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모란봉구역 진흥초급중학교 교원 량은혜동무가 발휘한 공산주의적소행에 대한 이야기-
《교원들은 누가 알아주건말건 깨끗한 량심과 성실한 노력으로
얼마전 과학기술전당에서 열린 제29차 전국보통교육부문 교수교양경험발표회 및 학과목별교수방법토론회에서는 한 교원의 토론이 수많은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것은 약물부작용에 의한 청력장애로 10여년세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던 한 학생을 회복시킨 모란봉구역 진흥초급중학교 교원 량은혜동무의 토론이였다. 토론에 이어 그 학생이 무대에 나와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놀라와 량은혜동무에게 그전에 보건부문에서 일하지 않았는가고, 장애자들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가고 이구동성으로 물어보았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줄수 없었다. 그는 이 나라의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교육자였던것이다.
하다면 그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현실은 어떻게 펼쳐진것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어머니당의 후대관, 미래관을 심장에 새겨안고 자기가 배워주는 학생모두를 미래의 역군으로 훌륭히 키우기 위해 량은혜동무가 열과 정을 아낌없이 기울이던 나날에 있은 가지가지의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에서 찾아본다.
단 한송이의 시든 꽃도 있어서는 안된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4월 량은혜동무는 초급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학생들의 첫 음악무용수업을 진행하게 되였다. 출석부에 새겨진 이름을 차례차례 불러나가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한명한명 일별하던 그의 눈가에 일순간 의혹의 빛이 비끼였다.
《김청향학생!》
벌써 세번이나 반복하여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던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학급학생들속에서 그 동무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는 소리들이 울려나오는것이였다.
눈썰미로 사물현상을 판단하며 소학교를 다닌 청향이는 인츰 자기에 대한 말을 한다는것을 눈치채고는 머리를 푹 수그린채 들념을 못하였다.
순간 량은혜동무는 남들보다 키도 크고 곱게 생긴 처녀애가 어쩌면 그런 불행을 안고있을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무용동작을 배워줄 때면 의식적으로 청향이의 곁에 다가가 하나라도 더 배워주려고 왼심을 썼고 조금이라도 잘하면 학급동무들이 박수도 크게 쳐주게 하고 칭찬도 해주었다. 차츰 청향이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음악무용수업시간은 그에게 있어서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청향이의 어머니가 딸의 손목을 잡고 량은혜동무를 찾아왔다. 그는 항상 침울해있던 딸에게서 요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면서 설사 남들처럼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지는 못해도 음악소조에 다니게 할수 없겠는가고 자기의 심정을 터놓는것이였다.
량은혜동무는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2살때 청력장애가 온 청향이는 단순한 단어의 뜻만 알뿐 대부분 글자는 그림처럼 보고그렸으며 《엄마》라는 말도 못하는 상태였다. 이처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학생이 다른 소조도 아닌 음악소조에 들어오면 가뜩이나 위축된 그의 심리에 오히려 부정적영향을 주지는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량은혜동무는 청향이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할수 없었다.
그날 밤 꿈나라에 가있는 아들의 복스러운 이마를 쓰다듬느라니 밤이면 말 못하는 딸애를 붙안고 소리없는 울음을 삼키고있을 청향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도무지 잠자리에 들수 없었다.
하여 그는 자기의 어머니 전희숙녀성에게 학교에서 있은 일에 대하여 죄다 이야기하였다. 딸의 마음속고충을 들으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땅타발을 모르는 실농군에게도 아끼는 씨앗과 버리는 씨앗이 따로 있다고 하지만 우리 교육자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가 자라나는 후대들을 모두 알차게 가꾸어야 할 원예사이기때문이다.》
자기가 공부시키는 학생들을 단 한명도 빠짐없이 당과 조국앞에 어엿하게 내세우려는 교육자적량심은 그로 하여금 말 못하는 학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쉽지 않은 결심을 내리게 하였다.
다음날 그는 학교일군들을 찾아가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러는 학교일군들을 바라보며 량은혜동무가 한 말은 얼마나 절절했던가.
이렇게 되여 사람들과 아무런 의사소통도 나눌수 없는 학생이 음악소조에 들어오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였다.
그날 청향학생을 이끌고 소조실로 향하는 량은혜동무를 바라보며 학교일군들과 교직원들은 후대들의 장래발전을 전적으로 책임진 직업적혁명가라는 숭고한 자각을 지닌 새세대 교육자의 깨끗한 량심앞에 다들 머리를 숙이였다.
그 량심의 길에서 순간도 흔들리지 않을 맹세를 가다듬으며 량은혜동무는 청향학생의 손을 꼭 잡았다.
교육자이기 전에 다심한 어머니가 되여
결심하기도 힘들었지만 그 결심을 실천한다는것은 더욱 힘들었다.
정작 청향학생을 소조에 받아들이고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10년이상이나 마비된 청력과 그로 하여 굳어진 혀, 거기에다 어쩌다 내는 소리마저도 남들이 듣기 섬찍할 정도로 외마디소리만 내는것으로 하여 청향이는 조만해서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그 엄연한 현실앞에서 방금 석사학위를 수여받은 량은혜동무는 또다시 어려운 연구과제를 맡아안은것만 같은 무거운 심정이였다.
자기의 신체상결함으로 하여 동무들과 섭쓸리기 저어하는 청향이를 며칠동안 눈여겨보던 량은혜동무는 우선 그에 대하여 깊이 파악하는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였다. 하여 그의 가족들과 토론하고 청향이를 집에 데려다 함께 생활하였다.
며칠동안 한가마밥을 먹으면서 청향이를 세심히 관찰하던 과정에 그는 중요한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청향이는 일반청력장애자들처럼 듣지 못하는 대신 다른 감각기관들은 발달되여있었다. 실례로 사람들의 입모양을 눈으로 보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지레짐작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있었다. 순간 량은혜동무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만일 청각계통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느낌을 다른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일수 있게 한다면 그도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 다달은 그는 청향이의 혀와 입술의 강직을 풀기 위한 훈련부터 시작하여 사람들의 입모양에 따르는 각이한 발음들의 차이점을 찾아 언어감각을 체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가운데서도 청향이가 《가》발음의 감각을 찾던 나날은 교육자의 량심과 성실성이 어떤것인가를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준 눈물겨운 나날이였다.
량은혜동무가 《가》를 발음하라고 하면 청향이는 선생님의 입모양을 보며 《아》라고 수백번이나 틀리게 발음하군 하였다.
그런 방법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량은혜동무는 그의 손가락을 자기의 목안에 넣게 하여 《가》는 어떻게 나오는 소리인가를 혀의 위치와 떨림을 통하여 직접 눈과 손으로 느끼게 하려고 했다. 그러자 청향이는 섬찍 놀라 뒤로 물러나며 그렇게 할수 없다고 연방 도리머리를 저었다. 자기의 손가락이 목안에 들어가면 선생님의 심정이 어떻겠는가에 대하여 그도 모르지 않았던것이다. 눈물이 그렁한 제자를 정겹게 바라보던 량은혜동무는 재차 종이장에 글줄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 말의 뜻을 손짓을 써가며 알기 쉽게 설명하고난 그는 청향이의 떨리는 손가락을 잡고 자기의 목안에 넣었다. 그렇게 하기를 무려 수백번, 선생님의 목안을 더듬으며 감각을 찾던 청향이가 드디여 한주일만에 《가》라는 소리를 내였을 때의 그의 기쁨을 무슨 말로 표현할수 있으랴.
드디여 이 땅에 태여난 상처입은 한 생명이 친혈육의 정과도 같은 뜨거운
그 눈물은 단순히 성공의 실마리를 찾게 되였다는 기쁨에서 나오는 눈물만이 아니였다.
청향이에게 매 발음 하나하나를 심어주고 우리 글의 뜻을 새겨주는것은 말소리를 떼는것보다 더 품이 들었다. 하기에 량은혜동무는 피타는 사색과 탐구로 새로운 방법들을 부단히 찾아나갔다. 청향이가 《ㅎ》발음을 내기 힘들어할 때에는 창문에 낀 성에를 입김으로 녹이는 모습을 보면서 방도를 찾았고 《ㅅ》발음의 감각을 익힐 때에는 이발짬으로 새여나오는 소리를 직접 손으로 느껴보도록 하면서 모음과 자음에 따르는 정확한 발음을 완성시켜나갔다.
량은혜동무의 고심어린 헌신에 대하여 말할 때 이곳 학교 교원들이 감동깊이 떠올리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사실 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음악무용을 가르쳐야 하는 량은혜동무에게 있어서 청향이를 위해 시간을 뚝 뗀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하기에 그는 퇴근후에 청향이의 집에 가서 훈련을 주는것으로 모자라는 시간을 대신하군 하였다.
하루이틀도 아닌 2년세월을 단 하루도 번지지 않고 그를 찾아가 여러 시간 진땀을 뽑느라 량은혜동무는 밤이 퍽 깊어서야 집에 들어오군 하였다. 그럴 때면 어린 아들은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쳐 잠에 들군 하였다. 그도 가정을 돌봐야 하는 주부였고 자식을 가진 어머니였다. 왜 그라고 가정의 행복을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싶은 생각이 없으랴. 그러나 한가정의 어머니가 되기 전에 학생들의 다심한 어머니가 되여 그들모두를 당의 참된 아들딸로 키워야 한다는 불같은 진정은 모든 힘겨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오직 앞으로만 달릴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
량은혜동무는 이길을 혼자서 걷지 않았다.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초행길에서 순간이나마 나약해질세라 힘과 용기를 안겨주며 걸린 문제들을 풀기 위해 지혜와 열정을 합쳐나가던 안순혁, 류성철, 리경희, 박은석동무를 비롯한 학교일군들과 교원들의 고마운 손길이 있어 그는 언제 한번 주저와 동요를 몰랐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을 피운다는 말이 있다.
헌신의 날과 달이 흐르는 속에 짧은 기간에 모음과 자음의 발음을 비롯하여 많은 글자의 뜻을 익힌 청향이는 교과서를 읽고 수학문제도 풀수 있게 되였으며 사람들과 교감할수 있는 능력도 키우게 되였다.
량은혜동무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청향이에게 손풍금도 배워주었다.
여러가지 음악교육지원프로그람들을 리용하여 음정을 청각으로가 아니라 눈으로 가늠해보도록 연구를 심화시켰으며 제손으로 손풍금건반을 누르고 음정을 내보도록 하면서 음감수능력도 키워주었다. 그리하여 청향이는 손풍금을 배우기 시작하여 한달만에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연주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이 꿈같은 현실을 날마다 체험하며 고마움의 눈물을 제일 많이 흘린 사람은 다름아닌 청향이의 어머니 리향숙녀성이였다.
지난해 어머니의 생일을 맞으며 청향이는 제입으로 축하의 인사말을 하였다. 10여년세월 딸을 키우면서 어머니라는 말을 한번도 들을수 없었던 마음속아픔이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그 시각 리향숙녀성은 량은혜동무의 손을 꼭 잡고 오열을 터뜨렸다. 청향이가 말을 한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리향숙녀성의 집을 찾아왔다. 그들에게 리향숙녀성은 마음속진정을 담아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청향이를 낳았을뿐이지 우리 딸의 진짜어머니는 바로 선생님이라고, 이런 훌륭한 사람들을 키워주신
이 감동깊은 화폭에는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서로 돕고 이끄는 소중한 사회주의 우리 집, 후대들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전진하고 위력떨치는 우리 국가의 참모습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사회주의대건설장들에 대한 학생소년예술선전대활동에 참가하고있는 청향이는 가는 곳마다에서 자기의 소원과 희망을 활짝 꽃피워주신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
정녕 청향이가 부르는 이 노래는
* *
지금 량은혜동무는 청향학생과 같이 청력장애로 말을 못하는 학생들에게 새 희망을 안겨줄 보다 높은 목표를 내걸고 그와 관련한 연구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있다.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기적을 안아온 비결을 물을 때면 그는 이렇게 말하군 한다.
학생들을 자기 자식처럼 여기며 친어머니의 사랑과 정을 아낌없이 기울일 때 이 세상에 못해낼 일이 없다고.
이 땅의 모든 교육자들이 량은혜동무의 인생관을 삶의 거울로 비추어보며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제자들의 성장에 이바지하는 디딤돌이 될 때 교육을 우리의 미래를 마음놓고 맡길수 있는 교육으로 만들데 대한 당의 구상은 빛나는 현실로 펼쳐지게 될것이다.
주체112(2023)년 9월 27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