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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랑의 화원과 불모의 동토대​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회와 절망과 비애가 가득찬 사회, 이것은 광명과 암흑의 두 극단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대명사와도 같은 말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체의 인민관, 인민철학이 구현된 우리식 사회주의는 오늘 우리 인민의 생명으로, 생활로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 때없이 울리는 격정의 목소리가 있다.

사회주의 그 품을 떠나선 우린 못살아!

이것은 사랑과 정이라는 마를줄 모르는 젖줄기로 수천만 아들딸들을 어엿하게 키워주고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인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천만금도 아끼지 않는 고마운 우리 제도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웨침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우리 인민은 책에서가 아니라 실생활을 통하여 매일, 매 시각 체득하고있다.

지난해 8월 평양의학대학병원 사지정형외과로는 구급환자가 실려들어왔다. 한 건설사업소 로동자로 일하는 서효일동무였다. 환자의 상태는 악화되여 생명지표는 위험계선을 오르내리였다.

안타까이 환자를 지켜보는 과장 김건영동무의 눈빛은 심각하였다. 초보적인 검사결과에 의하면 환자의 생명은 한주일을 넘기기 어려웠다. 평범한 로동자의 소생을 위해 의료집단이 총동원되였다. 과의사협의회, 다른 과들과의 협의회, 병원협의회가 련이어 열리였다. 많은 량의 피와 약이 환자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담당의사 림철남동무와 세살 난 자식이 있는 담당간호원 량은혜동무는 수십일간이나 침상을 지키며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였다. 병력서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의료일군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환자를 위해 아낌없는 지성을 바치였다. 뜨거운 정성이 어린 날과 달이 흘러 환자는 기적적으로 소생하였다. 그는 쇠약해진 자기의 몸을 추세워주려고 왼심을 쓰는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평범한 로동자인 내가 자본주의사회에서 태여나 이런 중병에 걸렸더라면 어떻게 되였겠는가. 엄청난 치료비때문에 병원문전에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것이다. 여러달이나 입원하여 온 병원과 숱한 사람들의 관심속에 집중치료를 받는다는것을 생각조차 할수 없었을것이다.

소생의 기쁨보다도 우리 제도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이 북받쳐올라 그는 복속에서 복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는 지금껏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을 다 모르고 살아왔다고 목메여 말하였다.

비록 어려운것이 많아도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봐주는 고마운 사회주의제도, 사람들모두가 한식솔, 친형제가 되여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는 우리 조국에서만 꽃펴날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뜻밖의 사고로 19살 꽃나이에 자기 얼굴을 형체도 없이 잃은 산골군의 평범한 로동자처녀를 8년세월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하여 끝끝내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미용수술이 값비싼 수술의 하나로 되여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평범한 로동자가 화상으로 잃어버린 얼굴을 다시 찾는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허나 이 땅에서는 불행을 당한 한 처녀에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모르는 지성을 아낌없이 바치였던가.

《너 아니면 나》라는 쌀쌀한 분위기가 감돌고 차겁고 매정한 눈빛만이 오가는 사회, 모든 인간관계가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는 자본주의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도저히 믿을수 없을것이다.

남을 착취하여 리윤을 얻고 남을 희생시켜 안락을 누리며 저 하나의 리익만 얻으면 그만으로 되는것이 합법적이고 일상적인 사회적관계로, 응당한것으로까지 되여있는 개인주의사회에서 어찌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수 있겠는가. 거짓과 기만, 사기와 협잡, 랭혹과 인간증오만이 휩쓸고 량심과 의리가 말라버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신뢰와 호혜, 협력, 덕과 정이란 꿈조차 꿀수 없다. 서로 반목질시하고 물고뜯는것이 사회적풍조로 되여버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실업자들이 일자리가 없어 구걸하고 집이 없어 한지에서 떨어도, 무의무탁자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뻗쳐도 외면당하고있다.

병원들만 놓고보아도 돈이 없으면 녀성이든, 새 생명이든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가차없이 내던지고있다. 아무리 현대적인 병원이 세워져있어도, 아무리 유능한 의사들과 훌륭한 명약들이 있어도 절대다수 근로대중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병에 걸리면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신음하거나 생죽음을 당해야만 한다. 겨우 돈을 마련해도 치료받기 어려운것이 이 사회의 엄혹한 현실이다.

일본만 놓고보아도 일반사람들이 리용하는 병원들이 점점 사라져가고있는 반면에 돈많은 자본가들과 권력가들이 치료받는 병원들은 번성하고있다.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업종을 선택하는 바람에 일반사람들은 치료받을수 있는 병원들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방황하고있다. 그때문에 《병원피난민》이라는 구슬픈 말까지 생겨났다.

오사까에서 사는 한 환자는 치명적인 병진단을 받은 후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였으나 치료를 받을수 없었다. 그 병원들이 모두 부자들만을 상대로 하여 묵돈을 벌수 있는 회복치료전문병원으로 업종을 전환하였기때문이다. 겨우 어느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으나 한주일만에 강제퇴원당하였다. 수술결과가 좋아 완쾌되여서가 아니라 입원기일을 단축하여 될수록 더 많은 환자들을 받아야 한다는 병원측의 약바른 타산때문이였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의술이 있다고 자처하는 의사들은 대다수가 부자들을 위한 병원에서 근무하고있기때문에 돈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복잡한 치료》에 대하여 상상도 못하고있다.

근로대중이 아니라 착취계급을 위한 사회, 바로 이것이 부르죠아변호론자들이 《문명사회》, 《만민평등사회》라고 입이 닳도록 떠들어대는 자본주의의 실상이다.

대조적인 두 현실은 사회주의가 참다운 인간사랑의 세계를 활짝 펼쳐준다면 자본주의는 인간적인 모든것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짓밟는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하기에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는 모든것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나라, 가장 존엄있고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는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억척같이 자리잡고있다. 바로 그래서 삶의 전부와도 같은 사회주의를 열렬히 사랑하며 그를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가고있는것이다.

 

주체112(2023)년 1월 22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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