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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말-15세기초 동북아시아지역안정에 이바지한 쯔시마원정​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끊임없이 달려드는 외적의 침략을 걸음마다 짓부시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켜낸 자랑찬 반침략투쟁력사를 가지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의 유구한 력사의 갈피마다에는 외적의 침략을 짓부시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켜낸 자랑찬 투쟁사들이 많이 기록되여있다. 그가운데는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서 장기간에 걸친 왜구의 침입과 략탈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진행한 두차례의 쯔시마원정도 있다.

력사에서 왜구는 14세기말-15세기초에 고려와 조선봉건왕조, 명나라의 연해안과 내륙지방에 자주 기여들어 살인과 랍치, 방화와 략탈을 일삼던 일본도적무리를 말한다.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서는 이러한 왜구의 침입과 략탈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왜구의 본거지이며 출전기지, 기항지인 쯔시마에 대한 원정을 단행하였다.

1389년 2월 경상도원수 박위가 지휘하는 100여척의 전함으로 편성된 고려원정군은 왜구의 소굴인 쯔시마를 정벌하였다. 고려원정군은 불의에 섬을 기습하여 바다가에 정박시켰던 왜적선 300척을 불살라버리고 해안시설을 파괴하였으며 랍치되였던 고려주민 100여명을 데려왔다.

첫 쯔시마원정이후 왜구의 침습은 얼마간 약화되였으나 조선봉건왕조성립이후 그 침입과 략탈은 그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선봉건왕조에서도 왜구의 이러한 침입과 략탈행위에 대처하여 결정적인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수 없었다.

1419년 3군도체찰사 리종무의 지휘밑에 6월 17일 거제도에서 출항하여 쯔시마에 도착한 조선원정군은 연안에 정박하고있는 적선 124척을 불태우고 34척을 로획하였으며 왜구들이 도사리고있던 1939호의 가옥들을 소각하였다. 이 과정에 원정군은 적군 114명을 격멸하고 21명을 포로하는 전과를 올렸다.

왜구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의 두차례의 쯔시마원정은 14세기말-15세기초 동북아시아지역의 안정을 보장하는데서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볼수 있다.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서 진행한 두차례의 쯔시마원정은 무엇보다먼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 대한 왜구의 위협을 제거하고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고려에 대한 왜구의 침입은 이미 12세기말부터 시작되였으며 137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 우심해졌다. 그것은 1370년대 왜구의 침입회수가 그전의 20년간에 비해 2배가 넘는 170여회에 달하였다는 사실을 통하여 알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왜구의 침입은 빈번히 계속되였는데 성립초기부터 1419년까지의 기간에만도 총 74회이며 침입한 적선의 총수는 439척이였다. 당시 왜구의 빈번한 침입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의 안전에 엄중한 위협으로 되였다.

왜구의 침입과 략탈은 우선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의 정치적안전을 위협하였다.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의 정치정세가 긴장해지자 고려에서는 장단과 철원에 수도를 옮기자는 의견들이 제기되였다. 비록 반대의견의 우세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왜구의 침입이 나라의 안전에 저해를 주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왜구는 국가관청들을 습격하여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 1404년 충청도에 침입했던 왜구는 병선 2척을 빼앗고 60여명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1408년 3월 배 23척으로 충청도 수사영에 침입한 왜구는 수군첨절제사를 죽이고 병선 2척을 빼앗아갔다.

왜구의 끊임없는 침입과 략탈행위로 하여 국가의 재정형편은 악화되고 인민들의 생활도 심히 령락되였다.

왜구의 끊임없는 침입과 조운선에 대한 습격략탈행위로 말미암아 바다길이 막히고 조세운반체계는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왜구의 습격으로 1360년 윤 5월 강화도의 쌀 4만여석이 략탈당하였고 1364년에는 전라도 조운선이 움직일수 없었던 사실 등은 이를 잘 말하여준다. 뿐만아니라 도처에서 감행하는 왜구의 량곡략탈로 많은 고려인민들이 기근에 시달렸다.

왜구는 백성들에 대한 대량살륙과 랍치행위도 감행하였다. 왜구는 침입할 때마다 마을의 남자들은 물론 부녀자와 아이들까지도 악착하게 살해하였다.

극도에 이른 왜구의 침입과 략탈만행을 두고 당시 전법서 판서 조인옥 등은 《전라, 경상, 양광 3도는 국가의 중심지역인데 왜적들이 깊이 쳐들어와 우리 나라 백성들을 랍치하고 략탈해》가고있으니 이것은 고려에 있어서 《실로 존망을 위급하게》하는것이라고 하면서 우려를 표시하였다.

조선봉건왕조초기 왜구의 빈번한 침입과 략탈이 나라의 안전을 얼마나 크게 위협하였던지 왕도 《나라의 걱정거리로서 왜적보다 더 심한것은 없다.》고 개탄할 정도였다.

이와 같이 왜구의 침입과 략탈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의 안전을 심히 위협하였다.

바로 이러한 상태에서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서는 나라의 안전에 위험을 주는 화근을 없애버리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으로서 왜구의 본거지이며 출항기지, 전초기지인 쯔시마에 대한 1389년과 1419년의 원정을 단행하였던것이다.

이 두차례의 쯔시마원정으로 왜구의 침입과 략탈행위는 기본적으로 종식되였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더라도 정벌이전 5년간(1384년-1388년)에 왜구의 침입회수는 29차였다면 그 이후 4년간(1389년-1392년)에는 3차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쯔시마에 대한 정벌이 왜구의 침입을 저지시키는데서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1419년 쯔시마원정이 있은 후에 왜구들은 한동안 꿈쩍하지 못하였으며 조선봉건왕조가 투항을 요구하였을 때에는 그것을 접수하는 쯔시마도주의 서한과 사신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것도 역시 1419년 쯔시마정벌로 왜구와 그 소굴인 쯔시마가 큰 타격을 받았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1389년과 1419년의 쯔시마원정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의 안전을 위협하던 왜구의 위험을 제거하고 나라의 안전을 보장한 정의의 원정이였다.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서 진행한 두차례의 쯔시마원정은 다음으로 명나라에 대한 왜구의 위협을 제거하고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이바지하였다.

14세기말-15세기초는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1368년-1644년)가 성립된 초시기로서 전반적인 국내정세는 복잡하였다. 당시 왜구는 이러한 정세에 틈타 중국연해안일대에 침입하여 략탈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였으며 갓 수립된 명왕조의 안전에 위협을 조성하였다.

중국에 대한 왜구의 침입은 대체로 원나라말기에 시작되였으며 명나라초기인 1369년초부터는 산동, 절강, 강소, 광동연해지구 등에 확대되여 대대적인 략탈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뿐아니라 왜구는 명나라의 역신들과 내통하여 갓 성립된 명나라왕조를 전복하려고도 책동하였다. 1381년에 일어난 《호유용의 반란》사건이 이를 잘 말해준다. 《호유용의 반란》사건이란 명나라 좌승상 호유용이 왜구와 결탁하여 명나라왕조를 전복시키려던 반역사건이다.

《호유용의 반란》사건이 탄로나자 일본은 사신을 명나라에 보내여 자체로 명나라황제의 암살을 시도하였다. 그때 일본사신은 400여명의 왜구와 함께 조공하는척 하면서 몸에 감춘 화약과 비수로 명나라황제를 암살하려고 하였다. 그때 명나라황제가 국서가 없다는 리유로 만나주지 않아 다행히 무사하였지만 이렇게 왜구는 명나라의 안전에 위험한 존재였다.

이처럼 왜구의 횡포무도한 책동으로 말미암아 이 시기 명나라의 안전도 심히 위협을 당하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서 단행한 두차례의 쯔시마원정은 왜구의 본거지이며 전초기지였던 쯔시마를 소탕한것으로 하여 14세기말-15세기초 명나라의 안전을 위협하던 왜구의 침입과 략탈행위를 막아내는데 기여하였다고 말할수 있다.

실제로 1389년 고려의 쯔시마원정이 단행된 이후 명나라에서도 왜구의 침입과 략탈이 기본적으로 중지되여 정세는 비교적 평온하였다. 그것은 《…이때로부터 일본의 조공이 명나라에 이르지 않았으나 해상에서 위급한 소요는 점차 중지되였다.》라는 당시의 기록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서 단행한 쯔시마원정이 명나라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기여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에서 진행한 두차례의 쯔시마원정은 다음으로 류꾸국의 안전을 보장하는데도 이바지하였다.

왜구의 침입과 략탈에 의한 피해는 당시 류꾸국에서도 받고있었다. 하기에 류꾸국의 중산왕 찰도는 1389년 2월 고려군이 쯔시마의 왜구의 소굴을 소탕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사신을 고려에 파견해왔다. 그것은 왜구의 침략에 의하여 피해를 받고있던 류꾸로서도 고려가 그 소굴을 정벌했다는것이 통쾌한 일이였기때문이였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1389년과 1419년의 쯔시마원정은 당시 고려와 조선봉건왕조,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안전을 위협하던 왜구의 위험을 제거하고 14세기말-15세기초 동북아시아지역의 안전보장에 기여한 력사적인 원정이였다.

우리는 외적의 침략을 걸음마다 짓부시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켜낸 우리 인민의 자랑찬 반침략투쟁력사에 대하여 잘 알고 오늘 우리를 먹어보려고 날뛰는 적대세력들의 책동을 철저히 짓부셔버리는데 모든것을 다하여야 할것이다.

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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