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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는 조선전쟁의 도발자

 

우리 인민에게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남긴 조선전쟁이 발발한 때로부터 72년이 되여온다.

세월은 흘러 세계는 멀리 전진하고 시대도 변하였지만 우리 인민은 전쟁의 참화를 들씌운 침략자들의 범죄행위를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전쟁의 도발자이며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조선전쟁은 철두철미 미제에 의하여 계획되고 준비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부터 국제무대에서 제패전략을 로골적으로 추구한 미제는 그 실현을 위해 전 조선을 타고앉을 흉계를 꾸미였다.

미극동군사령부는 전쟁도발을 위한 작전계획과 정찰 및 첩보공작을 연구하는 《G-2》, 《G-3》 등의 집단을 조직하고 구일본군 고급장교들로 조직된 《력사반》과 《카토》기관을 인입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조선과 만주, 씨비리를 점령할것을 예견한 《A, B, C계획》이 연구작성되였다.

미제는 먼저 남조선과 북침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에 대하여 일본잡지 《진부쯔 오라이》 1964년 9월호는 《북벌》계획에 의하면 우선 38°선에 남조선군, 미군 10개 사단을 집결시켜 중부와 서부의 2개 작전지대를 만든다, 전선서부는 곧바로 평양으로 진격하고 여기에 호응하여 해공군이 협동하여 평양북방에서 상륙작전을 진행한다, 이 작전계획이 맥아더사령부에 비치된것은 1950년초이며 그것은 그대로 남조선측에 전달되였다고 폭로하였다.

미국신문 《뉴욕 헤랄드 트리뷴》 1950년 6월 20일부도 이러한 침략계획이 1월에 이미 합동참모본부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여있었던것이라고 전하였다.

침략전쟁계획을 완성한 미제는 그 실행에 착수하였다.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북침전쟁도발준비상태를 현지에서 검열, 확정하고 전쟁개시명령을 하달하기 위하여 미국방장관과 미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도꾜에 있는 맥아더사령부에, 악명높은 전쟁사환군으로 알려져있던 덜레스를 자기의 특사로 남조선에 파견하였다. 덜레스의 서울행각은 공격개시신호를 주기 위한것이였다.

남조선에 날아든 덜레스는 미군사고문단과 남조선의 고위층을 끌고 38°선을 《시찰》하였으며 리승만에게 준비상태를 직접 보고 부족점이 없다면 곧 북진을 단행하라는 트루맨대통령의 명령을 가지고왔다, 준비가 된 이상 북진을 하루도 늦출 필요가 없다고 지껄이였다.

덜레스가 현지에서 확정하고 미국대통령 트루맨이 최종적으로 비준한 전쟁비밀지령이 남조선에 하달되였다.

당시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는 이렇게 줴쳐댔다.

《우리가 왜 25일을 택하게 되는가. 여기에 우리의 심중한 의도가 있다. 25일은 일요일이다. 그리스도교국가인 미국이나 남조선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있다. 우리가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했다는것을 믿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것이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전쟁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다는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미군사고문들의 지휘밑에 남조선군은 38°선전역에 걸쳐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불의의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는 이날에 일본기지에 있던 전투폭격기들을 조선전쟁에 출격시켰다. 그때로부터 가렬한 조선전쟁은 3년간이나 지속되였다. 미제는 조선전쟁을 통하여 우리 나라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발악하였다. 하지만 간고한 이 전쟁에서 청소한 우리 공화국은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으며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는 대참패를 당하였다.

력사의 진실은 가리울수도 지울수도 없다.

미제가 온갖 권모술수를 다 쓴다고 하여도 조선전쟁의 도발자로서의 정체는 절대로 감출수 없다.

주체111(2022)년 6월 14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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