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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 《훈련지도원》이 되시여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에 대한 참관을 이어가던 우리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자신의 곁에서 일을 제일 많이 도와준 충실한 방조자였다고 뜨겁게 추억하신 리찬선동지의 사진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 당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리찬선동지,

그의 한생에 관통되여있는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려는 일편단심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혁명동지들을 자신처럼 믿고 사랑하시였으며 동지들에게 주실수 있는 사랑을 다 안겨주시였습니다.》

리찬선동지가 받아안은 사랑에 대한 강사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그가운데서도 리찬선동지의 건강을 위해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훈련지도원》이 되여주신 사실은 동서고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위대한 동지애의 세계에 대하여 다시금 뜨겁게 새겨주었다.

어느해인가 중요모임에 참가하였던 리찬선동지는 그만 의식을 잃고 쓰러진적이 있었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즉시 구급소생차를 불러 그를 병원에 입원시키시고 근 1년간 치료받도록 하시였다.

그후 리찬선동지는 보건일군들로부터 계단을 오르내리는 운동을 권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권고를 건성 들어넘기고 일에 몸을 잠그었다.

그러던 어느날 리찬선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중요한 사업때문에 찾으실것이라고 생각하고 달려가보니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뜻밖에도 한옆에 설치되여있는 계단운동기재를 가리키시며 오늘부터 자신과 함께 계단훈련을 하자고 하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눈굽을 적시며 서있는 그에게 건강체육도 과학적으로 해야 하는것만큼 자신께서 훈련지도원이 되여 운동방법을 대주겠으니 그대로 하라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리찬선동지는 날마다 그이를 모시고 정해진 시간에 계단운동을 하게 되였다.

그이의 훈련지도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해나가던 나날은 리찬선동지로 하여금 자애로운 어버이를 모시고 혁명하는 전사의 긍지와 행복감을 뜨겁게 절감한 나날이였다.

그 나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지방을 현지지도하실 때였다.

리찬선동지가 혼자서 계단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뜻밖에도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오는것이였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서류가방을 옆에 끼신 그이께서 급히 걸어오시는것이였다. 현지에서 돌아오시는 걸음으로 곧장 오신것이 분명하였다.

리찬선동지가 뜨거운것을 삼키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이제는 방법도 알았으니 혼자서 할수 있습니다라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나오지 않으면 동무도 번진다고, 자신께서는 동무의 생활관습을 다 안다고 하시며 웃으시는것이였다. 전사의 건강을 위해 현지지도의 먼길을 재촉하여 달려오시였을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이 어려와 그의 가슴은 세차게 달아올랐다. 그이의 다심한 인정미, 뜨거운 동지적사랑에 언제면 다 보답할수 있을가 하는 생각으로 리찬선동지는 어깨를 들먹이였다.

이렇듯 혁명동지를 극진히 위해주시던 우리 장군님이시여서 전사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는 몸소 자신의 곁에 부르시여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과 정을 담아 《동지애의 노래》도 함께 부르신것이였다.

성스러운 우리 혁명사의 갈피에 새겨진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을 천으로 헤아리랴, 만으로 헤아리랴.

참관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금 새겨안았다.

1970년대 일군들이 자기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충실성, 당의 방침을 제때에 끝까지 관철하는 열정과 높은 사업의욕, 견결한 당적원칙성과 비타협적인 투쟁정신을 체질화할수 있은 비결이 과연 무엇이였는가를.

그것은 혁명전사들을 끝없이 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매혹과 그이만을 충성다해 받들려는 불같은 진정이였다.

주체111(2022)년 8월 4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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