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토벌》을 격파한 명안
1933년 11월 17일, 오래동안 《토벌》준비를 다그쳐온 일제는 소왕청유격구에 대한 대규모적인 《토벌》을 개시하였다.
일제는 유격구《토벌》에 제놈들의 정규무력을 중심으로 거기에 헌병대와 경찰, 위만군, 자위단 등 5 0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3개 방향으로 포위공격해왔다.
하지만 반일인민유격대와 반일자위대 그리고 유격구인민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매번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12월에 접어들어 추위가 닥쳐오자 적들은 장비의 기술적 및 병력의 수적우세를 믿고 더욱 기승을 부리며 바싹 포위환을 좁히였다.
장교놈들은 이른바 《야마도 다마시》정신을 가지고 돌격하라고 고아대면서 유격대원들의 불벼락을 맞고 돌아서는 사병들의 목을 일본도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싸움판에 끌려나온 졸병들은 돌격하자니 유격대의 작탄과 집중사격, 인민들의 돌사태가 무섭고 퇴각하자니 장교놈들의 칼부림이 무서워 절벽강산에 대가리를 틀어박고 강추위에 떨기만 하였다.
적들의 심리상태를 헤아려보신
놈들에게 잠시도 안정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놈들이 기여들면 매복권안에 걷어넣고 족쳐야 하며 놈들이 주저앉으면 교묘한 유인전으로 끌어내다가 답새겨야 합니다. 숙영지도 치고 수송부대도 쳐야 하며 불무지작탄전도 하고 저격활동도 해야 합니다.
각종 전투형식으로 놈들의 병력을 끊임없이 소멸하고 피로케 하여 놈들이 견딜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적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말라!
참으로 명안이였다.
즉시 행동이 개시되였다.
뾰족산과 마반산계선을 방어하던 유격대와 반군사조직성원들은 대방자, 마촌뒤 무명고지, 마촌의 동쪽고지에로 적을 유인하면서 《불무지작탄전》, 적의 숙영지에 대한 습격, 이동하는 적에 대한 매복전, 《포수대》들의 저격활동 등 령활한 유격전법으로 매 계선마다에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2~5명으로 구성된 야간습격전이 은을 냈다.
오중흡이 인솔하는 습격조는 적숙영지 한복판에 은밀히 들어가 천막들에 불의에 사격을 가하고 신속히 빠져나왔다.
적숙영지는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발칵 뒤집혀졌다. 혼비백산한 적들은 어둠속에서 제편끼리 맞불질하여 숱한 죽음을 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뾰족산부근의 덕골초소를 지키고있던 유격대와 반일자위대원들은 작탄을 불무지속에 묻어놓고 《퇴각》하였다.
산아래에서 온종일 떨다가 텅빈 초소를 《점령》한 놈들은 앞뒤를 가릴새없이 얼어든 몸을 녹이려고 불무지곁에 몰려들었다.
이때 《꽝》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무지를 둘러싸고있던 놈들이 몽땅 황천객이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