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칭송의 노래 영원하리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온 나라 강산에 차넘치는 이 봄에 혁명의 수도 평양으로 조국땅 방방곡곡의 수많은 인민들이 수령님에 대한 노래, 불멸의 태양송가를 안고 구름처럼 모여왔다.
지금 수도의 극장들에서는 중앙과 지방의 수많은 예술단체들,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기동예술선동대원들과 예술소조원들의 공연이 진행되고있다.
내 조국 어데 가나, 이 강산 어딜 보나 속속들이 슴배여있는 우리 수령님의 체취를 페부로 느끼며 일터와 가정, 초소와 마을들에서 부르던 그리움의 노래가 수도의 극장들에서 절절히 울리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의 유훈의 뜻이 꽃피는 우리 조국의 부강번영속에서 수령님의 력사는 계속 흐르고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노래, 그리움의 노래.
우리의 생활속에, 우리 인민 누구나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새겨져있는 그리움의 노래가 뜻깊은 축전무대에 오르고있다.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세상에는 오랜 력사를 자랑하고 규모와 형식이 방대하고 다양한 예술축전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과 같이 전인민적인 위인칭송의 예술축전이 또 어데 있으랴.
축전명칭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이 축전은 전문예술단체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 인민이 참가하는 전인민적인 예술축전이다.
주체97(2008)년 4월 태양절을 맞으며 처음으로 진행된 전국예술축전(당시)을 보더라도 수십년전 첫 《천리마》호뜨락또르생산에 참가하였던 70살을 가까이한 천리마기수들이 출연한것을 비롯하여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달려온 서로 다른 직업과 나이,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였다.
그들속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키워주신 대의원도 있었고 그이께서 포전에서 흙묻은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신 농민영웅도 있었으며 강계의 정방공처녀들과 수도의 평범한 도로관리원들도 있었다.
이처럼 조국의 방방곡곡, 초소와 일터마다에서 우리 수령님노래를 안고 축전무대로 모여온것이였다.
문화성 일군인 박성철동무의 말에 의하면 이번 축전도 예술단부류, 예술선전대부류, 기동예술선동대부류, 예술소조부류로 나뉘여 진행되며 요술축전도 있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미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예술인들과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에 많이 참가하여 우수한 평가를 받은 함경북도예술단, 청년중앙예술선전대, 김정숙평양방직공장 기동예술선동대, 담배련합기업소 기동예술선동대 등 많은 단체들이 참가하게 된다고 한다.
이번 축전의 특징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예술소조원들과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이 많이 참가하는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수도 평양 아니 인민이 있는 곳 그 어디에서나 끝없이 울려퍼지는 태양칭송의 노래, 우리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노래!
무릇 노래를 심장의 언어라고 한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이 땅우에 새겨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헌신의 이야기, 정녕 전하고전해도 못다 전할 그 많은 이야기들을 노래에 담아 부르고 또 부른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민은 부닥치는 난관앞에서, 겹쳐드는 고난앞에서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일떠서군 했다.
언제인가 취재길에서 만났던 한 녀성관리위원장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수령님 뵈온 꿈은 꿈같지 않아서 그리움은 더없이 넘쳐납니다. 지금도 저는 수령님 그 음성 귀전에 들리는것만 같아 동터오는 이른새벽이면 수령님 그리는 노래를 부르며 포전길을 밟아보군 합니다.》
그의 가슴속에 간직된 우리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
그는 1970년대 청년분조, 청년작업반운동의 앞장에 섰던 양덕군 은하리의 첫 세대 청년분조장이였다.
수십년전 전국농업대회에서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꽃바구니를 드릴 때 그는 18살의 단발머리처녀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축원의 인사를 올리는 단발머리처녀앞으로 주석단을 에돌아나오시였다. 나라의 한해농사를 총화짓는 자리에 나어린 처녀가 참가한것이 그리도 기쁘시고 대견하시여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의 등을 다독여주시고 허리를 숙이시며 어디서 왔는가고 물어주시였다.
장내에 열광적인 만세환호가 터져오르고 박수갈채는 끊길줄 모르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은하리, …양덕군 은하리는 참 좋은 곳이지. 그전에 내가 그곳에 한번 갔댔소. …》라고 하시며 처녀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였다. …
당시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옥련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어려있는 고향땅에 뿌리를 내리고 수령님의 념원을 꽃피우는 길에서 청춘시절을 빛내일 결의 안고 농장의 주인이 된 처녀였다.
산골포전에서 풍작을 마련한 기쁨이 크면 클수록 청년분조원들의 마음은 어버이수령님께로 달리였다.
심심두메인 자기들의 고향땅을 찾으시여 앞으로 잘살게 되면 편지를 하라고 마을사람들에게 당부하셨던 어버이수령님께 그 후손들이 충정의 편지를 올리면 얼마나 기뻐하실가 하는 생각이 그들을 새로운 위훈창조에로 불러일으켰던것이다.
제일 어려울 때마다 수령님께 충정의 보고를 올릴 그 시각을 그려보았고 처녀들의 힘으로 농사를 짓는것이 너무도 힘들어 주저앉고싶을 때마다 수령님 그리는 노래를 불렀다고, 그 절절한 그리움의 노래는 그대로 기적창조의 원천이였다고 김옥련동무는 말했었다.
어찌 그뿐이랴. 우리 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새겨져있는 이 땅 그 어느곳에서나 이런 충정의 마음들이 기적과 위훈을 낳고있다.
하루의 시작도 끝도 우리 수령님의 노래로 새겨지고 일터와 마을, 건설장마다에서도 충정의 노래, 그리움의 노래 끝없이 울려나오는 이 땅, 그 노래들이 울려퍼지는 곳마다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이 현실로 꽃펴나고있는것이 내 조국의 현실이다.
제6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에서 우리 인민이 목청껏 부르게 될 충정의 노래.
못 견디게 그리운 우리 수령님 노래, 수령님 유훈 현실로 꽃피운 자랑을 담은 노래, 수령님 뜻, 장군님 뜻 받들어 맡은 일 더 잘할 결의를 담은 노래…
참으로 수령에 대한 그리움과 충정으로 가득찬 우리 생활, 우리 조국이다.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그것은 정녕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노래로 수령의 업적을 구가하고 수령의 영생을 기원하는 전인민적인 축전, 오직 우리 나라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태양칭송의 봄축전인것이다.
태양절, 봄명절과 더불어 위대한 태양의 노래, 수령칭송의 노래는 이 땅우에 영원히 울려퍼지리라.
주체108(2019)년 4월 11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