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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위인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혁명의 천리길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10대의 어린시절에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신 때로부터 어느덧 100돌기 년륜을 새기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우리 혁명의 천만리길로 이어진 길인것으로 하여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이야말로 조선을 잘 알며 조선인민자신의 힘에 의거하여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을 해방하시려는 절세위인 높은 뜻이 깃들어있는 애국의 천리길, 혁명의 천리길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배움의 천리길은 조선을 잘 알며 조선인민자신의 힘에 의거하여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을 광복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이 깃들어있는 혁명의 천리길입니다.

 

△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무엇보다도 절세위인의 애국, 애민의 천리길이다.

위대한 혁명가는 진정한 애국자이다. 위대한 애국자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자기 조국과 인민이 깊이 간직되여있다. 진정한 애국자만이 시련과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나서는 혁명의 길에서 조금도 탈선하지 않고 승리의 그날까지 변심없이 위대한 생의 자욱을 아로새길수 있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우선 자기 조국을 잘 알기 위한 애국의 길이였다. 

애국의 감정은 결코 추상적인것이 아니다. 나서자란 고향과 가족, 고향산천에 대한 사랑이 곧 애국이다. 

애국심을 간직하자면 자기 조국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길을 걸으시면서 우리 조국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시였을뿐 아니라 조국에 나와서도 우리의것을 더 잘 알기 위하여 꾸준히 탐구하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에서 살다왔다니 중국말을 잘할것이며 한번 해보라고 하는 동네사람들의 요구를 겸허하게 거절하시며 조선사람은 응당 조선말과 글을 잘 알아야 하며 자기 나라의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일본놈을 몰아내고 백성들이 잘사는 나라를 세우자면 조선말과 글을 잘 알아야 하며 조선의 력사와 조선의 현실을 잘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다시 조선에 나왔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런 투철한 애국의 뜻을 간직하시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덕학교에서 조선의 력사와 문화, 풍습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의 모든것을 알기 위하여 꾸준히 탐구하시고 룡악산을 비롯한 나라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애국의 큰 뜻을 더욱 깊이 간직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10대의 어린시절에 단연코 배움의 길에 오르신것은 자기 조국을 잘 알고 진정한 애국심을 가슴에 간직하여야 한다는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심장에 새기시였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또한 자기 인민을 잘 알기 위한 애민의 길이였다. 

혁명은 목적에 있어서 인민에 대한 사랑을 꽃피우는것이다.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닌 사람만이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투쟁에 한몸바칠수 있다. 인민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생겨나는것이 아니다. 자기 인민에 대하여 잘 알 때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자라나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면서 인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시였다.

험준한 오가산령을 넘으시느라 발이 부르트신 위대한 수령님께 딱총을 놔드린 한 이름모를 로인, 위대한 수령님을 발구에 태워드린 한 농민, 어리신 수령님을 극진히 환대해드린 강계객주집의 주인과 할머니, 이것은 어리신 수령님의 눈빛에 어린 인민의 모습이였다.

위해주고 아껴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이며 비록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노가 되여 어렵게 살고있지만 조상전래의 인정과 미풍량속만은 깨끗하게 간직하고있는 선량하고 도덕적인 민족이라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시였다.

특히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면서 별의별 시련과 고생을 다 겪으셨지만 그보다도 길가에서 보신 인민들의 눈물겨운 현실이 못견디게 참기 어려우시였다. 

정처없이 오가는 류랑민들과 포승에 묶이워 일제경찰에게 끌려가는 무고한 인민들, 나라의 귀중한 재부를 마음대로 략탈해가는 침략자들과 고역에 시달리는 로동자들,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와 게딱지같은 집들에서 사는 사람들의 기막힌 생활처지 …

정말이지 산천은 예나 다름없이 유정하고 아름다왔지만 어디서나 보이는것은 수난속에 허덕이는 겨레의 모습이였고 인민들의 원한서린 한숨소리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목격하시는 모든것은 그 누구에게 구원을 절절히 호소하는것만 같았고 그럴 때면 삼천리강산을 생지옥으로 만든 왜놈들을 모조리 멸살시키리라는 억척같은 복수의 맹세가 그이의 가슴을 끓게 하였다.

원한서린 인민들의 모습을 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포악한 일제를 쳐물리치고 이 땅우에 인민의 세상을 기어이 일떠세우고야말 철석의 의지로 가슴불태우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10대의 어린시절에 단연코 배움의 길에 오르신것은 자기 인민을 잘 알고 인민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면서 인민을 위해 충실히 복무하는 마음을 간직하도록 하시려는 김형직선생님의 웅심깊은 뜻을 심장에 새기시였기때문이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자신에게 있어서 그 천리길이 조국을 알게 하고 우리 인민을 알게 해준 하나의 큰 학교였다고 회고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자기 나라, 자기 인민을 잘 알기 위한 애국애민의 천리길이였다. 

 

△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다음으로 절세위인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이 과시된 천리길이다.

혁명의 길은 순탄치 않다. 아사, 동사, 타사가 동반되는 간고한 길이다. 이러한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끝까지 가자면 혁명가의 담력과 배짱, 철석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한번 먹은 마음 변치 않고 끝까지 수행해나가려는 혁명가의 담력과 배짱, 억센 의지를 키운 혁명의 천리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우선 위인으로서의 천품을 더욱 굳게 하여준 혁명의 천리길이였다.

아버님의 큰 뜻을 품으시고 나라찾는 일에 한몸을 바칠 굳은 결심을 다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어린시절부터 위인으로서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천품으로 지니고계시였다.  

당시로 말하면 조선에서도 돈냥이나 있는 집 자식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싸들고 외국류학의 길에 오르던 때였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데 가야 개명도 하고 학문도 닦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이 하나의 시대적풍조로 되여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높으신 애국의 큰 뜻을 받들어 조선으로 나갈것을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팔도구에서 만경대가 천리인데 혼자서 갈수 있는가고 물어보시는 아버님의 말씀에 갈수 있다고 씩씩하게 대답하시였다. 

흔히 10대의 어린 나이에는 부모들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고싶어하고 특히는 부모곁에서 단 한순간도 떠나길 싫어하는 때이다.

이러한 시절에 아드님을 당시는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었던 천리길에 홀로 내세울 결심을 하신 김형직선생님의 담력은 보통아니시였지만 망국민의 처지에서 그것도 단신으로 어리신 나이에 천리길을 가겠다고 결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담력과 배짱 또한 범상치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또한 실체험을 통하여 강의한 의지를 단련하신 혁명의 천리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을 떠나시는 그날은 아침부터 눈보라가 일고 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쳤던 날이였다.

가셔야 할 천리중 500리이상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오르고오르셔도 고개가 끝이 나지 않고 새 고개가 연방 나타나는 험산준령, 대낮에도 맹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북방의 산악지대, 무쇠다리를 가졌다는 강계포수들도 정복하기 힘들어하는 눈덮인 오가산과 수많은 높고 험한 령, 때로는 사나운 산짐승이 길목에 나와 어슬렁거리는 위험지대도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천리길을 단신으로 헤쳐나가시였다.

며칠동안 걸으시여 강계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객주집주인이 차고장으로 열흘쯤 기다려야 할것 같다면서 신청은 해놓았으니 친척집에 온셈치고 그동안 자기 집에서 묵어가라고 하였지만 갈길이 바빠서 빨리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3일만에 험한 길을 떠나시였다. 

하기에 팔도구를 떠난지 열나흘만인 주체12(1923)년 3월 29일 해질무렵에 고향집뜨락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을 보신 할머님께서는 버선발로 마당에 뛰여나와 어리신 수령님을 와락 끌어안으시며 신통히도 통이 큰 너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네가 아마 몇해후면 백두산에 걸터앉아 동해바다에다 대고 발을 씻자고 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그 누구도 지닐수 없는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천품으로 지니신 절세위인께서만이 걸으실수 있는 혁명의 천리길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따라 걸어온 혁명의 천만리길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따라 오늘도 이어가고있다.

천하제일명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따라 우리 인민은 이 땅, 이 하늘아래 기어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활짝 꽃피워갈것이다. 

 

김일성방송대학 박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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