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의 다기대, 다추운동
남들이 한걸음 걸을 때 열걸음, 백걸음을 내달리던
우리 인민들의 입는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마음쓰시는
당시 평양방직공장의 로동계급은 7개년계획의 직물고지를 무조건 점령하여
리화순은 혼자서 72대의 직기를 맡아가지고 천생산에서 기적을 창조하였으며 그의 모범을 따라 1직포직장과 청년직포직장의 직포공들도 다기대운동을 힘있게 벌렸다.
직포공들만이 아니였다.
천리마청년정방직장과 2정방직장, 3정방직장의 정방공들은 1 200추로부터
그들의 뒤를 따라 수많은 정방공들이 3 000추, 3 500추의 방추를 맡아 생산에서 끊임없는 새 기록, 새 기준을 창조하였다.
충성의 다기대, 다추운동의 거세찬 불길속에서 종전에는 3년이상 직기를 다루지 않고는 다기대를 다룰수 없다고만 생각해오던 보수주의와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공장에 들어온지 1년밖에 안되는 직포공들도 앞선 동무들의 도움을 받아 모두가 다기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직물생산에서 커다란 혁신을 일으켰다.
오직
염색공들은 또 그들대로 자체로 농축설비와 열처리기를 만들어 생산에 도입하였으며 천의 질을 더 높이면서도 매일, 매달 계획을 넘쳐해내군 하였다.
다기대, 다추운동은 다른 공장들에서도 힘있게 벌어졌다.
구성방직공장의 직포공들은 서로서로 방조하면서 12대공은 16대를, 18대공은 22대의 직기를 맡을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다추운동에서 앞장설것을 결심한 한 작업반장은 량면순회방법, 톱날식순회방법을 도입하여 순회시간을 단축하였고 조사교환도 종전과 같이 목관을 왼손에 쥐고 하던 방법을 버리고 오른손에 쥐고 조사끝을 올려비벼 계사하는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종전보다 40~50초 앞당기였다.
견직부문의 한 로동자는 폭이 넓고 조작방법이 복잡한 비로도직기 2대를 맡아 합리적인 순회방법을 찾아냄으로써 견직부문에서는 다기대운동을 하기 힘들다는 보수주의와 소극성,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를 짓부시였다.
이처럼 천리마시대의 방직공업부문 로동계급은 다기대, 다추운동을 힘있게 전개하여 새 기준, 새 기록을 부단히 창조하며 힘차게 내달렸다.
천리마시대에 발휘되였던 방직공업부문 로동계급의 투쟁정신, 투쟁본때는 오늘도 굳건히 계승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