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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우리 화선군의들이 찾아왔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민군대에서는 인민을 돕자는 구호를 계속 높이 들고 인민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인민을 위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 군민대단결을 실현하는데서 주동이 되여야 합니다.》

지난 9월 1일은 형제산구역 서포3동 97인민반 장일홍동무의 가정에 있어서 평범한 날이 아니였다. 최대비상방역기간에 태여난 아기의 백날이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보내주신 인민군대에 의해 형제산룡흥약국에서 고고성을 터친 아기여서 장룡흥의 백날은 벌써 한 가정의 경사만이 아니였다.

그날 아침부터 구역당과 동사무소의 일군들, 친척들과 이웃들이 축하의 마음을 안고 집문을 두드렸다. 지어 낯모를 사람들도 아기의 얼굴을 한번 보겠다며 줄지어 찾아왔다.

《룡흥이가 우리 약국에서 첫울음을 터치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백날이 되였구만요.》

《그 녀석 참 잘났수다. 태여나자마자 화선군의들의 전투복에 싸여서인지 별로 튼튼합니다.》…

그때 약국에서 아기를 받아준 고마운 군의들인 김충복, 신학민동무들이 방안에 들어섰다.

《룡흥아, 우리 원수님께서 이 큰아버지들에게 크나큰 영광을 베풀어주시였단다.》

지난 8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수도방역투쟁에서 특출한 위훈을 세운 전투원들을 특별히 불러주시고 축하해주시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온 나라 인민은 얼마나 기뻐했던가.

영광의 단상에 올랐던 그 전투원들속에 바로 김충복, 신학민동무들도 있었다. 그들은 수도보위, 인민보위전에로 부른 당의 믿음을 받아안은 군인으로서 응당 할 일을 했을뿐인 자기들을 온 나라가 다 알게 내세워주시고 친히 몸가까이 불러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에 대해 목메여 이야기하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를 뜨거운 격정속에 휩싸이게 하였다.

누구보다 감격에 목메인것은 장룡흥의 어머니인 한미향동무였다. 그는 축하의 꽃다발속에 묻힌 아기를 품에 꼭 안으며 입속말로 이렇게 속삭이였다.

(우리 룡흥이는 언제면 원수님의 하늘같은 사랑을 다 알게 될가.)

임신부였던 한미향동무가 심한 통증을 느낀것은 지난 5월 어느날 새벽이였다. 예정일을 앞당긴 진통이여서 그도 가족들도 긴장감을 금할수 없었다.

가족들은 한미향동무를 부축하여 어둠깃든 밖에 나섰다. 하지만 임신부의 상태가 위급하여 몇걸음 옮기지 못한채 주저앉고말았다.

숨죽은듯 고요한 거리에는 지나가는 한대의 차도, 도움을 청할 길손들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안타까와 속에 재가 앉는것만 같았던 그때 그들의 눈가에 한점의 불빛이 비껴들었다. 형제산룡흥약국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였다.

그들은 약국을 향해 소리쳤다.

《군의동지들, 도와주십시오!》

곧 약국문이 열리더니 화선군의들이 나왔다.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걸음소리, 임신부를 바라보는 긴장한 눈빛들…

얼마후 아기의 기운찬 울음소리에 한미향동무는 혼미해지던 의식을 가다듬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군의들이 웃음을 함뿍 담고있었다. 그들이 바로 김충복, 신학민동무들이였다. 한미향동무는 그들이 자기와 자식을 위해 어떤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수 없었다. 하지만 땀젖은 그들의 모습이 다 말해주고있었다.

그들은 산모와 아기를 약품수송차로 병원에 후송하였다. 멀어져가는 약품수송차를 향해 오래도록 손저어주는 군의들의 모습을 차창너머로 바라보는 한미향동무와 가족들의 얼굴로 뜨거운것이 줄줄이 흘러내리였다.

김충복, 신학민동무들은 한시도 한미향동무를 잊지 않았다. 련일 철야근무를 수행하는 속에서도, 약품이 필요한 세대들을 찾아 뛰여다니는 속에서도 그들은 산꿀, 찹쌀을 비롯한 물자들을 마련하여 산모에게 보내주었다.

얼마후 병원문을 나서는 길로 한미향동무는 가족과 함께 룡흥이를 안고 약국에 찾아갔다. 그동안 정말 고맙다고 격정을 금치 못하는 그에게 김충복동무는 말했다.

《고마움의 인사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보내주신 군의들이 아니였다면 어찌 룡흥이의 오늘이 있을수 있겠는가.

하기에 그들은 아기의 이름을 우리 인민과 후대들의 생명을 지켜 사랑의 수호전을 진두지휘하신 위대한 어버이의 은덕을 길이길이 전해가라는 의미를 담아 장룡흥이라고 지었다.

TV와 신문지상을 통하여 이 소식을 전해들은 온 나라 인민은 악성비루스가 류입된 다른 나라들에서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가고있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보내주신 인민군대가 있어 우리 나라에서는 새 생명이 태여났다고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리고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해주시와 서흥군을 비롯한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보내오는 편지들과 보약재, 애기옷들을 대할 때마다 온 가족은 이 땅에 넘쳐흐르는 뜨거운 사랑과 정을 뿌듯이 느끼였다.

이런 아기의 백날이여서 모두의 기쁨은 그리도 큰것이였다.

룡흥이는 인민군대의 아들이기때문에 마땅히 우리가 상을 차려주어야 한다며 군인들은 며칠전부터 각별한 관심을 돌렸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어가며 날자를 세여가던 구역과 동사무소의 일군들도 왼심을 썼다. 또 누구는 룡흥이에게 안겨줄 기념품을 사기 위해 평양시의 여러곳을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였다. 김충복동무의 안해 김은경동무가 일하는 평천구역량곡판매소에서도 뜨거운 진정을 바치였다.

장룡흥의 아버지인 장일홍동무는 시력장애자이다. 비록 자기 가정을 위해 온갖 지성을 바치고있는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을 볼수 없었지만 100날이라는 그 하루하루에 얼마나 뜨거운 사랑과 정이 고여있는가를 그는 심장으로 느끼였다.

그는 목메여 웨쳤다.

《원수님의 품속에서 장애자의 아들이 온 나라가 다 아는 복동이가 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바로 이것이 평범한 날 평범한 가정에서 울려나온 심장의 토로, 격정의 목소리였다.

그렇다. 세상에 우리 인민처럼 고마운 제도에서 복된 삶을 누려가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주체111(2022)년 9월 13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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