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왕검성을 지켜싸운 고조선의 무관 성기
이 이야기는 고조선의 무관이며 대신인 성기가 B. C. 110년부터 B. C. 109년사이에 벌어진 한나라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왕검성을 지켜 최후의 순간까지 어떻게 싸웠는가를 전하는 력사이야기이다.
B. C. 110년 한나라의 무제는 18만에 달하는 막대한 병력을 저들의 북쪽변방지대와 동쪽바다가로부터 갈석(만리장성계선)에 이르는 변방지대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B. C. 109년 섭하라는 대신을 《사신》의 명목으로 고조선에 보내면서 우거왕이 한나라에 복종하도록 《설복》할데 대한 지시를 주었다. 그러나 우거왕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사신 섭하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돌아가면서 자기를 바래주려고 따라나선 고조선의 비왕인 장을 죽이고 도망치는 비렬한 행위를 감행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고조선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들은 군사를 몰아 섭하를 추격하여 끝내는 죽여버리고말았다. 이것을 구실로 한나라 무제는 고조선에 대한 전쟁을 일으켰다.
※ 한나라가 고조선에 쳐들어온 기본목적은 고조선의 넓은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령토를 확장하며 이와 함께 고조선인민들을 저들의 노예로 만들려는데 있었다.
B.C. 109년 한나라군은 5만명의 수군과 륙군을 무어 바다와 륙지에서 동시에 공격해들어왔다.
순체가 거느린 륙군은 오만무례하게 큰소리를 치면서 북쪽으로 쳐들어왔으나 고조선군의 힘있는 반격으로 첫 싸움부터 패하였다.
양복이 거느린 수군은 발해를 건너 렬구에 와닿았다.
※ 수군대장 양복은 륙군과 합세하여 왕검성(부수도―료녕성 개주)을 공격하도록 되여있었으나 제 혼자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할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우쭐거렸다. 공명심이 하늘에 닿은 양복은 7천명의 군사로 왕검성을 공격하였으나 고조선군의 강한 반격으로 어쩌지를 못하였다.
고조선의 패수(오늘의 대릉하)를 지켜선 군사들은 어떻게 하든지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달려드는 순체에게 또다시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하여 한나라군은 숱한 주검만을 남겼다.
많은 군사들을 잃고 이제 더는 어쩔수 없게 되자 한나라군은 담판의 방법으로 고조선을 굴복시켜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무제는 우거왕에게 담판을 제기해왔다. 그리고 그 막뒤에서 력량을 재수습하려고 꾀하였다.
한나라의 무제는 위산이란자를 담판장으로 내보냈다.
이에 우거왕은 태자로 하여금 말 5천필, 1만의 군대와 많은 무기들을 들고 시위를 벌리면서 패수를 건너가 담판에 응하게 하였다.
담판장에 나온 사신 위산과 좌장군 순체는 패수를 건너오는 고조선군의 위력에 겁을 먹고 말 한마디 해보지도 못한채 꽁무니를 사리고말았다.
이렇게 되자 한나라 무제는 위산의 비겁한 태도에 분격하여 그를 죽여버렸다. 그리고는 한시바삐 우거왕이 들어있는 왕검성을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어떻게나 항복을 받아보자는 속심이였다.
싸움은 날이 갈수록 더욱 치렬해졌다.
순체는 패수 상군을 물리치면서 왕검성에까지 기여들었다.
그러나 양복은 첫 싸움에서 참패를 당하여 10여일간이나 산속에 숨어지내다가 겨우 살아나서는 공포에 질려 고조선과 화의를 맺자고 주장하였다.
이때 고조선은 양복에게 밀사를 보내여 화의를 교섭하였다.
※ 순체는 양복이 고조선과 내통하고있는것으로 보아 반변을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한나라 무제는 자기의 심복졸개인 공손수를 전장에 파하여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였다.
공손수가 현지에 나타나자 순체는 양복의 약점을 고해바치면서 그의 군사들까지 자기의 휘하에 넣었다.
무제는 공손수의 보고를 듣고나서 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그마저 죽여버렸다.
그러면서 적들은 근 1년동안 왕검성을 겹겹이 둘러싸고 물러서지 않았다. 기어이 결판을 보려는 심산이였다.
날이 갈수록 왕검성의 사정은 점점 어려워져갔다. 이렇게 되자 고조선통치배들속에서는 적에게 투항하려는 배신자들이 나타났다.
고조선의 상 한음, 상 로인, 니계상 참,
하지만 우거왕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성기만을 믿고 왕검성을 그에게 맡겼다.
그러던 어느날 배신자 니계상 참은 자기의 졸개를 시켜 우거왕을 살해하고 적에게 투항변절하는 행위를 하였다. 이것은 성내 백성들의 더없는 격분을 자아냈다.
성기는 배신자들에 대한 증오로 가슴이 끓어올랐다. 그는 기어이 원쑤를 갚아야 한다, 그리고 침략자를 몰아내야 한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성기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성기는 군사들의 대렬을 재정비하고 인민들을 불러일으켰다.
《여러분, 우리는 원쑤놈들에게 왕검성을 내줄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비겁하게 나앉는다면 후손들이 용서치 않을것입니다.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 성기의 호소에 화답하는 기치창검은 하늘을 찔렀다. 성기의 지휘밑에 왕검성인민들은 용기백배하여 다시 일떠섰다. 그들은 습격조를 무어 한나라군을 족쳤고 성에 의거하여 여러가지 병법을 써가며 적을 무찔렀다.
적들로서는 성기가 가장 큰 골치거리였다.
적들이 왕검성을 포위한지도 벌써 1년이 되여온 어느날이였다.
그사이 날마다 벌어지는 싸움에서 숱한 한나라군사들이 쓰러지고 고조선군사들도 어지간히 지쳤다.
(이 싸움을 어떻게 타개해나간단 말인가?…)
성기는 한차례 적을 물리치고난 뒤 바위우에 걸터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대신들은 적에게 투항하자고 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고있다. 상하가 이렇게 합심하지 못한 형편이니 싸움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만 간다. 식량도 말이 아니다. 그러나 무관 성기는 결심을 달리할수 없었다.
《우리는 기어이 왕검성을 지켜내야 한다!》
그는 두주먹을 굳게 틀어쥐였다.
원쑤들은 우거왕의 아들인 장항과 상 로인의 아들 최 등을 시켜 대신 성기를 끝내 죽이고말았다. 그러니 성은 지휘자를 잃게 되였다. 인민들은 목숨걸고 나섰으나 어찌할바를 몰랐다. 이때 적들은 수십배의 력량을 증강하여 왕검성으로 몰려들었다.
고조선인민들은 한결같이 떨쳐나 원쑤들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웠으나 력량상대비가 되지 않았다. 끝내 왕검성은 적들에게 함락되고 고조선은 무너지고말았다.
전쟁기간 한나라 무제도 많은 손실을 보았다.
숱한 군사들과 자기의 충실한 졸개들을 무수히 잃었다.
성기를 선두로 한 한나라침략자들을 반대하는 고조선인민들의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였다. 물론 이 전쟁으로 하여 고조선은 종말을 고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조선사회내부의 모순과 노예제도 그자체의 위기로부터 온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