 받는것에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든 진짜마음을 바쳐야 진짜 좋은 일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충일이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봄순이와 주성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그들도 자기와 꼭같은 생각을 하고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날 밤 충일이는 일기를 다시 쓰게 되였습니다.
진짜 좋은 일을 할 마음을 담은 일기글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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