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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자식의 뒤에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대성구역 안학동에서 살고있는 김현정동무는 20대의 처녀이다. 하지만 그가 보통강구역 봉화동의 한 특류영예군인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살아온지는 벌써 10여년이나 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처음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특류영예군인의 집을 찾은것은 11살 나던 때였다.

그는 그때 어머니가 왜 어린 자기를 데리고 영예군인의 집을 찾아가는지 미처 알수 없었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즐거웠다. 자리에 누워있는 영예군인아저씨가 얼마나 노래도 잘 부르고 옛말도 재미있게 하는지 처음 만나 서먹서먹하던 감정은 인차 씻은듯이 가셔졌던것이다. 그날 영예군인아저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현정아, 저 영예군인아저씨와 같이 나라를 위해 자기를 바친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거란다. 그래서 이 어머니도 이렇게 자주 가는것이고.》

그때부터 그는 짬만 있으면 영예군인을 기쁘게 해주려고 노래와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후부터 자기의 춤과 노래로 영예군인아저씨를 기쁘게 해주군 했다.

그렇게 몇년동안 영예군인과 그의 가정에 기쁨과 웃음을 안겨주기 위해 진정을 바쳐가던 나날 그는 어느덧 몸도 마음도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자기 집 터밭에서 거둔 생신한 남새와 과일이 들어있는 무거운 짐을 들고 땀에 흠뻑 젖으며 어머니와 함께 영예군인을 찾아갈 때에도 그는 힘든줄 몰랐다.

우리 현정이가 왔다며 영예군인과 그의 온 가정이 기뻐하는 모습을 그려보느라면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마냥 즐거워지군 하였다.

하여 그는 비오는 날에도, 눈오는 겨울에도 변함없이 영예군인을 위해 진정을 바쳐갔다. 때로는 영예군인의 침상곁에서 며칠밤을 새우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피부를 서슴없이 바치기도 하면서…

그때마다 누구보다 대견해한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딸이 그 길을 끝까지 가도록 늘 곁에서 이끌어주면서도 몰라보게 성장하는 딸의 대견한 모습을 대할 때면 이렇게 말하군 했다.

《이제는 우리 현정이가 다 컸구나. 이 엄만 훌륭한 딸을 둔게 자랑스럽구나.》

처녀는 차츰 자기를 그 길로 떠밀어주던 어머니의 웅심깊은 마음을 알게 되였다. 그것은 자식이 자기의 안일과 향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집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데서 더없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며 한생을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이 나라 어머니들의 뜨거운 진정이였다.

 

주체111(2022)년 9월 8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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