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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전통적온돌난방시설의 계승발전

 

온돌난방은 복사난방의 하나로서 우리 인민의 방안생활풍습에 맞는 고유한 난방시설이다.

우리 민족의 창조적노력과 재능, 민족적생활풍습이 반영되여있는 살림집의 바닥온돌난방은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민족적풍습에 맞게 창조된것으로 하여 우수한 민족적전통을 이루고있으며 발전하는 현실에 맞게 바닥온수난방바닥전기난방, 바닥지열난방으로 계승발전되여 우리 인민의 생활을 더욱 문명하게 하는데 적극 이바지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온돌방은 우리 조선사람들만이 쓰는 고유한 살림방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온돌난방은 고대에 발생하여 중세 전 기간 계승되여오면서 고려시기에 와서는 전면온돌로 되였으며 그것이 전국에 일반화되고 신을 벗고 온돌방에 앉아서 생활하는 우리 인민의 고유한 생활풍속에 맞게 바닥온돌난방형식의 면모를 갖추면서 계승발전되여왔다.

이 글에서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바닥난방시설인 온돌이 조선봉건왕조시기로부터 력사적변천과정을 거쳐 오늘에는 더 발전된 난방시설로 되였다는데 대하여 밝히려고 한다.

조선민족의 전통살림집난방시설인 온돌은 무엇보다도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전면온돌난방으로 발전하여 전국적범위에로 일반화되여갔다.

고대시기에 발생하여 삼국시기와 발해시기를 거치면서 온돌은 외고래, 두고래형태로 그 변천과정을 거치다가 고려시기에 이르러서는 방안 전체를 덥히는 전면온돌난방으로 발전하였으나 그 리용과정에는 일련의 차이가 있었다.

고려시기에는 주로 우리 나라의 북부와 일부 중부지대들에 전면온돌난방이 보급되여 있었으며 남부지방에서는 전면온돌난방대신 마루방이 더 많이 리용되였다. 그러나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 남부지방에서도 마루방대신 전면온돌난방의 사용이 일반화되였으며 15~17세기경부터는 전국적범위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난방형식으로 일반화되게 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실록에서는 1438년에 경상도감사가 전 절제사 리징석, 리징옥형제를 온돌방에서 자게 하였다는것과 우리 나라 중남부지방에 온돌을 놓고 사는 풍습이 있으며 지어 온돌을 천시하던 한양량반들속에서도 마루방을 없애고 온돌을 놓는 수가 점차 많아졌다는 기록이 전해지고있다.(《세종실록》 권81 20년 5월 임자, 《숙종실록》 권12 7년 9월 갑인)

이것은 온돌이 조선봉건왕조전반기에 벌써 우리 나라 중남부지방에까지 보급되였으며 점차 전국적범위에서 널리 일반화된 사실을 보여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온돌난방은 온돌의 발생초기와 같은 외고래, 두 고래온돌이 아니라 이미 고려시기에 확립된 전면온돌이였으며 그 형식과 방법도 앞선 시기의것을 계승한 난방시설이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구들은 크게 《석구들》과 《골구들》형식이였다.

석구들은 일정한 구들골이 없이 구들장밑 전면이 관통되여있었으며 한번 잘 놓기만 하면 골구들에 비하여 땔감을 적게 들이면서도 방안의 온도를 보장할수 있었다.

한편 골구들은 석구들에 비해 구들이 안전하기는 하나 열이 일정한 구들골로만 통하므로 방바닥전면을 골고루 덥히지 못하는 부족점이 있었다. 그러나 온돌을 수리할 때 많은 흙이 나오므로 그것을 논밭의 좋은 거름으로 리용할수 있었다. 이로부터 지난날 농가들에서는 한해에 한번씩 구들을 뜯는것이 년중에 중요한 일의 하나로, 전통적인 풍습으로까지 굳어져있었다.

 

조선민족의 전통살림집난방시설인 온돌은 다음으로 근대시기에 이르러 중세의 살림집온돌난방을 계승하면서 해당 지역의 기후조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갖추어지고 리용되였다.

이 시기 남부지방에서는 북부지역보다 온화한 기후조건에 맞게 부뚜막아궁시설을 갖추고 리용하였다.

남부지방에서의 부뚜막시설은 북부지역처럼 부뚜막에 설치된 아궁을 통하여 여러개의 방을 동시에 덥힐수 있게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1~2개의 방만을 덥힐수 있게 되여있었다. 그러므로 부뚜막아궁시설은 북부지역의것보다 규모가 작았고 여름에는 음식가공만을 위한 부뚜막을 따로 만들기도 하였으며 겨울에는 부뚜막아궁 또는 아궁만으로 된 시설을 리용하여 난방을 보장하였다. 이것은 남부지방이 비교적 덥고 겨울이 상대적으로 짧은 지역이였으므로 난방리용시기가 짧았고 대청마루방의 사용률이 높았던것과 관련되였다고 보아진다.

굴뚝도 남부지역 살림집의 굴뚝은 북부지역의 살림집굴뚝보다 훨씬 낮게 설치되여있었다.

근대 우리 나라 남부지방의 굴뚝에 대하여 《조선지》에서는 《목재 또는 점토로 만든 굴뚝들은 그야말로 지면과 같은 수준에서 그리고 지붕보다 절대로 더 높지 않게 서있으면서 연기를 거리에 펴놓기때문에 연기가 지면에 퍼져 거리를 충만시키고있다.》고 하였다.(《조선지》과학원출판사 1959년 9페지)

이것은 우리 나라 남부지방의 살림집들에서 그리 높지 않은 굴뚝으로도 규모가 작은 부뚜막아궁의 연기를 잘 빨아내고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우리 나라 남부지방의 살림집들에서 그리 높지 않은 굴뚝으로도 규모가 작은 돌무지나 돌담, 흙벽굴뚝으로 되여있었으며 비가 올때 비물이 그대로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돌로 웃설미를 하고 옆으로 구멍을 내여 연기가 빠지게 하였다. 기와굴뚝 역시 기와로 높이 50cm정도 되게 #자형으로 쌓고 그우에 기와장을 엎어놓아 굴뚝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구멍굴뚝은 토방석축돌가운데에 구멍을 내여 굴뚝시설을 형성한것으로서 외형상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연기가 나기 전에는 굴뚝의 외형모습을 찾기가 어려우며 불을 피울 때의 연기는 굴뚝에서 치솟는것이 아니라 뽀얀 안개가 되여 마을을 휘감고있을뿐이였다. 이것은 바람이 그리 세차지 않았으므로 그만한 높이로도 굴뚝의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하였던것과 관련되였다. 따라서 남부지방에서는 산간지대를 제외하고 평야지대에서는 굴뚝을 높이 세울 필요가 제기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굴뚝시설들을 벽체옆에 붙여 낮게 만들었던것이다.

남부지방의 산간지대들에서는 통나무굴뚝, 천굴뚝, 널굴뚝 등 그 높이가 지붕높이에 이르는 굴뚝시설을 설치하고 리용하였다.

이처럼 근대의 살림집난방은 전통적인 바닥온돌난방시설을 계승한 부뚜막아궁 또는 아궁시설과 온돌, 굴뚝이 해당 지역의 자연기후조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설치되고 리용된 시설이였다.

 

조선민족의 전통살림집난방시설인 온돌은 다음으로 오늘날에 와서 여러가지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해방후 인민들이 쓰고 사는 살림집은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내용을 담은 현대적인 살림집으로 발전되였으며 그에 맞게 난방시설도 발전하였다.

력사적으로 단층살림집에서 리용되던 온돌형식은 다층살림집에서의 온돌난방으로 발전하게 되였으며 그후 석탄이나 나무를 연료로 하는 난방으로부터 더운물에 의한 바닥온수난방으로 더욱 발전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 평양시에만 하여도 천리마거리와 비파거리, 락원거리살림집들에 중앙난방이 실현되고 1970년대중엽부터는 여러 도시들에 온수난방이 들어가 근로자들이 더욱 편안하고 문명한 생활을 하게 되였다.

온수온돌난방은 부뚜막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구들높이를 낮추어 건물의 층높이를 낮출수 있게 하였으며 석탄을 때는 온돌과 달리 연소가스에 의한 구조물의 부식작용이 없기때문에 건물의 수명을 길게 하였다. 그리고 중앙온수난방은 연소가스에 의하여 방안공기를 어지럽히는 현상이 없으며 화재의 위험성도 없었다.

이처럼 중앙온수난방에 의한 바닥온수난방은 우리의 고유한 온돌난방형식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현대적인 난방시설이였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온돌난방은 전기와 지열에 의한 난방시설로 현대화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살림집의 전기난방화는 자체로 건설한 중소형발전소들의 덕을 보는 고산지대들과 평양시를 비롯한 도시들에 도입되고 리용되였다.

지열은 지구안쪽으로부터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는 열을 말한다. 다시말하여 지열은 지각에서 방사성원소들의 붕괴에 의하여 생긴 열과 지각밑에 있는 중간권으로부터 흘러나와 지표면에서 이루어지는 열로서 지구자체가 품고있는 열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지열은 화산지대와 신기구조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있는 습곡지대, 큰 퇴적분지들에서 매우 높은 온도를 가진 열수 또는 증기(지열체)들이 지표면으로 흘러나오거나 땅속에 묻혀있으면서 이것을 매체로 하여 지표면으로 날라오는 열이다.

새로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의 살림집들을 비롯한 현대적인 다층살림집들에는 살림집의 난방을 땅속의 지열을 리용한 지열난방으로 하고있으며 지열을 난방으로 리용하는 경우에도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방안생활풍습에 맞게 바닥지열난방체계를 실현하여 인민들의 생활상편리를 원만히 보장해주고있다.

이와 같이 현대살림집의 난방시설에는 재래식온돌난방과 현대적인 바닥난방시설이 있으며 그 형식은 다같이 구들에 앉아생활하는 우리 인민의 생활풍습에 맞게 방바닥에 설치되여있어 지난날의 난방시설보다 매우 합리적이고 편리하게 리용되고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온돌은 그 력사적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인민의 방안생활풍습에 맞게 현대적으로 변화발전되였다.

우리는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대를 이어 전해오는 가치있는 창조물들과 미풍량속을 귀중히 여기고 더욱 계승발전시켜나감으로써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신 주체조선의 찬란한 력사와 전통을 빛내여나가야 할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조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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