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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개혁은 우리 혁명발전과 새 사회건설에서 거대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혁명적변혁

(력사적인 토지개혁법령 발포 77돐에 즈음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력사적인 토지개혁법령을 발포하신 때로부터 77돐이 된다. 우리 나라에서 토지개혁의 실시는 오랜 세월 제땅을 가지고 마음껏 농사를 지어보려던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빛나게 실현한 력사적사변이였다. 토지개혁이 실시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수천년동안 내려오던 봉건적토지소유제도가 청산되고 농민들이 땅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여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려나갈수 있게 되였다. 토지개혁의 실시야말로 농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며 전반적사회경제발전을 다그치는데서 일어난 일대 혁명이였다.

우리 나라에서 토지개혁은 땅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빛나게 실현한 력사적사변이다.

토지문제를 해결하는것은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선차적인 과업으로 나섰다. 토지문제를 옳게 해결하여야 사회발전의 질곡으로 되고있던 봉건적생산관계를 청산하고 농민대중을 세기적락후와 빈궁에서 해방할수 있으며 민주주의 새 조선을 건설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혁명발전과 땅에 대한 우리 농민들의 념원 그리고 우리 나라 농촌실정을 깊이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토지문제를 우리 식으로 해결할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지도적지침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만이 소유할수 있도록 토지개혁을 실시하여야 봉건적토지소유제도를 완전히 철페할수 있으며 농민들을 토지의 참다운 주인으로, 농업발전의 힘있는 동력으로 만들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는데서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라는 구호밑에 농민들을 땅의 주인으로 만드는것을 기본원칙으로 내세우시였으며 그것을 구현하기 위하여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서 토지개혁을 하며 몰수한 땅을 국가소유로 하지 않고 농민들의 개인소유로 할데 대한 혁명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토지개혁방침은 농민들의 요구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독창적인 방침이였다.

토지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참다운 길을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로 토지혁명수행을 위한 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토지개혁은 오랜 세기를 두고 농촌을 지배하여온 봉건적착취관계와 지주계급을 청산하는 심각한 사회경제적변혁인것만큼 날카로운 계급투쟁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충분한 준비없이 주관적욕망만으로는 토지개혁을 성과적으로 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혁명을 계급적원쑤들의 반항을 진압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할수 있도록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창설하고 혁명무력과 보안기관, 사법검찰기관과 같은 독재기관들을 튼튼히 꾸리며 그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당이 로동계급속에 뿌리를 깊이 박고 당의 핵심력량을 튼튼히 꾸리도록 하시였으며 로동계급을 토지개혁수행에 힘있게 조직동원하시였다. 특히 광범한 근로농민대중을 3,7제투쟁을 통하여 계급적으로 각성시키는데 커다란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3,7제투쟁을 통하여 각성되고 사기가 오른 농민들은 전국각지에서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벌렸으며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라는 구호를 들고 대중적인 시위를 진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할수 있는 전제조건이 충분히 마련되고 토지개혁이 성숙된 요구로 나선 때에 토지개혁법령을 발포하시였으며 그 집행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자료사진)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농민들자신이 토지개혁에서 주동적역할을 하고 로동계급이 힘있게 지원하였으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이 적극 지지하고 도와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이 심각한 계급투쟁을 동반하는 조건에서 인민정권의 독재기능을 강화하도록 하시는 한편 대중을 계급적원쑤들과의 투쟁에 조직동원하시고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좌우경적편향들을 제때에 바로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토지개혁이 한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큰 편향이 없이 성과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수행되였다. 토지개혁으로 100만정보이상에 달하는 일제와 친일파, 민족반역자, 지주들의 토지가 무상몰수되였으며 72만여호의 토지가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되였다.

 

(자료사진)

 

토지개혁은 우리 혁명발전과 새 사회건설에서 거대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혁명적변혁이였다.

 

- 토지개혁은 무엇보다도 농촌에서 봉건적토지소유관계와 착취제도를 청산하고 농민들을 땅의 참다운 주인으로 되게 한 위대한 전환이였다.

지난날 우리 나라는 뒤떨어진 식민지반봉건사회로서 농민이 인구의 거의 80%를 차지하고있었다. 해방후에도 농촌에는 봉건적토지소유관계와 소작제도가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일제와 결탁하여 농민들을 가혹하게 략탈하던 지주들은 여전히 많은 땅을 가지고 농민들을 착취하고있었다. 해방직후 북반부의 총 농호가운데서 4%밖에 안되는 지주가 총경지면적의 58.2%를 차지하고있었으며 농가호수의 56.7%에 달하는 빈농민들은 경지면적의 겨우 5.4%를 차지하고있었다. 이러한 형편에서 토지개혁을 하여 토지문제를 풀어야 농민들을 지주의 착취와 예속에서 해방할수 있었으며 농민들을 새 조국건설사업에 적극 불러일으킬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식의 독창적인 토지개혁방침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빛나게 실현하심으로써 우리 나라 농촌에 뿌리깊이 남아있던 봉건적인 토지소유제도와 착취관계를 철저히 없애고 땅에 대한 우리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시는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당시 사대와 교조에 물젖은자들은 혁명을 먼저 한 나라에서 토지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절대시하면서 몰수한 땅을 국가소유로 하자고 하였다. 다른 나라의 토지국유화강령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것은 봉건적토지소유제도가 오래동안 존속되여왔으며 땅에 대한 소유관념이 매우 높았던 우리 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것이였다. 땅을 유상몰수, 유상분배하자고 한 일부 사람들의 견해도 부당한것이였다. 만일 일부 나라들에서 진행한것처럼 토지를 유상몰수하여 유상분배한다면 지주들은 부농이나 자본가로 되살아날수 있었으며 농민들은 땅값에 얽매여 다시금 그들의 착취대상으로 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성의 리론이나 경험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토지개혁을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서 하며 몰수한 땅을 농민들의 개인소유로 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근로농민들을 토지의 진정한 소유자로 되게 하고 농촌에서 봉건적토지소유관계를 철저히 없앨수 있게 한것은 물론 농촌에서 자본주의적요소, 부농경리의 장성을 최대한으로 제한함으로써 장차 농업협동화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줄수 있게 한 혁명적인 조치로 되였다.

참으로 우리 농촌에 남아있던 봉건적인 토지소유제도가 청산되고 농민들이 땅의 주인으로 되게 된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식의 토지개혁방침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빛나게 실현하신 고귀한 결실인것이다.

 

- 토지개혁은 또한 해방후 농업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고 전반적인민경제발전을 힘있게 다그쳐나갈수 있게 한 력사적사변이였다.

봉건적토지소유관계는 해방후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전반적인민경제의 부흥발전을 저애하는 질곡으로 되였다. 일제의 가혹한 략탈과 지주의 봉건적착취로 해방직후 농업생산은 억제되고 나라의 식량사정은 매우 어려웠다. 혁명의 원쑤들과 반동들은 도처에서 3,7제와 량곡성출을 반대하여 온갖 책동을 벌리는 한편 나라의 식량사정을 긴장하게 만듦으로써 대중속에 불만을 조성하고 그들을 인민정권을 반대하는데로 내몰려고 책동하였다.

이러한 사정은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봉건적토지소유관계를 청산하고 근로농민들을 땅의 주인, 농업생산의 주인으로 만들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토지개혁이 실시됨으로써 농업생산력을 봉건적토지소유관계의 질곡에서 해방할수 있었으며 농민들의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을 농업생산을 늘이는데 힘있게 불러일으킬수 있었다. 해방후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자!》는 당의 구호를 높이 들고 알곡증산을 위한 투쟁에 충천한 기세로 떨쳐나선 우리 농민들의 드높은 애국열의는 우리 당의 토지개혁방침의 정당성과 령도의 현명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토지개혁이 실시됨으로써 농촌경리를 발전시켜 공업에 필요한 원료와 주민들의 식량을 원만히 보장할수 있는 토대가 튼튼히 마련되게 되였다.

 

- 토지개혁은 또한 해방후 우리 농촌을 반동의 근거지로부터 민주주의의 근거지로 전환시키고 혁명의 주체를 강화할수 있게 한 일대 혁명이였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 사회발전을 저애한 주되는 반동세력은 지주였으며 지주를 비롯한 반동세력들은 주로 농촌지역을 거점으로 반혁명적음모책동을 벌렸다.

봉건적토지소유제도를 근로농민적토지소유제도로 변혁하지 않고서는 지주를 비롯한 반동세력에게 결정적타격을 줄수 없었으며 농촌을 민주주의의 근거지로 전환시키고 빈농과 고농을 비롯한 절대다수의 농민대중을 혁명의 편에 확고히 서게 할수 없었다. 민주주의혁명시기 봉건적토지소유관계가 사회경제관계의 기본을 이루고있은 조건에서 토지개혁을 하여야 사회의 민주주의적발전을 보장할수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토지개혁의 실시는 농촌에서 반동세력의 경제적지반을 없애고 나라의 전반적사회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서 커다란 력사적공헌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는데서 고농과 빈농에 튼튼히 의거하고 중농과 동맹하며 부농을 고립시키고 지주를 청산하는 정확한 계급정책을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고농과 빈농은 토지분여의 기본대상으로서 토지개혁에 가장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지고있었다. 중농은 대부분 자작농으로서 토지분여의 기본대상은 아니였으나 지주, 고리대금업자들의 착취와 억압으로 몰락의 위협을 받아왔기때문에 토지개혁을 지지하였다. 부농은 토지개혁에서 청산대상은 아니였으나 소작주던 땅을 몰수당하게 되여있었으므로 토지개혁을 반대하여나설수 있는 요소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나라 농촌의 계급관계를 가장 정확히 반영한 계급정책을 실시하도록 하신것은 반혁명세력에 대한 혁명력량의 결정적우세를 보장하여 지주계급을 철저히 청산할수 있게 하였으며 농촌을 반동의 근거지로부터 민주주의의 근거지로 확고히 전환시킬수 있게 하였다. 바로 여기에 토지개혁실시가 가지는 중요한 의의의 하나가 있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력사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땅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실현하심으로써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탁월한 공헌을 하시였으며 조국력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김일성방송대학 윤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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