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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의 해방전쟁승리에 기여한 조선인민의 력사적공적

 

1. 서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해방직후 중국인민해방군이 동북지방에서 불리한 형편에 처하게 되였을 때 그들을 적극 지원하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건국의 첫걸음을 뗀 매우 어려운 때였지만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을 지원하는것을 응당한 국제주의적의무로 간주하고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였습니다.》

주체34(1945)년 8월 1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승리로 일제의 식민지기반에서 해방된 조선인민은 새 민주조선건설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광활한 령토와 수억만의 인구를 가진 조선의 린방인 중국에서는 일제의 항복선언이 발표되기 바쁘게 국공대결이라는 또 한차례의 내전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국내전쟁을 개시할 당시 장개석도당은 강력한 비행대와 해군을 포함한 430여만의 대군을 가지고있었으며 중국 전 인구의 70%에 해당한 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통제하고있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군대는 120만명의 보병밖에 없는데다가 오랜 기간 일제와 항전을 하다보니 무장장비수준도 매우 한심한 형편에 있었다.

수적으로나 군사기술장비에 있어서 비할바없이 월등한 국민당군대와의 싸움은 중국공산당에 있어서 힘에 겨운 전쟁이고 엄혹한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제3차 국내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이 전쟁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할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지원을 주겠다는 나라도 없었다.

이 글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이 중국인민과 어깨겯고 중국 동북과 관내의 광활한 지역, 최남단의 해남도에까지 나가 중국인민의 해방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한 력사적공적에 대하여 사실자료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해설하려고 한다.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부교수 엄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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