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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의 존재와 그 력사를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책동

 지난날 일제는 총칼로 우리 나라를 강점하였을뿐아니라 민족의 력사까지 외곡말살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한 우리 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의 존재와 그 력사를 거세말살하려고 피눈이 되여 날뛴것은 그 대표적실례이다.

간악한 일제는 우리 나라에 피묻은 발을 들여놓은 첫시기부터 우리 민족사의 시원을 열어놓은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에 대한 력사적사실을 없애버리기 위한 범죄적책동에 달라붙었다.

력사는 해당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빛내여주고 넋을 이어주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이다.

이로부터 일제는 우리 인민의 민족자주의식을 말살하고 저들의 침략과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중요한 고리의 하나를 력사부정과 외곡, 특히 단군과 고대조선의 력사를 거세말살하는데서 찾았다.

그러면 일제는 왜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의 존재와 력사를 외곡말살하기 위해 그토록 악착하게 날뛰였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으로서의 우리 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무참히 짓밟아버림으로써 우리 나라에 대한 제놈들의 식민지지배를 손쉽게 실현하자는데 있었다.

당시 일제는 무력으로 조선을 강점하기는 하였으나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있는 우리 인민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치고있었다.

교활한 일제는 이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우선 우리 인민의 민족자주의식의 력사적바탕인 우리 민족사의 유구성과 선진성, 특히 우리 민족사의 시원을 열어놓은 단군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고대조선의 력사를 외곡말살하는데 달라붙었다.

그것은 다음으로 조선민족의 《렬등성》과 일본야마도민족의 《우월성》을 조작설교함으로써 우리 인민들로 하여금 조상을 경시, 멸시하게 하고 우리 인민으로 하여금 자기 민족의 력사와 전통에 대한 실망과 허무감에 빠져 제놈들의 식민지통치에 순종하게 하자는데 있었다.

옛 기록에서 전하는 단군조선의 건국년대는 B.C. 2333년이다.

그런데 일본의 허황한 건국신화에서 전하는 저들의 국가기원년대는 B.C. 660년으로서 단군의 건국년대보다 근 1700년이나 뒤떨어진다. 이것은 조선민족이 일본의 야마도민족보다 훨씬 앞서 국가를 세우고 문명시대를 개척하였다는것을 실증해주는 유력한 증거이다.

그런것만큼 단군과 고대조선의 력사를 말살하지 않고서는 우리 인민들에게 조선민족은 력사로 보아도 야마도민족보다 《렬세》하며 따라서 《렬등》한 조선민족은 《우수》한 야마도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느니, 야마도민족과 조선민족은 한 조상의 뿌리에서 돋아난 《동조동근》이라느니 하는 따위의 흑백을 전도한 식민지지배설을 주입시킬수 없었던것이다.

일제의 단군 및 고대조선사말살책동의 밑바탕에는 이처럼 흉악한 속심이 깔려있었다.

일제의 범죄적인 우리 민족의 원시조말살행위는 조선을 강점한 직후 단군과 관련한 력사책들을 모조리 략탈하여 소각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 일제의 초대총독이였던 데라우찌는 서울에 기여들어 둥지를 틀기 바쁘게 조선의 관습과 제반제도를 《조사》한다는 구실밑에 전국각지의 책방들과 향교, 서원, 개인집들을 샅샅이 뒤지여 단군관계 력사책들을 모조리 압수하여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과 그가 세운 고조선에 대한 력사책들이 거의나 전해지지 못하고있는것은 전적으로 일제의 간악무도한 책동때문이였다.

단군과 고대조선의 력사를 거세말살하기 위한 첫 단계로 단군관계서적들을 모조리 압수하여 소각한 일제는 그 다음단계를 조선력사를 저들의 력사보다 뒤늦게 발생발전한것처럼 위조한 새로운 《조선사》를 꾸며내는데 달라붙었다.

 

※ 일제는 1915년 우리 인민의 유구한 민족사를 저들의 비위에 맞게 외곡날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중추원에 《조선사편찬과》라는것을 조작설치하였으며 1922년에는 그것을 《조선사편수회》로 뜯어고치고 력대조선총독과 정무총감들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조직적인 조선력사외곡날조행위를 감행하였다.

 

일제의 이 날강도적인 행위에서 기본으로 삼은것은 단군의 존재와 력사를 외곡말살하는것이였다.

여기에 대하여서는 일제가 1916년 1월에 공포한 《편찬지침》이라는데서 《조선사》의 서술은 편년체로 한다고 못박아놓은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 편년체란 력사적사실들을 왕대순, 년월일순으로 기록하는 력사서술의 한 형식을 이르는 말이다. 력사를 편년체로 서술하려면 적어도 왕대가 차례로 갖추어져야 하고 해당왕들의 통치기간에 벌어진 사건들의 년대가 명백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 그 어느 민족의 력사를 보아도 원시사회에서 갓 벗어난 첫 국가시대의 력사는 자료의 심한 부족으로 인하여 편년체로 서술된 례가 없다. 이것은 우리 민족사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교활한 일제는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조선사》편찬에서 굳이 편년체서술형식을 택함으로써 우리 민족사에서 단군조선의 력사를 송두리채 없애버리려고 꾀했던것이다.

일제가 단군을 신적인 존재로 터무니없이 날조하면서 《조선사》에 올리지 못하게 강박한것도 이러한 책동의 한고리였다.

일제는 또한 《조선사》의 시대구분을 교묘하게 변경시켜 제1편에 서술할 력사적시기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방법으로 단군조선의 력사를 취급할수 없게 하였다.

 

※ 원래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편찬지침》이라는것을 조작하면서 《조선사》의 1편을  《상고, 삼한》시기로 정했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하면 《삼한》이전시기의 고대사도 편찬대상으로 되며 따라서 고대시기 단군조선의 력사도 취급되여야 한다는것을 알고는 1923년 1월에 1편에 서술할 력사적시기를 《삼국이전》으로, 1925년 10월에는 다시 《신라통일》이전으로 끌어내렸다. (《신라통일》이란 신라가 당나라침략자들을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들을 멸망시킨것을 이르는 말로서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는 말이다)

 

일제가 《조선사》의 1편에 서술할 력사적시기를 거듭 아래로 끌어내린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단군시대의 력사를 취급할 공간을 없애버림으로써 저들의 범죄적행위를 합리화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일제는 단군의 존재와 력사를 외곡말살하려는 저들의 책동에 합세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설사 일본인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제거해버렸다.

일제의 이와 같은 범죄적책동에 의하여 단군시기의 력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대신 우리 나라 력사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왕으로 즉위한 B.C. 57년부터 시작된것으로 날조된 《조선사》 제1편이 나타나게 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속에서는 단군을 우리 민족의 건국시조로 숭상하던 조상전래의 전통적인 관념이 점차 사라지고 단군을 실재한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존재로 보는 그릇된 관념이 류포되게 되였다.

이러한 비극적사실은 나라를 빼앗기면 민족의 력사가 동강날뿐아니라 나중에는 조상마저 잃어버리게 된다는 심각한 교훈을 후세에 남겼다.

이처럼 일제는 우리 민족의 력사를 외곡말살하기 위해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은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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