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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의 해방전쟁승리에 기여한 조선인민의 력사적공적

 

2. 본론

(1)

 

조선인민은 무엇보다도 중국공산당이 동북을 차지할수 있는 강력한 군사정치적지반을 마련해주었다.

조중 두 나라 인민들은 오랜 기간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일제를 반대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후 조선인민은 중국혁명을 돕는것을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무로, 혁명적의리로 간주하고 주도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로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승리를 추동하였다.

항일전쟁승리후 동북지방은 중국혁명에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위치에 놓이게 되였다. 따라서 동북지방을 누가 차지하는가 하는것은 전반적전쟁국면을 좌우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일제의 패망직후 만주에서의 합법적권리를 행사할수 있게 된 장개석도당은 동북의 《행정접수》를 위하여 국민당정부의 주요인물들과 적지 않은 인원들을 장춘과 심양을 비롯한 매 도시들과 주요거점들에 파견하는 한편 온갖 반동세력들을 규합하여 동북에서 저들의 지반을 닦으려고 책동하였다.

미국으로부터 수십억US$에 달하는 막대한 군사원조를 받고 미국제무기로 장비한 장개석국민당군은 2개 군단의 병력을 산해관 서쪽계선에 배치하여 인민해방군 부대들의 동북진출경로를 차단하는 한편 무력을 동북지방에 대대적으로 투입하였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동북지방에서의 그 력량이 매우 미약한것으로 하여 동북을 탈취하려는 장개석도당의 책동에 주동적이고도 적극적인 행동으로 대처하지 못하고있었다.

 

1945년 11월과 1946년 1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동북국에 보낸 결정과 전보문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여있다.

《우리가 전 동북을 점령하려고 한 기도는 불가능한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동북지방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에게 근거지가 없으면 전쟁의 승리가 있을수 없다. 그러므로 병력을 분산하여 군중을 발동시키고 비적들을 숙청하며 근거지를 창설해야 하며 또 병력을 집중하여 적들의 공격을 타파함으로써 근거지창설을 엄호하여야 한다. 이 량자는 꼭 병진시켜야 한다.》

* (《길림지방당사연구문취》 중문 길림인민출판사 2001년 13~14페지)

 

이처럼 중국공산당앞에는 전국해방을 이룩하는데서 전략적요충지대로 되는 동북지방을 위력한 근거지로 꾸리며 여기에서도 군중적기초가 좋고 지리적으로 유리한 연변지구를 군사정치적거점으로 틀어쥐는것이 절박한 요구로 나섰다.

중국공산당이 전반적중국혁명의 승리를 이룩하는데서 관건적고리로 내세운 이 중대한 사업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간부들과 그들이 조직한 조선인부대들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훌륭히 수행되게 되였다.

일찌기 대일작전을 결속하던 시기에 전후 중국 동북지방의 정세변화에 대하여 예측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4(1945)년 8월 24일과 9월 15일을 비롯한 여러 기회에 동북지방에 파견되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에게 중국 동북지방을 중국혁명의 강력한 근거지로 꾸리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이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의 우수한 군사정치간부들이 중국 동북의 각지에 파견되여 동북해방을 위한 튼튼한 정치군사적지반을 마련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벌리였다.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은 우선 동북지방에 강력한 무장부대를 조직하였다.

동북지방에서 강력한 무장부대를 조직하는것은 이 지역을 정치군사적으로 튼튼히 꾸리는데서 나서는 선차적이고도 중대한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북지방에 파견되여가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에게 무장대오는 항일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을 핵심으로 하고 조중인민들의 우수한 청년들로 조직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각처에서 분산적으로 활동하는 인민무장대들을 거기에 인입시켜 무장대오를 짧은 기간내에 급속히 확대하도록 하시였다.

강건, 박락권, 최광, 지병학동지를 비롯한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은 동북지방에 강력한 무장대오를 조직하는것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내세우고 대중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적극 발동하여 무장대오를 조직해나갔다.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은 군중집회를 열고 동북지방의 정세를 분석한 다음 인민들이 압박과 착취없는 새세상에서 살자면 당장 자기 손에 무장을 잡고 덤벼드는 원쑤들과 싸워야 한다고 호소한데 이어 청년들을 적극 발동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직사업을 하였다.

무장대오를 조직하기 위한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의 정치선전은 연길에서만 아니라 훈춘, 왕청, 도문, 룡정, 화룡 등 연변각지에서 활발히 진행되였으며 특히 조선청년들의 무장대탄원열의는 온 동북땅을 휩쓸었다.

 

당시 출판물자료에 의하면 1946년 5월부터 6월까지사이에 연변 5개 현에서 3 659명이 입대하였다고 한다.

1946년 6월 연길제2중학교 졸업생들중 1명을 제외하고 전원(1명은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이 입대하였다. 연길과 다른 현들에서도 수천명의 중학교졸업생들이 입대하여 전선으로 떠났다.

* (《연변조선족자치주개황》 조문 연변인민출판사 1984년 116~117페지)

 

그리하여 연변지구를 비롯한 동북의 여러 지역에서 매우 짧은 기간에 수많은 조선인부대들이 조직되고 그 력량은 급속히 확대되였다.

주체34(1945)년 9월부터 그해말에 이르는 기간에 연변지구에서는 길동분구사령부산하에 야전군 2개 련대(8 000명)와 군정대학(1 009명), 8개의 보안련대(매 련대에 2 000명)로 구성된 큰 규모의 조선인부대가 편성되였고 목단강지구의 목단강군구사령부, 남만지구의 길남분구사령부, 길림지방의 길림분구 제72련대, 할빈지구의 조선인보안련대들이 련이어 조직되였는데 그 력량은 총 25만여명에 달하였다.

조선인부대들이 조직됨으로써 동북지역에서 반동과 토비들의 준동을 제압하고 국민당군의 대규모침공에 대처할수 있는 군사적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은 또한 조선인부대에 의거하여 동북지방의 안전을 보장하였다.

 

일제패망후 연변지구를 비롯한 동북지방에서는 토비화된 일만군경잔당들과 지방토호 등 반동세력들이 장개석특무망의 배후조종밑에 《치안유지회》니, 《동북정진군 5탄》이니 하는 반동기구와 반혁명무력을 조직하여 민심을 소란케 하고있었다.

당시 중국 동북지방에 공산당을 반대하는 각이한 토비무리는 무려 9만명이나 있었다.

*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5 《승리》 조문 민족출판사 1992년 182페지)

 

일제주구와 토비들을 숙청하고 동북지방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은 동북해방전쟁승리의 선결조건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되여가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에게 정권기관들이 무장대오를 비롯한 민주력량을 동원하여 사회질서교란자들을 엄격히 단속하며 토호들과 토비들, 일본군대 패잔병들과 만주괴뢰군 잔여세력들의 준동을 철저히 진압하도록 적극 방조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인부대들은 수백명 지어 수천명씩 둥지를 틀고 준동하는 반동무장집단을 평정하기 위하여 화룡, 훈춘, 명월구, 라자구, 오도양차, 삼도만, 의란구, 천교령 등 동북의 여러 지역에서 소탕전을 벌려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대규모매복전으로 1 000여명의 적들을 살상포로한 연길현 의란구전투와 악질적인 안탄장(안진유), 마희산일당 수천명을 괴멸에로 몰아넣은 라자구전투, 로흑산전투 등은 본격적인 동북해방작전에 앞서 조선인부대들이 진행한 대표적인 전투들이다.

조선인부대들은 수많은 전투들을 통하여 주체35(1946)년 7월까지 연변지구를 위협하던 토비들을 완전히 진압하고 각종 포 24문, 중기관총, 경기관총 76정, 많은 군수물자들을 로획하였다.

조선인부대들은 연변에서만이 아니라 남만과 북만지방에서도 반혁명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적극적인 작전을 전개하였다.

녕안현에서만도 조선인부대들은 100여차의 전투를 벌려 토비무리들을 완전히 숙청하였다. 중국 동북지방에서 조선인부대들이 진행한 반토비작전으로 토비들은 《고려부대(조선인부대)》라면 맞다들념도 못하고 벌벌 떨며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반토비작전에서의 빛나는 성과로 제3차 국내혁명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토비들이 더는 련합된 세력으로 활동할수 없게 되였으며 적들이 바라던 《내용외합》은 파탄되였다. 이것은 수많은 조선혁명가들의 붉은 피로 아로새겨진 승리였다.

 

이에 대하여 중국도서 《김일성주석과 동북해방전쟁》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져있다.

김일성주석은 일찌기 조선의 군정간부들을 동북에 파견하실 때 그들에게 토호, 토비들과 일본군 패잔병들, <만주국>잔여세력을 진압하는데서 중국동지들을 적극 방조할데 대한 훈시를 주신바 있다. 동북해방전쟁승리에 기여한 김일성주석의 업적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도 있다.》

 

조선인부대들은 한편 내부에 잠입한 불순적대분자들을 적발숙청하여 연변지구를 군사정치적으로 튼튼히 다지기 위한 투쟁도 적극적으로 벌렸다.

1945년 10월 길동분구사령부가 10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연길포로수용소에 침투시켜 60여명의 악질주구들을 적발처단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된 일제의 주구청산투쟁은 1930년대초 일제가 1 700여명의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집단참살한 해란강대학살사건에 가담한자들에 대한 군중심판을 계기로 더욱 본격적으로 추진되였다. 연길에서 진행된 해란강류혈사건성토대회는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연변지구를 군사정치적으로 공고히 다지며 장개석도당을 반대하는 국내해방전쟁에로 인민들을 조직동원하는데서 커다란 작용을 하였다.

조선인부대들이 연변을 비롯한 동북각지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동북해방작전을 위한 준비를 성과적으로 갖출수 있게 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은 또한 중국공산당을 도와 연변의 당 및 정권기관과 대중단체들을 내오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연변지구에 당 및 정권기관과 대중단체들을 내오고 광범한 인민들을 묶어세우는것은 한시도 미룰수 없는 급선무로 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북지방에 파견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이 민주주의적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각지 인민들의 사업과 공산당지방조직을 꾸리기 위한 사업, 대중단체조직사업을 적극 협조하도록 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은 중국공산당 동북국과의 밀접한 련계밑에 주체34(1945)년 10월초 룡정에서 첫 당소조를 조직한데 이어 연길, 화룡, 왕청 등 여러 지역에 당소조들을 련이어 내왔다.

이에 기초하여 중국공산당 연변위원회가 짧은 기간내에 조직될수 있었으며 연변당위원회는 당과 대중단체, 정권건설에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과 조선사람들의 적극적인 협조밑에 동북지방에서 중국공산당의 기층당조직들이 꾸려지고 부단히 확대강화됨으로써 동북해방전쟁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실현할수 있는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이와 함께 각 현, 구들에 정무위원회와 로동자동맹, 농민동맹, 청년동맹, 녀성동맹을 비롯한 계층별 대중단체들이 조직되여 광범한 인민들을 묶어세웠다.

연변지구의 혁명력량을 비상히 강화하고 이 일대를 튼튼한 군사정치적거점으로 다지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것은 1945년 9월 연변민주대동맹의 결성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은 여러 대중단체들을 조직한 기초우에서 연변지구의 각계각층 인민대표들을 망라한 연변민주대동맹을 결성하고 정연한 하부조직체계를 수립함으로써 해방된 동북의 전지역에 민주정권을 수립할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마련하고 광범한 대중을 해방전쟁의 승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1946년 2월 20일부 《연변일보》가 연변민주대동맹의 맹원수가 14만 5 000명이였다고 전하였는데(그중에서 조선사람들이 94%를 차지함) 당시 연변 5개 현의 총인구가 85만명이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것은 연변민주대동맹이 실로 큰 조직체였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 (《연변조선족자치주개황》 조문 연변인민출판사 1984년 87페지)

 

연변민주대동맹의 핵심성원들은 해방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영향을 받아 반일투쟁에 참가하였던 공산주의자들과 애국적인민들이였다.

 

연변민주대동맹의 역할에 대하여 주보중은 《우리 당의 동지들은 연변민주대동맹이 군대를 건설하고 구정권을 개조하고 청산투쟁을 발동하고 토지개혁을 진행하고 국민당특무를 반대하는 등 면에서 모두 결정적역할을 놀았으며 지어 실제적인 정권역할을 놀았다는것을 일치하게 승인해야 할것이다. 당의 정책을 시달하고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연변민주대동맹으로부터 오는 그 어떤 저애도 받은것이 없다. 연변민주대동맹은 우리 당의 주장을 찬성하고 우리 당을 협조하였으며 특히 연변의 인민무장대오를 조직하고 각지에서 횡행하던 흉악한 국민당토비들을 숙청하고 전선을 지원하는 등 면에서 매우 큰 동원, 조직적인 역할을 놀았다. 민주대동맹이 일으킨 력사적역할과 공적은 지워버릴수 없는것이다.》*¹라고 평가하였으며 연변에서 당사업을 하던 옹문도는 민주대동맹사업에 대하여 《민주대동맹은 당의 령도밑에 있는 군중조직이였다. 동맹은 조선청년들을 동원하여 해방전쟁에 참가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그 당시 연변형세가 비교적 안정하여 전선을 지원하게 된것은 민주대동맹이 중요한 역할을 논데 있다.》*²고 증언하였다.

*¹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5 《승리》 조문 민족출판사 1992년 707페지), (《연변문사자료》 4권 조문 212페지)

 

이처럼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과 조선인부대들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연변지구를 비롯한 동북의 넓은 지역에 강력한 군사정치적거점이 꾸려짐으로써 중국공산당과 해방군은 여기에 발을 붙이고 근거지창설을 다그쳐나갈수 있게 되였다.

당시 중국의 한 출판물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10여만명에 달하는 팔로군, 신사군부대들과 2만여명의 중국간부들이 조선인집단구역에 발을 든든히 붙일수 있은것은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과 조선의 투사들이 당을 건설하고 혁명단체를 건설하고 인민무장대오를 조직하고 민주정권을 수립하여 사업기초를 다져놓고 국면을 타개한것과 갈라놓고 생각할수 없다.》

참으로 일제패망직후 동북지방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영향력이 아직은 미약했던 당시의 조건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이 주동이 되여 동북의 광활한 지역에 강력한 조선인부대들과 당, 정권기관, 대중단체들을 조직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이 일대는 동북해방의 믿음직한 군사정치적기지로 전변되게 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부교수 엄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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