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어주신 자력의 불씨
주체22(1933)년 초봄 어느날이였다.
먼저 그들의 가정형편이며 근거지생활에 대하여 일일이 료해하신
적위대원들은 무춤 놀랐다.
그때 소왕청유격구의 적위대중대에는 도창무기가 많고 총은 불과 몇자루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격훈련도 나무총으로 하는 형편이였다.
이런 실태를 말씀하신
이때 적위대를 책임졌던 한 일군이 말씀드리였다.
《저, 사실은 일부 사람들이 인츰 외국에서 무기가 들어온다고 하기에 …》
우리 혁명의 주인은 조선사람이며 바로 우리
《어디 할수 있겠소? 나는 동무들이 자체로 꼭 무장을 갖출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소!》
《할수 있습니다.》
이날의 가르치심은 그들에게 있어서 자력의 불씨로 되였다.
그 불씨를 받아안은 적위대원들의 가슴은 무한히 높뛰였다.
며칠후 적위대원들은 대감자공안국습격전투를 진행하여 많은 무기를 로획하였다. 이 소식은 삽시에 근거지안에 쫙 퍼졌다.
그들은
그들에게서 전투과정을 다 들으신
이제는 우리 적위대에도 총이 많이 생겼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혁명이란 바로 동무들이 오늘 한것처럼 우리의 힘으로 해야 한다, 남만 쳐다보면서 속을 태우기보다 이렇게 자체로 무장을 해결하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언제나 혁명앞에 나서는 모든 문제를 우리
그후 유격구의 적위대원들은 물론 청년의용군과 아동단원들속에서도 무기를 자체로 해결하기 위한 거세찬 불바람이 일어났다.
그들중에는 《밥상다리권총》을 들고 적들에게 달려들어 무기를 빼앗은 오중흡의 아버지 오태희로인도 있다.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