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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조선의 선언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불변이다

 

조미대결전력사에 빛나는 승리의 한페지를 아로새긴 55년전의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사건을 돌이켜보며

 

지금으로부터 55년전인 1968년 1월 23일 우리 나라 령해에 깊숙이 침입하였던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조선인민군 해군에 의하여 나포되였다. 그때로부터 11개월간이나 전쟁접경의 상황속에서 치렬하게 벌어졌던 조미대결전은 미국정부의 사죄문과 포로들의 추방으로 결속되였다.

20세기 년대기에 특기된 이 사건은 조국해방전쟁이후 오늘까지 세계적인 초점을 모으고있는 조미대결전의 력사를 관통하고있는 강약과 승패의 원리를 하나의 법칙처럼 명백히 공인시켜주었다. 55년전의 《푸에블로》호사건을 돌이켜보며 후세는 력사에 묻는다. 력사는 미국에 묻는다.

항공모함에 원자탄까지 가진 미국은 그때 왜 조선앞에 무릎을 꿇었는가.

오늘날에 제2의 《푸에블로》호사건같은것이 다시 터진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1. 《여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이다》

 

1968년 1월 23일 오전 조선인민군 해군은 원산앞바다에 있는 려도로부터 7. 6mile 지점에까지 불법침입한 한척의 정체불명의 배를 포착하였다. 이미전부터 공화국령해를 도적고양이처럼 교묘하게 들락날락하던 그 배를 예리하게 주시하고있던 인민군 해군이 출동하였다. 괴선을 단속한 우리 함선은 신호를 보냈다.

《여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이다. 국적을 밝히라!》

바로 이 함선이 후날 조미대결전의 력사에 무적의 조선인민군 해군의 상징으로 명성떨친 구잠함 35호였다.

당시 구잠함의 정치부함장이였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 박인호영웅은 이야기하였다.

《우리 구잠함은 35호라는 전술번호외에 103호라는 사연깊은 이름도 가지고있었습니다. 〈103〉이라는 수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갑판에까지 오르시여 해병들의 가슴속에 무적필승의 용맹을 심어주신 1961년 10월 3일을 건군사에 영원히 새기려는 마음으로부터 우리 함선에 단 뜻깊은 이름이였습니다. 일당백해병, 만능해병이 되기 위한 불바람속에서 누구나 미국놈들이 덤벼들기만 해봐라 하고 윽윽 벼르던 참이였으니 그때 우리 해군의 기세가 이만저만 아니였습니다.》

우리 군대가 창건 20돐을 바야흐로 눈앞에 두고있던 1968년 1월은 해군사에도 매우 의의깊은 달이였다. 1948년 1월 15일에 반만년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나라 해군간부양성기지인 수상보안간부학교가 창립되였던것이다. 이 학교 제1기졸업생들중에서 조국해방전쟁이 배출한 영웅해병들인 어뢰정대장 김군옥과 해안포중대장 리대훈이 나왔다.

그 이듬해 8월 28일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조선함대창설의 력사적인 의식이 거행되였다. 이 청소한 해군이 불과 1년후 《움직이는 섬》이라던 미제의 중순양함 《볼티모》호를 4척의 어뢰정으로 격침시킨 세계해전사의 기적을 창조할줄 세상사람들은 상상도 못했다.

바다는 조선에 기여드는 침략자들이 먼저 발을 내디디는 우리 나라의 동구길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그 길을 막는 첫 관문을 지켜선 우리 해군은 오늘도 《바다의 결사대》라고 불리우고있다. 그것은 최고사령부가 그어준 돌격침로를 따라 한몸이 그대로 어뢰가 되고 기뢰가 되여 조국의 바다에 철벽을 쌓는 해군의 정신, 함선수나 무장장비보다 해병의 정신력으로 싸우는 해군의 배짱, 한척의 어뢰정, 한문의 해안포, 한명의 해병으로 맞섰다 해도 침략자는 용서치 않는 해군의 기질때문이다.

조선인민군특유의 해군의 정신, 해군의 배짱, 해군의 기질이 침략선을 용서할리 만무하였다. 구잠함 35호는 도주를 시도하는 해적선의 멱을 물었다. 우리의 전투기들이 날아오고 어뢰정이 달려왔다. 최후의 경고가 날아갔다.

《2분내로 국적을 밝히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침략선에서 감히 도발의 기관총탄들이 날아왔다. 무자비한 보복의 불벼락에 무기가에 몰려들던 놈들이 너부러지고 혼비백산한 적들은 바퀴새끼들처럼 구멍구멍에 틀어박혔다. 드디여 해적선의 마스트에 오른 기발, 그것은 가증스러운 미제의 성조기였다.

후날 포로들의 고백에 의하면 성조기를 띄우기만 하면 까리브해에서처럼 어느 나라 함선이든 물러서리라고 오산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미제양키들의 국기는 우리 해병들의 격분을 화약에 불이 달린것처럼 단번에 폭발시켜주었다. 해병들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미국놈들이다!》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의 치를 떠는 저 가증스럽고 흉악무도한 야수의 얼럭자락이 광기를 뻗친 곳마다에 이 나라의 얼마나 많고많은 피가 강물처럼 흘렀고 얼마나 뼈아픈 원한이 뿌리깊이 사무쳐있으며 얼마나 크나큰 복수의 맹세가 산처럼 쌓여있던가.

《저 미제양키의 배를 박살내버리자!》

전쟁때 부모형제를 미제원쑤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신천태생의 젊은 해병의 불같은 웨침에 구잠함의 전체 해병들이 화답하였다.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

한자한자마다에 핵폭탄과 같은 무시무시한 폭발력이 담긴 이 스물한자의 구호는 지금도 우리 무력의 무장장비들에 이름처럼 새겨져있다.

7명의 해병들로 무어진 결사대가 얼음갈기를 휘뿌리며 노호하는 파도를 날아넘어 적함에 뛰여올랐다. 《내리워지지 않는 성조기》요 뭐요 하며 미제놈들이 거만하게 마스트에 올리군 하던 기발이 갈가리 찢기여 우리 해병의 군화발밑에 짓밟혔다. 총부리앞에 무릎꿇은 해적선함장은 설사 격침되여도 배와 운명을 같이하며 끝까지 싸운다는 미군의 해군정신이란것마저 집어던지고 투항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항공모함이라 해도 그안의 해병무리가 정신과 존엄보다 목숨을 더 귀히 여기는 고용병들이라면 그 함선은 한갖 바다에 뜬 철덩어리에 불과하다. 약자앞에서는 승냥이같지만 강자앞에서는 비루먹은 개처럼 비굴한 미국, 죽음의 공포앞에서는 자존심이요, 명예요 하고 떠벌이던것마저 서슴없이 내던지는 미군은 이렇게 포로되였다. 나포된 해적선은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였다.

《푸에블로》호는 외형과 이름그대로 양가죽을 뒤집어쓴 승냥이 미제의 교활하고 악랄한 량면의 축소판과도 같은 함선이였다.

수송선을 개조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해양연구선처럼 위장한 《푸에블로》호는 미제침략군의 태평양함대에 소속되여 전문적인 정탐활동을 사명으로 하는 무장간첩선으로서 최신식정탐기구들로 장비되여있었으며 83명 성원들의 대부분이 정탐활동에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충분히 갖춘 간첩들이였다. 나포당시 배에는 대구경기관총과 수십정의 저격무기들도 있었다. 《GER-2》라는 배의 간판도 《해양연구선-2》호라는 감투를 뒤집어쓴것인데 당시 미해군에 이런 음흉한 간첩선이 3척 있었다고 한다.

《푸에블로》라는 배이름의 사연자체도 흉물스러웠다. 《푸에블로》는 오래전부터 미국땅에서 산 인디안종족의 부락이름으로서 콜로라도주에는 지금도 푸에블로라는 지명이 있다고 한다. 인디안의 해골우에 일떠선 침략국가의 간첩선이 인디안부락의 이름을 달고있는것은 미제의 위선적정체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물이기도 하였다. 포로들은 자백하였다.

《그 어떤 변명도 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정탐행위는 로골적인 침략행위이며 초보적인 국제법마저 유린한 범죄행위입니다.》

1962년 까리브해의 위기와 1964년의 바크보만사건으로 하여 극도로 오만해진 미국, 어느 바다에서든 마음대로 날치며 세계평화를 교란하고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던 미제국주의, 이는 과연 세계우에 군림한 강자의 화신이였던가.

하지만 1968년 1월의 조선동해에서는 미국의 명성과 힘이 통하지 않았다. 15년전 7월 27일의 수치를 망각한 미제의 후안무치하고 흉악무도한 낯짝에 조선은 된주먹으로 강타를 안겼다.

온 나라가 미제의 침략선을 붙들어 끌고온 영용한 해군용사들을 축하하였다. 특히 전쟁때 양키해적선들에 대한 피절은 원한이 남달리 사무쳐있는 원산시민들의 흥분은 더했다. 《푸에블로》호나포전투의 용사들은 미국놈의 군함을 붙잡았다는 소식에 원산부두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그날의 광경, 간첩선의 코를 꿴 바줄들을 원산시민들이 와와 소리를 지르며 끌어당기던 그때 범잡은 포수처럼 으쓱해서 굽어보던 통쾌감을 55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흐뭇하게 추억하고있다.

보름후인 2월 8일 정세가 극도로 긴장했지만 공화국은 자기의 영웅적군대의 창건 20돐을 성대히 경축하였다. 인민들은 《푸에블로》호를 우리 군대가 받은 건군 20돐의 훈장이라고들 하였다. 영웅적조선인민군의 필승의 기상과 전투력을 온 세상에 과시한 《푸에블로》호나포전투는 3명의 공화국영웅을 낳았다.

세계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조선의 바다는 고요했다. 《보복》을 떠들며 항공모함이요, 비행대요 하는 미제의 방대한 무력이 피에 주린 상어떼처럼 잔뜩 몰려와 설쳐댔지만 우리 해군이 철벽의 진을 친 공화국령해에는 감히 한발자국도 들어설념을 못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령해는 해적들의 죽음의 함정이였다. 깊이를 알수 없는 그 함정에 《푸에블로》호가 산채로 코꿰여있었다. 그 불쌍한 포로를 적들도 세계도 불안스럽게 지켜보고있었다.

 

2. 조선의 폭탄선언

 

대아메리카제국이 벌컥 뒤집혔다. 대통령 죤슨은 《보복의지》를 선언했다.

미국은 뻔뻔스럽게도 《푸에블로》호가 해양연구선이라느니, 공해상에 있었다느니 하고 떠들어대면서 미국식의 오만한 힘의 론리에 따라 항공모함을 비롯하여 옹근 한차례의 전쟁을 치를수 있는 침략무력을 급파하였다. 남조선괴뢰들도 대대적인 전쟁소동을 일으켰다.

세계의 이목이 조선에 집중된 그 시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군창건 20돐 경축연회의 연설에서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의 침입사건에 대한 공화국정부의 립장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시였다.

《만일 미제국주의자들이 계속 무력을 동원하여 위협공갈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들은 이로부터 얻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을것입니다. 있다면 오직 시체와 죽음뿐일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입니다.》

이 교시는 력사에 《조선의 폭탄선언》으로 유명해졌다.

《보복조치》로 원산을 공격하고 배를 빼앗아가겠다고도 하고 원해에 있는 우리 어선들을 나포하겠다고도 위협하는 미국놈들의 도발적망발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일 놈들이 그런 도발을 하면 우리는 가차없이 적의 항구도시와 비행장을 답새겨야 한다고 단호히 천명하시였다.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받들고 온 나라가 당과 하나의 신념과 배짱으로 혼연일체가 되여 조국수호의 결전과 사회주의건설의 혁명적대고조를 위하여 산악같이 떨쳐나섰다. 미제의 항공모함과 원자탄에 조선은 전민항전태세로 맞섰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두번째로 흐르고있었지만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전쟁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있었다. 페허우에 공장과 집은 다시 일떠세울수 있어도 인민이 입은 상처는 무엇으로 아물게 할수 있단 말인가. 어느 가정에나 3년간의 전쟁이 남긴 상처가 있었고 누구나 미제야수들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있었다. 그 상처를 생활이 때없이 아프게 헤칠 때마다 《천벌을 받아라, 미국놈들아!》하고 피터지게 절규하던 인민이여서 늙은이들까지도 《나에게도 총을 주시오!》하고 부르짖었다.

복수를 궐기한 민심의 노호처럼 무서운것은 없다. 수십만 청년학생들의 조선인민군입대탄원, 땅크와 비행기헌납을 위한 전인민적열의로 1950년 여름처럼 온 나라가 끓어번졌다.

우리 군대에는 일명 《1968년생》으로 통하는 로병세대가 있다. 《푸에블로》호사건으로 들썩하던 그해에 정든 대학교정과 일터를 주저없이 떠나 군복을 입은 그들은 전쟁때 다 쏘지 못한 복수의 탄창을 후련히 풀고 조국통일대전으로 결속하자고 하늘과 땅, 바다에서 전군이 일당백의 무쇠주먹을 쳐들었던 력사적인 해를 지금도 열정에 넘쳐 회상하군 한다. 그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최전연 대덕산초소에서 《일당백》구호를 제시하신지 5돐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였다.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들고 미제와 맞섰던 그 나날에 우리 인민은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로선을 제시하시여 공화국을 자주, 자립, 자위의 국가로 굳건히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선견지명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대아메리카제국의 자존심을 지켜보자는 미국과 목숨보다 귀중한 자주적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대결은 전쟁접경의 불꽃을 탕탕 튕기며 절정으로 치달아올랐다.

주먹놀음과 강짜가 통하지 않자 미국은 상투적수법대로 유엔과 우리의 주변나라들에 압력을 가했다.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미국의 철면피한 억지와 날강도적궤변을 발가놓는 포로들의 자백과 증거자료들을 세계면전에 낱낱이 공개하도록 하는 한편 배를 돌려보내면 무사할것이라는 어중이떠중이들의 권고를 미국이 신성한 우리 령토에 폭탄 한발만 떨구어도 포로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단호한 통첩으로 잘라버렸다.

당시 미국이 조선에 대하여 잘 몰랐던것이 있었다. 조선에 또 한분의 강철의 령장이 계신다는 사실이였다.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전화의 최고사령부에서 성장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조선인민군의 강경한 결전준비와 력사에 류례없는 언론대전을 이끌고계시는줄, 바로 그로 하여 조선이 더욱 강하고 배짱이 센줄을 미국은 모르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령활한 지휘에 따라 판문점과 외교무대에서의 공격전만이 아니라 온 세계를 대상으로 전개된 신문, 통신, 방송과 기록영화의 집중포화가 미국의 상통을 쥐여박고 등뼈를 후려갈기고 오금을 칼질하며 침략자, 도발자를 궁지로 몰아갔다. 반미국가들, 세계평화애호력량이 들끓었다.

《위대한 조선인민이여, 당신들은 어떻게 그처럼 용감한가!

조선인민이여, 당신들은 지난 시기에도, 지금도 위대하고 훌륭하다!

당신들의 의지는 위대하고 당신들의 타격력은 강하고 당신들은 매우 훌륭하다. 당신들이 바로 미제에게 패배와 수치를 준 인민들이다.

조선인민이여, 계속 강경하라. 모든 인민들은 당신들의 편에 서있다.》

한풀 꺾인 미국이 타협의 주패장을 내밀었다. 《인수증》을 써주겠으니 승무원들을 제발 돌려보내달라는것이였다. 저들의 군인들과 배를 놓고 상품처럼 론하는 치졸한 수작에 조선의 대답은 역시 불변이였다.

정부가 공식 사죄하라!

생억지를 쓰며 사죄를 회피하려고 뻗쳐대는 미국정부의 철면피한 태도에 바빠맞은것은 《푸에블로》호 포로들이였다. 공화국의 인도주의적관대성에 감복될수록 자기들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려는 미국정부에 대한 원한이 사무친 포로들은 자백서요, 사죄문이요, 청원편지요 하는것들을 련속 써바쳤다. 34개국에서 온 근 80명의 기자들과 관계부문 일군들까지 참가한 기자회견때에는 이런 희비극까지 벌어졌다.

회견이 끝나고 기자들이 막 헤여지던 순간 《푸에블로》호 함장 로이드 마크 부쳐가 갑자기 의자우에 뛰여올라섰다. 그는 《장교는 국제신사》라는 체면마저도 활 집어내치고 기자들을 향해 미국정부에 대한 격분을 절규하였다.

《…자기의 명령을 집행하는 군대내 군인들과 해병들의 행동에 대하여 도덕적책임을 져야 할 우리 정부가 만일 그 책임을 접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재판에 회부될것이며 저희들중 일부는 사형을, 나머지는 장기징역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푸에블로》호는 세계를 향해 애원했다. 《살려주시오! 도와주시오!》

미국의 자존심, 미국의 배짱이란 과연 어떤것인가. 조선의 존엄, 조선의 배심은 어떤것인가.

존엄보다 리익이, 국가보다 개인이 더 중한 미국과 국가의 자주적존엄을 그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는 조선의 대결은 이처럼 강약과 승패가 언제나 뻔한것이였다. 《푸에블로》호사건은 이렇게 미국의 실용주의철학과 개인주의인생관의 취약성과 반동성을 세계앞에 적라라하게 폭로해주었다.

드디여 미국은 굴복하였다. 12월 23일 판문점회의에서 미국정부를 대표하여 미륙군소장 길버트 에이치 우두워드는 사죄문건에 서명하고 그것을 공화국정부에 제출하였다. 길다란 두 문장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존엄높은 국호가 명기된것은 무려 10번, 미국의 비굴한 굴종자세에 세계는 놀랐다.

포로들은 판문점을 통하여 공화국북반부경외로 추방되였다. 11개월간이나 끌어오던 《푸에블로》호사건은 결속되였다.

《푸에블로》호사건은 20세기 년대기에 특기할 페지를 아로새긴 세계적인 중대사건이였다.

15년전 조국해방전쟁에서 우리 인민의 승리가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은 사변이였다면 《푸에블로》호사건은 조미대결전에서 미국의 패배항행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낀 사건이였다. 전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까지도 《푸에블로》호사건이 일어난 1968년을 가리켜 미국에 있어서 가장 엄혹했던 해라고 평하였다.

《푸에블로》호사건의 승리자인 조선은 인류의 정의와 세계평화의 수호신으로, 사회주의의 억척보루로 자랑스럽게 솟구쳐올랐다. 이듬해인 1969년에 사탕생산을 위한 투쟁에 궐기해나선 꾸바근로자들이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인민군군인들을 보내주었으면 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꾸바에 정신적지원과 함께 로력적지원도 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뜨락또르를 비롯한 여러가지 설비도 보내고 기술자, 기능공들도 선발하여 천리마기수지원대를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적들과의 대결에서 양보는 곧 투항이고 굴종이며 파멸이다!

이 원칙앞에서 추호의 용납을 모르는 조선로동당의 견결한 대적의지는 조미대결전에서의 강약과 승패를 결정하는 하나의 법칙을 공식화하였다.

세계가 공인한바와 같이 《푸에블로》호사건은 결국 천출명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담력과 배짱앞에 미국이 무릎을 꿇은 정신력의 대결전이였다.

래일 아침에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오늘 밤 12시까지는 건설을 계속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세계가 조선전쟁설로 들끓던 그 2월에 평양대극장에서 전국의 농업일군들과 마주앉아 우스운 말씀까지 하시며 장내를 흥성거리게 하시던 우리 수령님의 하늘같은 배심, 전쟁접경의 긴장이 흐르던 그 나날에 녀성들의 옷도안이며 예술영화 《피바다》의 창작을 열정적으로 지도해주시던 우리 장군님의 드놀지 않는 배짱에 대한 추억담들은 《푸에블로》호사건과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전설같은 일화들이다.

항공모함까지 와서 줄당기기를 한다 해도, 11개월이 아니라 11년, 110년을 애원한다고 해도 《푸에블로》호는 왜 돌아갈수 없는가.

《푸에블로》호사건이 한창 치렬하게 번져지던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 최고사령관이라는 립장에서 《푸에블로》호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지 결심채택을 해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대답을 올리시였다.

나는 미국놈들이 항복서를 내기 전에는 선원들을 절대로 석방하지 않겠습니다. 배는 우리의 전리품이므로 그놈들이 항복서를 낸다 해도 돌려주지 않겠습니다. 우리 인민군대가 나포한 미제의 무장간첩선을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후대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미국놈들에게서 빼앗은 간첩선이라고 말해주겠습니다.

백두산장군의 억척같은 배짱이 담겨진 이 선언은 오늘도 우리의 승리의 력사에 뢰성처럼 메아리쳐 울리고있다.

올 때에는 제 마음대로 왔지만 돌아갈 때에는 절대로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조선의 배짱에 붙들려있는 《푸에블로》호는 끝내 제 소굴로 돌아갈수 없었다.

 

3. 영원히 돌아갈수 없는 포로

 

1999년 원산의 부두에 30년나마 코꿰여있던 《푸에블로》호가 불쑥 평양의 대동강에 나타나 만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감쪽같이 조선의 동해, 남해, 서해를 빙 돌아 대동강에 옮겨앉은 《푸에블로》호의 항행을 두고 제일 경악한것은 미국이였다. 온 세계를 굽어본다는 미국이, 남의 나라에 붙들려있는 유일한 함선이라는 수치를 완력으로라도 씻어야 한다고 목쉬도록 으르던 미국이 어떻게 되여 닭쫓던 개가 지붕쳐다보는 신세가 되였는가. 눈이 멀었댔는가 아니면 무서워서였는가.

3년전 위대한 장군님의 판문점시찰보도가 세상을 뒤흔들 때에도 세계여론은 미국을 조소하였다. 왜 몰랐는가. 미국이 신물이 날 지경으로 자랑하던 정찰위성, 고공정탐기구, 정찰기들은 다 뭘했단 말인가.

어쨌든 《푸에블로》호는 조선의 세 면의 바다를 공손히 항행하여 대동강에 주저앉았다. 그 자리는 바로 1866년 미제의 침략선 《셔먼》호가 불에 타 수장된 력사적인 장소였다. 사람들은 대동강의 《푸에블로》호를 두고 미국침략선 《셔먼》호격침기념비를 비석으로 삼은 《물우에 뜬 미국의 무덤》이라고 조소하였다. 조선에 대한 미국의 극악하고 집요한 침략사의 종심과 결말이 한눈에 안겨오는 이곳은 외국인들에게도 매우 인상깊은 참관지로 되였다.

2012년 4월 6일부 《로동신문》에는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혁명활동보도가 실렸다. 세계정치무대에 눈부신 웅자를 드러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조선인민군 해군 제155군부대를 시찰하신 소식이 왜 세상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충격을 주었는가.

그 해군군부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27차례, 어버이장군님께서 29차례 다녀가신 영광넘친 부대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주문진해전에서 단 4척의 어뢰정으로 미제의 중순양함 《볼티모》호를 격침시키고 세계해전사에 류례없는 전과를 이룩하였으며 평화시기 우리의 령해에 침범한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여 세상을 놀래운 군부대의 자랑찬 군공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군부대해병들이 혁명선배들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받아 원쑤들이 우리의 령해에 감히 침범한다면 무자비하게 수장해버림으로써 주먹이 센 부대, 승리만을 떨쳐온 부대의 전통을 대를 이어 빛내여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몇달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새 세기 요구에 맞게 현대적으로 개건할 웅대한 설계도를 펼치신 소식이 또다시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한 또 하나의 사변적인 일은 그뒤에 있었다.

전승기념관건설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로획무기들을 전시한쪽의 보통강에는 〈푸에블로〉호를 전시하여야 합니다.》

세상을 다시한번 들었다놓을 경이적인 착상에 일군들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게가 1, 000여t급의 배를 수심이 얕은 보통강으로 옮기는 방도를 두고 고심하는 일군들에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푸에블로》호를 옮겨오는것은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 해결방도를 즉석에서 가르쳐주시였다.

2013년 7월 27일 전승 60돐을 맞으며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전승업적을 길이 빛내이는 만년보물고이고 력사상 처음으로 미제를 타승한 영웅조선의 투쟁정신과 위훈을 온 세상에 전해주는 승리의 전당이며 우리 인민과 군대의 가슴속에 백전백승의 력사를 변함없이 이어나갈 굳센 의지를 심어주는 승리전통교양의 중심지, 반미계급교양의 기본거점, 세계적인 기념관으로 훌륭히 일떠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개관되였다.

그날의 행사에서 특별히 이채를 띤것은 로획무기전시장쪽에 죄수처럼 웅크리고앉은 《푸에블로》호였다.

보통강반에 결박된 간첩선은 침략자, 도발자들이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력사의 교훈을 새겨주고있다.

55년세월이 흘렀지만 미제의 본성도 변하지 않았고 우리의 대적의지도 변함이 없다. 달라진것은 우리 공화국무력의 비약적장성이다. 세계최강의 전략무기까지 갖춘 핵강국의 무력이 태평양건너 미국을 눈아래로 굽어보고있다.

전승 70돐, 공화국창건 75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건군 75돐을 맞으며 전승기념관을 찾고있는 우리 인민군장병들의 감정은 류다르다. 조미대결전의 장장 백전필승사에 빛나는 한페지를 아로새긴 세계적사건의 증거물 《푸에블로》호의 갑판에서 새세대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있는가.

갑판은 크지 않아도 받아안는 충격은 크다. 포탄자욱은 셀수 있어도 치렬했던 조미대결전에서 영웅조선이 미제에게 치명적타격을 준 멸적의 복수탄은 어찌 수자로 계산할수 있으랴. 《푸에블로》호의 지휘소탁우에 로획물로 전시되여있는 침략자의 기발을 통쾌하게 굽어볼 때마다 우리 군인들은 조선이 미국에 안겨준 패배의 수치는 아마도 성조기의 별의 수자를 릉가할것이라고 말하군 한다. 옳은 말이다.

조선은 장군의 포로와 군함의 나포라는 미군력사의 최대수치로 패전국, 패배자의 락인을 미국의 이마빡에 찍어놓은 강국이며 승리자이다. 그것은 일개 장성이나 한척의 군함의 비극이기 전에 세계《최대강군》이라는 미군의 씻을수 없는 오욕이며 세계《유일초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의 뼈아픈 수치이다.

《푸에블로》호는 왜 전승기념관에 있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인 이전 쏘련의 붉은군대가 패망한 파쑈도이췰란드의 군기들을 력사의 오물더미처럼 크레믈리의 붉은광장에 쌓던 장쾌한 전승열병광경을 잊지 않고있다. 적에게서 로획한 군기나 무기를 전승의 박물관에 전시하고 승리의 전통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자랑이야말로 남다른 자부이며 긍지이다.

하지만 로획한 적의 함선을 그것도 세계《유일초대국》이라는 미국의 군함을 통채로 전시해놓은 전승기념관은 우리 나라에밖에 없다. 그것은 두세기를 이어오면서 절세의 령장들을 모시고있는 조선에서만 볼수 있는 전승의 기념품, 승리자의 전리품이다. 그래서 우리 조국을 영웅조선이라고, 우리 인민과 군대를 영웅인민, 영웅군대라고 일컫는것이다.

영웅조선의 전승기념관에 영원히 닻을 내린 《푸에블로》호, 이 간첩선의 항행은 끝났으나 미국의 패배의 항행은 계속되고있다.

5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푸에블로》호사건이 새겨주는 불멸의 진리가 있다.

후대들이여, 침략자는 어떤 놈이든 어디서든 언제든 절대로 용서치 말라!

인류여, 제국주의와는 끝까지 싸우라!

미군고용병들이여, 다시는 조선에 얼씬도 하지 말라!

 

*     *

 

미국은 오래전부터 《푸에블로》호송환을 청원하는 놀음을 벌려오고있다. 콜로라도주에서는 1월 23일을 《〈푸에블로〉호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하고 송환청원놀음에 극성이라고 한다. 언제인가 미국에서는 조선전쟁때 괴멸된 24보병사단의 고용병들을 위한 기념물들을 알링톤국립묘지에 설치한다 어쩐다 하면서 세상을 웃기는 희비극을 연출한적도 있다.

우리의 숙적, 철천지원쑤는 수치를 잊지 않고있다. 만약 제2의 《푸에블로》호가 우리 령해에 또다시 들어온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것인가.

2022년 11월 18일 또 하나의 위대한 선언이 지구를 뒤흔들었다.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영웅조선의 전통과 계승, 전쟁과 승리의 위대한 철학이 담겨진 이 선언이 우리 시대에 울리는 메아리의 진폭은 참으로 심원하고 거대하다.

제3의 7. 27과도 같은 대사변의 날에 우리 인민과 군대는 당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병진로선의 위대한 정당성, 간고험난했지만 끝없이 긍지로운 핵강국건설대업의 려정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았다. 정녕 그날에 메아리치던 《김정은장군 만세!》의 환호는 이 땅에 전승의 력사와 전통을 굳건히 이어주신 절세의 영웅, 희세의 령장께 영웅조선, 영웅인민과 군대가, 5천년민족사가 삼가 드리는 최대의 경의였다.

우리의 자주적존엄을 건드린다면 이번에는 적의 항구도시나 비행장정도가 아니라 도발자, 침략자의 땅덩어리를 통채로 없애버리겠다는 조선의 대적의지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보병총으로 원자탄과 맞서고 어뢰정으로 순양함을 공격하던 1950년대에도 미국을 이긴 조선이 이제는 핵강국이 되여 강대강, 정면승부의 배짱을 내대고있는 오늘날의 조미대결전결과는 너무나도 뻔한것이다. 패배는 미국의 숙명이다.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전설적인 해군용사들, 오늘은 전승기념관 강사들인 박인호동지와 김중록동지는 지금도 자기들이 붙든 미국괴물앞에서 그날의 통쾌한 무훈담을 강의하고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 해군은 침략자의것이라면 항공모함이라도 붙들어 전승기념관에 끌어다놓을것입니다. 여기 로획무기전시장에 그런 자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이것이 55년전의 《푸에블로》호사건을 돌이켜보며 우리 군대가 미국과 적대세력들에게 경고하는 엄숙한 통첩이다.

주체112(2023)년 1월 21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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