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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위인의 숭고한 사랑의 세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빛나는 혁명력사의 갈피마다에는 국적과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과 동지적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신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수많이 아로새겨져있다.

우리 수령님의위대한 사랑과 보살피심에 의하여 꺼져가던 생명을 되찾고 자주를 위한 정의의 길에서 생을 빛내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고 생의 활력을 찾은 사람들중에는 기네전국공보위원회 위원장이였던 에밀레 똠빠빠도 있다.

 

1964년 9월초 어느날 에밀레 똠빠빠는 기네공화국 국립방송국대표단 단장으로 대표단을 이끌고 우리 나라를 방문하기 위하여 중국 베이징에서 렬차에 올랐다. 렬차가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에서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해열제를 먹고 좀 나아지는것 같아 그는 평양에 도착한 후에도 치료를 받지 않고 환영연회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수그러든줄 알았던 병이 또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연회가 끝난 후 겨우 숙소에 돌아온 그는 더는 견딜수가 없어 아픔을 호소하였다. 의사들이 달려와 진찰을 하였다. 결과는 매우 심각하였다. 생명이 경각에 도달하였던것이다.

 

이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능한 의사들을 총동원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고 하시고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우리 나라의 관록있는 의학박사들의 참가밑에 똠빠빠를 구원하기 위한 의사협의회가 진행되고 련이어 치료전투가 벌어졌다.

장시간의 긴장한 수술이 진행되였다. 드디여 똠빠빠가 정신을 차리였다.

우리 의사들은 물론 그가 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맥을 놓고있던 대표단성원들도 환성을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똠빠빠가 정신을 차리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시면서 빨리 회복시키라는 과업을 주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똠빠빠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절세의 위인으로 세계의 칭송을 받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범한 외국인의 병에 대하여 그처럼 마음을 쓰며 치료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였다.

첫 수술후 그는 비록 죽음의 나락에서 구원되였지만 다른 병이 겹치여 3차례의 수술을 더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우리 의사들의 지극한 정성에 의하여 똠빠빠의 병은 나날이 호전되여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없이 기뻐하시며 신선한 과일과 식료품도 보내주시였다.

주체53(1964)년 11월 30일, 이날은 똠빠빠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그를 불러주시였던것이다.

 

이날 똠빠빠가 방에 들어서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걸음걸이부터 유심히 살피시고나서 자신의 곁에 앉혀주시였다. 너무도 갑자기 차례진 크나큰 영광에 똠빠빠는 목이 메여 인사말도 변변히 드리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술자리도 만져보시고 수술자리가 결리지 않는가고 물으시며 똠빠빠의 건강을 놓고 여러모로 마음을 쓰시였다. 얼마후 수령님께서는 치료를 담당한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어려운 수술을 용케 했다고, 국제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였다고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다정히 바라보시며 완쾌된 다음 더 있으면서 휴식도 하고 명승지들과 고적들도 돌아본 후 천천히 귀국하라고 하시며 뜨거운 은정을 부어주시였다.

 

똠빠빠의 두볼로는 격정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것은 해외에 나와 치료를 받는 자기가 외로와할세라 친부모의 심정으로 힘을 주시고 또 만나주시여서는 완쾌되여가는 모습을 보아주시며 친어버이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우리 수령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였다.

대표단단장으로 조선에 왔다가 급병에 걸려 위대한 수령님께 걱정만 끼쳐드렸다고 생각하니 그는 죄송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똠빠빠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주체53(1964)년 12월 31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어린이들이 준비한 1965년 설맞이공연에 그를 초대해주시였다. 무대에서는 1964년에 우리 나라에서 이룩된 자랑찬 성과들을 담은 노래와 춤 그리고 새해의 휘황한 전망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련이어 펼쳐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이 공연을 잘한다고 하시면서 똠빠빠에게 걸음을 걸을수 있으면 쉬염쉬염 여러곳을 돌아보라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다심한 사랑속에서 그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였다. 그는 제발로 걸어다니며 조선혁명박물관, 당시의 평양방직공장과 강선제강소, 석암유원지, 동물원, 대성산 등 여러곳을 참관하였고 조선예술영화도 관람하였다.

똠빠빠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사랑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귀국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똠빠빠가 병을 깨끗이 털고 조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별비행기까지 내여주시고 그의 치료를 담당하였던 의사와 간호원도 함께 떠나도록 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똠빠빠는 우리 나라에 도착한지 4개월만에 완치된 몸으로 조국에 돌아가게 되였다.

 

그때 기네대통령은 그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마련하여주신 특별비행기를 타고 건강한 몸으로 귀국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국경을 초월한 우리 수령님의 뜨거운 인간애에 감복을 금치 못해하면서 그이께 감사의 인사를 삼가 올리였다.

똠빠빠는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났다. 인간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사랑이 그대로 불사약이 되여 그를 소생시키였고 생의 활력을 부어주었다.

하기에 그는 자기의 제1조국은 기네이고 제2조국은 김일성주석님의 사랑의 품에서 두번다시 태여난 조선이라고 하면서 늘 우리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과 류다른 추억의 감정을 안고살았다.

진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인간중의 인간, 대성인이시였다.

 

한없이 폭넓고 웅심깊은 인정미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계 여러 나라 국가 및 정부수반들과 정계, 사회계, 학계의 수많은 저명한 인사들과도 두터운 우의를 맺으시고 주실수 있는 사랑과 믿음을 다 안겨주시였다. 때문에 그 누구든지 우리 수령님을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오늘도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우리 수령님을 높이 칭송하며 이렇게 한목소리로 말하고있다.

김일성주석님은 인류의 영원한 태양이시며 만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라고.

주체107(2018)년 7월 19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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