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전우관》련속참관기
숭고한 혁명적의리의 감동깊은 이야기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사들사이에 맺어진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혁명적의리의 력사를 감명깊게 보여주는 조선혁명박물관 《혁명전우관》에는 장길부어머니에 대한 자료도 전시되여있다.
일제통치의 암담한 시기 나라찾는 싸움에 남편과 아들, 딸, 며느리를 모두 바친 훌륭한 녀성혁명가였던 장길부어머니, 그의 한생과 더불어 전해지는 하나의 이야기는 우리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장길부녀사는 당과 혁명을 위해 한생을 바친 녀성혁명가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인 주체63(1974)년 2월 어느날이였다.
장길부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며 장의는 국장으로 하되 장의위원회구성에 자신의 존함을 적어넣게 하시였다.
그리고 부고와 애도사를 쓰는 일까지 세심히 관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일가족을 혁명에 다 바친 장길부어머니의 장의가 자식없는 어머니의 외롭고 쓸쓸한 장의로 될가 깊이 심려하시여 할머니의 아들, 딸, 며느리의 전우들인 다섯명의 항일혁명투사들의 이름을 꼽으시며 그들이 자기의 부인들과 함께 할머니의 아들, 며느리로 되여 상제로 나서게 하시였다.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였다.
장길부어머니가 살아생전에도 외로움과 적적함을 느낄세라 세심히 보살펴주시더니 오늘은 그의 령전에 끌끌한 다섯 《아들》에 다섯 《며느리》를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
장길부어머니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마음은 이처럼 지극하고 열렬했다.
장례식때 고인의 령구를 찾아 조의를 표시한 일군들과 인민들은 상제로서 호상을 선 이 다섯 《아들》, 다섯 《며느리》를 보고 또 거기에 깃든 사연을 전해듣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한없이 고매한 풍모와 숭고한 혁명적의리의 세계앞에서 눈굽을 적시였다.
장길부어머니의 령구가 안치되여있는 서장구락부(당시)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시며 손수건을 적시시였다.
항일의 기치를 따라 압록강을 건너온 20대의 청년 마동희동지를 처음으로 두팔 가득히 그러안으시였던 그때로부터 근 40년, 오늘은 장길부어머니가 이 일가의 마지막사람으로 세상을 떠난것이다.
먼저 떠나간 자식들을 대신하여 어머니로 모시여오시면서 기어이 백살까지 살게 하시려고 그리도 애쓰시던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것이 그리도 애석하시여 영결의 아픔을 못이겨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사람들 누구나 흐느껴울었다.
장길부어머니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제가 되여 서있는 항일혁명투사들과 그 부인들을 보시고 우렁우렁하신 목소리로 보시오, 장길부어머니가 왜 혼자란 말이요, 아들 다섯, 며느리 다섯, 얼마나 끌끌하오라고 하시였다.
장길부어머니와의 마지막영결이 그리도 가슴아프시여, 혁명에 가족을 다 바친것을 더없는 영예와 긍지로 알고 한생을 꿋꿋이 살아온 어머니가 더없이 자랑스러우시여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온 장내에는 또다시 격정의 파도가 물결쳤다.
그로부터 며칠후 장길부어머니의 묘소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깊은 감회속에 마동희동무의 어머니는 온 가족을 혁명에 바쳤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이번 마동희동무의 어머니장례식에 유격대에서 싸우던 장령들을 상제로 세우고 그들의 부인들도 다 흰옷을 입고 상제로 서라고 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장길부어머니의 령전에 선 다섯 《아들》과 다섯 《며느리》.
이렇듯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혁명적의리의 세계에 떠받들려 우리 혁명이 전진하고 승리하여온것이 아니랴.
주체111(2022)년 12월 26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